특발성 폐섬유증(idiopathic pulmonary fibrosis, IPF)은 아직도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폐포(허파꽈리)벽에 만성 염증세포들이 침투하면서 폐를 딱딱하게 하는 질환이다. 폐의 염증과 섬유화로 폐조직에 심한 구조적 변화가 초래된다.
치료를 하지 않았을 때 계속 악화돼 환자의 약 50%이상이 3~5년 내에 사망한다고 알려져 있다. 병이 극단적으로 진행돼 비가역적인 섬유화가 나타나면 어떤 치료를 하더라도 호전이 되지 않는다. 조기에 치료할수록 효과가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명확한 원인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흡연, 환경 오염원의 미세흡인, 유전적 요인(surfactant protein 및 telomerase 등의 돌연변이), 방사선 노출 등이 원인으로 지적된다.
발생 빈도는 인구 10만 명당 약 13~20명 정도로 추산된다. 미국에 약 10만명 정도의 환자가 존재하고 해마다 3만~4만명이 신규 진단된다. IPF는 50대 이후에 호발하고 남자가 여자보다 2배가량 발생률이 높다.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폐쇄성수면무호흡증, 위식도역류질환, 관상동맥질환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아직도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폐섬유증(PF)의 종류에 따라 그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이 달라질 수 있다. 주치의만이 어떤 약이 환자에게 이로운지, 해로운지 평가할 수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2014년 승인한 IPF 치료제로는 베링거인겔하임의 ‘오페브연질캡슐’(Ofev 성분명 닌테다닙, Nintedanib), 로슈의 ‘에스브리에’(Esbriet 성분명 피르페니돈, Pirfenidone) 등 항섬유화제(anti-fibrotic agents) 두 가지가 전부다.
오페브는 혈관내피성장인자수용체(VEGFR), 섬유아세포성장인자수용체 (FGFR), 혈소판유래성장인자수용체(PDGFR)와 같은 IPF 관련 여러 성장인자를 표적으로 하는 티로신 키나제 억제제(TKI)이다.
반면 에스브리에는 다양한 세포 기능을 제어하고 섬유증 발병에 핵심적인 역할을하는 화학물질인 형질전환성장인자(transforming growth factor-β, TGF-β)의 합성을 차단한다. 이 약은 TGF-β로 자극된 콜라겐 합성을 억제하고, 세포외기질을 감소시키며, 섬유아세포의 증식을 차단하는 항섬유 효과를 발휘한다.
이들 의약품은 임상시험에서 폐의 섬유화 또는 흉터 발생 빈도를 낮췄음을 보여줬다. 이들 약은 경증, 중등도, 중증 IPF 환자에게 승인됐다.
둘 중 어느 약이 더 낫다는 우열이 없고 먼저 권장되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 약이 더 효과적일 수 있어 의사가 최적의 처방을 내리기 위해 탐색하고 환자와 협력하게 된다. 주치의는 약물로 인한 부작용을 모니터링하면서 증상 관리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완화의료 전문의를 추천하기도 한다.
그동안의 임상시험과 실제 치료현장에서 피르페니돈과 닌테다닙은 무진행 생존기간(progression-free survival, PFS)을 늘리고, 폐기능 저하를 둔화시키며, IPF 환자의 사망률을 낮춘 것으로 나타났다. 닌테다닙은 치료 초기에 피르페니돈보다 내약성이 나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는 1차 약물로 닌테다닙이 선호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올해 3월 13일 영국의학저널 공개 호흡기연구(BMJ Open Respiratory Research)에 실린 ‘특발성 폐섬유화증에서 항섬유화제의 효과와 안전성을 탐구하는 후향적 연구’ 논문에 따르면 로슈의 자회사 제넨텍이 판매 중인 에스브리에(Esbriet)과 베링거인겔하임의 오페브(유럽연합 내 브랜드명 바르가테프·Vargatef)는 임상시험에서 질병 진행을 늦추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에 참여한 영국 의료진들은 IPF 환자들을 치료하는 의사의 일상적 임상관행과 관련, 더 많은 통찰을 제공하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항섬유화제의 유효성과 안전성을 검증한 결과 임상 관행의 전환이 이뤄졌다는 결론이다.
영국 잉글랜드 중부 버밍엄(Birmingham)의 퀸엘리자베스병원(Queen Elizabeth Hospital)에서 실시된 이 연구는 항섬유화제를 투여받는 IPF 환자 104명과 항섬유화제를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 대조군 64명을 비교했다. 연구자들은 이 연구가 “최초로 대조군을 포함시켜 비교가 가능하고 항섬유화제의 효과와 내약성을 확인한 임상현장(Real-world) 연구”라고 주장했다.
항섬유화제를 투여받은 환자 104명 중 62명은 에스브리에을, 42명은 오페브로 투여를 시작했다. 이들 환자 중 14명(13.5%)는 치료 중 어느 시점에서 한 약물에서 다른 약물로 전환했다.
연구진은 두 항섬유화제가 무진행 생존기간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폐기능 측정치인 강제폐활량(forced vital capacity, FVC, 최대한 공기를 흡입한 뒤 힘껏 최대한 내뱉은 공기량)이 10% 이상 감소되지 않고 생존한 기간으로 비교했다.
6개월 차의 무진행 생존은 대조군(56.3%)보다 항섬유화제 투여군(75%)이 훨씬 높았지만 12개월 또는 18개월 후에 이 차이는 유지되지 않았다.
이어 연구자들은 항섬유화제가 폐기능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항섬유화제 투여군은 치료 시작 12개월 후 예측 FVC 평균 감소율이 4.6%로, 치료 12개월 전의 10.4% 감소에 비해 증세가 크게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항섬유화 작용이 폐기능 저하를 둔화시킴을 입증한 것이다.
항섬유화제 투여군은 치료 시작 12개월 후 예측 FVC 평균 감소율이 4.6%로 낮게 나타나 치료 12개월 전의 10.4%보다 크게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항섬유화 작용이 폐기능 저하를 둔화시킨 것을 입증한 것이다.
두 항섬유화제와 관련된 부작용은 모두 이전 임상시험에서 관찰된 것과 동일했다. 에스브리에의 가장 흔한 부작용은 메스꺼움(36.8%)이었고, 오페브는 설사(62%)였다.
익히 알려진 에스브리에의 부작용으로는 간기능 저하(피부나 눈의 황변, 갈색 또는 짙은 갈색의 소변, 위 오른쪽 상부의 통증, AST/ALT 증가, 빌리루빈 증가, γ-GTP 상승), 광민감성(자외선차단지수 50 이상의 차단제 도포 필수), 메스꺼움, 구토, 설사, 소화불량, 속쓰림, 복통 등이 있다.
닌테다닙도 간기능 이상(AST, ALT, ALKP, GGT 등 상승), 설사, 구토, 구역, 복통 등의 부작용을 갖고 있다.
치료 후 3개월과 6개월 시점에서의 치료 중단율은 에스브리에(각각 29%, 40.3%)가 오페브(7.1%, 21.4%)보다 월등히 높았다. 치료 12개월 후(에스브리에 46.8%, 오페브 38.1%)나 18개월 후(에스브리에 58.3% 대 오페브 52.5%)에는 큰 차이가 관찰되지 않았다.
연구팀은 “비록 두 항섬유화제 모두 허용 가능한 안전성을 보이고 있지만 이 데이터는 오페브의 내약성이 더 높아 생존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이어 “조기치료 중단율이 낮은 점을 감안할 때 오페브를 1차 항섬유화 치료제로 사용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지만 “이를 조사하기 위해서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구에서 사망률은 이전의 임상시험에서 보고된 사망률보다 더 높았으며(항섬유화제군 26%, 대조군 34.4%), 이는 실제 임상환경에서 환자의 광범위한 특성들을 반영할 수 있다. 연구팀은 이와 관련, “임상시험에서 이뤄지는 상담 환경과 의료자원이 실제 임상현장에서 이뤄지는 의사 결정과 서로 다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과거의 임상시험의 데이터와 일관되게, 항섬유화제는 사망률에 유의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다만 초기 6개월 내에 치료를 중단한 환자를 제외하면 12개월차의 사망률은 대조군(24.4%)에 비해 항섬유화제 투여군(15.7%)이 크게 낮았다. 18개월에도 유사한 결과가 나왔는데 항섬유화제군이 25%, 대조군이 44.4%였다.
여러 변수를 동시에 분석한 결과 연구자들은 치료 후 12개월째의 사망률을 높이는 두 가지 독립적 예측변수로 25 이하의 체질량지수(BMI, 체중을 키의 제곱으로 나눈 수, kg/㎡)와 35% 이하의 일산화탄소 확산 능력(diffusing capacity for carbon monoxide, DLCO, 산소를 적혈구에 전달하는 폐의 능력을 의미)을 확인했다.
연구진들은 치료 중단과 관련된 3가지 위험 요소들을 알아냈다. 그것은 75세 이상의 연령, 여성, 25 이하의 BMI였다. 연구자들은 “임상 사망률 예측 변수와 치료 중단 요인의 식별은 향후 IPF 치료에 더 계층화된 접근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전반적으로 연구팀은 “이번 실제 임상연구는 항섬유화제가 무진행 생존, 폐 기능, 사망률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밝혀냈으며, 항섬유화제 치료 초기에는 피르페니돈보다 닌테다닙의 내약성이 더 좋은 것으로 보인다고 결론지었다.
다른 연구로 영국 맨체스터대 연구자들은 지난해 11월 FVC가 보존된(80%이상) IPF 환자를 대상으로 항섬유화제를 투여하는 동정적 임상시험 결과를 발표했다. 영국에서는 약물경제학에 따라 FVC가 50~80%인 환자에게만 급여를 해주고 있다.
161명의 환자 중 86명(53.4%)은 평균 24.3개월 동안 오페브를, 24명(14.9%)은 평균 21.8개월 동안 에스브리에을, 18명(11.2%)은 두 약물을 모두 처방받았다. 나머지 33명(20.5%)는 아무런 치료를 하지 않았다. 연구는 총 3년에 걸쳐 진행됐다.
연구 시작 시점에서 치료를 받지 않은 환자(FVC 100.5%)는 폐기능이 훨씬 더 좋았다. 오페브는 93%, 에스브리에는 90%, 두 약을 모두 복용한 환자는 92.7%였다.
마찬가지로 폐가 가스를 혈류로 전달하는 DLCO도 치료를 받지 않은 환자 (4.13)에서 오페브 투여군(3.54) 또는 에스브리에 투여군(3.14)보다 훨씬 높았다.
그러나 FVC는 치료 후 1년 동안 오페브 투여군은 2.96%, 에스브리에 투여군은 2.77%(139ml), 치료받지 않은 환자군은 3.72%(158.1ml) 감소했다. 두 약물을 모두 사용한 그룹에서는 6.36%의 현저한 감소가 발견됐다. 폐기능 감소는 이후 2년 동안 계속됐으며, 특히 두 약을 모두 투여한 환자는 더욱 감소세가 컸다.
진단 후 치료받지 않은 환자의 생존기간 중앙값은 2.5년이었다. 오페브로 치료받은 참가자는 3년, 에스브리에 투여군은 3.5년, 두 가지 약 모두 복용한 환자는 3.75년의 생존기간을 보였다.
이 연구에서 중요한 것은 표현형에서 ‘경증’으로 분류된 치료받지 않은 환자의 생존기간 중앙값이 약간 증세가 더 나쁜 항섬유화제 투여군보다 감소했다는 사실이다.
식욕 감퇴 (19.6% 대 9%), 피로 (17.9% 대 9.8%), 피부 발진(8.9% 대 0%)등의 부작용에서 에스브리에 치료군이 오페브 투여군보다 훨씬 많은 부작용을 보고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설사는 오페브에서 더 많이 보고됐다(33.8% 대 5.4%). 특히 환자의 21%는 참을 수 없는 부작용으로 인해 오페브 또는 에스브리에을 중단했다. 연구진은 “FVC가 80% 이상인 상대적으로 경미한 IPF 환자가 항섬유화제 치료로 혜택을 받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페브는 2020년에 매출이 전년 대비 38% 증가한 23억4000만달러를 기록했다. 이 약은 2014년 10월 15일에 FDA로부터 첫 IPF 치료제로 허가받았다. 이어 2019년 9월엔 전신경화증 관련 간질성 폐질환(Systemic sclerosis-associated interstitial lung disease, SSc-ILD) 적응증을 승인받았다.
또 작년 3월 9일엔 초희귀질환인 진행성 표현형(progressive phenotype)을 가진 만성 섬유화 간질성 폐질환(chronic fibrosing interstitial lung disease)으로 적응증을 추가했다. 이 추가 승인은 전체 간질성 폐질환(ILD)의 18~32% 환자를 커버하는 것이다. ILD는 폐조직의 비가역적 흉터를 초래할 수 있는 200가지 질환을 아우른다.
에스브리에는 2014년 8월 로슈가 83억달러를 들여 인터뮨(InterMune)을 인수하면서 확보한 약물 중 하나다. 2014년 10월 15일에 두 번째 IPF 치료제로 동시에 승인됐는데 지난해 4% 증가한 12억3000만달러(11억스위스프랑)의 매출을 올렸다. 에스브리에는 미국에서 IPF 이외의 적응증을 획득하는 게 관건이다. 지난 1월 FDA는 에스브리에을 분류할 수 없는 간질성 폐질환(unclassifiable interstitial lung disease, UILD) 적응증과 관련, 우선심사 대상으로 지정했다. FDA는 2021 년 5월까지 UILD에 적응증 승인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에스브리에는 미국에 앞서 유럽연합(EU)와 캐나다에서 출시됐고 국내에도 일동제약의 ‘피레스파정’, 영진약품의 ‘파이브로정’(대조약) 등 7개 제약사가 내놓은 제네릭이 출시돼 있다. 약물경제성 평가를 한 결과 유럽에서는 총 치료비용이 닌테다닙은 10만2315유로로 피르페니돈의 11만3313유로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것으로 분석됐다.
로슈는 올해 에스브리에의 일부 특허가 만료됨에 따라 IPF를 넘어서는 적응증을 확보하길 희망하고 있다. 로슈는 이미 노바티스의 산도스와 이스라엘 테바 등 여러 제약사를 대상으로 특허소송을 진행하면서 독점권 확보에 노력하고 있다.
대웅제약이 개발한 ‘DWN12088’은 2019년 FDA로부터 IPF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된 데 이어 지난 24일 전신피부경화증으로 추가 지정을 받았다. 최근 IPF 관련 호주 임상 1상에서 안전성과 약동학적 특성을 평가하고 신약 가능성을 확인했다. 올해 안에 미국과 한국에서 임상 2상을 신청할 계획이다.
DWN12088는 계열 최초의 Prolyl tRNA Synthetase(PRS) 억제제다. 전신피부경화증은 손끝을 비롯해 전신의 피부가 딱딱해지기 시작해 나중에는 폐, 심장 등 주요 장기까지 딱딱하게 변하는 질환이다. 현재까지 전신피부경화증 치료제로 허가받은 의약품은 없다.
특발성 폐섬유증(IPF)은 특발성 간질성 폐렴(idiopathic interstitial pneumonias, IIP)의 가장 흔한 하위 유형이다. IIP는 간질성 폐질환(ILD)이라는 희귀질환 그룹에 속한다.
IPF 치료제 개발에선 많은 제약사가 좌절을 겪었다. 길리어드사이언스와 갈라파고스가 공동 개발한 ‘지리탁세스타트’(ziritaxestat, 코드명 GLPG1690)는 지난 2월 IPF 및 전신경화증(Systemic Sclerosis, SSc)을 포함한 모든 적응증의 개발을 중단키로 했다. 3상 진행을 멈추기로 한 것이다.
바이오젠(Biogen)도 2019년 9월 IPF 치료 신약후보물질(BG00011 또는 STX-100)에 대한 2상 임상시험을 안전성을 이유로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소재 피브로겐(Fibrogen)이 개발한 계열 최초의 결합조직성장인자(connective tissue growth factor, CTGF) 억제제인 팜리블루맙(Pamrevlumab)은 특발성폐섬유증(IPF), 뒤센근이영양증(DMD), 국소진행성 절개불가 췌장암(locally advanced unresectable pancreatic cancer, LAPC) 등을 적응증 목표로 삼아 2021년 2월 3상에 착수했다. 이르면 2024년에 출시될 유망 IPF 치료제로 주목받고 있다.
이밖에 새로 등장하는 IPF 파이프라인에서 기대되는 제품은 로슈의 RG 6354, 미국 메디노바(MediciNova)의 티페루카스트(Tipelukast 코드명 MN-001), 덴마크 갈렉토(Galecto)가 개발한 GB0139 등이다.
티페루카스트는 류코트리엔(LT) 수용체 길항 작용, 포스포디에스테라제 (PDE) 억제(주로 3형, 4형), 5-리폭시저나제(5-LO) 억제, LOXL2·콜라겐 1형·TIMP-1과 같은 섬유증을 촉진하는 유전자의 하향조절, CCR2 및 MCP-1과 같은 염증을 촉진하는 유전자의 하향 조절 등 복합적인 기전을 갖고 있다.
GB0139는 GALACTIC-1으로 명명된 2b/3상을 진행 중이며 지난해 11월 30일 공개한 2a상 결과 IPF의 바이오마커인 YKL-40 등이 유의하게 감소함을 입증했다.
이밖에 카드몬(Kadmon Corporation), 프로메디오(Promedior, Inc) 등이 IPF 신약개발에 도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