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군은 일제 강점기를 지나 해방되는 과정에서 유엔의 신탁통치 결의안에 따라 북한에 편입됐다가 6.25전쟁 후 수복된 지역이다. 그러나 군내에 휴전선이 그어지면서 고성군도 남북으로 나뉘어 분단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비무장지대(DMZ)를 사이에 두고 북한 땅과 맞닿아 있는 고성군 접경지역에는 긴장감이 흐르지만 가장 평화를 갈망하는 곳이기도 하다.
분단의 아픔과 평화를 향한 염원이 가장 선명하게 교차하는 곳이 바로 고성 통일전망대다. 전망대를 가려면 10km 후방에 위치한 통일안보공원 내 출입국 신고사무소에 들려 민통선 출입신고서 작성 후 출입허가증을 받고 안보 전시관에서 약 10분 정도의 영상을 보는 안보교육을 받아야 한다(현재 코로나19로 인해 안보 교육은 생략되고 있다).
출입허가증을 지참하고 타고 온 차량으로 통일전망대로 이동한다. 중간에 DMZ 검문소에서 허가증을 제시하고 차량 탑승원들의 확인이 끝나면 차량 통행을 허가해준다. 검문소를 통과하면 곧 전망대가 나온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로 긴장감은 더해지고 분단은 실감난다.
DMZ와 남방한계선이 만나는 해발 70m 고지 위에 34m 높이로 건립된 통일전망 타워에 오르면 바로 눈앞에 북녘땅이 펼쳐진다. 금강산의 구선봉과 해금강이 지척이고 시야가 좋은 날은 육안으로 비로봉까지 조망할 수 있다. 발밑으로는 동해북부선 철도를 잇는 공사 장면과 2004년 12월 개통된 동해선 남북연결 도로가 보인다. 전망대에는 성모 마리아상과 설악산 신흥사에서 조성한 미륵불 및 실향민들을 위한 망향단이 배치돼 있다.
이밖에 통일전망대에서 시작되는 ‘DMZ 평화의 길’을 통해 금강산전망대 투어 코스와 생태 관광 등이 가능하다. 평화의 길은 통일전망대에서 시작해 해안 철책을 따라 2.7km 도보 이동 후 금강산전망대까지 차량으로 이동하는 A코스와 통일전망대에서 금강산전망대까지 차량으로 왕복 운행하는 B코스가 있다. 홈페이지로 사전 신청해야 입장이 가능하다. 현재 코로나19와 남북관계의 경색으로 평화의 길 출입은 중단된 상태다.
통일전망대 가는 길목에 위치한 DMZ 박물관은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전후 모습과 휴전선의 역사적 의미, DMZ 생태환경 등을 재구성해 보여주고 있다. .
통일전망대에서 남쪽으로 10km 정도 내려오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석호인 화진포에 닿는다. 화진포 해변은 넓이가 무려 72만평에 달하며 호수 둘레의 길이는 16km 에 이른다. 사시사철 울창한 소나무 숲이 우거져 있고 여름이면 분홍빛 해당화가 화사하게 피어나는 호수 풍경이 한 폭의 수채화와 같다.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화진포는 바다생물과 민물생물이 공존하고 있어 생태학적으로도 매우 가치가 높다.
화진포(花津浦)라는 지명에는 유래를 설명하는 슬픈 설화가 뒤따른다. 화진포 열산이라는 마을에 이화진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성정이 온화하지 못하고 자비심이 부족한 이화진은 건봉사에서 나온 스님들에게 시주도 하지 않고 골탕을 먹이기 일쑤였다. 하루는 그의 마음씨 착한 며느리가 스님을 찾아갔으나 끝내 보지 못했다. 며느리가 집으로 돌아와보니 마을 전체가 물에 잠겨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혼자 남은 며느리는 결국 자살하고 말았다. 처음에는 마을의 이름을 따서 열산호로 부르다가 지금은 못된 시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화진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왜 이토록 아름다운 호수에 못된 시아버지의 이름을 붙였는지는 의문이다.
호수 너머로는 푸르디푸른 동해바다가 펼쳐진다. 멀리서부터 거침없이 몰려온 파도가 거품을 일으키며 하얗게 부서지는 모습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답다. 파도가 밀려 나간 앞바다 500m 전방에 거북이 형상을 한 금구도(金龜島)가 솟아 있다. 여간 신비로운 것이 아니다. 이 모든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에 ‘화진포의 성(城)’이 자리잡고 있다.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김일성 별장’이라고 부르는 이곳에는 김일성 별장 외에도 이승만 대통령 별장과 이기붕 부통령 별장까지 모두 3채의 별장이 모여 있다. 해방 이후 격동기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했던 두 인물, 김일성과 이승만의 별장이 한 곳에 있다는 사실 자체도 흥미롭지만 하나는 바닷가 언덕 위에, 다른 하나는 호숫가 언덕 위에 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때문에 화진포 여행은 우리나라의 현대사 답사길이기도 하다.
선교사 휴양소에서 김일성 별장으로 바뀌었던 화진포의 성
김일성 별장은 엄밀히 말하면 김일성 일가가 몇 차례 여름휴가를 왔던 곳이다. 애초에 이 건물은 1938년 캐나다 국적의 선교사 셔우드 홀(Sherwood Hall 1893~1991) 부부가 독일로부터 망명한 건축가 베버(H.Weber)에게 의뢰해 해안 절벽 위에 지은 예배당이었다. 선교사들의 하계 휴양지로 이용됐다.
해방 이후 북한 공산당 고위 간부들의 휴양지로 이용되었으며 1948~1950년 2년 동안 김일성 일가가 이곳에서 여름 휴가를 보냈다. 이후 김일성 별장이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한국전쟁 중 훼손된 건물을 2005년도에 옛 모습대로 복원해 ‘화진포의 성’으로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다.
해안가 절벽 위에 울창한 소나무숲에 둘러싸인 중세 유럽풍의 2층 석조건물은 보기에도 운치가 넘친다. 건물 입구로 이어지는 계단참에는 1948년 당시 6살이던 김정일과 동생 김경희가 나란히 계단에 앉아 사진을 찍은 곳이라는 설명과 함께 당시 촬영한 사진이 걸려 있다. 처음 이 사진이 걸릴 당시 어린 김정일의 모습이 공개돼 되어 화제를 낳기도 했다.
1층에는 셔우드 홀 영상실과 화진포의 역사와 남북관계 변천사를 보여주는 자료들이 전시돼 있다. 2018년 4월 27일의 문재인-김정은 남북정상회담 사진도 걸려 있다.
폐결핵 퇴치 의료선교사인 셔우드 홀 부부는 한국의 폐결핵 퇴치에 지대한 공을 세운 인물이다. 그들은 폐결핵 요양소를 세우고 운영비 마련과 결핵퇴치운동을 위해 1932년 한국 최초로 크리스마스 씰을 발행하기도 했다. 2층에는 김일성의 집무실과 침실 등이 배치돼 있다. 3층 옥상 전망대에 오르면 산, 바다, 호수, 숲, 섬들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광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김일성 별장에서 해발 122m 응봉까지 ‘화진포 소나무숲 산림욕장’이 이어진다. 산림욕장은 산림테라피원, 관목원, 습지원, 명상숲길 등 다양한 테마로 꾸며져 있다. 응봉에 오르면 화진포의 북호와 남호까지 조망된다. 2015년 12월 고성군을 방문한 싱가포르의 리센룽 총리 부부가 개인 SNS에 ‘응봉 가는 길에 본 화진포’ 사진과 ‘화진포는 아름다운 해변과 고요한 호수를 간직한 곳’이라는 글을 올린 이후 싱가포르 단체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김일성 별장에서 5분 거리 지척에 있는 이기붕 별장
김일성 별장에서 5분 거리에는 이기붕 부통령의 별장이 있다. 이기붕 별장은 뒤쪽으로는 바다가 펼쳐지고 앞쪽으로는 화진포가 내다보이는 소나무숲에 자리잡고 있다. 화진포와 송림이 어우러진 아늑한 풍광이 일품이다. 이 건물은 원래는 1920년대 외국인 선교사들이 지은 사택이었으나 해방 이후 북한공산당 간부 휴양소로 사용됐다. 휴전 후 이기붕 부통령의 부인 박마리아가 개인 별장으로 사용했다. 1999년 7월 전시관으로 보수해 운영되고 있으며 내부에는 접견실과 집무실, 침실 등이 복원돼 있다.
해안가가 아닌 호숫가에 자리한 이승만 대통령 별장
화진포의 성에서 차로 약 2분, 도보로 약 15분 거리에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 이승만 별장이 있다. 차를 타고 호숫가를 천천히 드라이브해도 좋고 이기붕 별장 관람 후 솔숲 길을 따라 걸어 가도 좋다. 진한 솔향을 맡으며 천천히 솔 숲 사이 오솔길을 걷다가 호숫가에 핀 성미 급한 해당화와 눈을 마주치고 갈대처럼 봄바람에 몸을 맡기며 두 발로 걸어가기를 추천한다.
화진포 호숫가 언덕 위에 위치한 이승만 대통령 별장은 소박한 단층 건물로 집무실과 침실, 벽난로가 놓여진 거실이 배치돼 있다. 1910년 미국 유학에서 돌아와 선교사를 만나러 화진포에 왔다가 화진포 풍광에 반한 이승만은 6.25전쟁 이후 화진포를 수복하자 1954년 선교사 집이 있던 자리에 별장을 짓고 낚시를 즐겼다고 한다. 1954년 27평 규모의 단층으로 지어졌으며 1960년까지 이승만 대통령 별장으로 사용했다가 철거됐다. 이후 1999년 7월 육군에서 본래 모습으로 복원해 유품을 기증받아 전시하고 있다.
별장에서 위쪽으로 20여 m 떨어진 곳에 육군관사로 사용하던 건물을 개보수해 2007년 7월 개관한 ‘이승만 대통령 화진포 기념관’이 있다. 별장에 남아 있던 유품과 역사적인 자료를 기증받아 전시하고 있다.
2013년 개관한 화진포 생태박물관에는 각종 동물의 박제와 골격, 화석류, 실물 모형, 영상자료 등을 통해 화진포와 관련한 생태계를 관람할 수 있다.
입장권 한 장으로 화진포의 성(김일성 별장), 이승만 별장 및 화진포 기념관(이승만 별장), 이기붕 별장, 생태박물관 등 총 4곳을 관람할 수 있다. 매표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동절기엔 4시 30분), 관람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동절기엔 오후 5시 30분)까지다.
아야진·가진·문암 ·백도 등 고성의 아름다운 해변과 항포구
고성군에는 동해안을 따라 27곳의 아름다운 해변이 자리잡고 있다. 해변은 우리나라 최북단에 위치한 덕분인지 유난히 물이 맑고 투명하다. 하얀 파도가 넘실대는 해변가에 서면 속마음까지 그대로 투영될 것만 같다.
화진포의 성에서 가까운 화진포 해변은 조개껍질과 바위가 부서져 만들어진 백사장으로 유명하다. 그 남쪽의 거진해변은 한쪽은 백사장이 또 다른 쪽에는 백섬을 중심으로 한 갯바위 해변이 끝없이 펼쳐진다.
바위가 많고 수심이 얕은 아야진해변은 최근 멋진 카페와 펜션이 많이 들어서서 방문객들이 급증하고 있는 ‘핫 플레이스’다. 이외에도 가진, 공현진, 교암, 대진, 마차진, 문암, 반암, 백도, 봉수대, 삼포, 천진 등 크고 작은 개성이 뚜렷한 해변이 많아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생선의 비릿함이 진동하고 팔딱거리는 물고기의 활기참이 가득한 항구 여행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거진보다 더 남쪽인 가진항에는 물회를 전국에 알리기 시작한 횟집들이 즐비하다. 거진항에서는 아침마다 생선 경매가 열리고 명태 식혜 등 고성군의 별미인 명태를 활용한 다양한 별미 음식을 즐길 수 있다.
화진포보다 북쪽인 대진항은 북방 어로한계선인 저도 어장에서 잡아 올린 문어가 유명하다. 생물인지 데친 것인지 헷갈릴 정도로 살짝 데친 문어의 식감이 일품이다. 바다 한가운데로 난 전망데크와 너른 갯바위와 해안가를 따라 설치된 알록달록 무지개빛 레고형 조형물들이 감각적이다.
봉포항은 낚시꾼들과 스킨스쿠버족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규모는 작지만 주변에 콘도와 펜션단지와 가성비 좋은 횟집들이 많다.
고성 역사문화 여행 … 금강산 자락의 건봉사·화암사, 동해의 풍류 청간정·천학정
고성군 거진읍 냉천리 금강산 끝자락 해발 900m 건봉산 기슭에 위치한 건봉사(乾鳳寺)는 고성 8경 중 1경에 해당한다. 민통선 안에 위치한 건봉사는 일반인의 방문이 통제됐다가 1992년에야 일반인의 출입이 허용됐다. 6.25전쟁으로 완전 폐허가 되었으나 거듭된 중창불사를 통해 오늘날의 모습이 됐다.
건봉사는 신라 법흥왕 때(520년) 아도화상에 의해 건립돼 원각사(圓覺寺)로 불리다가 고려 말 나옹화상이 중수하고 건봉사로 고쳐 불렀다.
조선 세조가 피부병 치료를 위해 건봉사를 들른 이후 조선왕실의 원당이 된 이후 건봉사의 위세는 절정에 달했다. 양양의 낙산사, 설악산 신흥사와 백담사, 고성 화암사 등 9개 말사를 거느렸던 전국 4대 사찰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지금은 거꾸로 건봉사가 신흥사의 말사가 됐다.
절 입구의 아담한 소나무 숲이 아늑한 느낌을 주며 너른 평지에 조성돼 관람하기가 좋다. 모든 전각이 6.25 전쟁 때 전소됐지만 불이문(不二門, 해탈문)은 전쟁의 화마를 피했다. 1920년대 지어진 건봉사 불이문 기둥에는 금강저(金剛杵, 아수라 무리를 처단할 때 쓴다는 무기이자 佛具) 문양이 새겨져 있으며, 조선 마지막 왕세자인 영친왕의 스승 해강 김규진(海崗 金圭鎭 1868~1933)이 쓴 현판이 걸려 있다.
불이문을 통과하면 부도전과 범종각, 능파교(凌波橋)와 그 건너 대웅보전이 모습을 드러낸다. 아름다운 홍교(虹橋, 무지개 모양의 석교)인 능파교는 숙종 30~33년에 건립됐으나 영조 때 홍수로 유실돼 중수했다. 현재의 다리는 2005년에 복원됐다.
건봉사 적멸보궁에는 임진왜란 때 일본에 약탈당했다가 사명대사가 되찾아 온 진신사리가 봉안돼 있다. 전 세계적으로 부처님의 치아 사리는 모두 15과에 불과한데 그중 12과가 건봉사에 모셔져 있으며, 나머지 2과가 스리랑카에 모셔져 있다. 대웅전 옆 만일 염불원에서 치아사리를 친견할 수 있다.
고성군 토성면 신평리의 화암사(禾巖寺)는 금강산 남쪽 제1봉인 신선봉(神仙峰, 해발 1204m) 자락에 위치한 신라 천년 사찰이다. 신라 혜공왕 5년(769년) 진표율사가 창건했다. 6.25전쟁 때 전소돼 1986년에 중창하였다. 1991년 세계 잼버리 대회가 이곳에서 열려 약 1000여명의 신자가 이곳 대웅전에서 수계(受戒)를 받았다고 한다.
설악산에서도 멀지 않다. 가을철 설악산 단풍 인파를 피해 화암사로 발길을 돌려도 좋을 만큼 가을 단풍이 아름답다.
푸른 물빛과 기암절벽, 울창한 송림 등 천혜의 절경을 자랑하는 고성 앞바다에 풍류를 즐길 누각 하나 없으면 섭섭하다. 고성에는 고성 8경에 속하는 청간정과 천학정 등이 남아 있다.
토성면 청간리의 청간정(淸澗亭)은 청간천 하구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다. 소나무가 그득한 들머리 길을 오르면 돌연 땅에서 솟은 듯 거대한 정자 한 채가 소나무 숲과 대나무 숲 사이에서 홀연히 모습을 드러낸다. 정자 가까이 다가설수록 눈 앞에 펼쳐지는 풍광에 넋이 나간다. 남과 북으로 청간천 하구와 기암절벽이 내다 보이고, 동서로는 동해안과 설악의 능선이 펼쳐지고 푸른 물결이 넘실대니 한 시라도 눈을 뗄 수가 없다.
일찍이 송강 정철이 ‘관동별곡’에서 청간정의 아름다움을 노래했고 김홍도의 ‘금강사군첩’, 정선의 ‘관동명승첩’, 허필의 ‘관동팔경도병’에도 청간정의 모습이 남아 있다. 이밖에도 강세황의 ‘풍악장유첩’, 현대화가 이의성의 ‘해산도첩’에서도 청간정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청간정의 정확한 건립 연대는 알 수 없으나 1520년 중수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6.25전쟁으로 전소돼 1981년 복원되었다. 청간정에는 안밖으로 두 개의 현판이 걸려 있는데, 밖의 현판은 독립운동가 청파 김형윤(靑坡 金亨胤)이 1928년도에 쓴 것이며, 안쪽의 현판은 이승만 대통령이 휘호했다. 독립운동가로 최고 권자에 올랐다가 부정부패와 독재의 오명을 쓰고 역사의 단죄를 받은 하야한 전직 대통령의 글씨가 한 자리에 걸려 있어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고성군 토성면 교암리의 천학정(天鶴亭)은 교암리 마을 앞 조그만 산, 가파른 해안 절벽 위에 자리잡고 있다. 1931년 지방유지 한치응, 최순문, 김성운 등이 뜻을 모아 정면 2칸, 측면 2칸, 겹처마 팔작지붕의 벽이 없는 단층건물이다.
남으로 청간정(淸澗亭)과 백도가 바라다보이고, 북으로는 능파대(凌波臺)가 가까이 있다. 주위에는 100년 이상이 된 소나무가 옛 정취를 느끼게 해주며 일출 명소다. 천학정 옆에는 교암리해수욕장, 백도해수욕장, 자작도해수욕장 일대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와 문암포구, 어명기가옥 등 관광명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