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로 해외여행이 힘들어지면서 이국적이면서도 신비로운 섬 여행이 각광받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2880여 개의 무인도와 470여 개의 유인도를 합쳐 3350여 개가 넘는 섬이 있다. 세계에서 인도네시아, 필리핀, 일본에 이어 네 번째로 섬이 많은 나라이다.
인천시 앞바다에 위치한 옹진군은 백령도를 비롯해 덕적도, 연평도, 승봉도, 소이작도, 자월도 등 전체가 섬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천 앞바다의 섬 가운데 육지와 가장 가까운 섬은 국제공항이 있는 인천광역시 중구 영종동의 영종도이다. 여기서 배를 타고 갈 수 있는 옹진군 북도면(北島面)의 신시모도가 오늘 소개할 여행지다.
영종도는 인천대교와 영종대교가 2009년과 2000년도에 완공되어 배를 타지 않아도 되고, 영종도에서 배로 10분이면 닿는 신시모도는 2005년 연도교가 놓이면서 이웃 동네 마실 다녀오듯 당일치기로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이들 섬들의 공통점은 접근성이 용이하다는 것과 섬인 듯 섬이 아닌 듯 묘한 매력이 풍긴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여섯번째로 큰 섬, 영종도 … 4개섬 간척, 두경승 사당
영종도의 염전
인천광역시 중구에 속하는 영종도(永宗島)는 한국에서 여섯 번째로 큰 섬이다. 대규모 간척사업을 통해 오늘날 대규모 섬이 되었다. 섬 면적의 절반이 인천국제공항 부지다. 간척사업을 벌이기 전에는 영종도, 신불도(薪佛島), 삼목도(三木島), 용유도(龍游島) 등 네 개의 섬으로 나뉘어 있었으나 얕은 바다를 간척으로 메워 하나의 섬이 됐다. 인천경제자유구역 사업으로 영종국제도시와 영종신도시가 조성됐다.
영종도는 ‘고려사지리지’나 ‘신증동국여지승람’과 같은 지리서에는 제비가 많다고 해서 ‘자연도’(紫燕島)라 불렀다. 고려시대에는 송나라와 교류하는 거점이었고 사신들을 접대했던 ‘경원정’(慶源亭)이라는 객관이 있었다. 경원정은 1875년(고종 12년) 일본의 군함 운양호의 포격으로 파괴됐다.
영종도는 고려 무신정권 이의민(이고, 이의방, 정중부, 경대승에 이어 정권을 잡음)과 대적하던 두경승(杜景升)의 유배지였다. 두경승은 김제 만경현 사람으로 만경두씨의 시조다. 그의 사당과 무덤이 영종도에 남아 있다. 두경승은 학식은 보잘 것 없었으나 양심적이고 용기가 대단했다고 전한다. 조선시대에는 해안 요새인 영종진과 왕의 행궁인 영종 행궁이 있었다.
섬 중앙에 솟은 백운산에는 신라 문무왕이 세웠다는 용궁사가 있으며, 을왕리 해수욕장에서 선녀 바위로 이어지는 둘레길과 영종도 하늘정원이 유명하다. 인천국제공항 전망대에서는 세계 각국의 비행기들이 뜨고 내리는 모습을 지척에서 지켜볼 수 있어 코로나19로 막혀 버린 해외 여행에 대한 아쉬움을 달랠 수 있다.
북도면 3개 섬 일컫는 ‘신시모도’ … 강화도와 지척, 신도가 가장 넓어
영종도 삼목선착장에서 북도면 장봉도 행 여객선을 타면 신도 선착장까지 10분이면 닿는다. 여름철에는 차량을 싣는데 만도 보통 한 시간 이상 기다려야 하지만 아직은 한산한 편이다. 승객들은 차 안에 머문 채 하선을 기다리지만 배 여행의 묘미는 역시 갑판에서 맡는 비릿한 바다내음과 갈매기들의 날갯짓을 감상하는 것일 테다.
신시모도는 신도(信島), 시도(矢島), 모도(茅島) 등 각 섬의 머리글자를 따서 부르는 이름이다. 일명 ‘삼형제섬’으로 2005년 건립된 연도교 덕에 도보나, 자전거, 승용차 등을 이용해 하나의 섬처럼 편하게 여행할 수 있다.
신시도모와 장봉도를 더한 북도면의 전체 면적은 17.64 ㎢이며 2016년 기준으로 약 2300명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북도면에는 이미 신석기시대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고려시대까지 강화도에 속했다.
이후 조선시대엔 경기도 옹진군에 속했다가 1995년 3월 이후 인천광역시 옹진군으로 편입됐다. 세 개의 섬 중에서 신도의 면적이 가장 크다. 북도면사무소, 파출소, 보건소, 우체국, 보건소, 농협 등 주요시설은 모두 시도에 있다.
선착장에서 빠져나오면 이내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오른편으로 가면 신도 1리, 2리로 빠지게 되고 왼편으로 가면 연도교를 건너 시도리로 가게 된다. 어느 쪽으로 먼저 향하던 신도 선착장으로 회귀하게 되니 마음이 끌리는 대로 방향을 잡으면 된다.
행정과 관광의 중심은 시도, 수기해변과 시도염전
신시모도의 중심지 역할을 하는 시도는 고려 말 장수 최영과 이성계가 강화도 마니산에서 이 섬을 과녁 삼아 활쏘기 연습을 했다고 해서 살섬 즉, 시도로 불리기 시작했다.
시도의 대표적인 명소로는 수기해변과 시도염전이다. 고운 백사장이 넓게 펼쳐지는 수기해변은 수심이 얕고 경사가 완만해 여름철이면 피서객들이 몰려든다. 해변 뒤쪽으로는 소나무숲과 개질언덕이 있다. 하루에 두 번 썰물이 들 때에는 회색빛 갯벌이 드넓게 펼쳐져 갯벌 체험장으로도 인기가 높으며, 시도 어민들의 전통어업 방식인 ‘독살’이 그대로 드러나서 독특한 풍광을 선사한다. 갯벌에서는 망둥어, 조개 등이 많이 잡힌다.
수기해변은 오래전 방영된 TV드라마 ‘풀하우스’ ‘슬픈연가’ 등의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이름값을 높였다. 해변과 개질언덕 입구에 촬영지임을 알리는 안내판이 서 있지만 촬영장 세트는 이미 오래전에 철거되었다. 해안가 끝에 놓인 계단을 오르면 수기 전망대와 수기해안 둘레길로 이어진다. 수기 전망대에 오르면 멀리 강화도 마니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인다. 수기해변에는 20여 동의 방갈로가 해변을 따라 조성돼 있고 식수대와 화장실 등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어 차박지나 캠핑장으로도 인기가 높다.
시도 염전
수기해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시도염전이 있다. 시도 천일염은 풍부한 일조량과 해풍 속에서 생산돼 염도가 낮고 물에 잘 녹으며, 첫 맛은 짜고 뒷맛은 달아 인기가 높다. 바다와 논 사이로 펼쳐지는 염전과 천일염이 가득 쌓여 있는 소금창고는 도시인들에게는 색다른 볼거리이다.
1883년 제물포 개항과 함께 일제 강점기 항만이 건설되면서부터 인천에 천일염전이 조성됐다. 당시 소금 한 가마니 가격이 쌀 한 가마니와 같았다고 한다. 오늘날 그 많던 인천의 염전은 거의 사라지고 석모도 삼량염전, 백령도 화동염전, 시도염전 등이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모도, 배미꾸미 조각공원과 박주기 해변
모도는 어부가 그물을 쳤는데 고기는 한 마리도 안 잡히고 띠(벼과의 풀, 茅)만 낚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띠섬’(띠염)이라고도 하며 삼형제 섬 중에서 가장 작다.
배미꾸미 조각공원과 박주기 해변이 모도의 필수 코스다. 시도에서 처음으로 마을이 있던 노루메기 해변을 지나 시모도교를 건너 해당화 꽃길을 달리면 박주기 해변과 배미꾸미 해변 이정표가 나온다.
이정표를 따라 5분 정도 달리면 섬 끝자락에 ‘모도와 이일호’라는 커다란 비석과 함께 조각공원이 모습을 드러낸다. 해변의 모양이 배 밑구멍처럼 생겼다고 해서 배미꾸미라는 이름이 붙었다.
조각가 이일호 선생이 모도에 여행 왔다가 황량한 섬의 풍경에 반해 개인 작업실 겸 건물을 짓고 앞마당과 해안가에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기 시작한 것이 오늘날의 ‘배미꾸미 조각공원’이 됐다. 어림잡아도 70~80점이 넘는 조각 작품들이 늘어서 있는 해변가는 낯설면서도 독특한 아름다움을 풍긴다.
배미꾸미 조각공원으로 인해 특별할 것 없는 작은 섬 모도는 아주 특별한 섬이 됐다. 인간의 성과 욕망 등을 표현한 초현실적인 작품들은 하나같이 독창적이다. 독창적이라는 수식어도 부족할 만큼 기괴하거나 보기에 민망한 작품들도 여럿이다. 작품명이 적혀 있지 않으니 느끼는 대로 감상하면 된다. 작가의 의도가 궁금하다면 언덕 위 카페에서 작가의 작품해설집을 빌려볼 수 있다.
작품들은 물때와 보는 방향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데 만조 날 일몰 시간에 바다를 배경으로 했을 때 가장 돋보인다.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은 ‘천국으로 가는 계단’과 ‘버들선생’이다. 손 모양을 형상화 한 작품 ‘천국으로 가는 계단’ 끝에는 애초에 계단이 있었으나 지금은 떨어져 나가고 없다. ‘계단이 없으니 결국 인간은 천국에 도달할 수 없는 것인가’라는 삶의 문제를 던지는 듯하다.
모도 배미꾸미조각공원의 작품 ‘버들선생’
바닷가로 성큼 나 앉은 큰 너럭 바위 위에는 철제로 만든 가지들을 길게 늘어뜨린 ‘버들선생’이 서 있다. 버들선생은 해신제를 지내는 신녀의 모습을 연상시키는가 하면, 머리를 풀어헤친 무녀를 닮은 듯도 하다. 만조가 들어 바닷물이 높게 차 오르면 물에 둥둥 떠 있는 듯, 물속에서 불쑥 솟아오른 듯 신비스럽게 보인다고 한다. 석양 속에 붉게 물드는 버들선생을 담기 위해 수많은 사진작가들이 이곳을 찾는다. 코로나19로 사망한 김기덕 감독의 2016년도 개봉작 ‘시간’도 이곳에서 촬영됐다. 영화를 보고 감동을 받은 외국인이 일부러 이곳을 찾아온 적도 있다고 한다.
밀물 때에는 또 다른 조각공원을 만날 수 있다. 자연이 빚은 조각들은 사람이 빚은 조각에 비하면 모양도 현란하지 않고 색깔도 화려하지 않지만 은근한 멋은 이쪽이 한 수 위인 듯하다. 바위에는 인간의 손으로는 결코 만들 수 없는 ‘시간’이 새겨져 있으니 말이다.
해안가 끝 계단을 오르면 울창한 소나무 숲과 아찔한 절벽과 해안의 조화가 절묘한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절벽 끝에 놓인 벤치에 앉아 배미꾸미 해변 최고의 뷰를 감상할 수 있다.
모도 박주기해변의 조형물과 풍경
모도 남쪽 끝뿌리에는 박쥐 모양처럼 생겼다고 해서 ‘박주기’라 불리는 아담한 해변이 있다. 모도 해변의 푸른 바다와 ‘Modo’ 조형물의 빨간색 대비가 여행자의 시선을 잡아끈다. 모도 제일의 포토존이다. 신시모도의 추억을 가장 선명하게 남길 수 있는 곳이다.
영종도와 강화도를 한 눈에 굽어볼 수 있는 신도 구봉산
신도는 조선 왕조 말엽인 1880년 경부터 이곳에서 진짜 소금을 제조했다 해서 ‘진염’(眞鹽)이라 불리다가 1914년 강화군 제도면에 편입되면서 주민들이 순박하고 성실하여 믿을 만하다 하여 신도라 부르기 시작했다.
신도 구봉산(九峯山)은 해발 179 m로 북도면을 통틀어 가장 높은 산이다. 봉우리가 아홉 개라 구봉산이라 불린다. 봄이면 등산로가 벚꽃으로 뒤덮여 벚꽃산으로도 불린다. 경사가 완만해서 큰 힘을 들이지 않고서 정상까지 오를 수 있다. 정상에 위치한 구봉정에 오르면 멀리 영종대교와 인천대교까지 내다 보인다.
구봉산으로 오르는 길 양쪽에는 약 4km 에 걸쳐 700여 그루의 벚나무와 진달래가 심어져 4~5월이면 꽃들이 만개해 장관을 이룬다. 육지보다 봄이 한 달가량 늦어 신시모도에서는 5월까지도 벚꽃을 볼 수 있고 벚꽃이 지고 나면 해당화 물결이 일렁인다. 신도 고남리 해당화 꽃길, 시도 해당화 꽃길, 모도 띠염 해당화 꽃길이 유명하다. 1.4km에 달하는 시도의 해당화 꽃길은 특히 아름답다.
신시모도에는 9.5km에 달하는 대한민국 해안누리길 53번 노선인 인천 삼형제섬 길을 비롯해 수기 해안둘레길과 모도 해안둘레길 등이 조성돼 있다. 선반 운항 시간은 세종해운 삼목매표소 (032)751–2211, 한라해운 삼목매표소 (032)746-8020 등에 문의하면 된다.
신도 구봉산 정상 전망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