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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투어
꽃길따라, 물길따라 전남 구례, 미리 가본 봄마중 여행
  • 변영숙 여행작가
  • 등록 2021-03-16 15:07:57
  • 수정 2021-03-16 15:5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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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성암, 절벽에 매달린 암자 ‘풍경에 취해’ … 쌍산재·운조루 고택 정겹고, 화엄사 홍매 한창
섬진강의 하얀 모래사장은 바닷가 백사장처럼 넓고 하얗게 반짝인다. 아버지의 너른 가슴을 연상시키는 섬진강은 넓고 여유롭다. 지금껏 그렇게 흘렀듯이 영원할 것만 같은 섬진강의 물길은 유독 이 땅 주인들의 한스러운 삶과 맞닿아 있다. 그 강을 따라 봄이면 벚꽃과 매화가 지천에 흐드러지게 피어나니 전국에서 몰려드는 상춘객들의 발길로 몸살을 앓는다.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에서 발원한 섬진강(蟾津江)은 전라북도 남동부를 관통하며 지리산 곳곳에 전설같은 얘기들을 뿌려놓고 남해로 흘러든다. 섬진강은 단군조선 때 강에 모래가 많다 하여 모래내 또는 모래가람으로 불렸다고 한다. 이후 모래가 많이 쌓여 ‘다사강’으로 부르다가 고려 초에는 두치강이라 했다. 고려 말 우왕때인 1385년에 섬진강으로 바뀌었다. 

섬진강의 섬은 두꺼비 섬(蟾) 자를 쓴다. 이와 관련해 고려시대 어느 해 여름 장마철에 강가에 몰려나온 두꺼비가 10리에 달했으며, 고려 우왕 때는 왜구가 침입해 오자 두꺼비들이 몰려와 울어대는 소리에 불길함을 느낀 왜구가 물러난 적도 있다고 한다. 이때부터 다사강 대신 섬진강이라 불렀다고 한다. 

섬진강 역시 여느 이름난 큰 강들처럼 오래전부터 치열한 싸움터와 침략의 길목이었다. 삼국시대엔 백제와 가야, 백제와 신라의 싸움터였고,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왜구의 한반도 침략의 길목이었다. 이후에도 동학농민군 3000~4000명이 백운산 자락 섬진강에서 죽어갔으며 한국전쟁을 전후해서는 빨치산들과 정부군이 피를 뿌렸다.

구례 섬진강변엔 벚나무와 매화나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3월 중순부터 3월 중순 매화를 시작으로 하순에 산수유꽃, 4월 초엔 벚꽃, 중순엔 배꽃이 피고지며 꽃의 향연을 펼친다. 

벚꽃은 하늘에 떠 있는 핑크빛 솜사탕 같다. 경상도 하동에 ‘쌍계사 벚꽃십리길 축제’가 있다면 전라도 구례에는  ‘섬진강변 벚꽃축제’가 있다. 구례의 벚꽃축제는 너른 들판과 시원한 섬진강변을 따라 펼쳐진다. 하동의 아기자기한 풍경과는 다른 시원한 풍광이다.

구례읍에서 남쪽으로 2km 떨어진 문척면 죽마리 오산(鰲山) 꼭대기에 사성암(四聖庵)이 아슬아슬하게 위치해 있다. 해발 530m의 오산은 옛부터 기암괴석이 많고 풍광이 수려해 소금강이라 불렸다. 높이는 낮아도 섬진강변에 붙어 우뚝 선 까닭에 전망이 수려하다. 사성암까지는 아찔한 절벽길이라 일반 승용차는 운행이 허락되지 않으며 셔틀버스나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사성암은 544년(백제 성왕 22년)에 인도 승려 연기(緣起)조사가 건립한 절로 전해지나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다. 사성암 사적기에는 원효대사, 의상대사, 도선국사, 진각국사 등 네 명의 고승이 수행하였다고 하여 ‘사성암’이라 부른다. 폐허가 되다 시피했던 암자터는 1990년대 말에 절벽에 기둥을 세우고 약사전, 지장전 등을 조성하며 명승지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사성암에서 바라보는 구례읍과 섬진강 일대, 지리산 연봉들은 한 폭의 산수화이다. 섬진강을 끼고 펼쳐지는 구례, 곡성의 들판은 풍요로움이 넘실댄다. 사성암 인근에는 풍월대, 망풍대, 신선대, 낙조대 등 12개의 비경이 병풍처럼 서 있다. 해질녘 섬진강 물줄기를 금빛으로 물들이며 순천으로 떨어지는 해넘이의 모습은 아름답다.
 
사성암 근처 암벽에는 9세기 말~10세기 초에 조성된 마애여래입상이 있다. 이 마애여래상은 원효대사가 선정에 들어 손톱으로 그렸다는 설도 있으나 연대가 맞지 않아 근거없는 속설이 구전되는 것으로 보인다. 높이 25m의 암벽에 전체 높이가 3.9m로 조성된 마애여래입상의 손에는 애민중생을 위한 약사발이 들려 있다. 광배의 불꽃 무늬와 넝쿨 무늬는 경주 골굴암 마애여래입상과 유사하다. 거대한 바위 사이에 조성된 산왕전에는 손톱 불상이 모셔져 있으며 원효대사가 수행했다는 도선굴이 남아 있다. 

섬진강변에서 방향을 틀어 지리산 자락으로 향한다. 민족의 영산 지리산 기슭에는 화엄사(華嚴寺), 연곡사(鷰谷寺), 천은사(泉隱寺) 등 유서 깊은 대찰들이 수두룩하다. 

구례의 동쪽 마산면의 노고단(老姑壇) 남서쪽에 위치한 화엄사는 대한불교조계종 31본산 중의 하나로 화엄 16사의 종찰이다. 8세기 중엽 통일신라 경덕왕 때 황룡사 소속의 화엄학 승려 연기(煙氣)가 창건한 사찰로 ‘화엄경’의 두 글자를 따서 화엄사라 한다. 

임진왜란 때 화재로 피해를 입어 1630년(인조 8년)에 벽암선사에 의해 중수됐고 1702년(숙종 28년)에 장륙전(각황전)이 중건돼 선종 양종 대가람의 지위를 얻었으며 이후에는 대규모의 중수는 없었다. 화엄사는 영화 ‘명당’에서 1000년을 망하지 않는 천년고찰의 배경지로도 등장하기도 했다. 

일주문과 금강문 사이에 중창주 벽암스님의 부도가 서 있다. 금강문, 천왕문을 차례로 지나면 보제루가 나온다. 화엄사의 보제루(普濟樓)는 장식과 단청을 하지 않아 질그릇 같은 소박하고, 기둥 높이가 버섯 기둥처럼 뭉툭하고 짧아 옆으로 돌아서 대웅전(보물 299호)으로 들어가게 만들었다. 정면 7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을 한 웅장한 보제루를 지나면 높은 축대에 올려 세워진 화엄사 대웅전 건물과 그 옆의 각황전, 석등, 오층석탑 등이 장엄한 모습을 드러낸다. 화엄사 대웅전은 보물 제 299호로 지정됐고 그 앞에 두 개의 오층석탑(동측 보물 132호, 서측 보물 133호)과 세계 최대 규모인 석등(국보 12호)이 있다.

현존하는 목조건물 중 가장 큰 화엄사 각황전과 한켠의 홍매

국보 제 67호인 화엄사 각황전(覺皇殿)은 현존하는 목조건물로는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각황전 앞에는 국보 35호인 4사자3층석탑, 영산회괘불탱 4점, 화엄석경, 보물 제300호인 원통전전 사자탑(圓通殿前獅子塔) 등 다수의 문화재가 있다. 

화엄사 동백숲과 반송, 천연기념물 38호 올벚나무, 천연기념물 458호 길상암 들매화 등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수령 300년 정도 된 높이 15m의 올벚나무는 애초에는 두 그루였으나 한 그루는 베어서 목재로 사용하였는데, 적묵당의 마루를 깔고도 남았다고 하니 나무의 크기를 짐작해 볼 수 있다. 

3월 초중순이면 만개하는 화엄사 만월당 앞의 매화

3월 10일쯤 되면 각황전 옆 ‘화엄사 흑매’(홍매)의 진한 향과 고혹적인 자태를 보기 위해 수많은 인파가 몰려든다. 만월당 앞마당에는 100년이 넘는 백매가 자라고 있으며 길상암 들매화는 꽃잎이 작고 풍성함도 떨어지지만 향과 기품이 어느 개량종보다 뛰어나니 다리품을 팔아볼 만하다.  

화엄사 부속암자인 구층암은 늙은 중처럼 오래된 건물이 편안한 곳이다. 볼품없이 휘어지고 갈라진 모과나무 기둥을 보고 있노라면 불현듯 인생무상이 느껴진다. 나무의 늙음과 사람의 늙음이 어찌 이리도 닮았을까. 

구례 산동면의 산수유 천국은 3월 중순이면 노랗게 빛나는 장관을 연출한다. 출처 구례군청

3월 중하순이면 구례군 산동면 일대에 산수유꽃이 꽃망울을 터뜨린다. 산에서 가장 먼저 핀다는 꽃이다. 국내 최대 산수유 단지인 산동면은 중국 산둥성의 처녀가 지리산으로 시집올 때 산수유 나무를 가져다 심어서 붙은 지명이라는 설이 있다. 구례 산수유는 전국 생산량의 60%를 차지한다. 

최근 영화배우 윤여정이 출연하는  tvN의 ‘윤스테이’ 촬영지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쌍산재(雙山齋)와 운조루 고택 등도 가볼 만한 곳이다. 

마산면 사도리의 쌍산재는 상사마을의 오래된 고택 여러 채를 개조해 숙박시설화했다. 마을의 남쪽으로는 섬진강이 흐르고 동북쪽으로는 지리산이 있다. 맑은 물줄기에 토지는 비옥한 편이다. 고려 개국에 공헌한 도선 스님이 마을 앞 강변 모래밭에서 그림을 그려 놓고 풍수지리를 논했다 하여 사도리(沙圖里)라 불린다고 전해진다.  

남한의 3대 길지로 꼽히는 구례 운조루. 출처 구례군청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의 운조루(雲鳥樓)는 낙안(순천)부사를 지냈던 안동 출신의 류이주(1726~1797)가 지은 99칸집의 사랑채를 말한다. 노고단의 옥녀가 형제봉에서 놀다가 금가락지를 떨어뜨린 금환낙지(金環落地)의 형상으로 자손 대대로 부귀와 영화를 누릴 수 있다는 말이 몇 백 년 전부터 전해 내려왔다. 명성이 자자해 이곳은 남한의 3대 길지로 알려지게 되었다.

운조루는 오래된 동백, 산수유, 백송, 매화나무 등이 인상적이다. 주변의 어려운 사람이 능히 쌀을 퍼갈 수 있도록 ‘타인능해’(他人能解)라는 문구를 쓴 뒤주도 인상적이다. 

운조루에서 가까운 호젓한 느낌의 쌍산재. 출처 구례군청

구례 피아골은 토지면 내동리 소재 연곡사에서 반야봉(般若峰 해발 1751m)에 이르는 계곡이다. 승려들이 척박한 토양에서도 잘 자라는 피를 길렀다 하여 피아골이라 부른다는 설이 있고, 6.25전쟁 때 유혈이 낭자하게 싸워서 그랬다는 설도 있다. 

피아골은 가을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하지만 초봄에는 고로쇠 수액을 채취하려는 주민과 이를 사가려는 사람으로 북적인다. 고로쇠는 ‘뼈에 이로운 물’이라는 뜻의 ‘골리수’(骨利水)에서 유래했다. 단풍나무과와 자작나무과의 활엽수에서 채취한 물을 통상 고로쇠물이라고 한다. 미네랄 성분이 일반 물의 40배나 들어 있어 위장병, 변비, 고혈압 등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신선한 고로쇠액은 아무리 먹어도 배탈이 나거나 물리지 않는다고 한다. 고로쇠 물로 된장을 담그면 깊은 단맛이 더욱 좋다.

봄날은 짧다. 살아갈 날은 그보다도 짧다. 그래서 서러운 인생을 위로받기에 남도 꽃길여행보다 나을 게 별로 없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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