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식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반찬 중 하나는 김치며 김치를 담글 때 빠져서는 안 되는 게 액젓이다. 탄수화물 식품인 쌀이 주식인 한국인들에게 액젓은 소화제와 같다.
물론 외국의 경우에도 액젓과 비슷한 피시소스들이 있다. 중국의 굴소스나 베트남의 ‘느억맘’, 태국의 ‘남쁠라’, 일본의 ‘샷스루’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들 피시소스는 우리나라의 액젓과는 제조방법, 맛과 풍미에서 완전히 격이 다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액젓은 김치를 담글 때 쓰는 멸치액젓과 까나리액젓이다. 최근에는 이들 액젓의 단점으로 지적되는 비린 맛을 없앤 참치액젓도 선호되고 있다.
방송에서 액젓을 먹는 것을 벌칙으로 많이 내보내다 보니 액젓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지만 김치 담글 때 빼고는 특별히 사용할 일이 없을 거라 생각한 액젓이 최근에는 각종 요리에 감칠맛을 더해주는 양념으로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음식문화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각종 액젓의 특성과 영양성분, 주로 사용되는 요리 등을 항암요리 전문가인 황미선 씨의 도움말로 알아본다.
김치는 물론 모든 음식에 감칠맛을 더해주는 ‘멸치액젓’
멸치액젓은 멸치과(Engraulidae)에 속하는 생선인 멸치(Engraulis japonica)에 20∼25%의 소금을 가해 발효·숙성시켜 달인 젓갈로 감칠맛이 풍부해 김치 양념에 많이 쓰인다.
멸치는 조선후기 실학자 정약전이 쓴 ‘자산어보(玆山魚譜)’와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 기록될 정도로 오래 전부터 밑반찬은 물론 젓갈·액젓·분말 등 감칠맛을 내는 데 빠뜨릴 수 없는 식재료로 사용돼 왔다.
우리나라 바다 전역, 그 중에서도 남해안에서 가장 많이 잡히는 멸치는 크기에 따라 대멸·중멸·소멸·자멸·세멸 등으로 구분한다. 멸치 액젓은 주로 대멸로 만든다. 멸치액젓이 만들어지게 된 것은 음식에 양념으로 사용할 경우 감칠맛을 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상온에서 빠르게 부패하는 멸치의 특성이 한몫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멸치액젓을 생각하면 감칠맛보다 비린내를 먼저 떠올린다. 멸치액젓 특유의 큼큼한 젓갈 냄새가 많이 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발효숙성이 잘된 멸치액젓은 비린내가 거의 없다. 속이 뒤집어질 정도로 비린내가 난다면 발효가 잘못됐거나 개봉 후 산패가 진행된 것이다.
또 멸치액젓 하면 으레 짙은 커피색을 떠올리지만 실제로는 숙성이 될수록 진한 붉은 색을 띤다. 검은색의 멸치액젓은 숙성 시 물이 들어갔거나 잡균이 칩입했을 때 혹은 숙성이 덜 된 경우로 볼 수 있다.
깊은 맛이 풍부하고 단맛은 적은 멸치액젓은 싱싱한 멸치에 소금을 넣고 발효시키고 침전을 시키는데 소금은 멸치가 상하는 것을 막아주면서 삼투압 작용을 통해 세포벽을 파괴한다. 이 때 세포벽 안에 있던 핵산과 아미노산이 용출되고 멸치에 있던 소화효소와 미생물이 단백질 등 고분자물질을 분해해 향기 성분을 생성한다.
오래 묵은 간장이 제대로 맛이 나듯 멸치액젓도 오래 묵을수록 글루탐산이 증가해 숙성 9년째에 최대치를 이루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현재 시중에서 시판 중인 멸치액젓은 1년 6개월 정도 숙성시킨 것이 대부분이다.
감칠맛이 뛰어난 멸치액젓은 김치를 담글 때, 특히 물김치나 나박김치를 담글 때 절대 빠져서는 안 된다. 총각김치, 겉절이, 생절이 등을 만들 때 넣으면 깊고 진한 맛을 낸다. 또 쇠고기 미역국 또는 황태해장국에 넣어 간을 맞추면 더욱 좋은 향미를 느낄 수 있다. 쇠고기 양지로 우린 육수에 조금 넣어 떡국을 끓여도 담백한 맛에 깊은 맛을 더해준다.
이외에 장아찌를 만들 때 채소에 멸치액젓을 부어 삭히면 맛깔스런 장아찌를 만들 수 있다. 간장게장을 만들 때 간장의 양을 줄일 수 있다. 호박나물, 시래기나물, 박나물 등을 무칠 때 사용해도 음식의 풍미를 더해준다.
깔끔한 맛의 고칼슘, 고단백 젓갈, ‘까나리액젓’
까나리액젓은 까나리과(Ammodytidae)에 속하는 까나리(Ammondytes personatus GIRARD)를 발효·숙성시켜 달인 다음 고운 베보자기나 창호지에 액젓만 받아 내린 것으로 충청도에서 유래해 전국으로 퍼졌다. 각종 김치와 찌개·미역국·나물무침·달걀찜·메밀육수 등에 간장 대신 사용한다.
까나리는 우리나라 바다의 삼면 연안에 모두 서식하는데 5월 초에서 6월 사이에 충남 보령시 원산도 앞바다에서 최대 성어기를 이룬다. 어린 까나리가 몰려다니는 이 때 어획한 1년생 미만의 까나리를 사용해 만든 까나리액젓이 최상의 맛을 낸다.
까나리액젓은 담글 때에는 싱싱한 까나리를 선별해 세척한 뒤 소금과 1대1 비율로 섞는다. 이때 소금과 까나리가 골고루 잘 섞이지 않으면 맛이 제대로 나지 않는다. 소금과 섞은 까나리는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서 1년 이상 발효시킨다.
질 좋은 까나리 액젓은 고약한 냄새가 나지 않고 특유의 짠맛과 단맛, 비린맛이 있지만 멸치액젓 보다 덜하며 맛이 아주 깔끔하다. TV의 예능프로그램 게임에서 커피와 색깔이 비슷하다는 점을 이용해 복불복용으로 사용하고 커피로 위장한 까나리액젓을 마신 출연자들이 오만상을 찌푸린 탓에 비린내가 많이 나는 것으로 오해하지만 실상은 비린내가 많이 나지 않는다. 비린내나 역겨운 냄새가 나는 것은 제대로 숙성되지 않은 것이다.
까나리액젓은 고칼슘, 고단백의 식품인 까나리의 영양이 그대로 담겨 있어 어린이의 성장 발달에 도움을 주며 성인의 골다공증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 또 비타민B1·비타민B2·아미노산·불포화지방산 등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까나리액젓이 워낙 TV 예능프로그램에서 복불복용으로 많이 쓰여서 저걸 어떻게 먹나 싶지만 당장 우리가 매일 먹는 김치를 담글 때 많이 사용된다. 김치를 담글 때 까나리액젓을 넣으면 김치의 신선도가 높아지고 숙성이 촉진된다. 비린맛은 김치의 향신료에 묻혀버리고, 감칠맛을 극대화시켜준다. 그러나 까나리액젓은 단맛과 짠맛의 농도가 대단해서 김치를 담글 때 액젓의 양을 잘못 조절하면 망쳐버릴 수 있다.
맛이 깔끔하고 비린내가 적으며 끝맛이 달큼한 까나리액젓은 담백한 요리에 사용하거나 간장이 들어가는 요리에 간장의 양을 줄이고 넣는다.
새우젓을 주로 넣는 계란찜에 까나리액젓을 넣으면 계란의 비린내를 잡아주며 나물을 볶을 때 자극적이지 않은 간간한 맛을 내고 싶다면 까나리액젓으로 간을 맞추는 것도 좋다. 특히 별다른 조미료가 없어도 맛을 낼 수 있어 건강에도 좋다.
고기를 구워 먹을 때 곁들여 먹는 파 무침을 만들 때 까나리액젓에 고춧가루, 참기름, 설탕, 다진 마늘, 식초를 넣으면 특유의 감칠맛을 느낄 수 있다. 불고기 양념을 만들 때에도 각종 과일과 양파, 마늘 등을 갈아 액젓과 간장을 함께 넣어 만들면 불고기의 누린내를 없애줘 깔끔한 맛의 불고기를 즐길 수 있다.
액젓 비린내의 깔끔한 해결사, ‘참치액젓’
대부분의 사람들이 액젓하면 으레 멸치액젓 또는 까나리액젓을 떠올린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음식을 만들 때 참치액젓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참치액젓은 고등어과(Scombridae)에 속하며, 참치로도 불리는 참다랑어(bluefintuna)의 살과 내장 등에 소금을 가해 발효·숙성시켜 만든 젓갈이다.
참치액젓은 기존의 멸치액젓이나 새우젓의 대용으로 만든 것으로 비린 맛이 없어 김치는 물론 요리의 맛을 담백하게 해주는 특징을 가진 고급 젓갈로 일본에서는 오래 전부터 시판돼 왔다.
김치 먹기를 꺼리는 사람 중 상당수가 김치를 담글 때 넣는 액젓에서 나는 비린 맛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이에 요리전문가들은 액젓의 비린 맛을 잡을 수 있는 방법으로 참치액젓을 추천하고 있다.
참치액젓은 참다랑어에 함유된 각종 영양성분이 그대로 녹아 들어있다. 뇌의 단백질을 구성하는 DHA·EPA·셀레늄 등을 함유해 뇌세포 활성에 도움이 된다. 또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 동맥경화·고혈압 등 혈관계질환 예방에 효과적이다. 고혈압을 일으키는 원인 인자 중 하나인 안지오텐신전환효소(ACE)를 억제하는 성분과 필수아미노산이 들어 있다. 비타민 B군·토코페롤·칼슘·철분·마그네슘 등이 많아 어린이의 균형 있는 성장을 도와준다.
김치를 담글 때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액젓과 참치액젓을 7:3 비율로 넣으면 김치의 액젓 비린 맛을 잡아주고 감칠맛과 함께 깊은 맛을 낼 수 있다. 참치액젓은 고유의 감칠맛을 내는데 이는 참치에 함유된 이노신산이라는 성분이 많기 때문이다. 이노신산은 핵산 조미료의 구성 성분이다.
이런 이유로 참치액젓은 김치 외에도 콩나물과 무나물·호박나물·참나물 등 나물요리를 만들 때 넣기도 하고 콩나물국이나 북어국·쇠고기미역국·무국 등 각종 국을 만들 때 넣으면 담백하면서도 감칠맛을 느낄 수 있다.
이밖에 버섯볶음·멸치볶음·어묵볶음·감자볶음·양파볶음과 같은 볶음요리에 사용해도 깊은 맛을 더해준다. 특히 오일파스타나 봉골레와 같은 스파게티 요리를 만들 때 사용하면 안성맞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