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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분위기를 돋워주는 달콤한 아이스와인
  • 김지예 기자
  • 등록 2020-12-26 16:33:08
  • 수정 2020-12-26 22: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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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세기 독일 와인산업의 최고 히트작에서 캐나다 인기 상품으로 … 우연의 산물로 만들어져 각고의 노력으로 지켜지다
캐나다 아이스와인 양조장 포도밭. 출처 위키피디아
와인은 원래 식사와 함께 즐기는 술이다. 그래서 음식과 와인의 어울리는 궁합인 ‘마리아주’를 따져 와인을 내는 일은 소믈리에 혹은 자리를 만든 호스트의 중요한 역할이다. 샐러드, 해산물 등 비교적 볼륨감이 가벼운 음식은 화이트와인과, 육향이 강한 고기 요리는 레드와인과 어울리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정찬에서 와인의 순서는 입맛을 돋우는 상큼한 화이트와인에서 시작해 로제, 레드 순이다.
 
식사가 끝나고 나서 디저트를 즐길 때는 다시 화이트와인이 나온다. 이때 나오는 와인은 산도가 높은 처음의 화이트와인과 전혀 달리 아주 달고 진한 맛이 특징이다. 이를 ‘디저트 와인’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달콤한 디저트 와인은 포도의 수분을 빼고 당도를 높여서 만든다. 가장 널리 알려진 방법은 귀부균(貴腐菌)으로 불리는 보트리티스 시네레아(Botrytis Cinerea) 곰팡이균을 이용해 포도의 수분을 뺏는 것이다. 주로 프랑스 소테른(Sauternes), 독일 트로켄베렌아우스레제(Trockenbeerenauslese), 헝가리 토카이(Tokaji)에서 생산된다. 이를 3대 귀부와인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게 샤또 디켐(Château d'Yquem)이다.
  
일부러 포도를 늦게 수확해 포도알의 수분을 증발시키는 와인도 있다. 프랑스의 ‘뱅 드 파이유’(Vin de Paille) 등이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하지만 가장 대중적인 디저트와인을 꼽자면 아이스와인을 들 수 있다. 수확시기를 일부러 늦춘 것은 뱅 드 파이유와 같지만 아이스와인은 차가운 기온에 포도알 속 수분이 얼음으로 떨어져 나가고 남은 당분이 농축되면서 깊고 진한 단맛이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19세기에 처음 생산된 이후 아이스와인은 귀부와인을 누르고 대표 고급 디저트와인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19세기 독일 한 양조업자의 욕심이 부른 실수 … 달콤한 신의 한수가 되다
 나무에 달린 채 서리맞아 언 포도로만 아이스와인을 만들 수 있다.

아이스와인은 독일 라인가우(Rheingau)에 위치한 와이너리 '슐로스 요하니스베르그(Schloss Johannisberg)에서 19세기에 발명된 와인이다. 아이스와인이 처음 만들어지는 일화가 매우 재미있다.
 
라인가우는 귀부와인의 생산지로도 이름이 높은 디저트와인의 고장이다. 이 지역에서는 귀부균을 이용하는 방식과, 수확을 늦게하는 방식 모두를 이용하 와인을 만들었다. 그런데 포도를 늦게 수확할수록 포도의 당도가 높아지고 향도 깊어지는 것을 본 양조업자가 그만 욕심을 부려 수확일을 예정 날짜보다 늦췄다. 평소보다 이르게 닥친 한파로 남은 포도알은 그대로 얼어버렸다. 
 
욕심을 부렸다가 한해 농사를 모두 망치게 된 양조업자는 질 낮은 벌크와인이라도 만들어 팔 셈으로 포도에 달린 얼음을 떼고 포도즙을 내 와인을 양조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렇게 만들어진 와인은 귀부와인 못잖게 단맛이 강하고 향이 진했다. 이후 이 양조장은 이런 방식으로 지속적으로 아이스와인을 생산해냈고, 주변 지역에도 이 같은 양조법이 퍼져 나가면서 아이스와인은 독일 와인산업을 떠받치는 히트 상품이 됐다.
 
실수로 만들어졌다고 해도 아이스와인은 고급 디저트와인으로서 까다로운 생산 규율로 관리된다. 인공적으로 포도를 얼려서 만들 경우 아이스와인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고 오직 나무에 열려 있을 때 자연적으로 언 포도만으로 만들어져야 아이스와인으로 불릴 수 있다.
 
수확한 포도를 인공적으로 열려서 만든 와인은 ‘빈 데 글라셔’(vin de glacier) 혹은 ‘아이스박스 와인’(icebox wine), ‘아이스드 와인’(iced wine) 등의 이름으로 따로 불린다. 호주나 미국 등지에서 주로 생산되며 국내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유통되는 아이스와인 중 상당수는 이런 와인이므로 라벨을 꼼꼼하게 확인해야 한다.
 
온난화로 생산 어려워지는 독일 … 떠오르는 아이스와인의 강국 캐나다
 
대부분의 와인 생산지는 기후가 온후하기 때문엔 수확 시기를 늦춘다고해도 자연적으로 포도가 얼기는 쉽지 않다. 오직 독일에서만 가능한 일이었기에 오랜 세월 아이스와인은 당연히 독일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하지만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독일 내 아이스와인 생산량이 조금씩 감소하면서 아이스와인 산업은 위기를 맞았다. 독일의 겨울 온도가 꾸준히 높아지고 있어서다.
 
급기야 지난 3월 3일 독일와인연구소(DWI)는 역사상 처음으로 독일 내 13개 와인산지 중 어느 곳에서도 아이스와인을 생산할 만큼 날씨가 춥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연구소측은 “아이스와인의 2019년 빈티지는 전국적으로 수확이 실패한 첫해로 이는 독일 역사에 남을 것”이라고 밝혔다.
 
독일 아이스와인의 독자적인 상위급 와인 분류법인 Prädikatswein에 따르면 아이스와인용 포도를 수확하기 위해서는 영하 7도까지 내려가야 한다. 이 온도가 유지되지 않으면 포도가 아이스와인을 만들기 알맞은 상태가 되기도 전에 부패하게 된다.
 
하지만 아이스와인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다행스럽게도 독일 대신 아이스와인의 생산을 책임지는 나라가 나타났다. 캐나다는 1860년대부터 와인산업이 시작됐지만 너무 추운 기후와 알코올음료 판매를 통제하는 정부 정책 등으로 제대로 육성되지 못했다.
 
1990년대 이후 와인 산업을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지만 포도 양조 환경이 뛰어난 편이 아니라 소규모로 이뤄졌다. 하지만 1978년 독일 이민자 월터 하인레(Walter Hainle)가 브리티시콜럼비아주(British Columbia)의 오카나간 밸리(Okanagan Valley) 아이스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캐나다의 와인산업에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드디어 지금도 캐나다 아이스와인을 대표하는 이니스킬린(Inniskiliin)이 1991년 세계 최대 와인 및 주류 전시회인 비넥스포(Vinexpo)에서 당당히 최고상을 받으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됐다.
 
급기야 2000년대 들어서면서 세계 최대 아이스 와인 생산국으로 등극하고, 2007년 양조자 제이미 맥팔레인(Jamie Macfarlane)의 2005년 빈티지 비달(Vidal) 아이스와인이 브뤼셀 인터내셔녈 와인콘테스트에서 그랑골드를 수상하면서 다시한번 뛰어난 품질을 확인했다.
 
독일과 캐나다의 아이스와인은 비슷한 방법으로 만들어지지만 몇가지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독일은 주로 리슬링(Riesling) 품종으로, 캐나다는 비달 품종으로 빚는다. 
 
물론 아이스와인을 만드는 품종으로 규정된 것은 없기에 게부르츠 트라미너(Gewurztraminer), 그뤼너 벨트리너(Grüner Veltliner), 까베르네 프랑(Cabernet Franc), 비달 블랑(Vidal Blanc), 슈냉 블랑(Chenin Blanc) 등 추운 지역에서 잘 견디는 여러 품종으로 만든 아이스와인이 생산되고 있다. 최근에는 카베르네 소비뇽, 샤르도네, 메를로, 시라 등으로 만든 실험적인 아이스와인도 나오고 있다.
 
독일 아이스와인의 도수는 6%인데 비해 캐나다 와인은 8~13%로 조금 더 높다. 장기보전 능력은 독일 와인이 더 낫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양이 적고 비싸다고? … 다른 와인보다 2~3배 손이 가는 귀족와인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아이스와인의 특징은 양이 적다는 것이다. 보통 와인병이 750ml인데 비해 아이스와인은 그 절반인 375ml가 통상적이다. 더 작은 187ml 병도 심심찮게 볼 수 있으며 커도 500ml을 잘 넘지 않는다. 그럼에도 가격은 국내 기준으로 7만~10만원의 고가다. 그러다보니 양은 적고 가격은 비싸다는 불만이 터져나온다.
 
하지만 아이스와인엔 일반 와인보다 훨씬 더 어렵고 고된 노동이 필요하다. 얻을 수 있는 포도액도 매우 적다. 긴 시간 수확하지 않고 밤에 얼고 낮에 녹으며 나무에 매달려 있는 포도는 상당수가 그 시간을 견디지 못해 낙과되거나 썪거나 새들의 먹이가 된다. 그 기다림을 이겨내고 12~1월까지 나무에 매달린 포도만이 아이스와인이 될 수 있다. 물론 지나치게 얼어도 포도즙이 나오지 않으므로 잘 조절해야 한다.
 
수확할 때도 언 포도가 녹으면 안 되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이른 새벽 혹은 한밤중에 단 시간에 조심스럽게 수확을 마친다. 이렇게 수확된 포도는 녹지 않은 상태로 온도가 낮게 유지된 양조장에서 포도즙을 짜내야 낸다. 착즙된 포도액의 당도는 32~46 브릭스(Brix) 정도로 30 브릭스 이하면 아이스와인이 되지 못한다.
 
수확을 늦추느라 일반 포도농장보다 수확량이 적은데다 수분이 날아간 포도알에서 착즙을 하다보니 와인의 원액이 되는 포도액도 아주 적어 다른 와인에 비해 많은 양을 생산하기 어려운 제약이 있다. 그래서 양은 적고 가격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당도가 매우 높아 다른 와인처럼 마시다가는 입맛을 버릴 수 있다. 적은 잔에 따라 조금씩 마신다면 한 병으로 여러 명이 충분히 즐겁게 나눠마실 수 있다.
 
6~10도 온도에서 마셔야 제맛 … 블루넌‧이니스킬린‧필리테리 에스테이트 등 대표적
 블루넌 아이스바인(왼쪽부터), 이니스킬린 골든 비달, 필리테리 에스테이트 비달
아이스와인을 마실 때 온도를 너무 차갑게 하면 와인의 향이 살아나지 않아 도리어 손해다. 보관은 10도 정도에서 하고 마실 때는 6~10도로 식혀 마시면 향기와 단맛, 산미 등을 조화롭게 느낄 수 있다. 곁들일 디저트로는 달지 않은 다크초콜렛이나 치즈류 등이 잘 어울린다. 
 
국내에서 만나볼 수 있는 대표적인 아이스와인 브랜드로는 블루넌(Blue Nun), 이니스킬린(INniskillin), 필리테리 에스테이트(Pillitteri Estate) 등이 있다.
 
블루넌 아이스바인(Blue Nun Eiswein)은 독일에서 만들어진 최초의 현대식 아이스와인으로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독일 와인이자 아이스와인이다. 짙은 황금색으로 복숭아 등 과일향이 진하고 단맛과 산미의 밸런스가 절묘하다.
 
이니스킬린은 캐나다를 대표하는 아이스와인이다. 캐나다 와인 최초로 국제 무대에서 수상하며 품질을 인정받은 와인으로 지금도 캐나다 방문 기념으로 흔히 구입해 귀국한다. 이니스킬린 골든 비달(INniskillin Gold Vidal)은 잘 익은 복숭아와 살구 등 농익은 열대과일 향이 풍성하고 당도와 산도의 조화가 적절하다.
 
필리테리 에스테이트(Pillitteri Estate)는 캐나다 최대 아이스와인 생산업체로 다양한 종류의 포도품종으로 여러 아이스와인을 생산하다. 비니탈리(vinitaly) 등 다양한 국제 대회에서 수상하며 뛰어난 품질을 입증, 세계적으로 이름값을 높이고 있다. 비달 품종으로 만든 ‘필리테리 에스테이트 비달‘(Pillitteri Estate Vidal)은 산도와 당도의 균형감이 좋고 마지막까지 안정적인 피니시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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