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 제도화까지 관련 단체 입장차 커 시간 걸려 … 정세균 총리 “의료인 양성은 국가 큰 책임”
말 많던 의사 국가고시 실기시험이 지난 10일 끝났다. 지난 9월 8일 시작해 두달간 진행된 의사 국시에는 응시대상자 3172명 중 446명만이 시험을 접수, 전체의 86%가 끝내 시험을 보지 않았다. 기간상 올해 안에 추가 국시 가능성은 희박한 만큼 당국과 수련병원 등은 내년 인력 수급에 각종 대책을 마련해야 할 상황이다.
내년부터 마주해야 할 의료인력부족 사태의 대응책으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게 PA(Physician's Assistant) 양지화다. 주요병원들이 알음알음 활용하고 있는 PA를 법 테두리 안으로 끌어들여 인력부족을 해결하겠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PA 양지화를 둘러싸고 각 단체들의 입장차가 커서 법제화까지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다.
일각에서는 PA 양지화로 여론의 눈을 돌린 후 의료계와 정부, 여당이 내년 초 의사국시 실기시험 재응시를 합의할 가능성이 언급되고 있다. 각 병원 수련의 일정을 고려할 때 내년 2월 공중보건의‧군의관 선발 일정까지 고려해도 내년 1월까지만 국시가 치러지면 수련의 수급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내년 선거를 앞둔 정부와 여당 입장에서도 더 이상 강경한 대응은 어려운 상황이라 내년 초 국시 재응시 설(說)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반면 통상 지금쯤 발표돼야할 각 병원별 수련의(인턴)의 배분 발표는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내년 대학병원 인력난, PA 양성화 카드 꺼내든 정부 … 11월 중 전문간호사 업무 확대 회의 예정
지난 10일 끝난 의사 국가고시 실기시험에 3172명 중 446명만 응시하고 나머지 2700여명은 시험을 포기했다. 원래대로라면 이들은 실기시험 후 내년 1월 초 필기시험을 치르고 의사면허를 획득 후 수련병원(통상 대학병원)에서 수련의(인턴) 과정에 들어간다. 이후 특정 진료과에서 수련하는 전공의(레지던트)를 거쳐 전문의가 된다.
하지만 이번 국시 미응시 사태로 당장 내년부터 2700여명의 인턴이 결원되면서도 수련병원은 인력난에 시달리고, 공보의‧군의관 등도 부족해질 상황이 닥쳤다. 향후 몇 년간 이들의 공백으로 필수진료과 의사 부족 등이 야기될 수도 있다.
각 병원들은 인력 부족에 대한 대응책으로 입원전담의 확대, 간호인력 충원, 학생인턴제 도입 등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어떤 것도 2700여명의 인턴 인력을 대처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정부는 대응책으로 PA(Physician's Assistant)의 양지화 카드를 꺼내들었다. 진료보조인력이라는 의미의 PA는 환자의 처치나 수술 과정에서 의사를 도와, 때로는 실질적으로 의사를 대신해 의료행위에 관여하고 있다.
많은 국가가 제도화하고 있지만 국내에서 이들의 존재는 불법이다. 하지만 만성적인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국내 의료계는 공공연하게 이들을 활용하고 있다. 2018년에는 서울성모병원과 서울아산병원이 골막천자‧심장초음파 검사와 수술실 봉합을 PA에게 맡겼다는 혐의로 대한병원의사협회로부터 신고를 당하기도 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지난해 29개 병원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들 병원에서 총 971명의 PA가 근무하고 있었다. 이 중 15개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PA는 762명이었다. PA 활동이 불법에 속하므로 이를 감안하면 실제 PA의 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측된다. 정부는 이들 PA를 제도화해서 내년 인턴 인력을 대체하고 나아가 만성적인 의료인력 부족을 해결하려는 모습이다.
현재로서는 ‘전문간호사제도’를 활용하는 방안이 가장 우선적으로 검토되고 있다. 전문간호사는 2003년 ‘전문간호사과정 등에 관한 고시’ 법률안에 따라 가정, 감염관리, 노인, 마취, 산업, 보건, 아동, 응급, 임상, 정신, 종양, 중환자, 호스피스 등 13개 전문 분야에서 상급 실무수행 자격을 인정받은 간호사다. 전문간호사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1만5718명이 배출됐다.
정부는 앞서 지난 3월에도 PA를 전문간호사의 업무 영역으로 편입시키는 등의 내용을 담은 보건복지부령 시행을 추진한 바 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논의가 무기한 연기됐다.
복지부는 올 11월 중 대한의사협회와 대한간호협회, 전문가 등과 함께 전문간호사 업무범위 확대 방안을 논의하는 회의를 가지고 PA를 전문간호사 업무로 편입하는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PA 둘러싼 단체들의 입장차 커 … 제도화 합의까지만 몇 년 예상
하지만 의료계에서는 PA 양성화로 내년 인턴 인력을 대체한다는 정부의 방안에 현실성이 없다고 고개를 젓고 있다.
의사, 간호사, 병원 경영인, 기타 의료인력 등이 저마다 PA를 놓고 온도 차가 크기 때문이다. 대한의사협회는 줄곧 PA제도에 강력한 반대 입장을 보였다. 의료수가가 정해지지 않았거나 비싼 해외에서는 PA가 제도화 될 수 있으지 모르나, 의료수가가 한정적인 국내 의료 상황에서 의사들이 업무를 PA와 나누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대한간호협회도 PA 자격이 전문간호사 혹은 간호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으로 한정하고 이들에 대한 수당을 업무에 맞춰 올려줘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응급의료원 등을 PA로 활용하는 중형 이하 일선 병원 등에서는 PA의 자격과 수당이 높아지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전문간호사 제도를 활용하는 방안도 한계가 있다. 제도는 2003년 시행됐으나 이들의 업무 범위가 법적으로 명확히 규정되지 않아 의료현장에서는 크게 활용되지 못하고 있어서다. 2018년 조사에 따르면 전문간호사 유효 수요율이 54.9%에 불과했다. 이들의 업무 영역을 명확하게 정리하는 데만도 제법 긴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또 이들의 업무 영역이 정리된다고 하더라도 이들에 대한 처우 등을 놓고 다시 병원과 줄다리기가 필요하다. 의료계 관계자는 “PA를 활용하고 있는 병원들도 상급‧중급‧의원급 등에 따라 활용 업무와 기준이 전혀 달라 업무 영역과 자격을 정하는 데만도 꽤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PA는 수많은 논쟁거리를 품고 있는 제도로 이에 대한 단체들의 합의를 이끌어내기까지 최소 몇 년은 걸릴 것”이라며 “결코 당장 제도화해서 인턴 인력을 대처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선거 앞둔 정부 강경대응 고집 어려워 … 국시원 “일정, 정부가 결정하는 하는 것”
이런 가운데 일각에서는 정부‧여당이 의료계와 합의해 내년 초 의사국시 실기시험을 치를 것이라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올해 말 혹은 내년 초에 실기시험을 다시 치면 내년 인턴 운용 일정을 맞출 수 있다는 계산 때문이다.
수련병원은 보통 1월 말 지원을 받아 2월 하순 혹은 3월 초 인턴 일정이 시작된다. 공보의과 군의관은 그보다 좀 더 빨리 배정된다. 내년 1월에 예정된 필기시험에는 대상자 대부분이 응시한 만큼 1월 안에 실시시험까지 마무리하면 전체 일정에 큰 차질이 빚어지지 않는다는 셈법이다.
이미 지금쯤 발표돼야 할 수련병원별 인턴 인력 정원수가 아직 감감 무소식인 데는 이런 속내가 있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정부 입장에서 코로나19도 수습되지 않은 상황에서 당장 내년에 발생하는 2700여명의 의료인력 공백을 두고 볼 수는 없는 일이고, 처음부터 재응시를 강하게 주장했던 의료계로서는 정부의 입장이 바뀌기만은 바라고 있어 합의만 된다면 올해 말 혹은 내년 초 재시험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는 분석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인턴 부족으로 인한 인력 공백, 특히 응급·필수과목을 고민하고 있다”며 “내년 신규 공보의와 군의관 배출이 되지 않으면 보건소와 군부대 업무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점도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많은 경우의 수를 놓고 고민 중”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정부 입장은 최근 정세균 총리의 발언에도 묻어난다. 지난 4일 정세균 국무총리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의대생에 추가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에 대해 국민들의 거부감이 아직 상당하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보면 국가적 차원에서 의료인을 양성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책임”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의 정부가 고수한 강경 입장에 비하면 매우 전향적인 발언이라는 평가다.
내년 보궐선거를 앞둔 여당도 국시 문제로 의료 공백이 생기는 게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한 여당 관계자는 “국시 문제에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는 의원은 별로 없는 것으로 안다”며 여당 내 기류를 전했다.
하지만 의사 국시 실기시험을 치기까지는 물리적인 일정이 되는냐는 문제가 남아있다. 현행법상 의사국시는 연 1회 이상 실시할 수 있지만 실시 90일 전에는 공고되야 한다. 또 표준화 환자도 준비해야 하는데 여기에도 시간이 걸린다. 일정에 맞추기 위해서는 통상 2개월에 나눠하는 실기시험을 한달 이내로 치러야 한다는 문제도 있다. 뭣보다 다른 의료인력 시험을 진행하는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의 일정이 이를 감당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하지만 의료계 관계자는 정부와 의료계의 의지만 있다면 큰 문제는 아니라고 설명했다. 90일 공시는 시행령이므로 융통성을 가질 수 있으며 표준환자 및 실기시험 기간 조정도 의료계가 협조한다면 쉽게 해결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국시원의 일정에 대해서도 정부의 결단이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시원 관계자는 “내년 1월까지 매주 시험이 예정돼 있어 여유가 없는 것은 맞다”면서도 “정부가 한다고 결정하면 그에 맞춰 일정이 검토되고 조정될 것으로, 지금으로서는 가‧불가 여부를 논하는 게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정부의 결정에 따른다는 뜻이다.
남은 가장 큰 고비는 정부가 이야기한 ‘국민적 합의’와 ‘의대생들의 의지’일 것이다. 여론은 아직 국시 재응시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이 크고, 의대생들은 급할 것이 없으므로 사과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것은 의료인이 부족한 국민과 배움이 1년 늦춰지는 의대생들이다. 이들에 대한 설득이 정부와 의료계에 남은 가장 큰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