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고령화에 따른 치매(dementia)가 사회적인 문제로 급부상하고 있다. 국제알츠하이머병협회(ADI)는 세계 치매·알츠하이머병 환자 수는 2013년 4400만명에서 2050년 1억3500만명으로 3배 이상 증가하고 글로벌 치매치료제 시장 규모는 2024년 13조5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정부도 다가올 ‘치매 사회’ 에 대비해 2017년부터 9월부터 ‘치매 국가책임제’를 시행 중이다. 전국 치매안심센터 설치와 함께 병·의원 신경인지검사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 뇌기능 개선제인 콜린알포세레이트(Choline alfoscerate)의 급여 축소 논란이 뜨겁게 달아오르기도 했다. 이 약은 기억력 감퇴, 무기력 등 인지장애 개선 효과가 있어 마땅한 치매치료제가 없는 상황에서 치매 치료제 또는 예방제로 처방돼왔다. 이 약은 물론 어떤 약도 치매의 근본 원인을 해결해주지 못하고 있다. 단지 증상을 완화하거나 진행을 늦추는 게 최선인 상황이다.
치매는 뇌에 생기는 다양한 질환 때문에 인지기능이 저하되고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는 상태를 말한다. 기억력, 언어능력, 이해능력, 판단력 등이 저하되고 성격변화를 보이는 게 주요 증상이다. 하지만 이를 단순히 노화현상으로 여겨 치료 시기를 놓치기도 한다. 치매에 대한 오해와 궁금증을 알아본다.
1. 치매에 잘 걸리는 사람이 따로 있다?
치매에 잘 걸리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위험요인은 존재한다. 유전성 치매는 특정 유전자를 보유할 경우 걸릴 위험이 높아지지만 전체 치매 환자 중 차지하는 비중이 극히 적다. 보다 보편적인 위험인자는 고혈압, 비만, 청력 저하, 흡연, 우울증, 신체활동 저하, 사회적 고립, 당뇨병 등이다. 이들 위험인자를 꾸준히 관리해야 치매를 예방할 수 있다.
송홍기 강동성심병원 신경과 교수는 “치매는 한 번 발병하면 정상으로 돌아오기 쉽지 않기 때문에 위험인자를 최소화하는 일상적인 예방이 중요하다”며 “치매 예방에 가장 중요한 것은 걷기, 손운동과 같은 규칙적인 신체활동과 메모하기, 취미 갖기 등의 두뇌활동”이라고 말했다. 이어 “뚜렷한 증상이 나타나지 않더라도 치매 위험인자가 있거나 65세가 넘으면 기본적인 간이정신상태검사(MMSE, 간이치매검사)를 받는 게 좋다“고 강조했다.
2. 수면제 먹으면 치매 걸린다?
수면제 장기 복용은 치매 위험인자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수면제나 진정제의 주성분인 벤조디아제핀이 알츠하이머병 등 치매 관련 질병 발생 확률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하지만 아직 수면제와 치매 발생 간에 직접적인 연관성은 확실하지 않다는 주장도 많다.
한진규 서울수면센터 원장은 “항불안 효과를 가진 벤조다이아제핀 약물은 불안 증상만 조절하는 게 아니라 수면 유도, 근육 이완, 경기나 발작 예방 등 다른 작용도 한다”며 “장기간 복용 시 약물의존도가 높아지고, 뇌기능을 떨어뜨리며, 치매 발생 위험을 높일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3. 치매와 알츠하이머병은 같은 병이다?
알츠하이머병(Alzheimer’s disease, AD)은 치매를 일으키는 가장 흔한 퇴행성 뇌질환으로 전체 치매의 60~80%를 차지한다. 뇌 속에 이상 단백질이 쌓여 뇌세포가 점점 파괴돼 없어지고 뇌 조직이 줄어들면서 뇌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뇌혈관질환에 의해 뇌조직이 손상을 입어 발생하는 치매인 혈관성 치매(vascular dementia)는 약 10%를 차지한다. 이밖에 뇌의 피질에 비정상적인 단백질 덩어리(루이소체)가 생기는 루이소체 치매(dementia with Lewy bodies, DLB), 파킨슨병성 치매(Parkinson’s disease dementia), 전두측두엽치매(frontotemporal dementia, FTD), 크로이츠펠트야콥병(Creutzfeldt-Jakob disease, CJD)에 의한 치매, 헌팅턴병(Huntington’s disease, HD)에 의한 치매, 여러 요인이 복합된 혼합형 치매(mixed dementia), 다운증후군(Down syndrome)에 의한 치매 등이 원인이 된다.
4. 깜빡깜빡하면 무조건 치매다?
치매가 두렵다보니 조금만 기억력이 나빠지거나 깜빡깜빡하는 건망증 증상이 나타나면 바로 치매를 의심하기도 한다. 하지만 건망증을 치매의 전조 증상으로 확신할 수 없다.
건망증과 치매 사이에는 경도인지장애(Mild Cognitive Impairment, MCI)라는 중간 단계가 있다. 건망증은 병이 아니라는 점에서 경도인지장애와 구별된다. 이 둘을 구분하려면 증상이 나타나는 시간와 빈도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건망증은 한꺼번에 여러 가지 일을 기억해야 하지만 기억 용량이 상대적으로 부족할 때 나타나는 현상으로 일시적이다.
경도인지장애 환자는 방금 있었던 일이나 최근의 일을 잊어버리는 단기기억력 저하를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이전에는 스스럼없이 하던 일도 잘 못하고, 계산 실수가 잦아지면 의심해볼 수 있다.
노인성 우울증을 치매라고 착각하는 경우도 있다. 노인성 우울증 환자 대부분이 우울함을 느끼기보다 ‘몸이 아프다’는 증상을 호소한다. 또 말수가 적어지고 체중이 감소하거나 행동이 느려지고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특히 기억력이나 집중력까지 떨어지는 등 치매와 흡사한 증상을 보여 ‘가성치매’로 불리기도 한다.
많은 환자가 이를 단순한 노화현상이라고 여겨 치료 시기를 놓치는 안타까운 일이 생기기도 한다. 노인성 우울증은 조기에 적절히 치료할 경우 회복률이 80%에 이른다. 가성 치매 증상은 나이와 상관없이 우울증에 걸리면 동반될 수 있고 우울증을 치료하면 함께 사라지는 경향을 보인다.
5. 젊은 나이에도 치매에 걸릴 수 있다?
치매는 노인성 질환이지만 40대, 50대의 비교적 젊은 연령에서도 발병할 수 있다. 65세 이전에 발병하는 치매를 ‘조발성 치매(초로기 치매)’라고 한다. 일명 ‘젊은 치매’로 통하는 이 질환은 인지·언어 기능을 관장하는 뇌의 전두·측두엽 손상이 원인으로 꼽힌다. 노인성 치매에 비해 진행이 더 빠른 게 특징이다.
조발성 치매의 원인은 유전성인 경우가 많아 환자는 반드시 가족력을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현재까지 밝혀진 유전성 알츠하이머병 원인유전자는 APP 유전자, PSEN1 유전자, PSEN2 유전자 등 3가지다. 가족 중에 알츠하이머성 치매를 앓은 사람이 많다면 초로기 치매에 걸릴 확률이 높다
혈관성성 치매나 루이소체(Lewy body) 치매, 알코올성 치매나 뇌염에 의한 치매 등 뇌의 다른 질병에 의한 2차적인 치매도 젊은 나이에 발병할 수 있다.
6. 음주·흡연이 치매 유발한다?
음주와 흡연은 치매의 주요 원인이 될 수 있다. 과도하게 잦은 음주는 알코올이 뇌를 직접 손상시킬 뿐 아니라 뇌내 단기기억력을 관장하는 해마를 손상시켜 전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블랙아웃’을 초래하고 이런 게 장기화되면 치매를 앞당기거나 초래할 수 있다. 또 머리 부상, 경련 발작의 위험을 높이는 단초가 되기도 한다. 흡연은 뇌로 전달되는 산소의 양을 줄이고 동맥경화로 혈관도 좁아지게 만들어 혈관성 치매를 일으킬 위험성을 높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