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환자가 피할 수 없는 부작용 중 하나가 항암제 치료와 관련된 구역과 구토(chemotherapy-induced nausea and vomiting, CINV)다. 항암화학요법 치료를 받는 환자의 70~80%가 구역·구토를 경험하며 이는 식욕부진을 유발해 대사 불균형과 영양상태 악화, 심한 경우 항암제 투여 중단까지 초래한다.
CINV 중 급성 구토 증상은 항암제 투여 수 분에서 몇 시간 이내에 나타나고 5~6시간 후에 최고조에 달하며 24시간 내에 사라진다. 환자의 나이나 성별, 항암제가 투여되는 환경, 만성 알코올중독, 동요병 병력 유무, 이전 구토경험, 투여 용량, 항구토요법 효과 등에 영향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연형 구토는 항암제 투약 24시간 이후에 나타나며 시스플라틴(cisplatin), 카보플라틴(carboplatin), 시클로포스파미드(Cyclophosphamide), 독소루비신(doxorubicin) 등 항암제 투여에 의해 주로 발생한다. 시스플라틴은 투여 48~72시간 후에 구역 구토 증상이 가장 심하고, 6~7일간 지속된다.
발생 형태에 따라서는 예상 구토(anticipatory emesis), 돌발성 구토(breakthrough emesis), 불응성 구토(refractory emesis)로 구분한다. 예상 구토는 다음 항암화학요법을 받기 전에 발생하며 조건반사에 의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발생률은 18~57%이며 젊은 환자가 더욱 민감하다. 예방적 항구토제 투여에도 불구하고 발생하는 돌발성 구토에는 예방적으로 투여했던 항구토제와 다른 계열의 약물을 써야 한다.
항암화학요법별 구토 유발 수준은 4단계로 구토위험이 10% 이하라면 최소 위험군(Minimal), 10~30%는 저위험군(Low), 30~90%는 중등도 위험군(Moderate), 90% 이상은 고위험군(High)으로 나뉜다.
항암제는 대뇌의 구토 중추(vomiting center)를 자극할 수 있는 네 가지 경로 중 화학수용체 방아쇠 영역(chemoreceptor trigger zone, CTZ)를 건드려 구토를 유발한다. 이와 연관된 신경전달물질들은 도파민(dopamine), 세로토닌(serotonin), P물질(Substance-P, SP) 등이다. 이들은 각각 D2, 5-HT3(5-Hydroxytryptamine type 3), NK1 등 수용체에 작용한다.
임상에서 사용하는 항구토 약제는 이들 수용체의 길항제(antagonist)로 도파민 길항제(dopaminereceptor antagonist), 5-HT3 길항제(5-HT3 antagonist), NK-1 길항제(NK1 antagonist)와 스테로이드(corticosteroid)가 주류를 이룬다.
CTZ에서 도파민 수용체 억제하는 메토클로프라마이드
도파민 길항제에는 메토클로프라마이드(metoclopramide), 올란자핀(Olanzapine)등이 있다. 메토클로프라마이드는 혈액뇌관문(blood brain barrier, BBB)을 통과해 CTZ에서 도파민 수용체를 억제한다. 또 하부 식도 괄약근 긴장도를 높이고, 위장관 내 음식물 이동을 촉진해 정체를 최소화한다. 편두통에 의해 속이 울렁거리고 메스껍고 토하는 증세에도 사용하며 편두통약의 효과를 증가시키는 역할도 한다.
드물지만 중추신경 도파민 억제작용으로 인해 진전, 근긴장이상, 운동장애 등 추체외로증후군이 발생할 수 있다. 불안, 졸음, 피로, 설사 등이 나타나기도 한다. 동화약품 ‘맥페란정’(메토클로프라마이드), ‘맥페란주사’(메토클로프라마이드) 등이 대표적이다.
올란자핀은 한국릴리 ‘자이프렉사정’, 동화약품 ‘올자핀정’ 등이 있으며 CINV에 오프라벨로 처방되고 있다. 이재민 영남대의료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지난해 10월 “소아청소년 암환자에서 올란자핀의 효과와 안전성에 대해 분석한 결과, 올란자핀이 예방적 항구토제를 사용한 소아암환자에게서 발생한 돌발성 구토의 치료에 매우 효과적이며 예방적 목적으로 사용할 때도 효과적이라는 결과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5-HT3 수용체 길항제 온단세트론·그라니세트론·라모세트론·팔로노세트론
5-HT3 수용체는 위장관 등 내장으로 집중되는 구심성 신경계에서 반사적으로 평활근 수축을 촉진하며 오심과 구토에 관여한다. 항암제를 투여하면 장내 크롬친화성 세포((enterochromaffin-like cell, ECL세포)에서 세로토닌이 분비돼 상부소화관이나 CTZ의 5-HT3 수용체를 자극하고 이로 인해 미주신경의 구심성 분비가 촉발돼 구토를 유발한다.
5-HT3 수용체 길항제는 중추신경계 및 말초신경계에 동시해 작용해 이들 증상을 억제한다. 미주신경에 위치한 세로토닌 5HT3 수용체를 억제해 신호가 구토중추로 전달되는 것을 막아 항구토 효과를 나타낸다. 주로 미주신경 자극에 의한 구역·구토에 작용하며 멀미 등 다른 자극에 의한 증상에는 효과가 거의 없다. 도파민 수용체, 무스카린 수용체에는 작용하지 않으며 위장관운동을 촉진하지도 않는다. 급성 구토 예방에 효과적이고 지연형 구토에는 효과가 약하다.
이 계열 약은 경구 투여 시 60~80% 정도 흡수되며 체내에서 빠르게 분포해 간에서 광범위하게 대사된다. 반감기는 4~9시간 정도로 하루에 한 번 또는 두 번 경구투여나 정맥주사할 수 있다. 주로 화학요법 30분 전에 투여해 최적의 구토 예방 효과를 나타낸다. 부작용은 변비, 설사, 간효소 증가, 두통 등이다. 또 QT 간격을 연장시킬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온단세트론(ondansetron), 그라니세트론(granisetron), 라모세트론(ramosetron), 팔로노세트론(Palonosetron), 돌라세트론(dolasetron) 등이 있다.
2011년 독일 의사협회의약품위원회(AKDAE)는 돌라세트론의 심혈관계 부작용 발생 가능성 때문에 ‘항암 화학요법에 유발되는 구역·구토 예방’ 적응증 철회를 결정했다. 당시 한독약품이 돌라세트론 성분의 항구역·구토제인 ‘안제메트정·주사’를 수입·판매했으나 이후 시판되지 않고 있다.
대표적인 5HT3 수용체 길항제인 온단세트론은 한국노바티스 ‘조프란정’(성분명 온단세트론), 보령제약 ‘온세트론주(온단세트론)’ 등이 판매되고 있다. 경구제, 정맥주사, 근육주사 타입이 있으며 1일 8∼32mg의 범위 내에서 적절히 투여한다.
그라니세트론은 기존에 주사와 경구제형으로 사용되면서 다수의 임상시험에서 CINV 조절에의 우수한 효과를 증명했다. 종근당 ‘카이트릴주’, ‘카이트릴정’ 등이 있다.
영국 제약사 프로스트라칸(ProStrakan)은 그라니세트론 성분 패치인 ‘산쿠소’(SANCUSO)를 개발해 2008년에 FDA 승인을 받았다. 국내에서는 LG화학이 ‘산쿠소패취’라는 이름으로 판매 중이다. 산쿠소패취는 최초의 경피 흡수 제제로 투여 방법이 비침습적이고 편리하며 1회 부착만으로 투여 과정이 완료돼 혈중약물농도를 일정한 범위 내에서 유지하는 게 장점이다. 7일의 항암화학치료 기간 동안 1일 3.1mg 정도의 약물을 방출해 경구제나 주사제보다 안정적으로 농도를 유지한다. 따라서 구토 증상이 심한 환자, 구내염 또는 연하곤란 환자에게 대안이 될 수 있다.
사용법은 항암 화학치료 기간 동안 발생할 수 있는 약 5일간의 CINV 증상 예방을 위해 최소 24시간에서 최대 48시간 전에 부착한다. 부착 후에는 손가락 등에 약물 성분이 잔류하지 않도록 즉시 손을 씻는 게 좋다.
이밖에 한국아스텔라스 ‘나제아오디정’(라모세트론), 보령제약 ‘나제론주사액’(라모세트론), ‘팔제론주’(팔로노세트론) 등이 있다.
NK-1 수용체 길항제 ‘Aprepitant’, P물질 작용 억제
NK-1 길항제로는 아프레피탄트(Aprepitant) 성분이 있다. 단독 사용할 때보다 5-HT3 길항제나 스테로이드제와 병용할 때 효과가 있다. 주로 5-HT3 길항제와 병용해서 사용하는 편이다. 한국MSD ‘에멘드캡슐’, ‘에멘드주’ 등이 대표적이다.
아프레피탄트는 2003년 3월에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후 2007년에 국내에 도입된 약물로 구역, 우울, 염증, 면역반응에 관여하는 P물질의 작용을 길항한다. NK-1 수용체에 선택적이며 5-HT3 수용체와 도파민 수용체에는 거의 활성을 나타내지 않는다. 시스플라틴을 포함한 심한 구토를 유발하는 항암화학요법 시 아프레피탄트를 추가 투여하면 5-HT3 길항제와 덱사메타손의 약효가 증가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급성 구토 예방에는 화학요법 1시간 전 스테로이드 및 5-HT3 길항제와 병용해 125mg을 복용하고, 지연형 구토에는 화학요법제 투여 다음날부터 2일간 스테로이드와 병용해 80mg을 하루에 한 번 복용한다.
경구 투여 시 생체이용률은 60~80%이며 음식이 약물 흡수에 영향을 주지 않으므로 식사와 관계없이 복용 가능하다. 경구 복용 시 3~6시간 후에 최고 혈중농도에 이른다. 아프레피탄트는 CYP450 기질이면서 유도제이며, CYP2C9의 유도제이므로 이들 효소에 의해 대사되는 약물은 효과가 감소될 수 있다. 부작용은 무력증, 피로감, 식욕부진, 변비, 설사 등이다.
반감기 긴 스테로이드로 구토 완화 … 메틸프레드니솔론·덱사메타손
항구토 목적으로 사용되는 코르티코스테로이드(corticosteroid)는 반감기가 긴 메틸프레드니솔론(methylprednisolone), 덱사메타손(Dexamethasone) 등이 사용된다.
스테로이드의 명확한 구토 억제 기전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종양 주위 염증을 억제하고 구토 유발물질 프로스타글란딘(prostaglandin) 생성을 억제해 항암제로 인한 구역·구토의 예방과 치료에 보조적 역할을 하는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화학요법 후 2~5일 동안 나타나는 지연형 구토 예방에 효과가 있으며 5-HT3 수용체 길항제와 병용 시 반응률을 15~30% 개선할 수 있다.
한국화이자제약 ‘솔루메드롤주’(메틸프레드니솔론), 부광약품 ‘부광덱사메타손정’(덱사메타손) 등이 대표적이다.
스테로이드 제제는 항구토 효과뿐만 아니라 식욕 증가 및 기분 개선 효과도 있다. 하지만 불안, 두통, 금속성 입맛, 복부 불편감, 혈당 상승 등 광범위한 부작용이 따를 수 있어 단순한 구역·구토 환자에는 사용하지 않는다.
미국 종합암네트워크(The national comprehensive cancer network, NCCN)의 항암제 구토유발 수준별 항구토 예방요법에 따르면 구토유발도 고위험군에서는 3중 항구토 예방요법(NK-1 길항제 + 5-HT3 길항제 + 스테로이드)을 사용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중등도 위험군에서는 2중 또는 3중 항구토 예방요법을 사용한다. 저위험군에서는 항암제 투여 일에 5-HT3 길항제, 도파민 길항제, 스테로이드 중 하나를 투여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네투피탄트·팔로노세트론 복합제 ‘아킨지오’
HK이노엔의 항구토제 신약 ‘아킨지오캡슐’(성분명 네투피탄트, 팔로노세트론)은 2018년 7월 식품의약안전처로부터 허가를 받았다. 이 약은 5-HT3 수용체 길항제 팔로노세트론과 NK1 수용체 길항제 계열에서 차세대 항구토제 성분으로 알려진 네투피탄트(netupitant)를 더했다. 항암 화학요법에 따른 구토를 유발하는 두 가지 경로를 하나의 약으로 동시에 차단하는 기전이다. 네투피탄트는 주로 CYP3A4로 대사되지만 팔로노세트론은 일부분만 간으로 대사된다.
실제 항암 화학요법을 받은 환자에게 아킨지오를 투여했을 때 5일 간 완전 반응률은 90%에 달했다. 이 약은 기존 약제 대비 반감기가 길어 약효 지속시간이 길고 항암 화학요법 1시간 전 1캡슐 섭취로 복용 편의성까지 높였다. 흔한 부작용은 두통(9%), 피로(4~7%), 변비(3%) 등이며 심각한 이상반응으로는 세로토닌증후군이 나타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