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1인1개소법' 이어 송기헌 의원도 '특사경법' 이달 중 발의 … 의협 “의료인 연대책임 지나치다” 반발
의사 면허소지자 아닌 사람이 개원하는 ‘사무장병원’에 대해 무조건 요양급여를 환수하는 보건당국의 조치에 대해 대법원이 최근 제동을 걸자 관련 법체계를 다듬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를 의식한 듯 21대 국회가 문을 열자마자 관련법을 잇따라 발의하고 있지만 이번에도 의료계의 반발이 거세 몸살이 예상된다.
여당 ‘사무장병원 근절법안’ 재발의 … 특사경도 6월 중 재발의 준비
지난 3일 이정문 더불어민주당 의원(국회 정무위원회·예산결산특별위원회)이 의료기관 중복 개설 등 의료법 위반 의료기관을 요양기관에서 제외하는 ‘국민건강보험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한 데 이어 5일 1인1개소법 위반 의료기관에 대한 개설허가 취소 등 제제 법적 근거를 담은 ‘의료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들 법안은 ‘1인1개소 보완입법’, ‘사무장병원 근절법안’으로 불리며 제20대 국회 윤일규 전 의원이 발의했던 법안과 동일한 내용이다.
국내 의료법은 의사만이 병원을 개설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비의료인이 의사의 면허를 빌러 병원을 개설한 ‘사무장병원’은 불법이다. 사무장병원은 대부분 수익 증대에 초점을 맞춰 운영되다보니 환자에게 불필요한 진료를 강권하거나, 필수 의료인력과 장비를 갖추지 않거나, 의료기기를 재활용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2009~2019년 1602개 불법 사무장병원이 적발됐으며, 이들이 부당 청구한 금액은 3조1031억원에 이른다. 하지만 환수율은 5.7%(약 1769억원)에 그쳤다. 국민건강을 지키고 과잉의료 등으로 인한 혈세 낭비를 막기 위해 사무장병원을 근절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지만 이를 규제할 강력한 법안이 그동안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이를 의식한 듯 21대 국회가 열리기 무섭게 20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던 사무장병원 근절 법안들이 발의·재발의 되고 있다.
이들 법안은 의사 1명 당 1개 의료기관 개설을 허용하는 의료법을 어긴 경우 해당 의료기관의 개설허가를 강제 취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비영리법인이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하는 경우 의료법인의 이사·감사의 임면에 관한 규정과 임원 선임 관련 금품 등 수수금지의 원칙을 따르도록 하고, 해당 비영리법인과 의료기관의 회계를 구분해 운영토록 규정해놨다.
또 부칙을 신설해 종전의 규정에 따라 의료기관을 개설한 경우엔 주무관청으로부터 정관 변경 허가를 받고, 이 법 시행일 이후 회계연도부터 해당 비영리법인과 의료기관의 회계를 구분해 운영하도록 하는 방안을 적시했다. 지난해 20대 국회에서 발의됐으나 의협 등 의료계의 반대로 결국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계류하다 소멸됐다.
역시 20대 국회에서 계류돼다 사라진 불법 사무장병원 단속을 위한 ‘특별사법경찰관리의 직무를 수행할 자와 그 직무 범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특사경법)도 6월 중으로 재발의될 예정이다. 2018년 ‘특사경법’을 발의했던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법제사법위원회) 측은 “특사경의 운영권·임면권 등 민감한 부분들을 조율해 재발의할 예정”이라며 “가급적 빠르게 준비를 마쳐 6월 안에 발의하려 한다”고 밝혔다.
특사경법은 건보공단 직원 일부를 특별사법경찰로 임명해 불법 사무장병원을 단속토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본격적인 수사가 이뤄지기 전 재산을 다른 명의자에게 빼돌리는 사무장병원의 행태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의사들의 표심을 의식한 일부 의원들의 반대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소위도 통과하지 못했다.
송 의원 측은 “사무장병원을 근절해야 한다는 국민적 합의가 이뤄진 만큼 지난 회기보다는 수월하게 통과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료계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부터 폐지해야” … “사무장병원 의사 연대책임 과도”
하지만 이들 법안에 대한 의료계의 반응은 부정적이다. 현행 건강보험 당연지정제의 불합리성을 그대로 둔 채 강제 배제 조항만을 규정하는 건 문제가 있다는 게 의료계의 주장이다. 대한의사협회는 최근 열린 상임이사회에서 이정문 의원의 개정안에 대한 반대 입장을 제출키로 했다. 의협은 지난 20회 국회에서도 이들 법안을 반대했다. 6월 중 발의될 ‘특사경법’도 의료계의 반발에 부딪힐 공산이 크다.
의협은 “시작점부터 당연지정제에 의해 강제로 건강보험 요양기관으로 지정해 놓고 의료기관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강제 배제 조항만을 신설하는 건 균형의 법리를 고려하더라도 타당하지 않다”며 “이러한 강제배제 조항 신설보다는 현행의 불합리한 건강보험 당연지정제의 폐지에 주안점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또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 없이 건강보험 요양기관에서의 강제 배제 조항만을 두는 건 합당하지 않다”며 “근본적으로 강제지정제의 폐지와 의료기관의 자유로운 건강보험 요양기관 참여를 보장하는 체계로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협은 사무장병원 등에 대한 의료인의 연대책임을 강화하고 요양급여비용 환수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내용에 대해서도 반발했다. 의협은 “현재도 사무장병원 등의 문제로 처분을 받을 경우 건강보험 청구금액을 그대로 징수당하는 상황에서 의료기관 개설자에게만 징수금에 대한 연대 납부 책임을 강제하는 건 너무 과도한 처사”라며 “개설자에 대한 규제강화 보다는 실질적인 소유자에게 연대 납부 책임을 강화하는 법안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협회는 이중개설·사무장병원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의료기관 신설 시 해당 지역의 지역 의사회가 미리 불법 여부를 확인하고 개설절차를 진행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대법원, “진료했는데 무조건 급여 환수 부당” … 보완 입법 필요성 커져
현행법은 개설한 비의료인 뿐만 아니라, 명의를 빌려준 의사에 대해서도 엄격하게 책임을 묻고 있다. 건강보험공단은 사무장병원에 명의를 빌려준 의사와 운영에 협조한 의사에게 요양급여 전액을 무조건 환수하는 정책을 펴고 있으나 지난 6월 4일 대법원은 이같은 정책이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사무장 병원에 대한 요양급여 환수는 적법하나, 의사가 실제로 취한 이득과 협력한 내역 등을 따져 적절한 수준의 환수액을 정해야 한다는 판단이다.
대법원은 “바람직한 급여체계 유지를 통한 건강보험 및 의료급여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려는 관련법의 입법 취지를 고려해야 한다”며 사무장병원이라 할지라도 이미 이뤄진 의료행위에 대한 요양급여비용 전부를 받지 못하는 것은 침익적인 성격이 크다고 판단했다.
명의를 빌려준 의사를 변호했던 김준래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대법원이 5년 동안 숙고한 끝에 나온 것으로 향후 사무장 병원에 명의를 빌려준 의사들에 대한 요양급여환수처분의 중요한 지침이 될 것”이라며 “대법원이 이번 판결을 통해 관련 법체계를 다듬어야 한다는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향후 국회에서 관련 입법보완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고 설명했다.
공단은 대법원 판결에 대해 “사무장병원 개설과정에서 비의료인과 의료인의 공모 없이는 의료기관 개설·운영이 불가하고 비의료인과 의료인은 공동정범으로서 불법성을 달리 볼 수 없다”며 “현행 건강보험법이 의료인과 비의료인을 함께 묶어 부당이득금을 징수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공단 관계자는 “개설자(의료인)가 형사처벌을 받지 않은 것과 민사상 부당이득을 환수하는 것은 별개”라며 “이번 대법원 판결을 일반화하기는 어렵고, 기존 법률로는 급여 환수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특사경 제도를 도입해 추적·환수·징수할 수 있도록 추진했지만 관련 법안이 지난 20대 국회를 통과하지는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민 혈세 낭비를 막기 위한 방법인 만큼 21대 국회에서 입법 보완과 그에 따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