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하거나 초조할 때 사람은 손톱을 깨물거나, 다리를 떠는 등의 행동을 반복한다. 불안을 완화하려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하지만 불안으로 인한 특정 행동을 반복하는 것을 스스로 제어하기 어렵다면 강박증(Obsessive-Compulsive Disorder, OCD)을 의심해봐야 한다.
강박증은 50명 중 한명 꼴로 앓고 있는 매우 흔한 정신과질환으로 지금 같은 감염병 팬데믹에는 더욱 발생하기 쉽다. 방치하면 우울증·불안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
불안감을 해소하려는 ‘강박행동’이 ‘의식’이 되면 강박증
강박증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어떤 생각이나 장면이 떠올라 불안함을 느끼는 질환이다. 불안에서 헤오나오지 못하는 생각과 이를 해소하기 위한 특정 행동의 반복을 각각 ‘강박사고’와 ‘강박행동’이라고 한다.
현관문을 잠그고 몇 걸음 후에 다시 돌아와 또 잠그거나, 세수하고 돌아선 지 얼마 안 돼 또 손을 씻는 등 안심이 될 때까지 같은 행동을 수차례 반복하는 게 강박증의 특징이다. 강박행동이 일정한 틀을 가지게 되면 정신의학에서는 ‘의식’(ritual)이라고 부른다. 이런 의식 때문에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나타나면 강박증으로 진단할 수 있다.
다양한 강박증상 중 가장 흔한 게 오염·청결과 관련한 강박행동이다. 더러움에 오염되는 것에 공포를 느끼고 오염원을 제거하려는 행동을 반복한다. 몸에 더러운 게 묻었다는 느낌 때문에 자주 몸을 씻으려하고, 몸에 닿는 의류의 세탁에도 집착한다. 목욕에 비상식적으로 긴 시간을 소요해 물을 낭비하고 습진 등 피부질환을 얻기도 한다.
그 다음으로 많은 유형은 ‘확인’ 강박행동이다. 문을 잠갔는지, 가스는 끄고 나왔는지, 수도는 잠그고 나왔는지 등을 의심하며 반복적으로 확인한다. 노래까지 만들어 부를 정도로 정해진 순서에 따라 확인하는 행동을 의식처럼 행한다. 자기 확신을 위해 독특한 행동방식을 만들어 반복하는 것이다.
‘반복행동’은 일종의 ‘결정장애’이기도 하다. 입을 옷을 결정하지 못해 외출 전 몇 가지 옷을 몇 번씩 입었다 벗어다 하거나, 물건을 사용하기 전 몇 번씩 물건을 들었다 놨다 하는 게 대표적 예다. 선택 과정을 끊임없이 되풀이하면 강박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이밖에도 자신이 정한 배열대로 물건이 정돈되지 않으면 불안을 느끼며 정리와 정돈을 되풀이하는 ‘정렬행동’, 쓸모없는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쌓아두는 ‘저장행동’, 특정한 행동 의식은 없으나 불안을 유발하는 장면이나 생각을 되풀이해서 일상에 지장을 느끼는 ‘강박적 사고’ 등이 대표적인 강박증 증상이다.
안와전두엽·미상핵 활동 증가, 세로토닌 기능 저하 등이 원인 … 유전도 영향
강박증은 어느 연령에서나 나타날 수 있지만 대체적으로 청소년기에서 청년기에 발현된다. 중장년 이후 연령에서는 드물다. 전체 환자의 30~50%에서 청소년기에 증상이 시작되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뚜렛증후군 혹은 틱장애를 동반하고 있거나 앓았던 경험이 있다.
강박증의 원인은 아직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정신적 충격이나 감염질환에 걸린 후 발병하는 경우가 많다고 알려져 있으나 최근에는 뇌기능 이상으로 인한 생물학적 요인이 작용한다는 주장이 우세하다.
생물학적 요인으로는 뇌의 안와전두엽과 미상핵의 활동 증가를 들 수 있다. 눈썹 바로 뒤에 위치한 안와전두엽은 공포와 위험을 인지하는 역할을 하며, 미상핵은 서로 다른 생각이나 행동을 시작하거나 중단하는 일을 맡고 있다. 이 부위가 과도하게 활성화되면 불안감이 커지고 행동과 생각을 조절할 수 없게 된다는 가설이다. 또 강박증 환자의 뇌에서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의 기능이 저하된 것으로 확인돼 불안감을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꼽힌다.
이같은 생물학적 배경은 유전적인 경향을 보인다. 부모나 가까운 친인척 중 강박증 환자가 있을 때 경증 이상의 강박증이 나타날 확률은 약 10%, 강박증 진단을 내리지는 못하지만 경미한 강박증상이 발견된 경우가 5~10%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강박증상의 유전 비율은 부모가 가진 강박증 유형에 따라 달라진다. 부모의 강박증상이 어린 시절에 시작된 경우와 틱이나 뚜렛증후군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경우에는 자녀에게 유전될 확률이 매우 높다. 부모 모두가 강박증상을 가지고 있는 경우 자녀에게 유전될 확률은 20%다.
강박증은 스트레스와도 매우 밀접하다. 채정호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강박증은 다른 질환보다 유발 소인이 다양한 편”이라며 “스트레스가 강박증을 발현한다고 할 수는 없으나 스트레스가 강박증을 심화시키거나 새로운 강박증은 유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지금처럼 감염병 대유행 시기에는 오염·청결강박증이 악화되거나 새롭게 나타날 수 있다. 외부의 바이러스가 몸이나 옷을 오염시킨다는 강박사고를 만들어 세탁과 소독을 반복하는 강박행동이 발현 또는 심화될 수 있다. 이는 오염 등에 집중한 것으로 자신의 건강을 염려해 늘상 불안을 느끼는 건강염려증(健康念慮症, Hypochondriasis, illness anxiety disorder)과는 양상이 다르다.
정상 범위와 구별 어려워 … 전문가 임상 소견으로 진단
불안감을 느낄 때 이를 해소하기 위해 확인을 반복하거나 원인을 제거하려는 행동은 매우 자연스러운 행위이다. 이런 행동 모두를 강박증이라고 볼 수는 없다. 다만 특정한 행동이 장기간에 걸쳐서 지속적으로 나타나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초래한다면 강박증을 의심해볼 수 있다.
강박증은 방치하면 증상이 심해지거나 새로운 유형의 강박증이 출현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양극성장애·우울증·사회공포증·공황장애 등 다른 정신과질환이 나타날 수 있다. 강박증 환자의 60~90%가 살아가면서 적어도 한 번 이상의 우울증을 겪는다는 보고도 있다.
하지만 상당수 강박증 환자들은 자신의 증상을 부끄럽게 여겨 숨기거나, 병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적절한 치료시기를 놓치곤 한다. 강박증 환자가 정신과 전문의를 만나서 적절한 치료를 받기까지 평균 9~17년이 걸린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채정호 교수는 “강박증 환자는 자신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를 자신의 습관이나 성향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며 “원치 않는 생각이 자꾸 떠올라 괴롭고 이런 시간이 길어진다면 강박증을 의심해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강박증을 가진 아동의 부모에 대해서도 “강박증의 핵심은 행동이 아니라 사고에 있기 때문에 주변에서 알아보기 어렵다”며 “아이가 특정 행동이나 질문을 반복하기 시작하다면 아이의 성향으로만 치부하지 말고 강박증을 의심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틱장애를 가지고 있거나 보였던 아동은 강박증이 나타날 확률이 높은 만큼 부모의 주의가 필요하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만든 강박증상 체크리스트를 활용해 자가진단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1파트에서 2가지 이상의 항목에 해당되면, 2파트로 넘어가 강박증상 정도를 확인하면 된다. 2파트에서 5점 이상 점수를 받으면 전문의 진료가 권고된다.
경증엔 ‘노출 및 반응방지’요법 사용 … 약물치료하면 60~80% 호전 양상
강박증 치료에는 약물치료와 인지·행동치료가 시행된다. 정신분석적 치료가 강박증상을 조절하는 데 일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보고도 있으나 효과가 명확하게 입증되지 않았다.
인지·행동치료는 경증에 시행된다. 환자를 불안을 느끼는 상황에 노출시킨 후 이에 대한 강박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막는 ‘노출 및 반응방지’요법이 대표적이다. 이 치료는 환자가 강한 치료 동기를 갖고 지속적으로 참여하는 게 중요하다.
중증 강박증에는 약물치료가 적용된다.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약물치료 환자의 80~90%에서 증상 호전이 보고됐다. 대부분 기존 상태보다 증상의 강도가 30~60% 정도 줄어들며, 행동치료와 함께 시행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알려져 있다.
치료 약물로는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차단제’(Selective Serotonin Reuptake Inhibitors, SSRI)가 주로 사용된다. 플루옥세틴(Fluoxetine), 에스시탈로프람(escitalopram), 플루복사민(fluvoxamine), 파록세틴(paroxetine), 설트랄린(sertraline) 등이다. 삼환계 항우울증제인 클로미프라민(Clomipramine)이 사용되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 비정형 항정신병약물인 올란자핀(olanzapine), 쿠에티아핀(quetiapine), 리스페리돈(risperidone), 아미설피라이드(amisulpride)가 저용량으로 추가 사용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약물치료 후 증상이 호전되기까지 약 6~10주 이상이 걸린다. 3개월 이상 약물을 사용해도 증상의 호전이 없다면, 다른 약으로 교체하거나 추가하는 게 고려된다.
전문가들은 강박증을 치료할 때 환자의 인식 전환이 매우 중요하다고 당부한다. 채정호 교수는 “강박증 환자들에게 강박증이 괴로운 것은 자신이 하는 행동 때문이 아니라 원치 않게 계속 떠오르는 생각(강박사고) 때문”이라며 “시도 때도 없이 떠오르는 강박사고를 지우려 애쓰면 더욱 힘들어지고 지치게 되는 데 생각은 자유롭게 두고 강박행동을 교정하는 데 1차 목표를 두면 치료가 좀 더 쉬워진다”고 말했다.
그는 “강박적인 생각이 떠오를 때 그를 완화하려 강박행동을 하는 것은 유튜브 추천 동영상을 클릭하는 것과 같다”며 “자신이 클릭한 동영상과 비슷한 영상들이 지속적으로 추천되는 것처럼 강박사고에 대응한 강박행동으로 당장의 불안은 지워지겠지만 비슷한 생각들이 지속적으로 떠오르게 돼 강박행동이 멈춰지지 않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생각은 언제 어떻게든 떠오를 수 있는데 이에 반응하지 않도록 훈련하는 게 중요하다”며 “강박행동을 멈추면 점차 강박사고도 줄어들게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