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연구원이 지난 4월 실시한 ‘코로나19로 인한 국민 정신건강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민 47.5%가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불안·우울감을 경험하고 있다. 코로나19가 안겨준 스트레스는 메르스의 1.5배, 경주·포항 지진의 1.4배, 중증질환의 1.3배, 세월호 참사의 1.1배 등 다른 재난과 비교해 높은 수준인 것으로 밝혀졌다.
걱정과 불안이 장기간 지속되면 과도한 심리적 고통을 느끼거나 현실적인 적응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는 불안장애(anxiety disorders)로 번질 수 있다. 예컨대 시댁과의 갈등, 학업부진과 좌절, 직장 내 불안감, 자존감의 상처, 배우자와의 갈등, 자녀 양육의 어려움 등 다양한 개인사가 불안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
불안장애는 범불안장애(Generalized Anxiety Disorder, GAD), 강박장애 (Obsessive-compulsive disorder, OCD), 공황장애(panic disorder),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 사회불안장애(Social Anxiety Disorder, SAD)로 나뉜다.
세부질환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비정상적이고 병적인 불안·공포’가 핵심이다. 불안과 공포로 인해 교감신경이 활성화되면서 자율신경계 증상이 두드러진다. 가슴두근거림·빈맥·혈압상승 등 심혈관계증상, 초조·떨림·과호흡·설사·어지러움·두통·졸도·절박뇨·빈뇨·손발저림·동공확장·발한 등이 흔히 나타난다.
항불안제는 불안장애 증상을 완화·억제해주며 흔히 신경안정제로 불린다. 활용도가 높아 우울증, 불면증 등에도 다양하게 처방된다. 항우울제는 뉴런을 즉각 안정화하지 않아 수용체에 작용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충분한 효과가 나타나려면 복용 후 2주라는 시간이 필요하므로 그 전에 즉각적 효과를 나타내는 항불안제를 사용할 수 있다. 일정 용량에 도달하면 졸림을 유발하므로 불면증 치료제로도 쓰인다. 진정효과가 좋거나 용량을 늘리면 수면마취, 수면내시경에 쓰이는 마취제가 된다. 항불안제는 크게 벤조디아제핀, 부스피론, 항히스타민제 등으로 분류된다.
불안·흥분 조절 벤조디아제핀 … 알프라졸람·디아제팜·로라제팜·클로나제팜 등
벤조디아제핀계 약물은 정신과 영역뿐만 아니라 의학 전반에 걸쳐 다양하게 사용되는 항불안제다. 중추신경 벤조디아제핀 수용체와 결합해 GABA(gamma aminobutiric acid, 가바)라는 억제성 신경전달물질의 기능을 강화하고 불안·진정·근육이완 효과를 나타낸다. 불안과 흥분을 조절(억제)하는 약물로 사용되고 있다. 흔히 경구제로 복용하지만 근육 또는 정맥으로 투여하면 신속한 효과를 나타내 주사제로도 많이 처방된다.
벤조디아제핀은 급성 불안을 치료하는 데 자주 사용된다. 근본적으로 공황 발작에 효과적이며 간질 어린이에게 사용돼 왔다. 알프라졸람(alprazolam), 미다졸람(midazolam), 클로르디아제폭사이드(chlorodiazepoxide), 클로라제페이트(clorazepate), 디아제팜(diazepam), 로라제팜(lorazepam), 클로나제팜(clonazepam) 등이 있다.
벤조디아제핀계 약물은 항불안제 중에서도 내성·의존성·금단 증상이 생길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유명하다. 이 때문에 약을 끊으면 현실세계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자꾸 도피하려는 성향이 생긴다. 결국 오남용하게 되고 의존성이 형성된다. 전부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묶여 있다.
치료용량이라 하더라도 장기간 복용하면 기억상실, 심리적 의존성, 신체적 내성 등 부작용을 유발하기도 한다. 복용을 갑자기 중단하는 경우 불면, 경련, 땀, 떨림 등 금단증상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서서히 양을 줄여나가야 한다.
과량을 복용하게 되면 졸림 현상이 나타난다. 운전이나 위험한 기계조작, 정교한 작업이나 학업 수행에 지장을 줄 수 있다. 불안감은 예전보다 많이 해소되지만 뭔가 멍하고 졸린 듯하고, 책을 읽어도 내용이나 논리가 예전처럼 빨리 정리되지 않는 현상도 자주 발생하게 된다.
최근 수면내시경에 프로포폴 대신 미다졸람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미다졸람은 프로포폴보다는 다소 늦지만 주사한 지 2~3분이면 정신이 몽롱한 상태가 된다. 미다졸람을 다량 투여하면 잠이 들지만, 소량 사용하면 의식이 남아 있어서 내시경 검사를 받는 동안 의사의 지시에 따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약물을 투여한 시점 이후로 생긴 일들을 기억을 못하는 ‘전향적(前向的) 기억상실’을 유발한다. 내시경검사를 받는 동안에는 의식이 있지만 이후에는 기억이 나지 않는 특이한 효과가 있다. 수면내시경 검사에 미다졸람을 사용할 때는 플루마제닐(Flumazenil)이란 해독제를 투여해 수면과 단기간 기억상실을 좀 더 빠르게 해소하기도 한다.
한국화이자제약의 ‘자낙스정’(성분명 알프라졸람), 한국로슈 ‘바리움정’(디아제팜), 일동제약 ‘아티반정’(로라제팜), 종근당 ‘리보트릴정’(클로나제팜), 부광약품 ‘부광미다졸람주사’ 등이 대표적이다.
세로토닌 5-HT1a 수용체 작용제 ‘부스피론’, 의존성·금단 증상 없어
부스피론(buspiron)은 세로토닌 5-HT1a 수용체 계열의 항불안제다. 5-HT1A수용체는 불안·우울·알코올중독·공격성·강박증·체온조절·심혈관 반응과 관련이 있으며 5-HT1A 수용체를 작용제(agonist)인 부스피론으로 자극하면 항불안효과를 나타낸다.
불안증 개선 효과를 내면서도 기존 약물의 의존성, 금단 현상 등 문제를 해결해 안전하게 장기처방이 가능한 게 장점이다. 다른 약물과 상호작용이 거의 없고, 인지기능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진정작용도 일으키지 않는다. 하지만 약효가 나타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게 단점으로 꼽힌다. 사회적 불안이나 공포증 치료에는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된 부작용은 메스꺼움·현기증·두통·불안 등이다. 부광약품 ‘부스론정’, 보령제약 ‘보령부스파정’ 등이 대표적이다.
진정작용 가진 항히스타민제 ‘히드록시진’, 불안·긴장 낮춰
항히스타민제는 두드러기, 발적, 소양감(피부 가려움증) 등 알레르기성 반응에 관여하는 히스타민의 작용을 억제한다. 부작용으로 진정, 졸음 등을 유발하는데 항히스타민제 중 진정 작용이 있는 약물이 불안 및 긴장 완화에도 사용된다. 그 중 하나인 히드록시진(hydroxyzine)이 불안장애 치료에 쓰인다. 알레르기로 인한 피부 가려움을 완화할 뿐만 아니라 뇌 활동을 떨어뜨려 감소와 불안과 긴장을 덜어주는 역할을 한다. 두통·입마름·빈맥·변비·배뇨곤란·구토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이 성분의 유한양행 ‘유시락스시럽’, 태극제약 ‘아디팜정’ 등이 있다. 정신과 영역에 처방될 경우 1일 50㎎을 3회 분할(12.5mg, 12.5mg, 25mg) 경구 투여한다. 성인 1일 최대용량은 100mg이다.
이와 유사한 작용을 하지만 일반약 수면유도제로 판매되는 항히스타민제로는 디펜히드라민(Diphenhydramine), 독실아민(Doxylamine) 등이 있다.
불안장애에 쓰이는 항우울제, SSRI·SNRI
항우울제(antidepressants)에 속하는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elective serotonin reuptake inhibitor, SSRI), 세로토닌 노르아드레날린 재흡수 억제제(Serotonin Noerpinephrine Reuptake Inhibitor, SNRI)도 불안장애 치료제로 쓸 수 있다.
SSRI 제제로는 글락소스미스클라인 ‘팍실CR정’(파록세틴, paroxetine)이 공황장애, 사회불안장애에 쓸 수 있다. 한국룬드벡 ‘렉사프로정’(에스시탈로프람, escitalopram)은 공황장애, 사회불안장애, 범불안장애에 적응증을 갖는다. 한국화이자제약 ‘졸로푸트정’(설트랄린, sertraline)은 공황장애, 외상후 스트레스장애 치료에 투여할 수 있다.
에스시탈로프람은 환자의 수용성(순응도) 및 유효성을 복합적으로 고려할 때 SSRI·SNRI 계열 약물 중 가장 우수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SNRI는 SSRI의 효과가 약한 단점을 개선한 항우울제로 뇌내 신경세포 말단에서 세로토닌과 노르에피네프린(노르아드레날린)이 재흡수되는 것을 차단해 이들 신경전달물질의 활성을 높여 증상을 개선한다. 세로토닌의 재흡수를 상대적으로 더 강하게 차단한다. SNRI 계열은 혈압을 지속적으로 상승시키므로 약을 복용하는 동안 정기적으로 혈압을 확인해야 한다.
이 중 한국화이자제약 ‘이팩사엑스알서방캡슐’(벤라팍신, venlafaxine)은 우울증, 불안장애, 사회공포증, 공황장애 적응증을 갖는다. 벤라팍신은 가장 많이 처방될 뿐만 아니라 히스토리가 길어 안전하다고 평가돼 있다. 불안장애를 장기간(12개월) 치료할 경우 단기간(6개월) 치료보다 낮은 재발률을 보였다.
한국릴리의 ‘심발타캡슐’(둘록세틴, duloxetine)은 우울증, 범불안장애, 당뇨병성 말초신경병성 통증, 비스테로이드계열 소염제(NSAIDs)에 적절하게 반응하지 않는 골관절염의 통증, 섬유근육통 등에 두루 쓰인다.
모든 SSRI, SNRI를 통틀어 에스시탈로프람은 시탈로프람(citalopram), 설트랄린(Sertraline), 플루옥세틴(Fluoxetine), 벤라팍신 등 다른 치료제와 비교할 때 몽고메리-아스버그 우울증척도(Montgomery-Asberg Depression Scale, MARDS) 호전 정도가 큰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주로 고령의 심한 우울증 재발에 효과적인 것으로 연구돼 있다. 또 중증 불안장애 치료에 가장 비용효율적인 약물이며 내약성도 우수하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