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성 기후 북부와 지중해성 기후 남부, 다양한 스타일 … 꼬뜨 뒤 론에서 자신만의 보물찾기도 가능
프랑스 와인 생산지하면 통상 보르도와 부르고뉴를 꼽겠지만 와인의 최고 선진국답게 프랑스 전역에서는 고유의 특징을 가진 수준 높은 와인이 생산된다. 샴페인의 산지 샹파뉴, 풍부하고 산뜻한 맛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랑그독 등을 들 수 있다. 그 중에도 가장 존재감이 뚜렷한 생산지는 보르도에 이어 두 번째로 넓은 와인밭을 가지고 있는 ‘론’(RHÔNES) 지역이다. 이 지역 와인은 강건한 구조‧깊은 향‧묵직한 보디감으로 뛰어난 퀄리티를 자랑하며 오랜 기간 와인마니아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고전적인 스타일의 짙고 묵직한 와인 생산 … 마니아들 '보르도‧부르고뉴보다 낫다' 찬사
론은 프랑스 남동쪽 지역으로 부르고뉴(Bourgogne)지방 남쪽에서부터 아비뇽(Avignon)까지 약 200km를 흐르는 론강을 끼고 계곡 양쪽으로 드넓은 포도밭이 펼쳐져 있다. 로마시대 이주해온 이탈리아인들에 의해 처음으로 와인이 만들어진 이후 2000년 이상 포도가 재배되고 있다. 론강은 스위스 남부 빙하수가 녹은 물로부터 발원해 리옹, 아비뇽, 아를을 거쳐 마르세유의 지중해로 흘러간다. 흔히 말하는 프로방스라는 여행지의 주요 도시들이다.
지중해에 맞닿아 있어 일조량이 많고 다른 지역보다 여름이 덥고 전반적으로 따스하다. 자갈이 많은 토양으로 낮 동안 열기를 돌이 간직해 밤이 돼도 지면의 온도가 쉽게 내려가지 않는다. 이 때문에 론 지역의 포도는 당분 함량이 높아 양조하면 여느 지역보다 알코올 함량이 높고 묵직한 맛과 짙은 향을 가진다. 고전적이고 중후한 레드와인을 좋아하는 이들은 가볍고 화사한 부르고뉴 와인이나 규격화되고 상업적인 보르도 와인보다 론 와인을 높게 평가하곤 한다.
하지만 론 와인을 하나의 스타일로 이야기 하기는 어렵다. 론 지역의 와인생산지는 ‘북부 론’과 ‘남부 론’ 나눌 수 있는데 두 지역의 기후가 완전히 달라 와인 스타일이 극명하게 갈리기 때문이다. 북부는 알프스의 영향으로 대륙성 기후를 띠고, 남부는 지중해 영향으로 해양성 기후를 가진다. 이런 차이로 북부 론 와인은 탄탄한 구조에 중후한 맛을 가지고 있다. 남부 론 와인은 적당한 산미, 뛰어난 균형감, 풍부한 향을 자랑한다.
대륙성 기후, 묵직한 레드와인의 북부 론 … 코뜨 로띠‧꽁드리유‧에르미따쥬‧생 조셉 등 대표AOC
북부 론의 겨울은 혹독하게 춥고 습하며 여름은 무덥다. 포도원은 계곡을 끼고 대부분 계단식 밭으로 구성돼 일조량을 많이 받을 수 있다. 화강암 토질은 열을 보존하는데 용이하고 배수가 잘 되는 특징이 있다.
이 지역은 레드와인와 화이트와인이 모두 생산되는데 론 북쪽의 부르고뉴처럼 단일 품종으로 와인을 만든다. 레드와인은 쉬라(Syrah) 단일 품종이 사용되며, 화이트와인은 비오니에(Viognier)‧마르산(Marssanne)‧루산느(Roussanne) 품종 중 하나를 선택해 양조한다. 화이트와인을 만들 때 사용하는 청포도 품종 중 일부를 레드와인 양조에 사용하기도 한다.
북부 론의 레드와인은 붉은색이 진하고 타닌이 풍부해 구조가 단단하고 묵직한 무게감을 느끼게 한다. 아주 남성적인 와인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제비꽃과 스파이스 노트를 발산하는 것이 특징이다. 화이트와인은 미네랄이 풍부해 단단하면서도 깊이 있고 우아하다.
8개의 AOC를 가지고 있는데 대표적으로는 코뜨 로띠(Côte-Rotie)‧꽁드리유(Condrieu)‧에르미따쥬(Hermitage)‧생 조셉(Saint Joseph) 등이 있다.
'꼬뜨 로띠'는 적포도인 쉬라 밭 사이에 드문드문 청포도인 비오니에를 재배한 후 한꺼번에 수확해 레드와인을 빚는 독특한 양조방식을 고수한다. 복합적인 부케와 야생적인 흙냄새를 가진 장기 숙성 가능한 고급 와인을 만든다. 이 지역의 가장 유명한 네고시앙(negociant, 원액 도입 재주조 판매상, 생산과 판매를 같이 하는 도멘(domaine)과 대립됨)으로 '이기갈'(E. Guigal)이 있다.
'꽁드리유'는 북부 론의 가장 대표적인 화이트와인 생산지다. 비오니에 단일 품종으로 만들어지며 살구 씨, 복숭아 향이 주를 이루는 복합적인 부케를 갖고 있다. 처음에는 스위트와인 생산이 많았으나 점점 드라이와인 생산량이 늘어 지금의 대종이 드라이와인이다.
'에르미따주'는 론 강 좌안(동안) 연안에 위치한 산지로 가장 수준 높은 '쉬라' 레드와인을 만들어 낸다. 17세기 태양왕 루이14세 때는 궁중 공식 와인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남향의 화강암 토양 경사지 밭에서 자란 포도로 만들어 색이 마치 잉크처럼 진하고 무겁고 풍부한 맛이 특징이다. 15년까지 장기 보관 가능하다. 소량이지만 화이트 와인도 생산하는데 '마르산'와 '루산느'로 만들어 묵직하고 고전적인 맛을 낸다.
'생 조셉'은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을 모두 생산하지만 비율은 9대1 정도로 레드와인이 많다. 균형감이 잘 잡히고 야생적인 느낌을 갖춘 레드와인을 만들어 낸다. 레드와인을 만들 때 '쉬라' 외 청포도 품종인 '루산느'와 '마르산'을 최대 10%까지 브랜딩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화이트와인은 루산느와 마르산 품종을 블렌딩해서 만든다.
지중해 기후, 풍부한 향의 남부 … 지공다스‧샤또뇌프 뒤 빠프‧따벨 등이 대표AOC
남부 론은 햇빛이 많고 허브, 라벤더, 올리브가 잘 자라는 지중해성 기후다. 무더운 날에는 알프스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북서풍(미스트랄)이 강하게 불어오는데, 이 북서풍이 열기를 식혀 포도가 산도를 유지하도록 돕고, 수확기에는 습도를 낮춰 곰팡이를 예방해 준다.
토양은 진흙, 석회질 모래, 자갈, 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크고 작은 자갈이 카펫처럼 깔려있는 강기슭에 포도나무가 심어져 있다. 이 지역에 많은 자갈과 바위는 고대 알프스 산맥 빙하에 쓸려와 쌓인 것들이다. 자갈이 강한 태양열을 흡수해 열매가 잘 익도록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레드와인을 양조할 때 적포도 '쉬라' 단일 품종에 드문드문 청포도 일부를 섞는 북부 론과 달리 남부 론은 '그르나슈'(Grenache) 품종을 위주로 무르베드르(Mourvedre)‧쌩쏘(Cinsault)‧쉬라‧루산느 등 여러 적포도와 청포도 품종을 브랜딩해서 만든다. 규정상 최대 27종까지 품종을 섞을 수 있다. 프랑스 생산지역 중 가장 많은 품종의 블렌딩을 허용한다. 물론 개별 AOC에 따라 사용 품종 수가 달라진다.
남부 론은 총 9개의 AOC를 가지고 있으며 그중 대표적인 곳으로는 지공다스(Gigondas)‧샤또뇌프 뒤 빠프(Châteauneuf du Pape)‧따벨(Tavel) 등이 있다.
'지공다스'는 남부 론 스타일의 전형을 보여주는 생산지다. 그르나슈, 생쏘, 무르베드르, 쉬라 품종을 블렌딩해 풍부한 향과 강한 보디의 레드와인을 주로 생산한다. 대부분 와인들은 알코올 함량이 높고 탄닌이 강하며 향이 풍부하다. 로제와인과 화이트와인도 생산하는데 로제와인은 구운 아몬드 향이 특징으로 맛이 진하다. 점토와 석회암이 표면에 나와 있는 토양으로,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방과 떼루아가 비슷하다.
'샤또네프 뒤 빠쁘'는 론 강 오른쪽(서안)에 자리한 7822에이커(3165만4510㎡, 9575만평)의 너른 와인산지다. 프랑스 세속권력이 따로 교황을 옹립하자 1309년 교황 클레망 5세가 로마로 부임하지 못하고 아비뇽에 유배돼 70년간 아비뇽 유수 시대가 열렸는데 이 지역에 교황의 별장이 지어져 ‘교황의 새로운 성’(Châteauneuf-du-pape)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지역의 와인 병에는 아비뇽 시 교황 휘장(Papal Armes)과 쌩 피터(Saint Peter, 베드로)의 열쇠가 양각돼 있다. 이 지역 와인을 사칭한 가짜 와인이 늘어나자 생산자들이 1911년 제조 규칙을 만들고 호칭통제를 실시했는데, 훗날 1935년 프랑스 원산지통제호칭제도(AOC)의 근간이 됐다. 13종의 포도 품종을 블렌딩해서 만들어지는 레드와인이 유명하며 뛰어난 균형감, 강건한 구조감, 복합적이고 깊은 향 등이 특징이다.
'따벨'은 드물게 로제와인으로 유명한 AOC다. 이 지역의 로제와인은 대대로 프랑스 왕들과 아비뇽에 머문 교황들의 사랑을 받아 ‘왕의 장미’(King of the Rose) 혹은 ‘따벨의 장미’(La Rose de Table)라는 별칭이 붙었다. 그르나슈를 기본으로 9종의 포도 품종을 블렌딩해서 양조하는 데 빛깔이나 보디감은 레드와인에 가깝고 드라이하다.
뜻밖의 보물 발견지 '꼬뜨 뒤 론'과 '꼬트 뒤 론 빌라쥐'
론 와인은 보르도와 부르고뉴와 달리 등급 분류가 없다. 그래서 AOC가 유일한 품질 분류 기준이다. 고유의 브랜드를 갖는 특정 크뤼(cru, 별도 와이너리)의 AOC는 전체 론 와인 생산의 8~10%를 차지한다. 나머지 90%는 론 지역이 원산지임을 표시하는 '꼬뜨 뒤 론'(Côtes du Rhöne), '꼬트 뒤 론 빌라쥐'(Côtes du Rhöne Villages), 기타 아펠라시옹으로 표기돼 유통된다. 생산량은 '꼬뜨 뒤 론' 55~60%, '꼬뜨 뒤 론 빌라쥐' 5~10%, 기타 아펠라시옹 25%다.
'꼬뜨 뒤 론'은 남북할 것 없이 별로 유명하지 않은 와인 생산지를 하나로 묶어서 단일 브랜드로 만든 것이다. 론강 주변의 약 170여개 와인 생산 마을(꼬뮌)이 여기에 속한다. 이보다 조금 더 높은 퀄리티를 가진 곳은 '꼬뜨 뒤 론 빌라쥐' AOC로 묶인다.
꼬뜨 뒤 론이나 꼬트 뒤 론 빌라쥐는 와이너리가 다양한 만큼 북부 론이나 남부 론에 속한다고 어렵다. 크뤼 AOC에 비해 가격이 저렴해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데 동일 AOC내에서도 떼루아와 메이커의 능력에 따라 품질 차이가 심한 편이다. 그래서 가끔 유명 와인에 못잖은 숨은 진주를 발견할 수도 있다. 만약 론 와인에 도전해 보고 싶지만 비싼 가격이 부담되는 와인 초심자나 새로운 맛을 찾아가는 애호가라면 AOC로 모험을 권해본다. 자신만의 보물을 찾아낼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