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민성장증후군(Irritable Bowel Syndrome, IBS)은 복통, 복부팽만감, 변비, 설사 등이 만성적·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질환이다. 위 내시경 검사를 해보면 대개 이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난다. 건강을 크게 위협하지는 않아 우려할 만한 질환은 아니지만 일상생활 및 사회생활에도 영향을 미쳐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통계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8년까지 과민대장증후군으로 진료를 받은 환자는 약 146만명에서 163만명으로 20대 이상 연령층부터 고른 증가 추세를 보였다.
대표적인 증상으로는 하복부에 간헐적이며 중심에서 가장자리로 퍼지는 듯한 통증이 자주 나타난다. 소장과 대장은 물론 복부 어디에서도 통증을 느낄 수 있다. 통증이 시작되면 장운동이 더욱 활발해지면서 대개 무른 변이 나오게 된다. 일반적으로 배변을 하면 통증이 현저히 가라앉는다. 지속적으로 통증을 호소한다면 정신·심리적으로도 문제가 있는 셈이어서 치료가 더 어렵다.
수 년간에 걸쳐 변비와 설사가 교대로 반복되는 게 가장 전형적 특징이다. 변비 증상은 환약 크기의 단단한 대변을 소량씩 보고, 설사 증상은 항문에 점액질이 묻어나오는 게 유사질환과 다른 양상이다. 복부에 묵직한 통증을 느끼는 복부 팽만감도 주요한 증상이다.
장 경련을 일으키며 변비가 우세한 형태도 있고, 통증이나 이렇다 할 소화흡수 장애는 없으면서 설사가 우세한 형태도 있다. 이들 두 가지가 번갈이 나타날 때 치료가 가장 어렵다. 서양인이나 동양 여성은 변비가 심한 양상을 띠며 동양의 남성은 설사 증상이 두드러진다. 변비가 심한 타입의 경우 변비가 생기면 복통도 심해지는 경향을 보인다.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고 있으나 장의 운동이상, 내장과 장벽의 감각기능이상, 심리적인 원인, 장염증, 자극적인 식사 등으로 알려졌다. 특히 불안증, 우울증, 건강염려증 등 정신건강의 문제나 과도한 스트레스 등 사회심리적 요소들이 과민성장증후군을 유발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과민성장증후군은 완치까지는 어렵더라도 적절한 식이요법과 약물치료를 통해 증상이 크게 호전될 수 있다. 김선미 고려대 구로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과민성대장증후군을 예방하려면 자극적인 음식, 인공 과당·감미료, 술, 카페인, 고지방식품, 우유의 섭취를 줄이고 식이섬유가 풍부한 바나나·토마토·딸기 등 과일 및 채소류의 비율을 늘리는 게 좋다”며 “단 섬유질이 풍부한 식품을 한 번에 너무 많이 먹으면 오히려 뱃속에 가스가 많이 차서 복부팽만감 등이 동반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생활 및 식이습관으로도 조절이 안되는 경우에 약물치료를 고려한다. 약물요법은 증상에 따라 이를 완화시키는 대증요법이 주류다. 증상에 기반해 크게 변비, 설사, 복통 치료제로 분류할 수 있다. 변비 우세형인 경우에는 완하제(변비약), 설사 우세형인 경우에는 지사제(설사약)와 세로토닌(5-HT3) 수용체 길항제, 복통이 있는 경우에는 진경제·항우울제 등을 고려해 볼 수 있다.
변비 증상에 팽창성·삼투성 하제, 프루칼로프라이드
주로 변비를 호소하면 섬유소, 완하제, 위장관운동촉진제 등을 투여한다. 하제는 약한 것부터 강한 순으로 써야 하며 장기간 사용하면 장운동이 무력해질 수 있다. 가장 무난하게 쓸 수 있는 게 팽창성 하제다. 식이섬유가 수분을 흡수해 변의 부피를 팽창시키고 변을 부드럽게 하며 부작용도 가장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섬유소 성분인 차전자피(psyllium husk, 질경이 씨앗의 껍질), 폴리카르보필(poly carbophil) 등이 있으며 평소 식이섬유를 충분히 섭취하지 못하는 환자에게 유용하다. 충분한 물과 함께 복용해야 한다. 일양약품 ‘무타실산’(성분명 차전자피), 명문제약 ‘실콘정’(폴리카르보필) 등이 있다.
삼투성 하제는 삼투현상을 이용해 대장 주위 수분을 변으로 빨아들인다. 수분함량을 높여 변을 묽게 만들어 배변 활동이 쉽도록 만든다. 팽창성 하제로 효과를 보지 못한 환자의 경우 삼투성 하제 복용이 추천된다. 단 대장이 협착 또는 폐쇄된 환자의 경우 대장 폐쇄 증상이 악화될 수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무기염류인 마그네슘염 및 인산염, 비흡수성 다당류인 락툴로오스(lactulose) 및 락티톨(lactitol), 고분자물질인 폴리에틸렌글리콜(polyethylene glycol) 등이 삼투성 하제에 해당된다.
폴리에틸렌글리콜은 다른 삼투성 하제에 비해 전해질 이상, 수액 과다, 탈수 등의 위험성이 적은 편이다. 락툴로오스는 장에 도달해 분해되며 이에 따라 유기산이 생성되면 대장내 pH가 낮아지고 삼투압이 올라가 장에 수분이 증가하고 연동운동이 촉진되면서 배변이 용이해진다. 락툴로오스 성분은 장에서 유산균의 먹이가 돼 장기능을 증진하는 효과까지 겸하고 있다. 중외제약 ‘듀파락시럽’(성분명 락툴로오스)이 대표적이다.
마그밀은 복용 후 30분~3시간 안에 효과가 빠르게 나타난다. 대장뿐 아니라 주위 세포와 혈관에서도 수분을 빨아들여 대변을 무르게 하므로 복용할 때 물을 한 컵 이상 많이 마셔야 배변 효과가 좋다.
자극성하제는 장관벽의 신경총을 자극해 대장 수축을 촉진하고 대장과 소장의 수분 흡수를 감소시켜 변을 배출시킨다. 약국에서 파는 대부분의 변비약이 이에 해당한다. 대표적으로 비사코딜(bisacodyl)·피코설페이트(picosulfate)·센노사이드(sennoside) 이 있다.
비사코딜(bisacodyl)은 강력한 자극성 완하제로 대장 점막 신경에 직접적으로 작용한다. 부교감 신경반사를 유발하는 신경말단을 자극해 대장의 연동운동을 촉진하고, 장관점막을 직접 자극해 배변을 유도한다. 단일제로 신일제약 ‘신일비사코딜정’, 사노피아벤티스 ‘둘코락스좌약’ 등이 있다. 복합제는 사노피아벤티스의 ‘둘코락스에스장용정’, 코오롱제약 ‘비코그린에스정’ 등이 대표적이다.
2015년 등장한 위장관운동촉진제 프루칼로프라이드(prucalopride)는 장운동에 직접 영향을 끼치는 세로토닌 4형 수용체(5-HT4 receptor)에 선택적으로 작용한다. 장의 수축·이완 운동을 촉진하고 배변활동 증가에 도움을 준다. 프루칼로프라이드는 장이 원래 가진 운동패턴을 강화해 생리학적인 리듬을 살려준다. 변비약의 흔한 이상반응인 배가 뒤틀리거나 아픈 증사잉 상대적으로 적다. 여러 임상시험에서 자발적 장운동 빈도 증가, 잔변감 없는 배변 등의 효과가 입증됐으며, 다양한 하제에 효과가 없는 증상이 심한 환자에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오리지널약은 얀센 한국얀센의 ‘레졸로정’이다.
로페라미드·라모세트론 등으로 설사 증상 완화
자주 무른 변을 보는 설사에는 장 운동을 억제하는 로페라미드(loperamide) 등 지사제를 사용할 수 있다. 로페라미드 성분이 들어 있는 캡슐약은 장 운동을 억제해 급성·만성 설사 증상을 완화하는데 도움을 준다. 장의 연동운동을 감소시켜 음식물이 지나가는 시간을 늘리면 대변의 점성과 농도가 진해지고, 수분은 감소하면서 설사가 멎게 된다. 로페라미드는 복통, 복부팽만감을 비롯해 과민성장증후군의 전체적인 증상 완화보다는 설사 및 배변 횟수 감소에 효과적인 것으로 밝혀졌다. 영일제약의 ‘로프민캡슐’, 대우제약의 ‘로파미드캡슐’, 한미약품의 ‘로페리드캡슐’ 등이 있다.
선택적 세로토닌(5-HT3) 수용체 길항제는 내장의 통각을 줄이고, 대장운동을 억제하며 음식물 및 분변의 대장 통과시간을 지연시키기 때문에 설사형 과민성장증후군에 유용할 수 있다. 알로세트론(alosetron)은 설사 우세형 과민성장증후군 환자 치료제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았으나 현재 국내서 시판되는 제품이 없다. 라모세트론(ramosetron)도 설사형 과민성장증후군에 쓰인다. 동아ST ‘이리보정’ 등이 대표적이다.
디옥타헤드랄 스멕타이트(dioctahedral smectite)는 마그네슘과 알루미늄이 다량 포함돼 있다. 수분을 잘 흡수하는 분자구조로 장내 독소, 세균, 소화효소 등을 흡착해 배설하는 것은 물론 손상된 점막을 일부 채워주기도 한다. 장내 유해물을 흡착하면서 다른 약물까지 빨아들여 해당 성분의 흡수를 방해할 수 있다. 대웅제약의 ‘스멕타현탁액’이 가장 대표적이다. 이 약물은 비교적 안전해 소아의 설사 증상에 많이 사용됐으나 안전성 문제가 제기되면서 지난해 6월부터 24개월 미만 소아, 임부 및 수유부가 이 성분의 단일제를 복용할 수 없게 됐다.
복통 개선에 쓰이는 진경제·항우울제·항생제
일반적으로 장관 또는 항문에 과도한 수축이나 경련이 나타나고 통증을 호소하면 진경제를 투여한다. 단기적으로는 증상을 완화하지만 장기적 효과에 대해서는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소화기를 감싸고 있눈 평활근을 이완시켜 통증을 가라앉히는 항근육성 진경제(musculotropics)의 대표적 성분으로는 메베베린(mebeverine), 피나베륨(pinaverium), 페노베린(fenoverine) 등이 있다. 일양약품 ‘일양디세텔정’(성분명 피나베륨), 부광약품 ‘펙사딘캡슐’(페노베린) 등이 대표적이다. 진경제인 알베린(alverine)에 가스제거제인 시메치콘(simethicone)을 배합한 제품으로는 동화약품 ‘제스라-제트연질캡슐’ 등이 있다.
이들 약은 평활근 세포막의 칼슘 채널에 근수축을 유발하는 칼슘이온이 들어가지 못하게 해서 평활근을 이완시켜 장을 편안하게 한다. 복통을 경감하고, 설사·변비·복부팽만감을 가라앉힌다. 피나베륨은 가장 오래된 약으로 소화기점막을 자극하는 부작용이 가장 심하므로 수면 직전에 복용하는 것은 삼가야 하며 식사 직후나 식간에 먹는 게 바람직하고 물을 많이 마셔야 한다. 피나베륨과 알베린은 항콜린성 작용도 일부 갖고 있다. 페노베린은 흥분성 신경전달물질인 글루타메이트 수용체에 길항작용을 하면서 진경효과도 일부 발휘한다. 과거에 많이 쓰였던 파파베린(papaverine)은 장뿐만 아니라 다른 장기도 많이 이완해 지금은 주로 연구용으로만 쓴다.
항콜린성 진경제(anticholinergic antispasmodics)는 부교감신경계의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에 의해 위장관운동이 촉진되고 소화기 경련이 일어나는 것을 막아준다. 특히 지방섭취시 S상 결장이 과잉 운동하는 것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 디사이클로민(dicyclomine), 히요시아민(hyoscyamine), 히요신(hyoscine), 시메트로피움(cimetropium) 등이 항콜란성 진경제에 해당된다. 조아제약 ‘스파토민캅셀’(성분명 디사이클로민), 명문제약 ‘알메트정’(시메트로피움) 등이 대표적이다.
이 가운데 시메트로피움은 위장관 경련과 소화기관의 운동이상장애에 더 선택적으로 작용하며 장기간 사용해도 약물에 대한 인체의 내성이 약해 오랫동안 효과가 지속된다. 메베베린과 디사이클로민은 일정 기간 계속 투여해야 효과가 나타나는 경우가 많아 한두 번 먹고 그만 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항우울제를 과민성장증후군에 쓰면 우울증에 쓰는 용량보다 적게 사용해도 짧은 시간에 약효가 나타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항우울제는 간접적으로 설사를 멎게 하고 변비를 부추기는 작용이 있으므로 환자의 증상 양상에 따라 용량을 조절해야 한다.
삼환계 항우울제(tricyclic antidepressant, TCA)는 항콜린 작용으로 소장 통과시간을 늦추고, 이는 설사 우세형 과민성장증후군에 효과적일 수 있다. 아미트리프틸린(amitriptyline), 노르트립틸린(nortriptyline), 이미프라민(imipramine) 등이 있다. 환인제약 ‘에나폰정’(성분명 아미트리프틸린), ‘환인이미프라민염산염정’(이미프라민), 일성제약 ‘센시발정’(nortriptyline) 등이 대표적이다.
과민성장증후군이면서 우울증이 있는 환자에서는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 Selective serotonin reuptake inhibitor)도 쓰인다. 플루옥세틴(fluoxetine), 파록세틴(paroxetine), 서트랄린(sertraline) 등이 있으나 많이 처방되지 않는다. 한국릴리 ‘푸로작캡슐·확산정’(성분명 플루옥세틴) ,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 ‘팍실CR정’(파록세틴), 한국화이자제약 ‘졸로푸트정’(설트랄린) 등이 대표적이다. 이밖에 벤조디아제핀(benzodiazepine) 계열 신경안정제(불안증 치료제)를 보조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과민성장증후군 환자에서 항생제가 권장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중등도 이상 환자 중 변비 증상은 없고 복부팽만이 있으면서 다른 치료에 효과가 없을 경우 비흡수성 항생제인 리팍시민(rifaximin)을 투여할 수 있다.
리팍시민은 장내 감염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항생제다. 화학 구조상 리파마이신(rifamycin)계 항생제로 분류되지만, 다른 리파마이신계 항생제와 달리 경구 복용 시 위장관에서 체내로 흡수되는 양이 1% 미만으로 매우 적어 혈액을 통한 전신작용보다 장벽의 균에 주로 작용한다. 단기간 고용량 사용 시 과민성장증후군 증상이 개선되고 치료 후에도 효과가 지속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는 삼오제약의 ‘노르믹스정’만 시판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