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이 세계 각국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AIDS, 에이즈) 치료제가 주목받고 있다. 국립중앙의료원에 따르면 지난달 3일 신종 코로나 감염 증상이 완치된 2번 환자의 치료에 에이즈 치료제 ‘칼레트라정’(성분명 리토나비르·로피나비르)가 사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칼레트라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를 포함한 RNA 바이러스 감염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리토나비르(Ritonavir)와 로피나비르(Lopinavir)를 혼합한 미국 애브비(Abbvie)의 의약품이다.
태국에서도 신종 코로나 환자에 에이즈 치료제를 통해 치유한 사례가 보고됐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태국에서 항바이러스제 ‘타미플루캡슐’(성분명 오셀타미비르 oseltamivir)와 칼레트라가 심각한 증상을 보이는 세 명의 환자에게 사용됐으며 그 중 71세 여성 환자가 약물 투여 48시간 후에 개선 징후를 보였다.
신종 코로나에 에이즈 약을 사용하는 이유는 이 질병을 유발하는 바이러스에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바이러스와 에이즈 바이러스는 지질로 된 막으로 둘러싸인 외피 보유 RNA 바이러스다. 따라서 에이즈 바이러스 증식을 억제하는 약물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추정하고 있다.
에이즈, HIV 감염으로 면역력 결핍으로 발생
에이즈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에 감염돼 발생한다. HIV는 일반적으로 HIV-1을 말하며 감염되면 체내 면역력이 크게 떨어져 세균 등 독성물질이 공격해도 방어하지 못하게 된다. 이로 인해 정상 상태에서는 거의 발생하지 않는 각종 감염병이나 암 등이 생긴다.
HIV 감염자는 체내에 HIV를 갖고 있는 사람을 말하며, 에이즈 환자는 HIV 감염 후 면역결핍이 심해져 합병증이 생긴 환자를 말한다. 에이즈 환자가 주로 사망하는 원인은 새로 침투한 병원균에 의한 감염과 암 등의 합병증 때문이다. HIV는 혈액·성 접촉·모유 등 체액을 통해 감염되며 대부분 성 접촉으로 전염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HIV는 RNA를 유전물질로 하는 레트로바이러스에 속한다. 숙주세포에 침입한 다음 자신의 역전사효소를 이용해 이중가닥의 DNA를 만든다. 통합효소는 바이러스의 DNA가 숙주의 염색체(DNA) 속으로 끼어 들어가는 데 필요하다. 이후 바이러스DNA(proviral DNA)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 미성숙한 HIV단백으로 번역된다. 단백분해효소는 이 HIV단백을 절단해 바이러스를 구성하는 성숙한 단백을 생성한다. 만들어진 HIV는 이같은 과정을 반복해 증식한다. 참고로 뉴클레오시드(Nucleoside, 핵염기+오탄당)에 인산기가 결합하면 DNA 또는 RNA 등 유전물질의 구성 성분인 뉴클레오티드(nucleotide, 핵염기+오탄당+인산)가 된다.
에이즈 치료제와 백신에 대한 연구가 다각도로 진행되고 있으나 아직까지 에이즈를 완치하는 치료제나 백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HIV를 환자의 체내에서 완전히 제거하지 못하므로 치료를 중단하면 에이즈가 재발한다. 치료제의 역할은 HIV 감염자가 에이즈 환자로 진행되는 것을 막고 생존기간을 연장하는 것이다.
에이즈 치료제는 약물의 작용 기전과 화학구조에 따라 △뉴클레오시드유사체 역전사효소억제제(nucleoside analogue reverse transcriptase inhibitor, NRTI) △비(非)뉴클레오시드유사체 역전사효소억제제(non-nucleoside analogue reverse transcriptase inhibitor, NNRTI) △단백분해효소억제제(protease inhibitor, PI) 등으로 나뉜다. 이밖에 통합효소억제제(Integrase Strand Transfer Inhibitor, INSTI), 사람(숙주)의 세포막과 바이러스의 결합을 막는 막융합 억제제(Membrane fusion inhibitor), CCR5 수용체를 차단해 CD4-T세포의 감염을 막는 CCR5 억제제(CCR5 inhibitor) 등을 사용할 수 있다.
에이즈치료제의 효능은 보조(CD4+) T면역세포의 수치가 얼마나 오르는지, 말초혈액 검사로 HIV의 유전물질인 RNA가 얼마나 감소되는지를 기준으로 평가한다. 보조 T세포의 기능이 저하되면 B림프구가 항체를 제대로 생산할 수 없다.
내성 한계 극복한 칵테일 요법 … 불치병에서 관리 가능한 질환으로
HIV는 돌연변이가 잘 발생하기 때문에 한 가지 약제를 투여할 경우 수주 후 약제에 내성을 가진 변종바이러스가 생겨 치료에 실패할 확률이 높다. HIV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약제에 내성을 보이면 에이즈 치료제에 노출되어도 생존할 수 있게 된다.
1996년 고강도 항레트로바이러스치료(HAART, highly active antiretroviral therapy)라 불리는 3제 병합요법이 등장하면서 에이즈 치료에 새로운 희망이 생겼다. 내성을 줄이기 위해 최초 복용을 시작할 때부터 적어도 두 가지 이상의 약제를 병합해 사용하는 것으로 여러 개의 약을 섞어서 복용하기 때문에 칵테일요법이라고 한다. 3중요법 이상의 고강도 칵테일요법(HAART)을 계기로 에이즈 환자는 평생 약을 복용하면 일상생활을 할 수 있게 됐다. 박가은 건국대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꾸준한 연구로 효과적인 치료제가 개발되면서 에이즈는 만성질환이 됐다”며 “조기에 HIV 감염을 확인해 항바이러스제를 꾸준히 복용하면 장기 생존할 수 있다”고 밝혔다.
HAART의 기본적인 약물 조합은 2가지 뉴클레오시드유사체 역전사효소 억제제(NRTI)를 기본으로 비뉴클레오시드유사체 역전사효소 억제제(NNRTI)·단백효소 억제제(PI)·통합효소 억제제(INSTI) 중 하나 이상을 섞는 것이다. 칵테일요법에서도 내성이 6~16% 생기므로 치료 시작 전에 내성 검사를 한다. 초기치료에 실패하면 약물 전체를 바꿔 다시 시도한다. 약을 규칙적으로 복용하지 않거나 처방된 약물 중 일부만 복용하는 경우 내성이 잘 발생하기 때문에 전문가의 지시에 따라 제대로 복용해야 한다.
NRTI·NNRT·PI 등 … HIV 침투를 막는 다양한 기전의 약물
HIV가 숙주 세포에 침투하기 위해서는 RNA를 DNA로 바꾸는 복제(역전사) 과정과 바이러스 DNA가 숙주 세포 DNA의 일부가 되는 통합 과정을 거쳐야 한다. HIV의 RNA를 DNA로 변환하는 효소를 저해하는 약물이 역전사효소 억제제다. 역전사효소 억제제는 크게 뉴클레오시드 유사체 역전사효소 억제제(NRTI)와 비뉴클레오시드 유사체 역전사효소 억제제(NNRTI)로 나뉜다. NRTI는 뉴클레오시드와 모양이 유사한 형태로 역전사 과정에 끼어 들어가서 역전사를 방해하는 약이다. 대표적인 NRTI 단일제로 GSK의 ‘지아겐정’(성분명 아바카비르 abacavir) 등이 있다. NNRTI는 역전사효소에 결합해 역전사효소의 작용을 방해한다. 한국MSD의 ‘스토크린정’(에바피렌즈 efavirenz)가 대표적이다.
단백분해효소는 HIV가 증식한 후 새로 만들어진 HIV의 미성숙한 구조물을 자르고 다듬어서 감염성이 있는 HIV가 되는 과정에 작용한다. 이 과정에 관여하는 단백분해효소 억제제는 단백분해효소에 결합해 작용을 방해하고 미성숙한 비감염성 바이러스 입자를 형성하도록 유도한다. 한국BMS ‘레야타즈캡슐’(성분명 아타자나비어 atazanavir), 한국애브비 ‘노비르정’(리토나비르 Ritonavir) 등이 있다.
단일정 복합 치료제 … 꾸준한 신약 개발 및 출시 이어져
에이즈치료제 시장은 하루 한 알로 바이러스를 억제하는 신약을 출시하는 추세다. 단일정 복합 치료제(single tablet regimen)는 칵테일 요법의 3종류 이상의 여러 기전을 가진 약을 한 알에 담는데 에이즈 치료제 성분 외에도 약물 흡수율을 높이거나 분해를 막는 성분 등을 포함하기도 한다.
신약으로는 지난해 7월 국내 출시된 길리어드사이언스코리아의 3제 복합제 ‘빅타비정’(성분명 빅테그라비르·엠트리시타빈·테노포비르 알라페나미드, Bictegravir, emtricitabine·tenofovir alafenamide fumarate(TAF))이 가장 대표적이다. 빅타비는 첫 출시된 해 미국에서만 1억1400만달러(약 1341억원) 매출을 올린 블록버스터급 신약이다. 지난해 글로벌 매출 약 5조6500억을 달성하면서 에이즈치료제 시장 1위를 차지했다. 빅타비의 바로 직전 버전은 길리어드의 ‘젠보야정’(성분명 엘비테그라비르·코비시스타트·엠트리시타빈·테노포비르 알라페나미드푸마르산염, elvitegravir·cobicistat·emtricitabine·tenofovir alafenamide fumarate)으로 세대교체가 이뤄지기 전까지 에이즈 치료제 매출 1위를 차지한 제품이다.
빅타비와 젠보야의 핵심성분인 통합효소억제제(INSTI)으로 각각 빅테그라비르와 엘비테그라비르를 함유하고 있다. INSTI는 HIV를 억제하는 성분과 시너지 작용을 일으키는 일종의 파트너 역할을 해 감염된 HIV가 역전사 과정 후 숙주의 세포핵 DNA에 삽입돼 들어가는 과정에서 DNA에 접합하는 효소를 억제한다. 빅테그라비르는 기존 INSTI 대비 내성 장벽이 강화됐으며 별도 부스터 제제를 필요로 하지 않아 약물 간 상호작용 우려도 적다. 반감기도 17.3시간으로 현재 치료 옵션으로 활용할 수 있는 InSTI 중에서 가장 길다. 덕분에 복용시간을 놓치더라도 다른 약물에 비해 부담이 적다. 공복에 복용이 가능한 것도 장점이다.
젠보야의 이전 버전은 2014년 발매한 ‘스트리빌드정’(성분명 엘비테그라비르·코비시스타트·엠트리시타빈·테노포비르 디소프록실 푸마르산염)이다. 스트리빌드정의 테노포비르 디소프록실 푸마르산염(Tenofovir Disoproxil Fumarate, TDF) 성분을 TAF로 바꿔 출시한 젠보야는 단백뇨 등 신장 독성과 골밀도 감소 등 부작용 위험을 낮춰 좋은 반응을 얻었다. 스트리빌드정은 세계 최초 통합효소억제제(INSTI) 기반 단일정 복합제다. 테노포비르, 엠트리시타빈에 INSTI인 엘비테그라비르와 부스터 역할을 하는 코비스스타트를 한 알에 결합했다.
한국MSD의 ‘델스트리고정’(Delstrigo, 성분명 도라비린·라미부딘·테노포비르 디소프록실 푸마레이트, doravirine·lamivudine·tenofovir disoproxil fumarate)은 지난 1월 29일 식품의약안전처 허가를 받고 국내 출시를 앞두고 있다. 이 약은 ‘이전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 경험이 없는 에이즈 성인 환자를 위한 복합제’로 승인받았다. 빅타비정과 경쟁 구도를 형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도라비린 성분은 지난해 11월22일자로 단일 성분의‘피펠트로정’으로 식약처 승인을 받았으며 다른 항레트로바이러스 제제와 병용 투여한다. 피펠트로도 ‘이전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경험이 없는 성인 환자의 HIV 감염 치료제’로 적응증을 받았다. 델스트리고정은 임상에서 HIV 표준치료로 여겨지는 ‘에파비렌즈·엠트리시타빈·테노포비르(EFV/FTC/TDF)’ 3중요법에 비해 비열등성을 입증했다. FTC는 엠트리시타빈의 본래 화학명인 2’,3’-dideoxy-5-fluoro-3‘-thiacytidine의 약자에서 왔다.
2015년 출시된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의 ‘트리멕정’(성분명 돌루테그라비르·아바카비르·라미부딘, dolutegravir·abacavir·lamivudine)도 대표적인 단일정 복합치료제다. 40kg 이상의 12세 이상 청소년 및 성인 HIV 감염 치료제로 허가를 받았다. 트리멕은 INSTI인 돌루테그라비르와 NRTI인 아바카비르·라미부딘을 함유했다. 돌루테그라비르는 내성 장벽이 높아 장기 복용에도 안심할 수 있고 부작용도 적은 편이다. 부스터 역할을 하는 제제가 포함되지 않아 내성 발현율과 부작용이 줄어든 것도 장점이다.
국내에서는 에스티팜이 신약을 개발 중이다. 에스티팜은 지난 1월 유럽의약품기구(The European Medicines Agency·EMEA)에 에이즈 신약 ‘STP0404’의 임상1상 시험계획(Investigational Medicinal Product Dossier·IMPD)을 신청했다. STP0404는 HIV가 복제 주기 동안 사용하는 통합효소(인테그라제)의 비촉매 활성 부위를 타깃으로 하는 새로운 작용 기전의 신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