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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슈퍼박테리아 위험지대, CRE 감염 급증에 ‘속수무책’
  • 박정환 기자
  • 등록 2019-10-31 17:08:15
  • 수정 2020-09-15 16: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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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월 감염자 1만 돌파, 사망률 50% … 병원들 감염환자 ‘폭탄돌리기’, 신항생제 개발 미미
매년 전세계 70만명 이상이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슈퍼박테리아에 감염돼 목숨을 잃고 있다.
기존 항생제에 반응하지 않는 슈퍼박테리아 감염 환자가 해마다 늘고 있는 가운데 보건당국이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어 대중의 공포감만 확산되는 분위기다. 일선 병·의원 중 상당수가 전염성이 있는 다제내성균 감염자를 사전에 스크리닝하거나 격리시킬 장비와 인프라를 제대로 갖추고 있지 않아 재앙이 닥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올해 유행한 슈퍼박테리아 중 가장 대표적인 ‘카바페넴내성장내세균’(CRE, Carbapenemase-producing Enterobacteriaceae) 감염자가 지난 9월 기준 1만80명에 이르렀다. 지난해에는 11월이 돼서야 감염자 수가 1만명을 넘겼지만 올해엔 감염자가 가파르게 늘어 1만명 돌파 시점이 두 달 앞당겨졌다.

CRE는 가장 마지막에 사용해 ‘최후의 항생제’로 꼽히는 이미페넴(imipenem)·메로페넴(meropenem)·얼타페넴(ertapenem) 등 카바페넴(carbapenem) 계열을 포함, 대부분의 항생제가 듣지 않는 항생제다제내성균이다. 감염 부위에 따라 증상이 다르다. 요로 감염시 배뇨통·빈뇨·옆구리통증·발열, 복강내 감염시 복통·발열·복부압통, 담낭·담관 감염시 우측 상복부통증·발열·황달, 폐 감염시 발열·흉통·가래 등 증상이 나타난다.

CRE에 한 번 감염되면 사망률이 50%에 이른다. 고령이거나 만성폐쇄성폐질환(COPD)·당뇨병 등 만성질환을 앓는 환자는 감염에 취약하다. 감염자가 병원에 입원할 경우 인공호흡기나 간호사 등을 통해 다른 환자에게 전염될 수 있다.

슈퍼박테리아는 항생제에 강한 내성을 가져 약효가 듣지 않는 개체를 의미한다. 1961년 영국에서 메티실린내성황색포도상구균(MRSA, Methicillin-Resistant Staphylococcus Aureus), 1996년 일본에서 반코마이신내성황색포도상구균(VRSA, Vancomycin-Resistant Staphylococcus Aureus)이 처음 발견됐다.

현재 전세계 매년 70만명이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슈퍼박테리아로 목숨을 잃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항생제 내성균에 의해 매년 200만명이 감염되고, 2만3000명 이상이 사망하고 있다. 영국 전문가들도 2050년이 되면 항생제 내성으로 매년 1000만명이 사망하고, 세계경제는 100조달러 규모의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항생제 사용량이 많은 한국은 항생제 내성률이 높아 슈퍼박테리아의 위협에 노출돼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에서도 2014년 기준 국내 항생제 사용량은 30.1DDD(defined daily dosage)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21.1DDD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김홍빈 분당서울대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카바페넴 계열 항생제의 국내 내성률은 30.6%, 메티실린은 67.7%로 세계 2~3위권 수준”이라며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다제내성균에 감염된 환자가 요양병원으로 옮기면서 균이 확산되는 양상을 나타낸다”고 설명했다. 항생제 내성률은 세균 100마리에 항생제를 투여했을 때 살아남은 세균의 수를 의미한다.

질병관리본부는 2017년 6월부터 CRE와 VRSA 감염증을 ‘제3군 감염병’으로 지정해 감시하고 있지만 확산 경로를 추적할 수 있는 시스템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병원들이 ‘폭탄 돌리기’를 하듯 슈퍼박테리아 감염 환자를 떠넘기기 급급한 게 문제를 확산시키고 있다. 상급종합병원이나 종합병원은 이들이 격리병실이나 음압병실을 사용하면 당장 생명이 위급한 환자를 받지 못할 수 있다며 일찍 퇴원시키려 종용한다.

일부 요양병원은 감염관리가 까다롭고 간호인력, 간병인, 다른 환자 등에게 균을 옮길 수 있다며 감염 환자의 입실을 거부하기도 한다. 격리병실 등을 운영하면서 슈퍼박테리아 감염 환자를 돌보면 감염예방관리료 명목으로 수가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해 격리실 내에 전담인력, 시설, 샤워시설 등을 갖추려면 큰 재원이 들어가야 해서 열악한 요양병원 입장에선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격이다. 실제로 지난해 6월 공개된 보건복지부 조사결과 국내 요양병원 중 감염관리실과 인력을 운영하는 비율은 6%에 그쳤다.

치료제도 매우 제한적이다. 대한항균요법학회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서 허가된 슈퍼항생제(슈퍼박테리아 치료제)는 동아에스티의 ‘시벡스트로정200mg’(성분명 테디졸리드인산염, tedizolid phosphate)과 한국MSD의 ‘저박사주’(성분명 세프톨로잔·타조박탐, ceftolozane·tazobactam) 등 두 개뿐이다. 그나마도 둘 다 보험급여가 적용되지 않아 사실상 환자에게 사용되지 않고 있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슈퍼박테리아 치료제에 급여가 적용되지 않으면 전문가의 판단이 아닌 ‘비용’이 치료 장벽이 될 수밖에 없다”며 “항생제의 건강보험 급여 결정 과정을 개선하고, 다제내성 감염증 치료제의 국가필수의약품 지정 등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홍빈 교수는 “다제내성균 감염 환자는 사용할 항생제가 없어 사망 위험이 매우 높기 때문에 슈퍼항생제 개발을 위한 정부의 전방위적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어린이는 성인에 비해 항생제 남용에 따른 부작용에 더 자주 노출돼 주의해야 한다. 감기와 중이염은 어린이에 대한 항생제 처방이 가장 많은 질병이다. 감기의 80~90%는 바이러스 감염증이어서 세균을 제거하는 항생제로는 효과를 보기 어렵다. 하지만 부모들이 무턱대고 의사에게 항생제 처방해 줄것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감기 등 상기도감염에 대한 국내 항생제 처방률은 2002년 73.3%에서 2015년 44%로 감소하는 추세지만 여전히 호주(32.4%), 대만(39%), 네덜란드(14%) 등보다 높다.

감기 치료에 항생제가 필요한 것은 세균성 인두염 등 일부 세균성 감염증에 한정된다. 이 질환은 가을과 겨울에 5~12살 어린이에서 주로 발생하며 38.5도 이상의 열이 3일 이상 계속되고 식욕부진과 호흡이 빨리진다. 여기에 목이 아프고 속이 메슥거리는 소화기 증상이 동반된다. 일반적 감기인 바이러스성 감염증보다 고열 증상과 무력감이 심한 편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2008년부터 만 2세 미만 영유아에게 항생제 성분이 포함된 감기약 사용을 금지했다. 영국도 2009년 6세 미만 어린이에게 항생제를 사용하면 안 된다는 지침을 발표했다. 유럽은 국가별로 지침이 다르지만 대체로 영국과 미국의 것을 준용한다. 대체로 24개월 미만 영유아에게 항생제 사용을 금지해놨다. 유럽의 경우 약 76%의 병원이 호흡기감염에 대한 항생제 사용 지침을 제정하고 준수하는 상황이며 국내와 마찬가지로 아목시실린, 페니실린 계열의 항생제가 주로 처방된다.

일본은 모든 연령대에서 생약 감기약을 선호하는 분위기 탓에 항생제 오남용을 우려하는 비판의 강도가 낮은 편이다. 대체로 미국 규정을 따르되 한국과 마찬가지로 항생제를 적게 쓰면 의료보험에서 병의원에게 인센티브를 지급하고 있다.

국내서는 소아의 항생제 투여해 대해 연령 제한이 없거나, ‘2개월 미만 영아에게는 안전성이 확립되지 않았다’는 기재사항을 남겨 처방을 자제토록 하는 선에서 그친다. 항생제가 들어간 감기 일반약은 국내에 전무하다. 일반약 종합감기약 등에는 2014년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만 2세 미만에게 투여하지 않는다’는 문구를 넣어 가급적 의사 진료를 권유하고 있으며 3개월 미만 영아에게 투여를 금지하고 있다.

이 교수는 “항생제 부작용을 예방하려면 가벼운 감기처럼 항생제 없이 치료할 수 있는 병에는 가급적 항생제를 사용하지 않는 게 좋다”며 “단 항생제를 먹다가 자의적으로 중단하면 완전히 박멸되지 않은 세균이 내성을 획득할 가능성이 커지므로 복용량과 복용 시기를 준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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