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변종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로부터 보호해주는 만능 독감백신은 인플루엔자 연구의 성배(聖杯)로 종종 묘사되지만 여전히 닿기 힘든 분야다. 최근 한 독감 환자로부터 분리한 항체가 과학자들에게 새로운 단서를 제공했다. 과학자들은 이번 연구가 만능 독감백신 뿐만 아니라 광범위하게 쓰이는 항바이러스제의 개발로 연결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지난 25일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시 소재 워싱턴대 의대, 뉴욕 맨해튼시 마운트시나이 아이칸의대(Icahn School of Medicine at Mount Sinai),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시 스크립스 연구소(Scripps Research) 공동연구진은 독감으로 입원한 한 환자에게서 채취한 항체가 12가지 변종 독감 바이러스 테스트에서 쥐(mice)를 살렸다고 세계적 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이 항체가 로슈의 유명한 독감약 ‘타미플루’(Tamiflu 성분명 오셀타미비르, oseltamivir)가 겨냥하는 단백질과 같은 뉴라미니다제(neuraminidase)를 방해함으로써 작용함을 발견했다. 뉴라미니다제는 새로 형성된 바이러스가 숙주세포를 빠져나가 다른 세포를 감염시키기 위해 이동하는 데 도움을 주는 두 가지 단백질 중 하나이다. 다른 하나는 계절성 독감 백신의 주 타깃인 혈구응집소(hemagglutinin)이다. 뉴라미니다제는 바이러스가 세포막을 녹이고 세포 안으로 침투할 때 필요한 분해효소다. 헤마글루티닌은 바이러스가 사람 세포 안으로 들어갈 때 세포막에서 잘 떨어지지 않도록 들러붙게 하는 접착제 역할을 한다.
연구를 이끈 알리 엘레베디(Ali Ellebedy) 워싱턴대 의대 병리·면역학과 조교수는 2017년 겨울 여러 독감 환자의 혈액 표본을 조사하다가 한 표본에서 독감 바이러스 표면의 주요 단백질인 혈구응집소 항체 외에도 다른 무언가를 표적으로 삼고 있는 다른 항체 3종을 발견했다.
당시 그는 연구를 막 시작해 연구실이 완비되지 않아 이들 항체가 무엇을 표적으로 삼는지 관찰할 도구를 갖고 있지 않았다. 이에 따라 그는 이번 연구의 공동 교신저자 3명 중 하나인 플로리안 크래머 (Florian Krammer) 아이칸의대 미생물학과 교수팀에 표적이 확인되지 않은 항체 3종을 보냈다.
크래머 교수는 환자의 비혈구응집소타깃항체(non-hemagglutinin-targeting antibodies) 3개를 외견상으로 관찰한 결과 한 가지 항체가 인플루엔자 A형, B형 등 독감 바이러스에서 밝혀진 모든 뉴라미니다제 유형을 차단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크래머 교수는 “항체의 범용성은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일반적으로 항뉴라미니다제 항체는 H1N1과 같은 하나의 변종바이러스에 영향을 주지만, 다양한 변종바이러스를 막는 항체의 발견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 후 연구팀은 이 항체를 가지고 쥐를 대상으로 치사량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투여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세 가지 항체 모두 많은 변종 바이러스에 효능을 보였고 그 중에서도 ‘1G01’라 명명된 항체는 12가지 변종 바이러스에 효과를 보였다. 이 바이러스에는 조류와 돼지 인플루엔자와 같이 비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변종뿐만 아니라 인간에게 독감을 일으키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A·B·C형 세 그룹에 속하는 것들도 포함됐다.
과학자들은 항체의 구조를 지도화(매핑)함으로써 각 항체들이 기어 스틱처럼 뉴라미니다제의 활성 부위 안에 미끄러지듯이 삽입되는 루프 고리를 갖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고리는 세포 표면에서 새로운 바이러스가 방출될 때 나오는 단백질을 막았다. 즉 세포 안에서 바이러스 생성 주기를 깨뜨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이러한 점이 항체가 넓은 범용성을 가지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많은 독감 바이러스 종류가 존재하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다가올 계절에 따라 가장 유행하는 백신을 개발해야 하며 유행 바이러스와 백신 바이러스 간 부조화(mismatch)는 백신을 무용하게 만든다. 만능 백신은 모든 종류의 변종 바이러스를 막는다는 이상적인 존재지만 그 딱 한 가지를 개발하는 건 쉽지 않다. 글락소스미스클라인(GlaxoSmithKline)이 개발한 만능 백신 후보물질인 GSK3816302A은 최근 큰 수확이 없어 임상 1상 중간단계 이후 내던져졌다. 이 물질은 아이칸 의대 마운트시나이의 키메릭(chimeric) 헤마글루틴 기술과 GSK의 AS03 보조요법을 결합한 합작품이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변이를 일으키면서 타미플루와 같은 기존 뉴라미니다아제 억제제에 대한 저항력을 보이는 것도 생긴다. 더 광범위한 방어효과를 보일 한층 나은 치료제의 개발이 시급하다.
미국 조지아주 아틀란타시 에모리대(Emory University) 약물개발연구소 연구팀은 최근 ‘EIDD-2801’로 불리는 화합물을 발견했다. 이 신약후보물질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게놈 복제 능력에 필수적인 RNA 중합효소를 차단한다. 바이러스가 게놈을 제대로 복사하지 못하면 비활성화되면서 복제가 차단되고 증식이 멈춘다.
인플루엔자 연구에 가장 흔히 사용되는 동물실험 모델인 페렛(ferret)에서 ‘EIDD-2801’는 다양한 인풀루엔자 변종의 복제를 억제했다. 여기에는 계절성 유행 바이러스와 2009년 유행했던 H1N1 돼지독감도 포함됐다. 에모리대와 조지아주립대 생물의학과 과학자들은 이 연구 결과를 ‘사이언스중개의학’(Science Translational Medicine)에 실었다.
워싱턴대 도움으로 연구팀은 이 화합물이 바이러스의 저항에 대해 매우 높은 장벽을 갖고 있음을 입증했다. 연구의 주임 저자인 리처드 플렘퍼(Richard Plemper) 조지아주립대 교수는 “아직 구체적인 유전자 저항 변형을 확인하지 못했으며 바이러스 저항에 대한 유전적 장벽이 높다고 자신한다”고 밝혔다.
EIDD-2801은 현재 동물 대상 전임상시험을 밟고 있으며 임상시험은 내년부터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
항체 1G01과 관련, 마운트시나이 연구팀은 “24시간 이내에 투여해야 하는 타미플루의 한계를 감안해 타미플루를 사용하기에는 너무 늦어 집중치료를 받아야 하는 독감 환자 치료에 1G01을 기반으로 한 약물이 유용할 것”이라 제안했다. 실험 결과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감염된 쥐에 1G01을 투여했더니 72시간 만에 모두 살아남았다.
연구진에 따르면 뉴라미니다제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복제에 꼭 필요하다. 이 단백질은 새로 형성된 바이러스를 감염 세포로부터 자유롭게 떼어내 새로운 세포에 감염되도록 유도한다. 신종플루와 같이 심한 독감에 가장 널리 쓰이는 약물인 타미플루 역시 뉴라미니다제를 비활성화하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연구팀은 장기적으로 1G01의 발견이 유사한 항체를 유도하는 만능 독감백신의 개발을 이끌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