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나영·장은선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팀은 국내 소화기내과 의사의 번아웃(정신적 소진, Burnout) 증상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연구결과를 16일 발표했다.
번아웃은 의욕적으로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지속적인 업무와 스트레스로 신체적·정신적 피로감을 호소하고 무기력해지는 증상이다.
의사들은 진료, 시술, 연구 등 여러 업무를 담당하기 때문에 쉽게 피로해진다. 과중한 업무가 반복되면 정신적인 스트레스 외에 근골격계질환, 심혈관계질환, 소화기계질환 등에 노출될 수 있다.
김 교수팀은 2018년 4~10월 국내 44개 의료기관에서 내시경검사 및 진료를 담당하는 소화기내과 의사 22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실제 업무와 일상생활 등 삶의 패턴을 2주 이상 매일 기입하도록 했다.
설문 응답지를 분석한 결과 2·3차 의료기관에서 근무하는 국내 소화기내과 의사는 1주에 평균 71.5시간 업무를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업무시간에 성별 차이는 없었다. 반면 가사·육아 등에 소비하는 시간은 여성이 20.7시간으로 남성의 14.3시간보다 많았다.
대상자 중 89.6%가 근골격계 통증, 53.6%가 소화기계 증상, 68.9%가 우울과 불안과 같은 정신적 증상을 겪었다. 또 근골격계 통증이 심하거나, 내시경시술을 주당 60건 이상 실시하는 의사는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신적 증상의 유병률이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연구결과 222명 중 143명(64.4%)에서 번아웃 증상이 관찰됐다. 여성 발생률이 70.4%로 남성의 59.7%보다 높았다. 특히 일부 30대 여성에서는 심한 번아웃 증상인 이인감(異人感, depersonalization)까지 나타났다. 이인감은 자기 자신이 낯설게 느껴지거나, 자기로부터 분리·소외된 느낌을 경험하는 것으로 사회생활과 대인관계에 지장을 줄 수 있다.
번아웃을 비롯한 정신적·신체적 증상은 직업만족도 저하로 이어졌다. 특히 여성 의사는 ‘다시 직업을 선택한다면 의사가 되겠다’고 답한 비율이 남성보다 상대적으로 낮았다. ‘의사가 되더라도 소화기내과를 택하겠다’고 응답한 비율도 낮은 것으로 확인됐다.
김나영 교수(한국여자의사회 학술이사)는 “이번 연구는 소화기내과 의사, 특히 40대 이하 여의사의 번아웃 증상이 심각한 것을 밝혀냈다”며 “의사의 신체적·정신적 건강 문제는 환자의 건강까지 위협하는 요인으로 의료인의 근무 조건을 개선하고, 여의사가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소화기계 질환과 과학(Digestive Disease and Science)’ 온라인판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