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앤드류 청 이후 7명 넘는 최고책임 경영진 이탈 … 창업 당시 ‘스타트업 본능’ 찾으려 세대교체 추진
지난해 가을 앤드류 청(Andrew Cheng) 최고의료책임자(CMO)의 사임을 포함해 작년과 올해 잇따른 주요 운영진의 퇴임으로 내홍을 겪은 길리어드(Gilead)가 연구개발 보고라인을 재조정하고 새 CMO를 임명했다.
길리어드는 로슈와 제넨테크의 암 전문가인 메르다드 파시(Merdad Parsey) 의학박사를 새 CMO로 영입했다. 파시는 제넨테크 기초임상 연구개발그룹(Genentech Research and Early Devlopment, gRED)에서 초기임상개발 수석부회장(SVP)으로 일했던 경력을 살려 다음 달부터 길리어드에서 일할 예정이다. 그를 낚아채 온 것은 2017년 카이트파마(Kite Pharma) 인수 후 심도 깊은 종양학 연구를 진행해온 것과 맥락을 같이 해 새삼 놀라운 일은 아니다.
암 연구 분야는 여전히 파시에게 집중되고, 길리어드의 전통적 중점 연구 분야인 전염병과 염증 등 다른 분야도 그에게 맡겨질 예정이다. 이에 파시는 회사 고위 운영팀의 일원으로 길리어드 이사회 의장(executive chairman)이자 최고경영자(CEO)이며 전 로슈 동료였던 다니엘 오데이(Danile O’Day)에게 진행 상황을 직접 보고하게 된다.
그러나 새로운 구조 아래서도 길리어드 측은 윌리엄 리(William Lee) 연구부사장(EVP of research)은 “오데이에게 개별적으로 보고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1991년부터 신약개발 관리자로 일해온 리 부사장이 자리가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파시에게 중간보고하는 게 비효율적이라고 경영진이 판단한 것으로 관측된다.
파시는 이전에 미국 매사추세츠주 세프라콜(Sepracor, 현재 Sunovion), 뉴욕주 리제네론(Regeneron), 뉴저지주 머크(Merck) 등 제약기업 및 학술센터 경력을 바탕으로 3-V바이오사이언스(3-V Biosciences)에서 CEO로 지냈다.
바로 1년 전, 앤드류 청은 CMO로 임명된 지 6개월 만에 길리어드를 떠났다. 청의 예상보다 빠른 조기 퇴임은 ‘회전문’ 인사를 초래해 9개월 동안 회사의 최고경영자, 최고의료책임자(CMO), 최고과학책임자(CSO), 이사회 의장이 공석으로 남는 혼란을 겪었다.
앤드류 청은 1999년부터 길리어드에서 근무했고 퇴임 직후인 지난해 9월 아케로테라퓨틱스(Akero therapeutics) CEO로 자리를 옮겼다. NASH 치료제 개발에 집중하는 회사로 원래 매사추세츠주에 소재했으나 그가 살던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로 이전할 정도로 청의 능력을 높게 샀다.
지난 3월 존 마틴(John Martin) 박사가 이사회 의장에서 물러나고 오데이 의장이 오면서 길리어드는 변화의 시기를 맞았다. 올 3월에 취임한 오데이 이사회 의장 겸 CEO는 세대교체를 통한 길리어드의 리모델링에 힘쓰고 있다. 역동적인 벤처의 특성에 거스르게 너무 오랫동안 근무한 C Suite(Chief가 들어가는 각 부문 최고책임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시 영입으로 혼란스런 경영상황이 안정화될지는 리더십의 과제로 남았다.
거대한 인사이동은 1년 전인 작년 4월 시작됐다. 노버트 비쇼프버거(Norbert Bischofberger) 박사가 CSO 자리를 떠났다. 그는 퇴임과 동시에 지난해 4월 크로노스바이오(Kronos bio)를 창립했다. 1990년 길리어드에 들어와 2000년부터 경영부사장, 2007년부터 최고과학책임자로 봉직한 길리어드의 산 증인이다. 근 30년 동안 25개의 화합물 개발에 관여해 위중한 질환에 대한 파이프라인을 구축했다. 그는 퇴임 전 인터뷰에서 “또다른 성공적인 회사를 만들고 싶다. 그것이 나의 목표이자 꿈이다. 나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스타트업 창업자의 본능적 기질을 내비쳤다.
길리어드에서 2010년부터 근무하고 비쇼프버거의 후임으로 CSO 및 R&D 책임자를 맡은 존 맥허치슨(John McHutchison) 의학박사도 갓 1년이 안 된 올해 7월 회사를 떠난다고 말했다. 그는 부사장으로서 만성 B형간염, C형간염 분야에서 5개의 치료제를 개발, 전세계 200만명의 환자에게 혜택을 줬다. 맥허치슨의 급작스런 퇴임에 미국 언론은 ‘해고’인지 ‘회사와의 조율’에 의한 것인지 알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작년 7월엔 존 밀리건(John Milligan) 박사가 28년간의 회사 생활을 마친다고 선언했고 그 해 연말 길리어드 회장직(CEO)에서 물러났다. 이 회사의 오랜 최고재무책임자(CFO) 로빈 워싱턴(Robin Washington)도 내년 3월에 은퇴할 계획이다.
이밖에 1999년 이후 길리어드에서 봉직해온 그레그 알톤(Gregg Alton) 최고특허책임자(CPO)도 지난 10월 4일까지 근무했다. 후임자가 오는 연말까지 자문역을 맡게 된다.
2003년부터 인사책임자로 일해 온 카티 왓슨(Katie Watson)도 지난 9월 1일까지 정년 근무를 마쳤다. 마찬가지로 연말까지 잔류하면서 지난 8월 후임자로 내정된 노바티스·릴리 출신의 지오티 메라(Jyoti Mehra) 부책임자에게 업무 인수인계를 하게 된다.
오데이는 “경험이 풍부하고 존경받는 과학자이며 전문의이자 지도자인 파시가 길리어드에 오게 된 것을 환영한다”며 “그는 자신의 경력으로 학계, 산업계, 의료계에서 뛰어난 지도자로 명성을 쌓았다. 내부적인 노력과 외부 제휴를 통해 파이프라인과 임상 개발 포트폴리오를 빠르게 확장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는 길리어드에 파시의 뛰어난 수완과 전문 임상지식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파시는 “임상개발 전략과 프로그램을 구체화하는 데 도움이 되는 많은 커리어를 쌓아왔다. 이런 경험을 오랫동안 동경해 온 조직인 길리어드에 발휘할 수 있어 매우 흥분된다”며 “회사의 재능 있는 팀들과 함께 임상개발 프로그램을 발전시키고 강력한 파이프라인을 구축해 질병의 궤도를 바꾸고 더 많은 전세계 환자들의 건강관리에 변혁을 일으키겠다”고 말했다.
주식투자 분석회사인 RBC 캐피털 애널리스트들은 고객들에게 보낸 쪽지에서 “길리어드가 파시 박사를 새 CMO로 고용했다. 로슈와 제넨테크에서 파시가 보낸 시간과 길리어드의 핵심 분야와 염증·종양학·전염병 등 신흥 전문 분야 간 중복되는 분야에서 쌓은 그의 경험을 감안할 때 이는 논리적으로 합당한 일이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애널리스트들은 투자자 서신에서 “최근 주식시장의 반응은 길리어드 경영진의 이탈이 부분적으로 투자자 소외를 초래했다는 것”이라며 “이번 인사가 길리어드 주요 경영진의 리더십을 공고히 하고, 추진 전략을 개선해 추후 주식가치 상승을 이끌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또 “새로운 CMO는 길리어드에 오버래핑된 전문지식과 경험을 제공한다. 후속 인사는 경영진의 피드백이 이뤄지는 대로 즉시 공표될 예정이다. 로슈의 초기임상개발 부사장(SVP)직을 맡았던 파시 박사는 염증·종양·전염병 등 여러 치료 영역의 프로그램을 관장해와 길드의 치료 초점과 겹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오데이 회장의 선택을 돋보이게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파시 박사는 제넨테크(첫 근무했던 2006~2010년 폐질환 개발 프로그램에 중점)에서 두 번째로 경력을 쌓기에 앞서 2010~2015년부터 3V바이오사이언스 CEO를 맡았으며 당시 이 회사는 전염병(C형간염)과 암(현재는 암과 비알코올성지방간염(NASH)치료제 개발에 중점) 치료를 위한 지방산합성효소(Fattyacid Synthase, FASN) 억제제 개발에 주력했다. 그는 호흡기내과 전문의 및 면역학 박사로서 다면적인 치료요법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번 인사를 통한 길리어드 경영진의 안정화가 회사 발전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지 주목된다. 효율과 속도를 중시하는 미국 바이오벤처 업계에서 성장을 마치고 현실에 안주하는 공룡벤처가 아니라 끊임없이 도전하는 자세를 갖추려는 길리어드 행보가 지난 1년간의 경영진 공백을 무난하게 메울 수 있을지 전세계 바이오 기업인들이 관심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