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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질진료에 화재 인명사고까지, 의료계 ‘문제아’ 된 요양병원
  • 박정환 기자
  • 등록 2019-10-08 08:41:03
  • 수정 2020-09-16 16: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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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원환자 많고 치료 덜 할수록 유리한 기형적 ‘정액수가제’ 문제 … ‘요양병원 요양원화’도 심화
지난 9월 24일 화재로 입원환자 두 명이 사망하고 36명이 다친 김포요양병원
2000년대 중반 이후 인구고령화와 맞물려 우후죽순 들어선 요양병원이 잇따른 화재 사고와 불법진료 등 도덕적 해이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최근엔 요양병원이 건강보험 재정 악화의 주요인으로 꼽히면서 정부가 ‘9대 생활적폐’의 하나로 ‘요양병원 비리’를 지목했다가 병원계의 반발로 취소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현행 의료법에 따르면 요양병원은 30명 이상의 수용시설을 갖추고 상급종합병원 등에서 수술 등 치료를 받아 응급상황은 벗어났지만 완치를 기대할 수 없는 암·뇌심혈관질 등 중중질환 환자, 만성질환 환자, 고령 환자에게 휴양 및 입원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휴양을 하면서 병을 치료하는 곳이다. 반대로 중증질환에 대한 고난도 수술이나 치료행위를 담당하는 대학병원은 ‘급성기병원’으로 불리지만 정식 명칭은 아니다.
 
용어가 비슷해 헷갈리기 쉬운 ‘요양원(요양시설)’은 의료법이 아닌 노인복지법을 적용받고 노인장기요양보험 등급판정에서 1~2급을 받아야 입소가 가능하다. 의료진이 상주하는 요양병원과 달리 외부 촉탁의가 월 2회만 방문해 환자를 돌본다. 즉 질병치료가 아닌 돌봄서비스에 치중된 시설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요양병원이 많지 않았다. 그러던 중 정부가 인구고령화로 인한 요양병상 수요 증가를 예상하고 개설을 지원하면서 2006년 361곳에 그쳤던 국내 요양병원은 2011년 988곳, 2016년 1428곳, 2018년 1584곳으로 12년새 약 4배 증가했다. 2018년 기준 국내 65세 이상 인구 1000명 대비 요양병원 병상 수는 33.5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25.9개보다 많다.
 
요양병원 진료비도 2007년 6723억원에서 2016년 4조422억원으로 6배 이상 늘었다. 전체 건강보험 진료비에서 요양병원 진료비가 치지하는 비중도 2.08%에서 7.29%로 3배 이상 올랐다.
 
병원 수가 급증하자 정부는 지원을 중단했지만 여전히 적잖은 요양병원이 국내 곳곳에 들어서고 있다. 이는 일반병원에 비해 설립 기준이 단순해 진입 장벽이 낮기 때문이다. 병원급 의료기관은 입원환자 20명당 의사 한 명, 2.5명당 간호사 한 명을 배치해야 한다. 반면 요양병원은 입원환자 80명당 의사 두 명, 6명당 간호사 한 명만 두면 된다. 은퇴를 앞두고 있거나, 의료계 과열 경쟁에서 출구를 찾고 있거나, 나이 들어 외과수술 술기가 예전만 못한 의사 등이 요양병원을 모색하는 경향이 강하다.
 
요양병원 수가 늘면서 ‘파이’가 줄자 생존을 위해 수익 보전에 매달렸고 불필요한 장기입원과 허위진료를 조장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브로커에게 돈을 주고 환자를 유인하거나, 비 의료인이 의사면허를 대여해 불법 사무장병원을 설립 및 운영하거나, ‘나이롱 환자(가짜 환자)’를 입원시킨 뒤 허위 처방전을 발행해 부당이익을 취하는 등 불법적 행태가 다양하다.
 
이는 입원한 환자 수와 기간에 비례해 돈을 버는 요양병원의 수익 구조에 기인한다. 국내 요양병원은 진료·검사·처방·입원 등 실제 행한 진료행위에 따라 수가를 받는 행위별 수가제가 아닌 환자의 입원일수만큼 정해진 금액을 받는 일당(日當) 정액수가제로 운영된다. 환자는 중증도나 입원치료 필요성 등에 따라 △의료최고도(하루에 6만4690원) △의료고도(5만5500원) △의료중도(4만9220원) △의료경도(4만3290원) △선택입원(2만8920원) 등 5등급으로 구분돼 차등화된 정액수가가 책정된다. 진료비의 60∼95%는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지원한다.
 
결과적으로 더 많은 환자를 유치할수록 병원 수익이 증가하는 구조다. 요양병원들이 시설이나 인력 기준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경쟁적으로 병상 장사에 몰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제는 요양급여가 정액으로 묶여 있기 때문에 요양병원 입장에서는 질 낮고 값싼 서비스를 제공해야 이익을 남길 수 있고, 이로 인해 저질의료와 과소진료가 빈번하다는 것이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익을 남기기 위해 필요한 처치를 하지 않거나, 주사기 등 의료기기를 재사용하거나, 최소인력으로만 병원을 운영하다보니 요양병원에 입원했다가 오히려 건강이 악화되는 환자가 적잖다”고 말했다.
 
‘요양병원의 요양원화’도 문제로 지적된다. 요양병원 관계자 A 씨는 “노인장기요양보험 등급판정에서 1~2급을 받지 못해 요양원 입소가 불가능한 환자가 대안으로 요양병원에 입원해 건강보험 재정을 갉아먹고 있는 실정”이라며 “입원 자격에 대한 기준이 없고 병상만 채우면 돈을 벌 수 있는 정액제 수가제도를 악용하는 일부 요양병원과 노인장기요양보험 등급판정에서 1~2급을 받지 못한 환자 및 보호자의 요구가 맞아 떨어져 이런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수익만 따지다보니 환자안전을 위해 필수적인 병원 시설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요양병원도 적잖다. 대표적인 예가 스프링클러 같은 소방시설이다.
지난달 24일 경기 김포요양병원에 화재가 발생해 2명이 사망하고 36명이 다쳤다. 사망한 김모 씨(90)와 이모 씨(86)는 집중치료실에 입원 중이던 환자였다. 화재가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 보일러실과 집중치료실이 인접해 피해가 더욱 컸다. 소방안전시설인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었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소방당국은 전기안전검사를 위해 건물에 전기가 차단된 상황에서 병원 측이 수동으로 산소를 공급하려다 화재가 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난해 1월 26일 발생한 밀양 세종병원 화재는 사망 46명, 부상 109명으로 인명피해가 가장 컸다. 이 병원은 스프링클러 의무설치 대상이 아니어서 소방설비가 불완전했고, 경찰 수사 과정에서 불법 증축도 확인됐다.
 
2014년 5월엔 전남 장성 효사랑요양병원에 불이 나 입원 환자와 간호사 등 21명이 숨졌다. 불은 발생 24분 만에 완전히 꺼졌지만 고령에 거동이 불편한 환자가 대부분이었고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아 피해가 컸다.
 
요양병원은 거동이 불편한 고령 환자나 만성질환 환자가 대부분이라 화재 같은 긴급상황에 취약하다. 하지만 안전설비 미비, 상주인력 부족, 비상 매뉴얼 부재 등으로 여전히 화재 위험에 노출돼 있다.
 
2014년 장성 효사랑 요양병원 화재사고를 계기로 2015년부터 요양병원에 스프링클러 설치가 의무화됐으며 오는 6월까지 3년간 유예기간을 뒀다. 병원 바닥면적 합계가 600㎡ 이상이면 스프링클러를, 600㎡ 미만이면 간이스프링클러를 설치해야 한다. 아직도 의무 설치 대상인 요양병원 1532개소 중 990개소(64.6%)에만 스프링클러가 설치된 상태다. 즉 요양병원 10곳 중 3곳은 화재시 초기 진압에 효과적인 스프링클러가 아직도 없는 셈이다.
 
요양병원들은 저질·과소진료, 소방시설 미비 등 총체적인 난국을 해결하려면 수가 인상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손덕현 대한요양병원협회 회장은 “현행 의료법과 저수가 체계에선 정직하게 진료하는 요양병원은 재정이 악화되고, 반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환자를 방치하는 요양병원은 오히려 수익이 높아지는 폐단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너무 낮은 수가 탓에 특별한 치료가 필요 없는 환자만 선택적으로 입원시키는 ‘환자 고르기’도 횡행하고 있는 실정이라 현실성을 반영한 수가체계 개편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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