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균력 강한 ‘정로환’ 감염성 설사에 효과적 … ‘스멕타’는 장내 유해물질 흡착·배설로 증상 완화
선선한 가을바람이 옷깃을 스치고 무더위에 잠시 잃었던 입맛이 도니 산해진미를 탐하기 좋은 계절이다. 그러나 음식 상할 걱정 없다고 방심하고 이것저것 먹다 설사 증상이 나타나면 수시로 화장실만 들락날락하는 신세가 될 수도 있다. 여행지에서 낯선 음식을 먹고 난 뒤 갑자기 설사가 찾아와 당황스러울 때도 있다. 배가 살살 아프고 화장실을 몇 번 다녀오고 나면 이 불청객을 쫓기 위해 지사제를 찾게 된다.
설사는 일반적으로 배변 횟수와 변에 포함된 수분의 양이 비정상적으로 증가된 것으로 발열, 복부 경련, 구토를 동반하기도 한다. 증상의 지속기간에 따라 급격히 발생하여 단기간에 치유되는 급성설사와 장기에 걸쳐 설사가 계속되는 만성설사로 나뉜다.
만성설사는 1개월 이상 지속되는 설사를 말한다. 대부분 비감염성이며 약물에 의하거나 소화장애, 장질환 등 다양한 원인이 있을 수 있다. 흔히 알려져 있는 질환으로는 유당불내증, 과민성장증후군 등이 있다.
급성설사는 2주 미만의 설사로 정의되며 90% 이상이 세균이나 바이러스 감염이 원인이라 감염성 설사라고 부르기도 한다. ‘장염에 걸렸다’고 하는 경우 대부분 여기에 해당된다.
급성설사의 대부분은 세균, 바이러스 등에 의한 감염성 설사이고, 설사로 인해 전해질과 수분의 손실이 발생하므로 적절한 수분과 전해질 보충이 중요하다. 보리차나 이온음료와 같은 전해질 보충제를 마시면 도움이 된다. 또 설사 증상을 악화할 수 있는 자극성 강한 음식이나 조리하지 않은 날 음식, 카페인 함유 음료 등은 먹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자연적으로 치유되지 않는다면 설사를 멈추는 지사제를 복용하면 도움이 된다. 약물의 작용에 따라 장운동 억제제, 살균제, 수렴제, 흡착제, 정장제 등이 있다. 약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지사제의 종류와 특징을 알아본다.
장내 유해물 흡착하는 디옥타헤드랄 스멕타이트
급성설사 증상이 나타났을 때 가정에서 많이 찾는 지사제 중 하나인 ‘스멕타’ 는 디옥타헤드랄 스멕타이트(Dioctahedral smectite)가 들어 있는 현탁제다. 마그네슘과 알루미늄이 다량 포함돼 있는 이 약은 수분을 잘 흡수하는 분자구조로 장내 독소, 세균, 소화효소 등을 흡착해 배설하는 것은 물론 손상된 점막을 일부 채워주기도 한다.
스멕타이트는 장내 유해물과 함께 다른 약물까지도 흡착하기 때문에 해당 약물의 흡수를 방해할 수 있다. 다른 약제와 함께 복용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고 꼭 먹어야 한다면 일정 시간 간격을 두고 복용하도록 한다. 약을 먹고 난 뒤 증상 개선이 없거나 복부팽만감, 변비 등이 나타날 경우 바로 복용을 중단한다.
대웅제약의 ‘스멕타현탁액’이 가장 대표적이다. 이밖에 △디스벡현탁액(동구바이오제약) △슈멕톤현탁액(일양약품, 수출명 DOSMECTINE) △포타겔현탁액(대원제약) △다이톱현탁액(삼아제약) △덱스트라현탁액(영일제약, 수출용) △디옥타현탁액(대웅바이오) △유니멕타산(유니메드제약) 등이 있다.
이 약물은 비교적 안전해 심하지 않은 설사나 소아의 설사 증상에 많이 사용됐다. 그러나 지난 6월부터 24개월 미만 소아, 임부 및 수유부는 단일 제제로는 이 성분의 의약품을 복용할 수 없게 됐다. 지난 5월 21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디옥타헤드랄스멕타이트 함유 제제에 납이 혼입될 가능성을 우려, 프랑스국립의약품건강제품안전청(ANSM) 안전성 정보에 반영함에 따라 지난 6월 5일자로 허가사항 변경지시를 내렸기 때문이다.
장내 유해균 억제해 감염성 설사 완화하는 크레오소트
설사 증상에 사용되는 대표적인 생약제제인 동성제약의 ‘정로환’(성분명 크레소오트·진피·황련가루·향부자가루·감초가루)은 ‘크레오소트(creosote)’가 주요성분이다. 1972년 출시된 이래, 지난 50여년 동안 동성제약을 대표하는 스테디셀러 제품이며 환제와 당의정 형태로 판매되고 있다.
정로환은 1904~1905년 러일전쟁 무렵에 일본 정부가 개발한 생약 성분의 지사제로 이름은 ‘러시아를 정복하는 약’(征露丸)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일본 정부는 중국 관둥주(關東州)에 파병한 젊고 건강한 병사들이 그 지역 수질이 나빠 배앓이·설사로 죽어가자 지사제를 공모했다. 다이코(大幸)신약이 개발한 약이 효과가 가장 좋아 채택됐다.
국내에선 동성제약 창업주인 고(故) 이선규 회장이 1972년에 처음 도입했다. 그는 정로환의 제조법을 유일하게 알고 있는 다이코신약 전임 공장장에게 기술을 전수받았다. 정로환의 한자 이름으로 왜색이 짙은 ‘징벌할 정’(征) 대신 ‘바를 정’(正)자로 변경해 ‘正露丸’를 쓰고 있다. 이 약은 만8세 이상부터 복용할 수 있다. 1일 3회 식후 복용한다.
정로환의 주성분인 크레오소트는 페놀(phenol)·구아이콜(guaiacol)·크레졸(cresol) 등 페놀계 화합물이 혼합된 형태로 목재를 건류해 얻는다. 옛날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천연 살균제·살충제·제초제로 쓰여 왔다. 국소마취 효과도 있어 복통에도 사용된다. 살균효과로 장내 유해균을 억제해 감염성설사를 완화시켜 준다. 이밖에 정로환에는 위장관 염증을 완화하고 소화를 도우며 복통을 가라앉히는 황련, 진피, 감초, 향부자가 들어 있다.
정로환은 감염성설사에 사용하기 때문에 복통, 설사, 후중감, 니상변(泥狀便)이 있는 경우 복용한다. 일반적으로 찬 음식을 먹고 설사한다든지, 위장관운동 저하로 설사하는 경우, 만성설사 등은 정로환으로 효과를 보지 못할 수 있어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정로환 당의정은 복용편의성을 위해 냄새를 제거했다. 크레오소트 양을 줄이고 위장관 염증을 완화시켜주는 황백, 현초를 넣어 염증성 복통과 설사에 사용한다. 하지만 가스제거나 소화촉진에 효과가 있는 생약을 제외했기 때문에 소화불량에는 사용하기 어렵다.
동성제약은 지난 6월 ‘동성 정로환 에프정’을 출시했다. 신제품은 세균성 설사 환자수가 감소하는 시장상황을 반영해 크레오소트 대신 ‘구아야콜’을 주원료로 선정했다. 냄새는 줄이고 기존 제품의 정장 효과는 그대로 살렸다는 게 회사의 설명이다.
2011년 정로환의 크레오소트 성분은 안전성 문제로 논란에 휩싸였다. 크레오소트가 함유한 크레졸 성분은 미국 환경보건청(EPA)에서 지정한 발암의심물질로 섭취 시 격심한 자극과 위장관계 울혈(혈액이 뭉치는 상태)을 유발할 수 있다.
이에 식약처는 인체에 유해한 수준보다 효능이 더 뛰어나다는 이유로 문제 삼지 않았다. 당시 많은 의학 전문가들은 전문의약품도 아닌 일반의약품이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발암의심물질을 함유토록 허용한 것은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으나 논란은 유야무야 끝나고 말았다.
장 운동을 억제하는 로페라미드
로페라미드 성분이 들어 있는 캡슐약은 장 운동을 억제해 급성·만성 설사 증상을 완화하는데 도움을 준다. 장의 연동 운동을 감소시켜 음식물이 지나가는 시간을 늘리면 대변의 점성과 농도가 진해지고, 수분은 감소하면서 설사가 멎게 된다.
그러나 고열이나 혈변이 있는 세균성 설사 환자나 항생제 사용으로 인한 위막성 대장염이나 장폐색증 환자는 장 운동이 감소돼 병원성 물질의 잔류로 인한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이 약을 복용해서는 안 된다.
이 약을 복용한 뒤 급성 설사라면 2일 이내, 만성 설사일 때는 10일 이내 증상이 개선되지 않으면 복용을 중단하고 의사나 약사와 상담해야 한다.
영일제약의 ‘로프민캡슐’, 대우제약의 ‘로파미드캡슐’, 한미약품의 ‘로페리드캡슐’ 등이 있다.
생후 1개월 유아부터 투여 가능한 니푸록사자이드
여행지에서 물갈이 또는 오염된 음식물로 나타나는 감염성 설사는 항균성 지사제가 효과적이다. 이런 급성 설사 치료제로 부광약품의 ‘에세푸릴’이 많이 사용된다. 주성분인 니푸록사자이드(nifuroxazide)는 프랑스 사노피신데라보가 개발했으며 수십년간 지사제로 사용되면서 안전성과 약효가 검증됐다.
그람 양성균 및 그람 음성균에 광범위한 항균작용을 나타내는 니푸록사자이드는 세균성 설사에 사용된다. 체내에 흡수되지 않으며 인체의 유익한 장내 세균총에는 살균효과를 나타내지 않고 설사의 원인균에만 살균효과를 나타내는 기전을 가지고 있다. 또 약물이 장관벽으로 흡수되지 않고 전신순환을 하지 않아 부작용 우려 및 변비 유발 가능성이 적으며 생후 1개월 이상 유아부터 투여할 수 있다.
다른 약제들과 상호작용이 적은 편이며 전신에 미치는 이상반응이 적어 소아에게도 많이 처방되는 약제 중 하나다. 성인용 캡슐과 어린이용 현탁액이 있다. 현재 부광약품의 ‘에세푸릴캡슐’과 ‘에세푸릴현탁액’이 시판 중이다.
마시는 지사제 시럽제제
시럽제는 유·소아용으로만 생각하기 쉽지만 증세에 맞춰 사용하면 성인에게도 좋은 효과를 나타낸다. 대표적으로 녹십자의 ‘백초시럽플러스’(성분명 감초엑스, 아선약20%에탄올추출액, 육계70%에탄올틴크, 인삼유동엑스, 황련·황백50%에탄올추출액, 황금연조엑스, 용담에탄올추출액)와 일동제약의 ‘후라베린큐시럽’(성분명 카올린, 베르베린탄닌산염, 펙틴)이 있다.
백초시럽플러스는 순수생약 성분의 소화정장제다. 감초, 황련, 황백, 황금, 아선약, 용담, 인삼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 성분은 복통과 위장관내 염증을 완화시키고, 위장관내 자극을 줄이며, 손상된 위장점막의 회복을 도와준다. 담즙배설을 촉진하고 위장관기능을 강화시켜주는 효과도 있다.
주로 기름진 음식 등을 과식한 후 가스가 차고 배가 아픈 경우, 스트레스성 복통, 명치 밑이 가득 찬 것 같고 속이 메스꺼운 증상에 사용하면 매우 효과가 좋다. 2018년 7월에는 짜먹는 스틱형 파우치 형태의 신제품을 출시했다.
후라베린큐시럽은 살균·수렴작용이 있는 베르베린탄닌산염과 장내독물 흡착작용이 있는 카올린, 펙틴이 배합됨으로써 배탈, 설사는 물론 소화불량성 설사에 이르기까지 정장·지사작용을 나타낸다.
식약처는 지난 7월 5일자로 카올린 함유 복합제 허가사항을 변경했다. 카올린 함유 복합제의 경우 사용상 주의사항 중 “어린이에게 복용시킬 경우 보호자 지도 감독하에 복용해야 한다”는 문구를 삭제하고 ‘소아’를 복용 금지 대상으로 규정했다. 이에 따라 ‘후라베린큐시럽’ 품목은 성인만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이유는 프랑스에서 납 혼입 가능성에 따른 우려로 안전성 조치를 내려서다.
장내 감염 예방·치료하는 리팍시민
대부분의 급성설사는 특별한 치료 없이도 저절로 회복이 되기도 하지만 항생제를 이용하면 설사의 빈도와 지속기간을 줄일 수 있다.
리팍시민(rifaximin)은 장내 감염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항생제다. 화학 구조상 리파마이신(rifamycin)계 항생제로 분류되지만, 다른 리파마이신계 항생제와 달리 경구 복용 시 위장관에서 체내로 흡수되는 양이 1% 미만으로 매우 적어 혈액을 통한 전신작용보다 장벽의 균에 주로 작용한다.
급성 장내감염에 의한 설사증후군, 여름철 설사, 여행자설사 등 장내세균총 이상으로 인한 설사를 치료하기 위해 사용된다. 위장관 수술 전후 감염 예방에도 쓰인다. 단기간 고용량 사용 시 과민성장증후군 증상이 개선되고 치료 후에도 효과가 지속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국내에서는 삼오제약의 ‘노르믹스정’만 시판되고 있다. 12세 이상의 청소년과 성인에게 7일 이내 사용이 권장되며 임부는 가급적 복용하지 않도록 한다. 발열 또는 혈변을 동반한 설사, 대장균 이외의 병원균으로 인한 설사에는 사용하지 않는다.
비교적 안전하다는 평판을 가진 노르믹스는 지난해 전국 병의원의 폭발적 처방에 힘입어 약 103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업계에서 ‘소문나지 않은 히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소아용 급성 설사 멈추는 라세카도트릴
2015년 출시된 한국애보트 ‘하이드라섹산30mg’(성분명 라세카도트릴, Racecadotril)은 새로운 기전의 소아용 지사제다. 하이드라섹산은 순수한 분비억제 지사제로 신체의 기초적 분비 기능에는 영향을 주지 않고 소장의 과도한 수분과 전해질 분비만 선택적으로 줄여줘 신속히 증상을 완화한다.
어떤 원인에 의해 장내 분비 작용이 과도하게 일어나면 물기가 많은 설사를 하게 된다. 하이드라섹산의 라세카도트릴 성분은 이런 장내 분비를 억제해 설사를 멎게 한다. 위장분비액을 줄여주는 장내 엔케팔린(Enkephalin)이라는 내인성 물질을 활성화한다. 일부 지사제는 위장관 운동 자체를 저해하면서 설사를 멈추게 하기 때문에 간혹 변비라는 부작용이 발생하지만 하이드라섹산은 이런 변비 부작용이 덜하다는 게 장점이다.
이 약은 30분이면 약효가 나타나고 유지시간도 8시간 정도로 긴 편이다. 국내에선 3개월 이상~12세 미만 소아에게 사용되며 전문의약품으로 처방을 받아야 한다. 비급여 의약품이라 비싸지만 효과가 좋은 편이어서 의사나 보호자가 선호한다. 그러나 효과가 별로 없었다고 불평을 제기하는 보호자도 상당수다.
프로바이오틱스
증상이 심한 설사의 경우 제한적으로 항생제를 처방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모순되게도 항생제 복용이 장내세균총에 영향을 줘 설사를 유발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부작용을 피하기 위해 항생제 치료로 발생하는 설사 증상 예방에 프로바이오틱스를 함께 사용하기도 한다. 프로바이오틱스가 장내 항생제 이상반응을 감소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일명 정장제라 불리는 이들 성분은 주로 바실루스(Bacillus) 균주와 클로스트리듐(Clostridium) 균주가 사용된다. 개인의 장 상태에 따라 락토바실루스(Lactobacillus) 속의 균주가 사용되기도 한다. 주로 감기 증상을 동반한 설사에는 정장제를 우선 권하기도 한다.
실제로 장건강이나 변비 해소를 목적으로 평소에 프로바이오틱스를 꾸준히 복용하는 경우도 많다. 유산균은 장에 서식하면서 정장작용 등 여러 생리기능을 발휘하며 유해균의 생육을 억제하고 질병을 예방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프로바이오틱스 복용이 장건강과 직결된다는 일반적인 믿음과 달리 이를 입증할 의학적 근거는 희박하며 안전성 또한 확실하지 않다.
미국 하버드대 의대의 피터 코헨(Pieter Cohen) 박사는 2018년 미국의학협회 내과지(JAMA)에서 프로바이오틱스가 효능이나 안전성에 대한 검증 없이 판매되고 있는 것에 우려를 표했다.
코헨 박사는 프로바이오틱스의 입증된 건강상 이점으로 사카로미세스 보울라디(Saccharomyces boulardii) 유산균이 어린이 설사를 치료하고 성인의 클로스트리듐 디피실균(Clostridium difficile, 인체의 장에서 상존하면서 장염을 일으키는 균) 감염 재발률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부분을 지적했다. 그는 “프로바이오틱스가 건강을 지켜준다는 것을 증명한 장기적인 임상연구 결과는 없다”고 밝혔다.
지사제는 설사의 원인 치료보다는 일반적으로 증상을 개선시키는 대증요법제가 대부분이다. 일반 지사제 복용으로 증상이 호전되지 않는다면 의료기관을 방문해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