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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사회
비양심 의료인 손해배상금 ‘먹튀’에 우는 의료사고 피해자들
  • 박정환 기자
  • 등록 2019-09-06 08:51:32
  • 수정 2020-09-17 17: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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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상금 대불제도 회수율 8.1% 불과 … 보험·공제조합 의무화, 의료계 반대로 지지부진
국내에서도 미국이나 일본처럼 의료기관의 손해배상 책임보험 가입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의료계는 기존 손해배상 대불제도와 중복된다는 이유로 강력 반대하고 있다.
과거 의료사고로 인한 의료분쟁은 의사와 의료기관의 승소율이 월등히 높았지만 최근 ‘신해철 사망 사건’, ‘무자격자 대리수술’, ‘신생아 사망사건’ 등으로 여론이 악화되면서 패소하는 사례가 점차 늘고 있다.
 
하지만 의료소송에서 승소하거나,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조정을 통해 의료사고 피해 사실을 인정받더라도 과실을 일으킨 의료기관이 폐업해버리면 손해배상금을 받을 길이 없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재원이 우선 환자에게 배상금을 지불하고 차후 책임 의료기관이나 의료인으로부터 배상금을 구상하는 손해배상금 대불제도가 도입됐지만 일부 비양심적인 의료기관들의 체납으로 회수율이 10%에도 못 미쳐 재정이 고갈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정부와 정치권은 배상금 회수율을 높이기 위해 체납한 의료기관에 불이익을 주고 의료사고 대비 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는 등의 법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의료계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지지부진한 실정이다.
 
2018년 한국보험연구원이 발표한 ‘국내 의료기관의 손해배상책임 의무보험 도입 필요성’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의료사고 및 의료분쟁과 관련한 문의나 상담 건수는 연 평균 11.1% 증가했으며 의료분쟁의 조정·중재 건수도 14.3% 늘었다. 의료분쟁으로 인한 합의 및 조정·중재 결과 배상금액도 매년 35.6% 올랐으며 건당 평균 금액도 12.2% 증가했다.
 
의료사고 발생시 환자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병원과 협의,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중재, 법원을 통한 소송 등 세 가지다. 보통 의료기관은 과실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의료사고 피해 발생시 바로 중재나 소송을 고려하게 된다. 다만 법원 소송은 변호사 선임 등에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고, 최종 판결까지 길게는 4~5년이 소요되는 데다, 환자의 승소율이 턱없이 낮아 대부분 먼저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중재 절차를 거치게 된다.
 
중재 또는 소송 결과 의료기관의 과실로 판별되면 해당 의료기관은 피해자에게 손해배상금을 지불해야 한다. 하지만 손해배상금이 확정됐음에도 배상 의무자로부터 배상금을 지급받지 못하는 경우가 적잖았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게 손해배상금 대불제도다.
 
2012년 4월 도입된 이 제도는 환자가 의료기관이 미지급한 손해배상금 대불을 청구하면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 우선 지급하고 추후 의료기관으로부터 배상금을 상환한다.
 
중재원 측은 제도 도입 당시 대불금 지급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의료분쟁조정법 47조 2항에 따라 병원 종별로△상급종합병원 약 633만6700원 △종합병원 106만9260원 △병원 11만1030원 △의원 3만9650원 △치과병원 11만1030원 △치과의원 3만9650원 △한방병원 7만4020원 △한방의원 2만6430원 △요양병원 7만2170원 △보건의료원 11만1030원 △약국·조산원·보건소·보건지소·보건진료소 1만원을 걷어들였다.
 
당시 의료계는 보건당국이 손해배상 대불금을 이유로 재정을 반강제적으로 걷어간다며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의사단체는 ‘사유재산권 침해’라며 의료분쟁조정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의료분쟁조정원이 대불금 재원 마련을 위한 수금 한도를 두고 의료사고 발생 위험과 병원 종별로 액수를 차등 부담케 한 것은 재산권 침해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진통 끝에 모인 재원은 의료사고 보상금으로 활용됐지만 2015년 1회용 주사기 재사용으로 발생한 다나의원 집단 C형간염 감염 사태로 손해배상금 지급이 급속도로 늘면서 재원이 고갈되기 시작했다.
 
문제는 가뜩이나 재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중재원이 대납한 배상금을 의료기관으로부터 회수한 비율이 10%도 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국회 보건복지위 최도자 바른미래당 의원이 의료분쟁조정중재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3~2018년 5년간 총 74건, 26억4300만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했지만 회수율은 8.1%(2억1300만원)에 불과했다.
 
배상금이 제대로 회수되지 않는 상황에서 남은 재원까지 모두 고갈되면 의료사고 피해자와 가족이 배상금을 받는 과정이 지체돼 더 큰 심리적·신체적·경제적 부담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배상금 재원이 바닥을 드러내자 중재원은 지난해 손해배상금 대불에 필요한 비용을 의료기관들로부터 추가 징수하기도 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앞으로 추가 징수가 몇 번 더 반복될 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대불금 제도를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배상금 회수율이 낮은 것은 상환 의무를 지닌 의료기관이 고의로 ‘먹튀(먹고 튀다의 준말)’하거나, 경영상황 악화로 폐업할 경우 배상금 상환을 강제할 방법이 딱히 없기 때문이다. 의료분쟁조정중재원 관계자는 “손해배상 대불제도는 손해배상의무자를 위해 국가가 대신 채무를 부담해주는 제도가 아니다”며 “대불금 회수율을 높이기 위해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처럼 대불 청구 전후에 손해배상 의무자의 재산 현황을 파악하고, 대불금 회수를 국세 체납 처분의 예에 따라 징수하는 등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대불금 회수율을 높이기 위한 정책 발의에 나섰다. 지난 5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의료사고피해구제 및 의료분쟁조정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은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손해배상금 대불금 구상에 따르지 않고 폐업한 병·의원 개설자 또는 보건의료인은 대불금을 완납하지 않을 경우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윤 의원은 “보건의료기관 개설자나 보건의료인이 조정중재원의 대불금 구상을 거부하고 의료기관을 일부러 폐업한 후 다시 개설하는 등 비도덕적인 일이 반복되고, 손해배상금이 큰 의료분쟁의 경우 대불금 지급액이 많아져 대불금 재원의 재정 악화뿐만 아니라 다른 의료사고로 인한 대불제도 이용자와의 형평성에 문제가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이혜훈 바른미래당 의원과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올 상반기 모든 의료기관이 의료배상책임보험이나 의료배상공제에 의무적으로 가입하게 하는 내용의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미국, 일본, 유럽 주요국은 의료배상책임보험 가입을 법으로 의무화하고 이에 대한 의료윤리, 실무지침 등을 규정하고 있다. 미국 의료배상책임보험은 병원 규모별로 보상한도액이 다른데 소형병원은 10억~50억원, 중형병원은 50억~100억원, 대형병원은 200억~5000억원 등이다.
 
국내의 경우 전문직종에선 의료 분야만 배상책임보험 도입이 의무화되지 않은 상태다. 변호사, 공인세무사, 회계사, 감정평가사, 계리·손해사정업자, 보험중개업자 등 전문직 종사자는 의무적으로 배상책임 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법조계 관계자는 “의료배상책임보험 의무가입이 제도화되면 의료사고 발생률을 낮추진 못하더라도 의료분쟁을 예방하고 안정적인 의료환경을 조성하는 데 도움될 것”이라며 “책임보험 의무가입 대상자, 보상 범위, 진료과목별·의료기관 종별 차등적용 여부 등 세부적인 사항을 의사단체와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의료계는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배상책임보험 의무가입을 반대하고 있다. 한 중소병원 관계자는 “병원에서 의료사고는 100% 막을 수 없는 현실인데 무조건 의료계에만 책임과 처벌에 대한 부담감만 지우려 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책임보험 가입과 손해배상금 대불제도가 중복된다는 의견도 나왔다.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대불금 재원을 의료기관이 부담하는 상황에서 책임보험 강제가입은 의료기관에 과중한 책임을 부여하는 것”이라며 “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려면 대불제도 폐지, 불가항력적 의료사고 100% 국가재정 부담 등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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