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원인 모를 어지럼증을 유발할 수 있는 자가면역 기전을 규명했다. 김지수 분당서울대병원 어지럼증센터 신경과 교수팀은 감염 이후 자가면역 기전에 의해 전정신경, 소뇌, 뇌간에 이상이 생기면 급성 어지럼증이 나타날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5일 발표했다.
어지럼증은 환자들이 응급실을 찾는 원인 중 2위를 차지한다. 전체 인구의 절반이 적어도 한 번은 경험할 정도로 흔하다. 갑작스럽게 나타나는 급성 어지럼증은 말초 혹은 중추 전정신경계 기능이상으로 발생한다. 말초성 원인으로는 전정신경염, 중추성 원인으로는 뇌간 및 소뇌 부위의 뇌졸중이 꼽힌다.
어지럼증을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만성화되거나 심각한 질환으로 악화될 수 있어 조기진단과 치료가 중요하지만 자기공명영상(MRI)을 포함한 반복적인 검사에도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아 치료에 어려움을 겪는 환자가 적잖다.
김지수 교수팀은 원인 미상의 어지럼증이 발병하는 기전을 찾아내기 위해 어지럼증, 의식 및 근력 저하, 이상감각, 복시 등 급성 신경학적 이상을 보였지만 MRI에서는 특이사항이 발견되지 않은 환자 369명을 대상으로 강글리오사이드항체(anti-GQ1b) 검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113명이 강글리오사이드 항체에 양성 반응을 보였다. 항체를 가진 113명 중 10%에 해당하는 11명은 다른 증상 없이 주로 급성 어지럼증이 나타났다. 이는 외안근 마비, 근력 저하, 감각이상 등이 동반되는 밀러피셔증후군(Miller-Fisher Syndrome)이나 길랑바레증후군(Guillain-Barre syndrome, GBS)과는 구별되는 것이다.
강글리오사이드는 포유류의 신경세포막에 분포하는 인지질로 사이토카인과 호르몬의 수용체 역할을 한다. 세포 간 상호작용 및 분화, 성장 조절에 관여한다. 선행 연구에 따르면 일부 감염질환 환자는 자가면역 기전에 의해 강글리오사이드에 대한 항체가 발생하고, 이 항체가 신경손상을 유발해 근력약화·감각이상·복시 등이 동반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에 연구팀이 새로 규명한 사실은 강글리오사이드 항체의 일종인 ‘anti-GQ1b’ 항체가 외안근 운동을 담당하는 뇌신경, 사지운동 및 감각을 담당하는 체성신경계, 어지럼증을 조절하는 전정신경·소뇌·뇌간 등을 선택적으로 공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강글리오사이드 항체로 인한 어지럼증은 눈떨림을 정밀하게 관찰하는 비디오안진검사와 항체검사로 진단한다. 자발안진, 두진후안진, 두부충동검사 이상 등 다양한 눈운동 이상이 발견되는 게 특징이다. 보통 2~3주간 경과를 관찰하지만 증상이 심하면 스테로이드 주사나 면역글로불린 주사를 처방한다.
김지수 교수는 “이번 연구는 일부 원인 불명 급성 어지럼증의 발병기전을 규명함으로써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할 수 있는 단초를 제시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임상신경학 분야 최고 권위 학술지인 ‘신경학(Neurology, IF: 8.689)’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