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인이 두 개 이상의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없다고 규정한 ‘1인1개소법’이 합헌이라는 판결이 나오면서 의료시장의 지각변동이 예고되고 있다. 1인1개소법 합헌을 주장해 온 대한치과의사협회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강력한 후속 조치를 예고한 가운데 네트워크병원들이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8월 30일 오후 2시 대심판정에서 의사 한 명이 둘 이상의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하는 것을 금지하는 ‘의료법 제33조 제8항’과 이에 대한 처벌조항인 ‘제87조 제1항 제2호’에 대한 위헌법률심판과 헌법소원심판 청구를 기각했다. 헌재는 선고문에서 “이 법률은 명확성의 원칙, 과잉규제 금지의 원칙, 평등의 원칙 등을 종합했을 때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의료계에선 1인1개소법 ‘합헌’으로 무게추가 기울었다가 지난 6월 진행된 요양급여비용 환수처분 취소소송에서 ‘의료법상 1인1개소법을 위반했더라도 정상적으로 진료한 급여비까지 환수할 수는 없다’는 판결이 나오자 조심스럽게 ‘위헌’ 판결이 나올까 우려하는 분위기가 돌았다. 당시 1심 판결로 유디치과는 건보공단이 환수한 진료비 28억원을 돌려받았다.
하지만 결국 합헌 판결이 나오자 유디치과를 비롯한 네트워크병원들은 “선진화된 의료기관의 출현 가능성이 가로막혀 국민들이 더 나은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차단됐다”며 유감을 표했다.
유디치과 관계자는 “현행 1인1개소법은 2012년 대한치과의사협회의 ‘불법 쪼개기 후원금’ 방식의 입법 로비를 통해 개정됐다는 의혹이 있었고 이와 관련해 치협 고위 임원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처벌받기도 했다”며 “단 한번의 공청회 없이 졸속 개정돼 의료계뿐만 아니라 법조계에서도 명확성의 원칙, 과잉금지의 원칙, 직업수행의 자유, 평등의 원칙 등 헌법적 가치가 침해될 여지가 있다는 지적이 오랜 기간 제기되던 상황에서 합헌 판결이 나와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이미 병원시스템을 정비하고 의료시장에서 확고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어 차후 병원 운영에는 별다른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합헌 판결로 탄력을 받은 대한치과의사협회는 네트워크병원을 향한 전방위적 공세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치협 관계자는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네트워크병원에 대한 실효성 있는 처벌을 강화하기 위해 의료법 및 건강보험법 관련 보완입법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난 6월 요양급여 환수조치 취소소송에서 패소해 체면을 구겼던 건보공단도 네트워크병원을 향한 칼을 갈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미 판결이 난 유디치과 건은 제외하더라도 그 외의 기존 또는 향후 일어나는 네트워크병원의 진료비 청구에 대해서는 건보공단이 빠른 시일 내에 진료비 환수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2011년 12월 양승조 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의료인의 복수 의료기관 개설·운영을 금지한 의료법 개정안’, 이른바 1인1개소법은 ‘의료인은 다른 의료인의 명의로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할 수 없고, 어떠한 명목으로도 두 개 이상의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할 수 없도록 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 치아임플란트시술 비용을 30~50% 낮춰 시장점유율을 높인 네트워크치과병원인 유디치과와 이에 위기를 느낀 일반치과들의 대립에서 나왔다는 의미로 ‘반유디치과법’으로도 불린다.
이 법률을 위반한 의료기관 및 의료인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또 의사면허정지 3개월 처분도 가능하다. 이밖에 이 조항을 위반한 자가 보험급여 비용을 청구하면 청구액의 5배에 달하는 과징금을 부과하거나, 업무정지 처분을 받을 수 있다.
2014년엔 네트워크병원이었던 튼튼병원이 1인1개소법 첫 위반 사례로 적발돼 230억원의 급여비를 환수 조치당했다. 이후 튼튼병원 네트워크는 해체 수순을 밟았으며, 현재 공동 대표원장이었던 안모 씨가 참튼튼병원(청담·미사·구로·장안동·구리·의정부·대구·노원 지점)을 운영하며 재기를 노리고 있다.
2015년엔 네트워크병원 중 하나였던 맨남성의원이 헌재에 위헌법률심판제청과 헌법소원을 제기하면서 지루한 법적 공방이 시작됐다. 지난 8월 30일 헌재 판결이 이같은 맨남성의원의 법적 소송에 대한 답이었다. 유디치과는 이 과정에서 참고인으로 적극 맨남성의원의 입장을 옹호했으나 수포로 돌아갔다.
네트워크병원은 다른 지역에서 같은 상호를 쓰면서 주요 진료기술·마케팅 등을 공유하는 의료기관이다. 대표원장이 본점과 지점의 지분을 모두 소유하고 경영에 깊숙이 관여하는 ‘오너형(경영주도형)’, 각각 다른 원장이 개별 병원을 운영하되 진료기술 및 마케팅 방식 등만 공유하는 ‘프랜차이즈형’, 여러 명의 의사가 다수 의료기관의 지분을 조금씩 갖고 같은 명칭으로 공동 마케팅을 하는 ‘조합형(지분투자형)’, 별도 병영경영지원회사(MSO)를 설립해 의료행위 외 전반적인 서비스를 일임하는 ‘주식회사형’ 등으로 구분된다.
지금까지 네트워크병원에 대한 의료계의 시선은 냉담했다. 개인 병·의원 중심인 대한의사협회나 복지부 인증을 받은 대한전문병원협의회 등은 네트워크병원의 팽창을 법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개원의협의회 관계자는 “1인1개소법이 없으면 대기업 등 거대자본이 유입돼 무한증식하듯 네트워크병원을 개설해 의료시장을 잠식할 수 있다”며 “대형 네트워크병원과의 경쟁에서 밀린 1·2차 병·의원이 줄도산하면 진료비가 자연히 비싸질 것이고, 선의의 경쟁이 사라진 독점적 시장구조에서 의료의 질도 담보할 수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
네트워크병원이 의료비 절감과 의료산업 경쟁력 강화에 기여한다는 반론도 있다. 한 네트워크병원 관계자는 “일부 기득권층이 의료계의 변화 발전을 막았을 뿐 아니라 의료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국민들에게 더 나은 의료혜택을 주기 위해 노력하는 네트워크 병원을 범법자로 만들어 버렸다”고 주장했다. 이어 “네트워크병원은 가격담합으로 환자 부담을 가중시키는 게 아니라 공동구매를 통한 저렴한 재료 구매, 공동마케팅을 통한 효율적인 홍보와 합리적인 진료비 책정을 통해 환자 부담을 덜어준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이같은 장점을 무시한 채 사무장병원과 동일시해 1인1개소법에 묶이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경쟁의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면만을 부각시켜 네트워크치과병원의 활로를 조이고 있는 개원의 중심의 의협, 치협, 의사회 등과 보건당국은 진정 국민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고 있는지 자성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