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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중독=질병’ 100일, 찬반 대립 심화 … ‘게임세’ 도입 가능성은
  • 박정환 기자
  • 등록 2019-09-01 16:41:20
  • 수정 2020-09-22 09:5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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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조 규모 게임업계 거세게 반발 … 의료계 “소아청소년 중독 위험 심각”
일부 정치권과 시민단체는 게임사업자에게 연간 매출액의 1% 이하 범위에서 ‘게임중독치유부담금’을 부담케 하는 법안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5월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공식화한 지 100여일이 지났지만 의학계와 게임업계의 찬반 대립은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찬성 측에선 게임중독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른 상황에서 게임중독을 질환으로 인정해 관련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반대 측에선 유해성을 입증할 임상근거가 아직 불충분한 데다 국가 성장동력인 게임산업을 붕괴시킬 것이라며 맞서고 있다.
 
WHO는 지난 5월 25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72차 WHO총회 B위원회에서 게임이용장애(Gaming Disorder), 이른바 게임중독을 질병코드로 등재하는 내용을 담은 ‘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안(ICD-11)’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게임이용장애는 정신적·행동적·신경발달적 장애의 하위질병으로서 ‘6C51’ 코드가 부여됐다. 새 개정안은 2022년 1월 1일부터 효력이 발휘된다.
 
WHO는 게임중독을 ‘다른 생활보다 게임을 우선시해 일상에 지장이 생겨도 게임을 지속하거나, 이전보다 더 많은 시간을 게임에 할애하는 등 통제력을 잃은 상황이 1년 이상 지속되는 것’으로 정의했다. 증상이 심각하면 1년보다 짧은 기간에도 중독 진단을 내릴 수 있다.
 
다만 WHO의 개정안은 권고 사항일 뿐 강제성을 띠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WHO가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했더라도 무조건 따를 필요는 없으며, 보건당국이 국내 상황에 맞게 질병코드를 만들거나 정책에 적용하면 된다.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를 총괄하는 보건복지부는 WHO의 의견을 따라 게임중독에 질병코드를 부여한다는 입장이다. 단 KCD를 개정하려면 전문가 단체의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 이에 복지부는 게임업계, 의료계, 법조계 관계자들로 구성된 민관협의체를 구성하려 했지만 게임산업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가 강하게 반발하며 무산됐다. 결국 지난 6월 국무조정실이 주도하는 민관협의체가 출범했지만 게임업계의 반발로 의견 수렴에 난항을 겪고 있다.
 
의견 수렴을 거쳐 게임중독에 질병코드 부여가 결정되면 제9차 KCD 개정안이 고시될 2025년에 효력을 발휘할 것으로 예상된다. KCD는 5년 주기로 개정되는데, 현재 2020년 고시될 예정인 제8차 개정 작업이 진행되고 있어서다.
 
게임중독이 질병으로 규정되면 정부는 실태조사를 거친 뒤 국가 차원의 질병 예방관리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 국회에선 WHO 결정을 근거로 게임 규제 법안을 발의할 수 있다.
 
의료계는 게임중독에 질병코드를 부여한 WHO의 새 개정안을 적극 지지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대한신경정신의학회·대한예방의학회·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한국역학회 등 5개 단체는 지난 7월 성명서를 내고 “게임사용장애에 대한 질병코드 부여는 게임중독에 따른 정신적·신체적 문제에 대한 적절한 건강서비스 요구를 반영한 것”이라며 “게임업계는 흑백논리에 근거한 소모적 공방을 멈추라”고 촉구했다.
 
의학계가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보는 것은 실제로 임상 현장에서 인터넷·스마트폰·게임중독의 여파로 일상생활 장애를 호소하며 내원하는 환자가 많아서다.
 
과거 중독은 대부분 알코올이나 마약 등에 의한 ‘물질중독’을 의미했다. 하지만 요즘은 스마트폰 사용이나 게임 등 특정 행위에 중독되는 ‘행위중독’ 환자가 증가하는 추세다.
 
홍콩대 연구에 따르면 전세계 인터넷·게임중독 인구는 2014년 기준 4억2000만명으로 전체의 6%에 달했다. 국내에선 2016년 정부 조사결과 성인의 1% 정도가 게임중독 위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8년 한국콘텐츠진흥원 조사에서는 초등생 4학년 이상부터 고교생 3학년까지 청소년 중 1.8%가 게임중독 위험 상태인 것으로 드러났다.
 
의학계는 하루 5시간 이상 게임에 몰두하고, 게임을 하지 않으면 불안감과 초조함을 느끼는 증상이 나타나면 게임중독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게임중독 환자는 시간을 미뤄가며 게임에 몰두하게 되고, 게임할 땐 아무렇지 않다가 게임을 종료하면 이전에 없던 긴장감과 불안증세를 보이는 게 특징이다.
 
이해국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중독성장애(Addictive Disorder)가 질병으로 분류되려면 △중독 진단의 지속성과 안정성 △뇌 보상(쾌감)회로의 도파민 분비 자극과 이로 인한 회로기능 변화 △과도한 이용으로 인한 건강상 문제 등 3가지 조건이 필요하다”며 “게임이용장애는 최근 50개 이상의 장기추적연구와 1000편 이상의 뇌기능연구를 통해 3가지 요건을 충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게임 중 특정 레벨을 달성하거나, 고급 아이템을 획득할 경우 극도의 쾌감을 느끼면서 뇌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분비되고, 이 과정이 반복될수록 더 많은 도파민이 반복돼 행동조절능력이 상실될 수 있다”며 “뇌가 덜 발달된 소아청소년은 중독에 훨씬 취약하고, 특히 술이나 담배 같은 다른 중독이 동반되는 ‘복합중독’으로 악화될 가능성이 높아 관련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의학계는 또 과도한 게임이 뇌기능을 저하시켜 기억력장애나 학업부진을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노성원 한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적당한 게임은 두뇌개발에 도움될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보고되지만 장시간 과몰입하면 뇌에서 기억력을 담당하는 해마의 크기가 작아져 기억력이 떨어지고 판단력이 흐려진다”며 “폭력성이 강한 게임일수록 공격성, 폭력성, 충동조절에도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소아·청소년은 중독 증세 자체보다 중독으로 인해 학업이나 또래와의 관계 형성 등 중요한 성장 과정을 놓쳐 나타나는 폐해가 크다”며 “증상이 심각한 수준이라면 게임을 끊을 수 있도록 입원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노 교수는 또 “다만 재활치료나 치매치료 등에 게임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등 게임의 순기능도 분명 있는 만큼 ‘무조건 게임은 나쁜 것’이라는 인식을 심을 게 아니라 관련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어 게임의 부작용은 최소화하고 장점을 부각시킬 수 있는 상호 보완적인 제도적 장치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밝혔다.
 
게임업계는 13조원에 달하는 국내 게임산업 시장이 심각하게 위축될 것이라며 게임중독에 대한 질병코드 부여를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문체부, 한국게임산업협회,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최근 WHO에 게임중독의 질병 지정을 반대한다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한국게임학회와 한국게임산업협회 등 게임 관련 89개 단체는 공동대책위원회를 발족했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게임을 모든 문제의 원인으로 보는 과도한 규제가 업계 발전을 막을까 우려된다”며 “게임중독이 질병으로 분류되면 시장 규모는 연간 3조~4조원씩 감소하고, 고용 규모도 1만명가량 축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게임산업협회도 WHO 발표 후 “지난 40년 이상 전세계에서 20억명 이상이 게임을 즐겨왔고, 게임에 중독성이 있다는 연구 못잖게 중독성이 없다는 임상연구가 꾸준히 발표되고 있는 상황에서 게임중독을 질환으로 분류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국 존스홉킨대와 영국 옥스포드대의 정신건강 관련 연구자 36명도 ‘게임사용장애에 대한 명확하고 과학적인 근거가 부족하고’며 WHO를 비판했다.
 
일각에선 비만세 같은 ‘게임세’가 부과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로 일부 정치권과 시민단체는 게임 사업자에게 연간 매출액의 1% 이하 범위에서 소위 ‘게임중독세’로 불리는 ‘게임중독 치유부담금’을 부담케 하는 법안을 요구하고 있다. 담배나 술 등에 부과되는 ‘국민건강증진부담금’처럼 중독에 따른 치료비를 미리 걷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지금까지 게임중독에 대한 정확한 통계가 없어 실태 파악이 우선”이라며 “게임중독세 관련 논의는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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