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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터진 의료기기 리베이트 … 곪아터진 업계 대수술 필요
  • 손세준 기자
  • 등록 2019-07-26 19:28:34
  • 수정 2020-09-24 11: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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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리수술·금전제공·성폭력 등 비리 셀 수 없어 … 유통구조 투명화 선결 필요
지난해 5월 부산 영도구 한 정형외과에서 대리수술을 하기 위해 영업사원이 수술실로 들어가는 모습이 담긴 CCTV화면(부산지방경찰청 제공)
의료기기업체 불법 리베이트의 민낯이 내부고발로 또 다시 수면위로 올랐다. 지난해 5월 부산의 한 정형외과에서 의료기기업체 영업사원이 대리수술을 하다가 환자가 뇌사상태에 빠지는 사고가 발생해 물의를 일으켰다. 1년이 지난 지금 불법 대리수술이 얼마나 근절됐는지 파악되지도 않은 채 또 다른 리베이트 사건이 터졌다. 이번엔 대학병원 교수 개인 및 가족에게 금전적 향응을 제공하고 성폭력까지 은폐하려 한 것으로 밝혀져 공분을 사고 있다.
 
18일 경기 김포시 월곶면에 위치한 의료기기업체 태웅메디칼이 의사를 상대로 한 번에 수백만원씩 뭉칫돈이나 향응을 리베이트로 제공했다는 내부고발이 접수돼 경기 김포경찰서로부터 압수수색을 받았다. 이 업체는 비혈관용 스텐트 부문 국내 시장점유율 1위를 지키는 우량기업이다. 경찰은 이 업체가 대학병원에 의료기기를 납품하기 위해 대가성 리베이트를 제공했는지 확인하고 있다.
 
이 회사의 여성 국내 영업사원 A씨는 지난 5월 의료기기법 위반 혐의로 회사 대표 B씨를 고발했다. 고발 내용에 따르면 이 업체는 국내 유명 대학병원 교수 등에게 2016년부터 3년에 걸쳐 불법 리베이트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엔 대학병원 10여곳의 교수 20여명이 연루됐으며 구체적 일시와 리베이트 액수 등이 함께 제출된 것으로 확인됐다. 교수 개인뿐만 아니라 가족 골프여행에 소요되는 항공권, 숙박권, 식대 내역 등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A씨가 집중 관리한 교수 10여명의 실명이 거론된 점을 들어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해 추가 혐의점이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
 
지난 22일엔 A씨가 의사를 상대로 한 접대 자리에서 공공연한 성폭력도 이뤄졌다고 추가 폭로가 이뤄졌다. 언론 인터뷰에서 A씨는 “영업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실적 압박이 아닌 의사 접대”였다며 “유명 대학병원 교수와 가진 회식 자리에서 성추행이 수차례 반복됐다”고 주장했다.
 
A씨에 따르면 해당 교수는 ‘음료수 말고 난 네 입술이 먹고 싶은데’라고 이야기하며 팔과 어깨를 쓰다듬는 등 성추행을 자행했고 이같은 사실을 상사에게 보고했지만 ‘네가 알아서 해야지’라며 적극적 대응을 회피했다고 주장했다. 오히려 대수롭지 않다는 듯 A씨의 태도를 문제삼았다고 한다.
 
A씨는 회사에 이 문제를 제기했고 회사는 직원 2명에 대해 각각 감봉과 정직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부서를 옮기는 과정에서 징계를 받은 상급자 1명이 같은 부서로 발령나면서 A씨는 회사를 나왔고 내부고발을 하게 됐다. 그는 성폭력을 가한 의사에게도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
 
지난달 한국보건산업진흥원으로부터 2019년도 ‘혁신의료기기 해외시장 선(先)진출 지원사업’ 수행 기업 5곳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한 태웅메디칼 측은 “언론 취재에 응하지 않고 있다”며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다.
 
이런 사례 말고도 의료기기업체의 불법 리베이트 관행은 형태도 다양하다. 지난 2월 공정거래위원회에 불공정 행위로 적발된 다국적사 ‘스미스앤네퓨’ 한국법인은 자사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국내 네트워크 병원 7곳에 간호조무사 자격이 있는 영업직원을 보내 수술보조 인력으로 일하도록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회사는 2007년부터 7년 이상 이같은 방식으로 인력을 지원했고 의사들에겐 해외 연수비·강연료 등을 명목으로 과도한 금전적 지원을 했다. 해외 연수나 학회에 참석한 의사들에게 각 2375달러(약 260만원) 상당의 골프비를 지원하고 당사자 및 가족의 항공료·관광비 등을 부담하기도 했다. 이 회사는 시정명령과 함께 과장금 3억원을 부과받았다.
 
대리수술 관행은 다른 업체서도 계속 자행되고 있다. 모 의료기기업체 대표는 “대리수술 건이 잡힌 병원에선 진료가 끝난 뒤 저녁시간에 영업사원이 도착하면 수술을 몰아서 하는 경우가 있다”고 이야기했다. 여전히 대리수술이 의료기기업체들의 주요한 병·의원 영업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지난해 대리수술 논란이 불거지면서 수술실 내 CCTV를 설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와 지난해 10월엔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에 설치되며 경기도와 의사간 갈등이 부각됐다. 이는 한마디로 의사와 의료기기업체 모두 신뢰를 잃었음을 의미한다.
 
노골적으로 현금 페이백(Pay back)을 요구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100만원짜리 제품을 납품할 때 영수증은 1.5~2배 가량으로 발행한 뒤 세금을 제외한 차액을 현금으로 다시 돌려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이 관행은 불법 리베이트 범주 중 경미한 축에 든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이야기다.
 
지난 3월 신제은 보건복지부 사무관은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공정경쟁규약 세미나에서 “의료기기 업계의 자정능력이 부족한 데다 개선 의지가 없다”며 “의료기기 업계의 불투명한 유통구조가 핵심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의료기기 업계에서 불법 리베이트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로 의료기기 공급내역 보고 정책에 허점이 있어서라고 보고 있다. 제약업계의 경우 2008년부터 의약품 공급내역을 보고하기 시작해 각 공급단계마다 가격 정보를 의무적으로 공개하고 있다. 이에 비해 의료기기 업계는 의료기관에 공급하는 최종 단계에서만 가격을 공개하도록 해 이전 유통과정을 들여다보기 어려운 구조다. 정부는 오는 2020년 4월부터 의료기기에 공급내역 보고 정책을 단계적으로 강화, 시행할 계획이다. 신 사무관은 “유통 단계별 가격을 명확히 공개하지 않는다면 업계가 원하는 방향으로 일이 진행되지 않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민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의사와 효율적 의료행위를 돕는 의료기기업체 간에 ‘돈 놓고 돈 먹는 행태’는 윤리의식 부재와 품질저하로 이어져 고스란히 환자 피해로 전가될 가능성이 크다. 한 의료기기 영업사원은 “리베이트 경쟁이 가장 심한 제품은 환자에게 비싼 가격에 팔 수 있는 비급여 의료기기 제품이나 치료효과가 오리지널에 비해 떨어지는 복제 의료기기”라고 꼬집었다.
 
의료기기 업계가 혁신적 의료기기 상용화를 서두르기 위해 규제 완화를 줄곧 요청하고 있지만 다른 업계에 비해 타락한 영업관행을 개선하지 않는다면 그 타당성을 인정받기 어려운 입장에 처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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