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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된 정신질환 환자 많은데, 정신병원은 ‘줄폐업’
  • 박정환 기자
  • 등록 2019-07-17 09:32:32
  • 수정 2020-09-23 15: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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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년 3월 ‘국내 1호’ 청량리정신병원, 12월 서울시용인정신병원 문닫아 … 정부 ‘탈원화’ 속도조절 필요
지난해 3월 문을 닫은 국내 1호 정신병원인 청량리정신병원 전경
잇따른 조현병 환자의 강력범죄로 불안감이 가중되는 가운데 정신질환 관리의 중추를 맡아야 할 정신병원들이 경영난으로 하나둘 폐원해 대책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지난해 3월 ‘국내 1호’ 정신병원인 청량리정신병원이 경영 악화로 문을 닫았다. 이 병원은 1945년 8월 서울시 동대문구 청량리동에 ‘청량리뇌병원’으로 개원해 1980년 청량리정신병원으로 명칭을 바꿨다. 정신병원을 지칭하는 ‘언덕 위의 하얀 집’이라는 은어의 유래가 시작된 곳이다. ‘황소’로 유명한 화가 이중섭(1916~1956년), ‘귀천(歸天)’의 시인 천상병(1930~1993년)이 입원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한 때 500병상까지 운영하던 국내 최대 규모의 정신병원 중 하나였지만 낮은 의료수가, 인력난, 의료비 삭감 등 악재가 겹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사실 지역주민들에게 정신병원은 애물단지와 같았다. 청량리동에 30년 이상 거주해 온 김모 씨는 “정신병원이 없어지니 집값도 오르도 동네 분위기가 한결 밝아졌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정신병원은 대표적인 기피시설로 꼽힌다. 일반 병원은 교통이 편리해 접근성이 좋고 인구 밀집도가 높은 곳에 위치해 있지만 정신병원은 대부분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도시 외곽에 들어선다. 국내 대표적인 흉가로 유명한 ‘곤지암 정신병원’도 대중의 부정적인 인식에서 비롯됐다.
 
서울시만 하더라도 직영하는 서울특별시은평병원(서울 은평구 응암동)만 서울 내에 위치해 있으며, 위탁 운영하는 서울특별시고양정신병원(고양시)·서울특별시축령정신병원(남양주시)·서울특별시백암정신병원(용인시)는 모두 경기도 외곽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경영 사정도 썩 좋지 않다. 서울특별시은평병원의 경우 한 해 적자 규모만 100억원에 이른다. 특히 지난해 12월엔 서울시가 위탁 운영했던 서울특별시용인정신병원(용인시)이 문을 닫았다. 이 병원의 폐업은 몇 년 전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서울시립용인정신병원은 용인병원유지재단이 운영하고 있던 용인정신병원이 부지를 기증하고, 서울시가 건물을 지은 뒤 위탁하는 기부채납 방식으로 1987년 설립됐다. 서울시와 재단은 3년마다 위탁재계약을 갱신하는 방식으로 병원을 운영했다.
 
고 ‘인산’ 이정환 의학박사가 설립한 용인병원유지재단은 용인정신병원 외에도 경기도로부터 위탁받은 경기도립정신병원, 정신도립노인병원, 경기도정신건강센터 등을 운영해왔다.
하지만 이정환 박사, 그의 아들 이충순 씨, 현재 이사장인 손녀 이효진 씨(2009년 7월 취임)로 3대 세습이 이어지면서 경영 방침이 수익성 추구에만 집중됐고, 이로 인해 갖가지 문제가 불거졌다.
 
상황이 악화되자 2014년 서울시는 감사를 통해 △환자 급식재료 허위청구(구내식당 식자재 허위납품 등) △의약품 특정업체 수의계약 △법인카드의 불분명한 사용 △운영비로 비상근 임원에 대한 임금 지급 등 37개 부정사항을 지적했다.
 
재단 측은 이같은 감사결과를 놓고 서울시와 갈등을 빚다가 이듬해인 2015년 9월 서울시와의 위탁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이후 병원의 경영상 문제를 이유로 장기입원 환자 강제퇴원 종용, 직원 정리해고 등의 문제가 불거졌다.
 
결국 이견 조율에 실패한 용인병원유지재단은 서울시용인정신병원 운영에서 손을 뗐고, 서울시는 서울의료원에 병원 운영을 위탁했다. 하지만 28년간 다른 기관이 운영했던 경기도 외딴 곳에 위치한 정신병원을 서울에 위치한 공공병원이 제대로 운영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연간 적자 규모가 10억원에 이르자 재정적인 부담을 느낀 서울시는 결국 2018년 12월 서울시용인정신병원의 문을 닫았다.
 
김소윤 연세대 의료법윤리학 교수는 “민간의 전문성과 효율성을 살린다는 이유로 공공의료를 민간에 전담시키면 비정상적인 경영 행태가 심화되면서 의료공공성이 무너질 수 있다”며 “서울시용인정신병원의 폐업은 민간이 공공병원을 위탁 운영하면서 원래 취지와 달리 공공성을 외면하고 수익성에만 매달리는 왜곡된 경영 행태가 드러난 전형적인 사례”라고 설명했다.
 
현재 비어있는 서울시용인정신병원 부지와 건물은 한때 폐원 위기에 몰렸다가 오는 8월 다시 문을 여는 ‘공공응급정신병원(전 경기도립정신병원)’으로 사용될 예정이다. 공공응급정신병원은 경기도의료원이 위탁 운영할 예정이다.
 
시립 정신병원 등 공공의료기관의 민간 위탁운영은 불가피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 서울시 산하 공공병원 관계자는 “인력과 예산이 부족한 공공기관이 정신보건업무를 모두 떠맡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며 “여러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서 민간위탁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신질환 관리의 공을 떠안은 대학병원 등 민간병원들도 과도하게 낮게 책정된 수가 등으로 정신과 병동을 폐쇄하는 등 치료 인프라는 오히려 악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정신질환 환자의 불필요한 장기입원을 억제하는 ‘탈원화’에 정책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난 2월 복지부는 △불필요한 입원 제한과 지역사회 복귀 강화 △단기입원제도 활성화 △일상생활 복귀 △장기지속형 약물처방 활성화로 퇴원 유도 △정신질환자 사회복귀 유도 및 지원 등 내용을 담은 정신건강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장기입원 환자를 줄이고 정신질환자가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핵심이다.
 
김소윤 교수는 “원칙도 준비도 없는 탈원화 정책은 정신질환 환자가 치료받을 권리와 인권 등 두 가지 토끼 모두 놓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며 “보건당국은 무리한 정책 추진을 자제하고 유관 단체 및 전문가들과 소통해 합리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궁극적으로 정신질환자의 사회적 편견을 없애고, 조기진단을 통한 최적의 의료서비스 제공이 가능한 여건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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