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보험 보험금 지급을 두고 환자와 보험사간 갈등의 골이 좁혀지지 않고 있다. 그동안 애매모호한 약관 탓에 보험사 해석에 따라 암 보험금 지급이 좌지우지되면서 환자들이 불만이 폭증했다. 이에 금융감독원이 암보험 지급 기준을 새로 권고하고, 보험사들은 미지급 보험금의 검토 작업에 들어갔지만 환자들은 여전히 분노에 가득 차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2018년 상반기 금융민원 접수 건수는 총 4만37건으로 전년 같은 기간 3만7164건 대비 7.7%(2873건) 증가했다. 이 중 생명보험은 9713건으로 3.4%(322건) 늘었으며, 요양병원 입원치료 관련 암보험금 지급 요청이 1031건을 차지했다.
또 한국소비자원과 국회입법조사처 자료에 따르면 암 보험 관련 민원건수는 2012년 370건에서 2017년 673건으로 5년 만에 약 두 배 늘었다. 암 보험금 분쟁 중 가장 비중이 높은 것은 암 입원비 분쟁이었다.
대부분의 암보험 약관은 ‘암 치료를 직접적인 목적으로 수술·입원·요양한 경우 암 보험금을 지급한다’고 규정돼 있다. 이 중 ‘직접적인 목적’을 가입자와 보험사가 다르게 해석해 분쟁의 원인이 됐다. 상당수 보험사들이 ‘직접적인 목적의 암 치료’ 범위를 좁게 해석해 수술비·입원비에 해당하는 보험금을 삭감하거나 지급하지 않아 문제가 불거졌다.
한국소비자원이 공개한 암보험 민원 사례에 따르면 암 합병증으로 수술받은 경우 A보험사는 1회에 한해 수술비를 지급한 반면 B보험사는 암의 직접적 치료가 아니라는 이유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다.
암수술 후 암 요양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은 사례에선 입원비를 지급한 보험사가 있는 반면 직접치료로 인정하지 않아 지급을 거절한 회사도 있었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 관계자는 “암의 직접적인 치료를 목적으로 수술·입원·치료·통원했을 때, 암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사망했을 때로 보험금 지급 기준을 정한 부분이 모호하다”며 “규정 자체가 상세한 기준 없이 추상적인 데다 보험사별로 약관 지급 기준을 다르게 해석해 보험금을 지급받지 못하는 피해사례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암의 직접 치료 목적’을 정의하는 규정을 추가해 암 수술·입원·치료·통원·사망의 분쟁을 최소화해야 한다”며 “암 후유증 및 합병증 치료라도 의사 소견 상 암치료가 주된 목적이거나, 말기암 환자의 치료이거나, 암이 전이 또는 재발하거나, 항암치료 시 병실 부족 등으로 부득이하게 요양병원에 입원한 경우는 ‘암의 직접 치료 목적’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암 진단 여부를 암 환자를 직접 수술·치료했던 주치의가 아닌 보험사 자체 자문의사에게 맡기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현재 21개 생명보험사의 암보험 약관에 따르면 암 보험금의 지급 관련 분쟁 시 보험사들은 암 환자를 진료했던 주치의의 진단이나 소견은 배제하고, 보험사 자문의가 쓴 자문소견서를 근거로 암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험사는 보험 가입자에게 의료자문 동의서를 필수적으로 요구한다. 의료자문은 보험사가 자체적으로 선정한 의사 및 의료기관에 환자의 진단서·영상기록 등 의무기록을 제시해 후유장해나 적정 입원비·치료비 등에 대한 소견을 받는 것이다.
이같은 ‘의료자문’은 암보험 외 다른 보험 영역에서도 보험금 지급 거부를 위한 ‘꼼수’로 인식돼왔다. 2015년 A 씨는 어지럼증으로 내원한 병원에서 뇌경색을 진단받고 보험금을 청구했지만 보험사는 자체 의료자문 결과 뇌경색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지급을 거절했다. 이후 당사자의 동의 아래 실시한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 전문위원 자문 결과 뇌경색에 해당한다고 판정돼 보험사로부터 보험금을 진단받을 수 있었다.
B 씨는 흉추가 골절되는 사고로 척추체성형수술을 받고 재해수술급여금을 청구했지만 보험사는 자체 의료자문 결과 골절의 주된 원인이 재해사고가 아닌 골다공증이라며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다.
지속적인 허리통증으로 정형외과에서 도수치료를 받고 보험사에 실손의료비를 청구했지만 의료자문 시행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보험금 지급이 거절된 사례도 있었다.
보험사의 의료자문 건수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2014년 총 5만4399건이었던 의료자문 건수는 2015년 6만6373건, 2016년 8만3580건, 2017년 9만8275건으로 늘었다. 보험사가 의료자문을 실시하면 약 60%가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오중근 금융소비자연맹 본부장은 “환자를 직접 보지 않은 상태에서 의료자문을 하는 것은 객관성과 공정성 측면에서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환자와 대면하지 않고 치료도 하지 않은 보험사 자문의사가 의무기록만 보고 자문소견서를 작성하는 게 의학적으로 타당한지, 환자를 직접 진료하지 않았음에도 소견서를 작성하는 것은 법적으로 의료행위에 위반되지 않는지 등을 따져 환자에게 불리한 점이 없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며 고 지적했다. 이어 “의무기록 등 환자의 민감한 정보를 외부기관에 노출하는 것은 개인정보 유출 등으로 이어질 소지가 크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암보험 약관에 구체적인 보험금 지급 기준을 정확히 명시하는 한편 환자가 객관적이고 공정한 의료자문을 받을 수 있도록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주도의 질병감정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