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낙태죄’ 처벌 방침으로 의사들이 낙태수술 전면 거부를 선언한 가운데 ‘미프진(mifegyne, 성분명 미페프리스톤)’ 등 낙태유도제의 불법 거래가 온·오프라인에서 횡행해 충격을 주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조사결과 지난해 하반기 낙태유도제를 온라인에서 판매하다 적발된 건수는 856건으로 전년도 같은 기간 180건에 비해 5배나 늘었다. 산부인과 의사들이 낙태수술을 거부하면서 급해진 임산부들이 온라인 불법거래약을 찾게 된 게 주된 원인으로 분석된다.
정부는 지난 8월 인공임신중절(낙태) 수술을 한 의사의 자격을 1개월 정지하는 행정규칙을 발표했다. 이에 대한산부인과의사회가 낙태 수술을 전면 거부하겠다고 반발하며 ‘낙태죄’를 두고 갈등을 빚어왔다.
미프진은 임신 초기 태아가 성장하는 데 필요한 영양 공급을 억제하고 자궁을 수축시켜 유산을 유도하는 전문의약품으로 산부인과 초음파검사 등을 통해 임신 7주내로 확진받은 여성에게만 처방된다. 1980년대 프랑스 제약사 루셀 위클라(Roussel Uclaf)가 개발했으며 미국, 영국, 호주, 스웨덴 등 67개국에서 합벅적으로 판매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낙태가 법적으로 금지돼 미프진을 판매 및 구입하는 것은 불법이다. 현행 형법 제270조에 따르면 불법으로 낙태를 한 의사는 2년 이하의 징역, 의뢰 여성은 1년 이하의 징역을 받는다.
하지만 몇 번의 검색과 클릭만으로도 미프진 판매업체 홈페이지에 접속할 수 있다. 해당 업체에 따르면 미프진 판매가격은 임신 7주 이전은 38만원, 10주 미만은 56만원이었다. 이 업체는 미프진을 소개하며 “한국은 아직 낙태가 불법이기 때문에 단순 변심 환불이 불가능하다”며 “고객 정보는 제품 수령 후 모두 삭제처리 된다”고 했다. 모바일 메신저를 통한 실시간 상담 서비스까지 제공했다. 수백건에 달하는 복용 후기 글도 올라와 있었다.
대학생 최모 씨(여·25)는 “원치 않은 임신으로 고민하던 지인이 해외직구로 미프진을 구입하는 것을 봤다”며 “인터넷 여초(사용자 중 여성이 비율적으로 많은 것)에서 미프진 관련 정보를 공유하거나 판매 및 복용을 권유하는 글이 수시로 올라온다”고 말했다.
직장인 권모 씨(여·30)는 “현재 미프진은 온라인에서 40만~60만원 가격에 거래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갑작스러운 임신으로 고통받는 여성들에게 무상 혹은 저렴한 가격으로 미프진을 공급하는 해외 여성단체도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유통 자체가 불법인 점을 이용해 가짜 약을 보내거나 돈만 챙겨 잠적하는 업체가 수두룩하다는 점이다. 일반인은 약의 겉모습만으론 약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분할 수가 없다. 또 업체가 보낸 가짜 약이 어떤 부작용을 낳을 지도 알 수가 없어 여성들은 무방비로 피해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미프진을 구하는 여성을 노리는 성범죄도 등장했다. 온라인에서 미프진을 구하는 여성에게 ‘약을 갖고 있다’며 접근한 뒤 ‘미프진은 의사의 마사지를 받으면서 복용해야 약효가 바로 나타나고 잔여물이 남지 않아 부작용이 없다’는 식으로 만남을 유도하는 식이다. 갑작스러운 임신으로 경황이 없는 여성은 불안감을 가중돼 성범죄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기 십상이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약을 구하는 과정에서 사기나 성추행을 당하고도 오히려 협박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며 “낙태가 불법이란 이유로 여성들은 건강도 지키지 못하고, 각종 범죄피해를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의학적으로도 미프진의 부작용 사례가 보고되고 있어 무분별한 복용은 금물이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피임생리연구회에 따르면 임신 10주 이상 지난 여성이 미프진을 복용하면 수혈이 필요할 만큼 심각한 출혈이 발생할 수 있다.
임신 7주 이내 여성이라도 복용 시 구토, 설사, 두통, 현기증, 요통, 심한 복통, 하혈이 동반되거나 불완전 유산이 될 위험이 있다.
조병구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피임생리연구회 위원(에비뉴여성의원 원장)은 “미프진이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았고 여러 나라에서 판매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러 위험한 부작용 가능성이 있어 안전하다고 결론내리는 것은 금물”이라며 “잘못된 복용으로 불완전 유산이 되면 임신 초기 인공중절수술을 하는 것보다 출혈, 염증, 자궁 손상 등 부작용 위험이 크고 심하면 자궁을 적출해야 할 정도로 후유증이 남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에선 ‘복용 전 산부인과 진료를 받지 않은 환자는 모든 책임을 환자 자신이 지겠다’는 내용에 서명해야 처방전이 발급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부모가 유전병이나 정신장애가 있거나, 부모가 전염병 등을 앓거나,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해 임신이 됐거나, 혈족이나 인척 간 임신이 됐거나, 산모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칠 것으로 예상되는 등 5가지 조건이 충족되면 인공임신중절이 합법”이라며 “하지만 원하지 않는 임신을 막기 위한 임신중절시술이 합법화돼야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건강권을 더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