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의료계에서 영업사원, 간호조무사 등 무자격자의 대리수술 문제가 잇따라 불거지자 의료계 내부에서 쉬쉬해왔던 진료보조인력(PA, Physician Assistant)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정부와 병원계는 외과 전공의 지원율 저조, 수술인력 부족 등으로 PA 합법화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인 반면 의사단체와 전공의들은 절대 불가를 외치며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다.
진료보조인력은 병원내 인력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사의 업무 중 일부를 위임받아 수행하는 간호사, 응급구조사, 물리치료사 등을 지칭하는 것으로 간호사가 전체의 95%를 차지한다.
현행법상 국내에선 불법이지만 국립대병원을 포함한 대형병원들은 의료인력 부족을 이유로 암암리에 PA를 두고 있다. 병원간호사회가 최근 공개한 ‘2017년 병원 간호인력 배치 현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PA는 내과계 914명, 외과계 2439명 등 총 3353명이 배치돼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2015년 2921명보다 증가한 수치다. 병원 규모별로는 상급종합병원의 PA 수가 1908명으로 가장 많았고 종합병원이 1420명, 병원은 25명으로 뒤를 이었다.
특히 국립대병원의 상당수가 부족한 인원을 PA로 대체하고 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노웅래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전국 국립대병원 PA 현황’ 자료에 따르면 서울대병원 등 전국 10개 국립대병원의 PA 수는 2017년 기준 897명에 달했다.
서울대병원이 250명으로 가장 많았고 경상대병원(194명), 부산대병원(128명), 전남대병원(63명), 전북대병원(58명) 등이 뒤를 이었다. 과목별로는 외과(178명), 내과(127명), 흉부외과(68명), 산부인과(56명), 정형외과(48명), 마취통증의학과(42명) 순이었다. 국내와 달리 미국에선 PA가 합법화돼 2~4년의 교육기간을 거치면 자격을 획득할 수 있으며 오더리(orderly) 또는 테크니션(technician)으로도 불린다.
국내에서 PA 문제가 처음 논란이 된 것은 2012년 인제대 상계백병원 PA 고발 사태가 시발점이었다. 그해 3월 대한정공의협의회는 당시 김흥주 상계백병원장과 산부인과·비뇨기과·흉부외과 PA들을 의료법 위기 혐의로 서울 북부지방검찰청에 고발했지만 무혐의 처리된 바 있다. 이후 지난 8월 강원대병원에서 간호사의 수술 봉합 행위가 적발되면서 다시 PA 문제가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현재 대학병원 PA는 전담간호사, 진료지원인력, 의사보조인력, 진료협력간호사 등의 명칭으로 불린다. 간호사임에도 의사의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이용해 수술하거나 약을 처방하는 등 의사의 업무를 대신하고 있다.
합법적인 인력이 아니다보니 업무량, 근무시간 등 처우 면에서 불합리한 대우를 받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S 대학병원에서 PA로 활동하고 있는 한 간호사는 “명확한 업무가이드라인이 없어 진료기록 작성이나 타과 의뢰서 작성 등 의사의 업무는 물론 서류업무 및 시설·장비·물품·환경 관리 등 행정업무까지 도맡고 있다”며 “병원이나 진료과마다 처우 또는 업무지시 프로세스가 달라 정체성이나 소속감이 떨어지고, 일반 간호사보다 더 많은 업무를 보고 있지만 임금 인상이나 승진 같은 보상체계는 전무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보건복지부가 PA 제도화 방침을 밝히자 의료계에선 찬반 여론이 엇갈렸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10월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PA 문제에 대한 대책으로 전문간호사(Advanced Practice Nurse, APN)제도 활용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미 암암리에 PA를 운영해왔던 상급종합병원들과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외과계에서도 합법화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최종혁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대리수술의 근본적인 문제는 수술인력 부족에 있다”며 “전공의 주 80시간 근무 수련규칙이 시행되면서 업무 공백이 큰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무조건 반대만 할 게 아니라 PA의 업무 범위와 역할을 명확히 규정하면 의사의 업무 영역을 지키면서도 대리수술을 근절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한심장학회와 심초음파학회는 최근 PA에게 초음파검사 자격을 부여하는 심장초음파 보조인력 인증제를 추진했다가 학회 내부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유보하기도 했다.
전공의들은 가뜩이나 열악환 수련환경 속에서 PA가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하고 있다는 위기의식과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고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 관계자는 “병원들은 인력 부족 등 환경적·재정적 요인에 의해 PA 운용이 어쩔 수 없다고 입장이지만 이들의 불법행위로 인해 수련 기회를 박탈당했다고 느끼는 전공의들이 적잖다”며 “난이도와 중증도가 높은 업무 영역을 PA들이 담당하면 의료사고 위험이 증가하고, 위기상황에서 적절히 대처하지 못해 환자의 건강과 안전에 심각한 위협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진료 인프라가 아직도 미흡한 국내 상황에서 불법적인 PA제도를 제도화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며 “PA는 잡일 외엔 의사의 진료 및 수술을 대신하지 못하므로 전공의 업무시간이 줄어드는 것과는 연관성이 없으며 수련과정의 개선, 의사인력의 재분배, 수련병원의 평준화 등을 개선하는 게 우선”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