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산 후 기분저하·수면장애·죄의식·자살생각 2주 지속시 진단받아야
출산 후 여성을 가장 괴롭히는 것 중 하나가 산후우울증이다. 여성은 임신 초기부터 임신 주수가 늘수록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 등이 증가하는데, 출산 후 에스트로겐 수치가 급격히 낮아지면서 우울감이 심해진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최도자 바른미래당 의원이 최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보건소에서 산후우울증 선별검사를 받은 산모는 2015년 2만9219명, 2016년 4만7066명, 2017년 6만8972명으로 2년 새 2.36배 증가했다. 이 중 고위험 산후우울증 환자가 1만7302명이었다.
보통 출산한 여성의 약 10~20%가 산후우울증을 겪는다. 하루에도 몇 번 씩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기분이 변하고, 아이를 괜히 낳았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이런 생각이 들 때 아기 얼굴을 보면 미안한 마음과 우울감이 심해지는 것을 ‘베이비 블루스(Baby blues)’라고 한다. 우울증은 산후 3~5일째 가장 심하고 일주일 후 자연스럽게 치유될 때가 많다.
결혼 생활에 대한 불만족, 양육의 어려움, 남편의 도움 부족 등이 겹치면 발생 위험이 높아진다. 첫째 아이를 낳은 후 산후우울증을 앓은 경험이 있거나, 임신 또는 분만시 장애를 겪었거나, 미혼모이거나, 산모 나이가 20세 미만이면 산후우울증이 생기기 쉽다.
산후우울증은 우울감보다 불안, 피곤함, 짜증 등의 빈도가 높은 게 특징이다. 엄마 역할에 자신감이 없어지면서 불면증, 식욕감퇴, 소화불량, 집중력 저하, 성욕상실, 분노가 동반된다. 특히 아기와 자신의 건강에 대한 불안감이 매우 높아진다. 이런 이유를 잘 모르는 주위 가족들, 특히 남편과 갈등을 겪는 사례가 많다. 지속되는 우울감을 이기지 못하고 술에 빠지기도 한다.
국내 지침서는 출산 후 기분저하, 기쁨과 흥미 상실, 수면장애, 체중감소, 기력상실, 흥분, 정신운동지체, 부적절한 죄의식, 집중력 감소, 죽음이나 자살에 대한 잦은 생각 중 5가지 이상이 거의 매일 2주 이상 지속되면 산후우울증 진단을 내리도록 권고하고 있다.
전홍진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팀의 연구에 따르면 산후우울증을 겪은 여성은 일반 우울증 여성보다 알코올중독에 빠질 위험이 1.9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생리 시작 1주일 전부터 시작되는 ‘생리 전 기분장애’ 위험도 2배 높았다. 우울감이 2주 넘게 지속되면 사회생활이 어려워진다. 실제로 산후우울증 환자 10명 중 9명은 직장을 그만두는 경력단절을 경험한다.
산후우울증을 방치하면 산모의 0.1~0.2%가 겪는 산후정신병으로 이어져 피해망상, 과다행동 등이 동반되고 자살이라는 극한의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산후정신병은 출산 후 2~3주 내에 극도의 정서불안, 분노반응, 수면장애, 망상, 혼돈, 주의집중력 결여 등이 나타난다. 일상생활이 힘들어지고 자살, 영아살해라는 비극적인 종말을 초래할 수 있어 입원치료가 필수다. 산후정신병 또는 조울증 관련 병력·가족력이 있거나 초산이면 산후정신병 위험이 높다.
미국 미시간대 의대 캐서린 골드 교수의 연구결과 우울증을 앓는 임산부나 출산여성은 자살 위험이 높았으며, 임산부 사망원인의 10%가 자살인 것으로 밝혀졌다.
우울증은 산모 개인의 문제에 그치는 게 아니라 아이의 정신 건강과 가족관계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준다. 부부간의 불화와 갈등을 초래해 가정 파탄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전홍진 교수는 “산후우울증은 양육을 방치하게 되는 원인으로 엄마와 아이 간의 애착관계 형성에 지장을 줘 아이의 정서 발달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남편의 세심한 관심과 국가적 차원의 산후우울증 관리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치료는 일반적인 우울증과 비슷하게 인지행동치료, 항우울제 처방 등을 적용한다. 치료율은 우울증보다 훨씬 좋은 편이어서 가급적 빨리 병원을 찾는 게 좋다. 약물치료 효과가 불충분하고 성격상 문제가 동반된 경우 개인정신치료, 부부치료, 가족치료, 집단정신치료 등을 병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