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분짜리 드라마 한 편을 보는 것만으로도 치매를 조기진단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나덕렬 성균관대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 최지현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박사, 김고운 전북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뇌과학에 기반한 시나리오로 만든 영상을 토대로 치매를 진단하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22일 밝혔다.
연구팀이 개발한 영상은 생일을 맞은 한 명과 파티에 초대받은 6명에게 일어나는 상황을 보여주는 미니드라마다. 상영시간은 7분에 불과하지만 등장인물, 배경, 소품, 어투 및 억양 등 모든 요소가 사전에 계산돼 개인의 인지기능을 평가할 수 있다.
검사는 피험자가 드라마를 모두 시청한 뒤 관련 내용에 대한 설문조사에 답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드라마 전체가 360도 카메라 촬영영상으로 구성된 것도 특징이다.
연구팀은 “피험자가 헤드마운트디스플레이(HMD, Head Mounted Display)를 착용한 상태에서 영상을 시청토록 해 마치 실제 현장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게 된다”고 설명했다.
기존 검사는 여러 단어를 나열하고 제한된 시간 안에 외우는 등 일종의 시험과 같다. 반면 새 진단법은 피험자의 인지기능이 일상생활에서 얼마나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데 주안점을 둔다. 피험자의 답변 내용은 기계학습에 따른 통계적 분석을 통해 만든 알고리즘으로 풀어낸다.
연구팀이 주관적 인지기능장애 환자, 경도인지장애 환자, 치매 환자 등 52명을 분석한 결과 시험의 정확성을 가늠하는 민감도가 93.8~95.1%에 달했다. 즉 영상을 본 피험자의 답변 내용만으로도 △정상 △경도인지장애 △치매 등 어느 쪽에 속하는지 감별할 수 있다.
연구팀에 따르면 치매로 악화될 가능성이 높은 아밀로이드 양성도 새 진단법으로 가려낼 수 있다. 이럴 경우 치매 확진 시 필요한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 대상자를 간추려 불필요한 검사를 사전에 막는 데 도움이 된다.
나덕렬 교수는 “기존 검사는 환자의 긴장도를 불필요하게 높이고 실생활에서 필요한 인지 능력을 반영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치매를 되돌릴 방법은 아직 없지만 늦출 수 있는 기회는 존재하는 만큼 이번 연구가 간편하고 손쉬운 검사로 병을 조기진단하는 토대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새 진단법은 국가기술연구회 치매DTC사업단(단장 배애님)의 지원으로 삼성서울병원과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이 공동 연구해 개발했으며 연구결과는 네이처 자매지인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리포트(Scientific Report)’ 최근호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