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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처벌 논란 … 산부인과 의사들 ‘수술 전면중단’ 강수 둔 이유
  • 박정환 기자
  • 등록 2018-09-20 18:35:19
  • 수정 2020-09-16 02: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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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지부 ‘즉각 자격정지 1개월’ 개정안 발표 … 가짜 낙태약 유통 등 부작용 우려

부모가 유전·전염병을 앓고 있거나, 강간에 의해 임신됐거나, 산모 건강을 해칠 우려가 있으면 임신 24주 이내에 낙태수술을 받을 수 있다.
인공임신중절수술, 이른바 낙태수술을 집도한 의사를 처벌하는 정부 방침에 대해 산부인과 의사들이 수술 전면 중단을 선언하면서 암암리에 이뤄졌던 낙태수술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달 17일 발표한 ‘의료관계행정처분규칙’ 개정안에 따르면 임신중절수술, 마약 투여, 주사기 재사용, 성범죄 등 ‘비도덕적 의료행위’를 행한 의사는 재판 없이 즉각 자격정지 1개월 처분을 받을 수 있다.

그러자 산부인과 의사들은 ‘사회적 현실을 무시하고 비도덕적 의료행위에 임신중절수술을 포함시킨 것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며 낙태수술 전면 중단이라는 강경책을 꺼내들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관계자는 “현재에도 모자보건법 제14조 제1항에 따라 유전병, 강간, 근친 등 특정 상황이 아닌데 낙태수술을 받거나 집도하면 형법과 의료법에 따라 형사처벌 및 행정처분이 이뤄지고 있다”며 “개정안은 선고유예 이하를 받은 의사까지 처벌 범위를 넓혔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 문제인 낙태에 대한 모든 책임을 의사에게 전가한 것”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임신중절과 관련된 현행법은 모자보건법과 형법 두 가지다. 모자보건법은 낙태를 허용하는 조항만을 규정하고, 형법은 낙태한 여성에 대한 처벌을 다루고 있다. 모자보건법은 △부모가 유전병이나 정신장애가 있거나 △부모가 전염병 등을 앓거나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해 임신이 됐거나 △혈족이나 인척 간 임신이 됐거나 △산모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칠 것으로 예상되는 등 5가지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단 이 경우에도 임신 24주 이내에만 합법적인 수술이 가능하며 성관계를 맺은 남성의 동의가 필요하다. 이 외에는 모두 불법이다. 불법으로 낙태한 산모는 1년 이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 벌금, 수술을 집도한 의사는 2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하지만 낙태죄는 사실상 사문화한 법이다. 대법원 산하 법원행정처가 발간한 ‘2018 사법연감’을 보면 낙태죄로 기소된 사건은 지난해 8건에 그쳤다. 2016년 24건에 비해 3분의 1 수준으로 감소했다. 지난해엔 1심 판결이 나온 14건 중 유기징역은 1건 뿐이었고 선고유예가 10건, 집행유예 2건, 재산형이 1건이었다. 암암리에 이뤄지는 불법낙태가 17만건에 육박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미미한 수치다.

산부인과 의사들이 낙태수술을 전면 거부하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이미 사문화한 법을 두고 보건복지부가 자격정지 1개월이라는 행정처분 개정안을 내놓자 발끈한 것이다. 한 산부인과 전문의는 “이전에는 법원 판결이 나와야 행정처분이 가능했지만 앞으로는 낙태수술을 받은 여성이 ‘낙태수술 받았다’고 신고하면 복지부나 보건소에서 바로 자격정지 조치를 할 수 있게 되는 것 아니냐”라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형법 위반 여부는 행정공무원이 판단할 수 없으며, 낙태죄로 신고가 들어오더라도 수사를 거쳐 사법부 판단이 나와야 행정처분을 할 수 있다”며 한걸음 물러섰다. 

낙태수술 전면 중단이 현실화되면 사회적으로 큰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낙태수술은 형법 위반 사항이라 공식적인 건수가 집계되지 않았지만 복지부와 의료계에 따르면 매년 17만~20만건 정도 시행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 산부인과 관계자는 “무조건 법으로 제한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을 가능성이 높다”며 “지금도 중국 등에서 불법으로 수입한 낙태약을 먹고 응급실에 실려오는 환자가 종종 있는 상황에서 낙태수술 처벌이 이뤄지면 수술이 전면 중단돼 가짜 낙태약이 유통되고 수술이 더 음지에서 이뤄지는 등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낙태 문제는 의료계뿐만 아니라 전 사회적으로 논란이 돼 왔다. 2012년 낙태죄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에서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의 찬반의견이 4대 4로 팽팽하게 맞섰지만 정족수 6명을 채우지 못해 합헌 결정이 내려졌다. 그러던 중 산부인과 의사 A 씨가 올해 초 다시 낙태죄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해 위헌 여부를 심리 중이다. 지난 5월엔 낙태죄 위헌에 대한 공개변론이 열리기도 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등장했다. 지난해 11월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청원이 청와대 응답 기준인 20만명을 돌파하자 조국 민정수석이 직접 답변을 남겼다. 조 수석은 청와대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파악하기 위한 실태조사를 실시하겠지만 낙태죄 폐지 여부의 결정 주체는 사법부, 관련법 개정은 입법부인 국회에 있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일선 진료현장에 있는 산부인과 의사들은 현실과 동떨어진 모자보건법을 개정해 낙태수술 허용 여부에 사회경제적인 사유를 반영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동석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회장은 “현행법에 따르면 고등학생 등 미성년자가 임신한 경우나, 출산 직후 사망할 게 분명한 기형아도 낙태수술을 하면 불법이 된다”며 “사회경제적으로 준비되지 않은 여성에게 출산을 강제하면 산모나 아이 모두에게 더 큰 비극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내에서 인공임신중절수술을 받는 상당수가 10대 청소년, 미혼모, 다출산 기혼여성 등 양육이 어려운 ‘사회경제적 사유’에 해당한다”며 “이런 경우에 한해 임신 초기 중절수술을 허용하는 등 현실적인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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