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 곳곳이 분노로 들끓고 있다. 대기업 총수 일가는 회사 직원과 경비원에게 무시무시한 폭언과 욕설을 쏟아내 갑질 논란을 일으켰고, ‘일베’와 ‘워마드’로 대표되는 남성·여성혐오론자들은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서로간 비난 수위를 높이고 있다. 단지 쳐다봤다는 이유로 남을 폭행하거나, 보복운전으로 대형 교통사고를 일으킨 사건들도 하루가 멀다하고 발생한다.
대중에게 알려진 분노조절장애의 정식 의학적 명칭은 충동조절장애의 일종인 간헐적 폭발장애다. 작은 스트레스에도 공격성이 반복적(한 달에 여러 차례)으로 폭발해 파괴적인 행동으로 이어지는 질환이다. 병적도박, 도벽, 자해, 인터넷게임중독, 반복적인 자살시도, 강박적 쇼핑, 강박적 성행위 등과 같은 범주에 포함된다. 예컨대 누군가가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물건을 훔치는 도벽 행위를 반복하는 것처럼 어떤 사람은 스트레스가 쌓이면 분노를 폭발시키는 행동을 통해 긴장을 해소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이같은 충동조절장애로 진료받은 환자 수는 2009년 3720명에서 지난해 5986명으로 매년 늘어나고 있다. 이들 중 83.4%가 남성이며 연령별로는 20대 29%, 30대 20%, 10대 19%, 40대 12%, 50대 8% 순으로 나타났다.
충동적인 행위는 타인과의 관계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고 범죄로 이어지기 쉽다. 실제로 경찰청 조사결과 강력범죄 중 우발적 범죄나 현실 불만 관련 범죄가 41.3%를 차지했다.
충동조절장애 환자는 충동행동에 대한 통제력이 감소돼 부정적인 결과가 뻔히 예정돼 있는데도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또 폭력적인 행위나 욕설 등으로 분노를 표출할 때 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정확한 원인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신경전달물질 이상 등 생화학적 원인, 어린 시절 부모의 학대나 방치 등 사회심리적인 원인이 복잡하게 얽혀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뇌에서 감정조절에 관여하는 변연계와 전두엽의 기능장애, 뇌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 감소 등이 발병원인으로 꼽힌다. 이밖에 테스토스테론 등 호르몬 분비 이상, 두부외상, 주의력장애, 스트레스 등 다양한 원인이 상호작용해 발생할 수 있다. 간헐적 폭발성 장애가 한 가족에서 여러 명이 진단되는 경우가 많아 유전과 관련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특히 아동기에 알코올중독, 구타, 생명의 위협, 성적 문란 등을 많이 접하게 되는 환경에서 성장하면 간헐적 폭발성장애의 발생률이 높아질 수 있다.
무분별한 분노 표출은 강박증과도 밀접하게 연관된다. 강박증(Obsessive compulsive disorder, OCD)은 자신의 의지와 다르게 특정한 생각·충동·이미지가 갑작스럽게 반복적으로 떠오르거나, 한 가지 행동에 비정상적으로 집착하고 몰두하게 되는 질환이다. 조철현 고려대 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불안에 압도되도록 만드는 생각을 강박사고, 불안을 없애기 위해 하는 특정한 행동을 강박행동이라고 한다”며 “두 요소는 뗄 수 없는 짝과 같은데 강박사고가 일으킨 불안을 강박행동이 감소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손과 몸을 과도하게 씻는 결벽증이나
흔한 강박적 사고로는 주변 사람에게 폭언·폭행을 저지르는 폭력적 사고, 반복적인 성행위 관련 사고, 종교적 믿음에 반하는 사고 등이 대표적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한 강박행동은 손씻기, 반복적인 확인, 순서대로 특정한 부분을 만지기, 숫자 세기 등이 있다. 회사나 학교 등에서 갑자기 밀려오는 강박증상을 강박행동을 통해 해소하지 못하면 타인에게 극도의 짜증과 분노를 표출하게 된다.
충동조절장애와 강박증의 치료는 환자가 자신의 상태를 질환으로 인식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단 이들 질환을 극복하겠다는 결심 자체가 또다른 강박 증세나 충동적인 행위를 유발할 수 있어 가급적 빨리 병원을 찾아야 한다. 아직 명확한 완치법이 정립된 것은 아니지만 질환 초기에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차단제(SSRI) 등을 이용한 약물치료와 인지행동치료를 병행하면 환자의 70% 정도가 개선되는 모습을 나타낸다.
성격이 급하고 쉽게 흥분해 화를 내거나, 분노를 조절하기 어려운 상황이 자주 일어나거나, 잘한 일을 칭찬받지 못하면 화가 나거나, 잘못에 대한 책임을 타인에게 돌리거나, 평소 다른 사람이 나를 무시한다는 느낌을 받거나,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쉽게 좌절하고 포기하는 일이 반복된다면 충동장애를 의심해보고 병원을 찾는 게 좋다.
조 교수는 “자신이 화난 것을 이야기하고 바라는 것을 제대로 주장해 문제를 해결하는 건강한 방식의 분노 표현 습관을 길러야 한다”며 “어린 시절의 인성교육은 분노조절이나 감정조절의 밑거름이 되므로 부모는 자녀들이 충동을 조절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사람으로 자랄 수 있도록 훈련과 교육을 해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자신만의 분노신호를 미리 알아두는 것도 한 방법이다. 얼굴이 붉어지거나,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목소리가 떨리는 등 특정 신호가 나타날 때가 있다. 보통 분노는 특정 상황에서 자극을 받고 30초 내에 폭발하므로 분노 신호가 나타날 경우 현재 상황을 잠시 피하거나, 머릿속으로 숫자를 세는 방식으로 감정을 조절해보는 게 좋다. 평소 운동이나 취미활동으로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도 도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