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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증후군’ 늪 빠진 한국사회 … 경제난·양극화, 건강까지 망쳐
  • 박정환 기자
  • 등록 2018-04-13 12:21:50
  • 수정 2020-09-13 15: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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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트레스 늘어 우울증·수면장애·화병·복통·두통 초래 … 태아 건강에도 악영향
전반적인 경기가 나빠지면 기존에 수입이 낮았던 가구는 더 큰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음주와 흡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얼마 전 소득 수준에 따라 건강수명이 최대 21년까지 차이난다는 통계결과가 나왔다. 경제적으로 풍족하면 당연히 고가의 건강검진을 받고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으니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건강한 것은 당연한 이치다. 하지만 꼭 투자 대비 효과의 개념이 아니더라도 사회경제적 상황 자체가 건강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일정 수준 이상의 경제 발전을 이룬 공동체에서 불평등은 사회적 관계의 질을 악화시켜 건강불평등을 유발하는 핵심요인이다. 취업난, 경제불황, 소득양극화 등 경제 문제로 사회 분위기가 침체되면 각종 정신적·육체적 문제가 동반될 수 있다.
이런 사회에선 사회적 신뢰와 유대감이 떨어지고 지위를 둘러싼 경쟁이 심화돼 구성원들이 받게 되는 사회심리적 스트레스가 증가한다. 스트레스는 당뇨병, 우울증 같은 여러 만성질환의 위험을 높이는 주요인이다. 

먼저 수면장애와 불면증이 나타난다. 지갑은 자꾸 얇아지는 데 취업은 안되고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걱정과 고민을 반복하다보면 어느새 새벽이 된다. 전세계적으로 경제불황 여파가 컸던 2010~2011년 영국에선 수면제 처방이 평균보다 17% 증가했으며, 전체 성인 3명 중 한 명이 수면제 처방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잠을 설치는 날이 지속되면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멍해지는 경우가 많고, 심리적 불안이 행동으로 표출되면서 갑자기 소리를 지르거나 무엇인가 부수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한다.

홍나래 한림대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먼저 불면·불안·초조·울화·화병·우울증,·히스테리 등 정신적인 증상이 나타난 뒤 두통, 부종, 뒷목 뻣뻣함, 복통, 구토, 설사, 가슴답답증 등 신체적 증상이 뒤이어 발생한다”며 “이런 증상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방치하면 안면경련 및 마비, 흉통, 중풍, 돌연사 등 심각한 질병으로 악화되고 자살 시도 등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10년 유럽연합(EU), 유럽중앙은행(ECB),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은 그리스는 공공부문 축소, 국영자산 매각, 연금개혁 등 강도 높은 긴축안을 이행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자살 사건이 눈에 띄게 늘었다. 그리스 경찰에 따르면 2010년과 2011년 해마다 600명 이상이 자살했으며 이는 2009년보다 20% 늘어난 수치다. 이처럼 심각한 경제난으로 발생하는 신체적·정신적 질환을 ‘불황증후군’이라고 한다.

경제난과 불확실한 미래에서 비롯되는 스트레스는 폭식과 비만도 유발한다. 홍 교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스트레스호르몬으로 불리는 코티솔 분비가 활성화된다”며 “이 호르몬 농도가 높으면 식욕이 증가하면서 폭식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예일대 연구에 따르면 뱃살이 많이 찐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코티졸 농도가 더 높았으며, 이로 인해 식욕 증가와 폭식이 반복되는 악순환에 빠질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얇아진 지갑 사정 탓에 병원 치료를 미루는 것도 한 요인이다. 사람은 경제상황이 안좋을 때 의료비부터 줄인다. 병원을 방문해도 비싼 비급여 진료 및 치료는 가급적 피하려고 한다. 수술이 예정된 환자가 갑작스럽게 수술을 취소하는 사례도 증가한다. 목돈이 드는 수술 대신 적은 돈이 드는 약 처방과 물리치료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결제불황은 태아의 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 2015년 독일 만하임에서 열린 유럽경제학회 연례회의에서 발표된 연구결과에 따르면 경기 불황기에 태어난 아이는 그렇지 않은 아이보다 임신 초반 3개월 시기의 평균 몸무게가 120g 덜 나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산모의 뱃 속에서 충분히 자라지 못한 채 태어난 아이는 면역력이 떨어지고 그만큼 각종 질병에 취약하다. 

경제적 요인이 태아 건강을 악화시키는 데에는 술과 담배과 매개체가 된다. 전반적인 경기가 나빠지면 기존에 수입이 낮았던 가구는 더 큰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음주와 흡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다만 경제불황과 건강은 큰 연관성이 없고 오히려 부정적인 경제 상황이 건강에 도움된다는 상반된 연구결과도 보고되고 있다. 스페인 폼페우 파브라대(Universitat Pompeu Fabra) 리베르타드 곤잘레즈(Libertad Gonzalez) 교수팀은 1981~2010년 사이에 태어난 아기의 건강과 출생 지역의 실업률간 연관관계를 연구했다. 그 결과 실업률이 10% 오르면 오히려 신생아 사망 비율이 7%, 저체중아 출생 비율은 3%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이는 임신한 여성들이 경기 침체기에 흡연·음주를 줄이고 대신 운동과 수면 시간을 늘리면서 체중을 조절한 데 따른 결과로 추정된다. 

또 미국 버지니아대 연구팀에 따르면 경제가 호황이면 운동량이 급격하게 줄고 대신 외식을 더 많이 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쿠바에선 장기간 긴축정책을 실시한 결과 오히려 비만율과 심장질병 위험이 크게 감소했다. 예산 부족 탓에 대중교통이 원활하게 운행되지 않아 사람들이 더 많이 걷거나 자전거를 이용해 나온 결과다.   

최근엔 경제난에 허덕이고 있는 이탈리아가 세계에서 가장 건강한 나라로 선정됐다. 블룸버그가 163개국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한 글로벌 건강지수에 따르면 이탈리아는 100점 만점에 93.11점을 기록으로 1위를 차지했다.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아기의 기대수명은 80대로 조사됐다. 

이탈리아는 선진국에 속해 있긴 하지만 지난 수십년 동안 성장이 정체돼 있다. 현재는 40%의 청년층이 일자리를 구하지 구하지 못하고 있는데다 경제규모 대비 부채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 그런데도 고혈압, 콜레스테롤, 정신불안 등에 시달리는 미국, 캐나다, 영국 국민들보다 건강한 삶을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평소 야채와 최고 등급의 올리브유인 엑스트라버진을 자주 섭취하는 게 장수 비결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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