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줄기세포제치료제 전문기업 네이처셀이 최고경영자(CEO) 리스크가 제기된 후에도 라정찬 대표를 재선임했다. 이 회사가 자신하던 퇴행성관절염(골관절염) 치료제 ‘조인트스템’의 조건부허가가 지난달 16일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반려됐다고 발표한 지 14일 만이다.
조인트스템 허가신청 반환으로 주가가 폭락하자 지난달 20일 네이처셀은 일본에서 치매 줄기세포치료제 ‘아스트로스템’이 세계 최초로 상용화됐다고 밝혔다. 현지에서 의약품이 아닌 의료기술로 허가받아 이 회사가 개발한 치료제에 대해 유효성 논란이 재점화됐다.
네이처셀은 “일부 언론이 자사의 줄기세포치료제를 평가절하하고 있다”며 즉각 반발, 지난달 30일 열린 주주총회에서 모든 안건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이 회사의 광폭 행보에 의심의 눈초리가 가시지 않는 이유는 △조인트스템의 미국 2상 임상 데이터를 두고 회사와 식약처의 유효성 평가가 상반됐고 △네이처셀과 제휴을 맺고 일본에서 아스트로스템을 허가 신청한 의료기관은 한인 미용외과(성형외과) 의사 중심으로 지난해 말 설립된 소형 병원이며 △라 대표가 상장폐지된 줄기세포치료제 기업 알앤엘바이오(현 알바이오) 창업자이기 때문이다.
라정찬 대표는 지난해 7월 희귀난치질환 인터넷신문 ‘트리니티메디컬뉴스’(Trinity Medical News)를 창간, 조속한 줄기세포치료제 상용화 전략으로 미디어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국내 보건당국의 유효성·안전성 검증을 마치지 않은 상태에서 네이처셀이 치료제를 과장 홍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네이처셀 주가는 조인트스템 허가 기대가 한껏 높아지면서 지난 16일 6만4600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찍은 후 23일엔 2만4800원으로 61% 떨어졌다. 2주 전만 해도 시가총액이 약 3조3000억원으로 코스닥 6위까지 올랐으나 2일 기준 약 1조3300억원으로 59.7% 감소했다.
골관절염치료제 ‘조인트스템’ 美 2상임상 … 식약처 “환자 54% 악화” vs 네이처셀 “94~100% 반응”
조건부허가는 마땅한 치료법이 없는 희귀질환, 치명적인 질환 등에 한해 식약처가 2상 임상 자료만으로 먼저 시판승인을 내준 뒤 회사에 정해진 기간내 3상 임상 자료를 제출토록 하는 제도다. 2016년 조건부허가 대상으로 중증 비가역성질환(진행성질환)까지 확대됐다.
지난달 13일 열린 식약처 중앙약사심의위원회 회의에서 외부자문위원 2명을 포함한 위원 총 7명이 만장일치로 조인트스템의 허가를 반대했다. 위원회는 6개월간 진행된 미국 2상 임상 중간분석 결과 관련 △환자 규모가 너무 작고 △대조군을 설정하지 않아 연구자의 편향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 △자기공명영상(MRI) 검사에서 치료 후 악화된 환자(53.85%)가 개선된 환자(46.15%)보다 많았다고 지적했다.
위원회 논의 중 “조인트스템 적응증은 (치료제 공급이 시급한) 희귀질환에 해당하지 않는데 조건부허가를 내 줄 필요가 있느냐”며 “조인트스템은 골관절염통증하위척도(WOMAC, 점수가 높을수록 증상 심각) 등 유효성 평가지표 데이터를 살펴보면 기존 치료법인 혈소판풍부혈장요법(PRP)보다 효과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는 의견도 나왔다. 평가지표로 언급된 무릎통증·기능성·활동성지수(IKDC, 점수가 높을수록 증상 개선), 통증시각척도(VAS, 점수가 높을수록 증상 심각) 등도 기존 약보다 나을 게 없다는 의견도 분분했다.
조인트스템의 미국 2상 임상은 중등도 퇴행성관절염(Kellgren & Lawrence 3등급) 환자 총 13명이 참여했다. 장기간 효과가 지속되는 기존 치료제인 스테로이드제나 히알루론산(HA) 제제를 최근 30일 이내 투여받은 적 있는 환자만 참여 대상에서 제외됐다.
위원회는 “조인트스템이 아닌 사전에 투여한 기존 약 효과로 증상이 개선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스테로이드제는 평균 3개월, 히알루론산 제제는 평균 6개월 정도 효과가 지속된다.
네이처셀 측은 “자료를 보완해 식약처와 조건부허가 재심과 3상 임상 신청 등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지난달 30일 위원회의 평가와 상반된 내용의 연구결과를 발표, 주주들을 안심시켰다.
이 회사에 따르면 조인트스템 미국 2상 임상에 참여한 환자 총 12명을 1년간 추적관찰한 결과 전원이 WOMAC와 VAS 점수가 감소해 치료에 반응했다. WOMAC 점수는 투여전 33.25점에서 투여 6개월 후 12.33점, 12개월 후 9.29점으로 1년간 약 72% 감소했다. VAS는 투여 전 56.08점에서 6개월 후 18.5점, 12개월 후 13.17점으로 약 76.5% 줄었다. 치료반응률이 투여 6개월차에 94.4%(총 18명 중 17명)에서 12개월차엔 100%로 올랐다는 것이다.
日 세포치료제, 의약품·의료기술 투트랙 허가 … 협력병원 트리니티클리닉은 어떤 곳?
네이처셀의 치매 줄기세포치료제가 일본서 시판승인을 받았다는 보도는 현지 세포치료제 허가제도를 모를 경우 주주들이 의약품으로 승인받은 것처럼 오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 회사는 지난 20일 현지 협력병원인 후쿠오카트리니티클리닉(Fukuoka Trinity Clinic)이 특정인정재생의료위원회 심사에서 알츠하이머치매 환자에게 자사의 줄기세포치료제를 사용할 수 있도록 승인받았다고 발표했다. 연내 일본 삿포로내 병원까지 협력 범위를 확대할 계획이다.
일본은 줄기세포치료제 등 재생의료 연구를 활성화하기 위해 세포치료제 관련 규제를 최소화했다. 금지하는 것 외에 모두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제를 적용한다. ‘재생의료 등 안전성 확보 등에 관한 법률’(재생의료안전확보법)에 따라 회사는 의약품으로 분류되는 ‘재생의료 등 제품’이나 특정 병원에서만 사용 가능한 ‘의료기술’ 중 하나를 선택해 세포치료제로 승인받을 수 있다.
의사가 치료제 사용 계획을 신청하면 제3기관인 특정인정재생의료위원회가 의견을 청취한 후 후생노동성이 허가 여부를 결정한다. 의약품으로 허가받지 않아도 승인한 병원에선 합법적으로 줄기세포치료제를 투여할 수 있다. 반면 한국을 비롯해 미국·유럽 등은 세포치료제를 의약품으로만 취급한다.
후쿠오카트리니티클리닉은 병원 홈페이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설립된 재생의료 전문병원으로 관절염·암·자가면역질환 치료뿐 아니라 미용(피부재생) 분야에 중점을 두고 있다. 양창희 원장을 비롯해 다른 미용외과 전문의, 규슈대병원·후쿠오카대병원에서 경력을 쌓은 간호사, 한국간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코디네이터 등이 근무한다. 9개의 병실을 뒀다.
양 원장은 서울대 의대 졸업 후 일본에서도 의사면허를 취득, 오사카대병원 외과와 일본 유명 미용외과인 타카스클리닉에서 근무했다. 후쿠오카 하카타에서 미용외과 클리닉을 개업하고 총 12만명을 치료했다.
아스트로스템은 정맥내 자가지방유래 줄기세포를 배양한 다음 2주 간격으로 회당 2억세포를 총 10회 투여한다. 치매 예방 및 치료 효과를 입증한 동물실험 결과가 2012년 국제과학술지 ‘플러스원’(Plos-One)에 게재됐다.
네이처셀 측은 “치매 줄기세포치료제가 일본 시판승인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진행 중인 미국 2상 임상에서 확인된 초기 안전성 결과 덕분”이라며 “한국은 여건상 재생의료기술을 상용화하기 어려워 당분간 일본과 미국에 집중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네이처셀, 알바이오가 모회사 … 최대주주 바이오스타코리아가 판매
네이처셀과 알바이오는 모자(母子)회사 관계로 바이오스타줄기세포기술연구원을 공동 운영하고 있다. 알바이오는 네이처셀의 대주주이면서 재생의료 판매업체인 바이오스타코리아 지분 92%를 갖고 있다.
라정찬 대표는 알바이오의 전신인 알앤엘바이오를 2001년에 설립, 버거씨병 줄기세포치료치료제 ‘바스코스템’을 개발했다. 당시에도 식약처에 바스코스템에 대한 조건부 승인을 신청, 알앤엘바이오 주가는 급등했다. 하지만 이때도 임상데이터가 미흡하다는 이유로 시판승인을 거부당했다. 바스코스템은 일본에서 재생의료기술로 허가받았다.
라 대표는 2013년 6월 주가조작 등 혐의로 구속돼 2015년 11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줄기세포 불법시술, 회사자금 횡령, 배임, 정관계 로비, 조카 성추행 등 의혹이 불거졌으나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유죄가 인정된 혐의는 △보유주식 변동상황에 관한 보고의무 위반 △세무공무원 및 국회의원 비서관에 뇌물공여 △미허가 줄기세포치료제 국내 판매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