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증은 인체가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감염됐을 때 감염 부위에서 일어나는 반응이다. 보통 염증이라고 하면 환부가 붓고 통증과 열이 동반되는 급성염증을 떠올린다. 이런 증상은 무조건 나쁘다는 인식과 달리 신체 이상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생기므로 ‘착한 염증’으로 불린다. 세균 또는 바이러스와 싸우고 난 뒤엔 잔해물로 고름이 잡히기도 한다.
염증은 손상 초기에 세균을 막는 방어적기전으로 작용하지만 만성화되면 건강에 독이 된다. ‘침묵의 염증(silent inflammation)’은 염증반응이 지속되지만 직접 불편한 증상을 알아채지 못하는 단계를 의미한다.
급성염증은 면역반응의 결과물로 통증, 홍조, 부기, 발열 등이 발생했다가 비교적 단시간 내에 사라지는 게 특징이다. 만약 이들 증상이 며칠간 지속되고 온몸에 통증이 나타나면 ‘나쁜 염증’으로 불리는 만성염증을 의심해볼 수 있다. 보통 염증이 3주 이상 지속될 때 만성염증으로 진단한다. 스트레스, 나쁜 식습관, 고혈당, 고혈압 등으로 인체가 혹사당하면 염증성 단백질이 생성돼 축적된 뒤 온몸으로 퍼져 심혈관질환, 당뇨병, 염증성장질환, 우울증, 비만 등을 초래할 수 있다.
초미세먼지 등 아주 작은 입자의 대기오염물질은 만성염증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입자가 작은 대기오염물질이 코에서 걸러지지 않고 바로 폐나 혈관으로 침투하면 이를 없애기 위한 반응으로 염증이 발생한다. 담배의 주성분인 니코틴이나 유화제 등 인공 식품첨가물도 만성염증을 초래하는 주요인이다.
비만한 사람은 장기 사이에 과도하게 지방이 축적되고, 지방세포에서 아디포카인이라는 염증성물질이 분비돼 체내 염증 수치가 높아진다. 현대인에게 만성염증의 가장 큰 요인 중 하나가 스트레스다. 코티솔 등 스트레스호르몬이 분비되면 교감신경이 과활성화돼 염증이 발생할 수 있다. 미국 오하이오대 연구에 따르면 스트레스를 지속적으로 받으면 체내 염증 수치가 20%가량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체내 염증 수치는 혈액검사의 일종인 ‘고감도 C반응단백(high sensitivity C-reactive protein, hs-CRP)’ 수치로 파악할 수 있다. 임수 분당서울대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CRP는 급성기 반응물질 중 몸 안에 염증이 생기거나 조직이 손상되면 생성된다”며 “감기 등 바이러스질환, 류마티스관절염 등 자가면역질환, 암, 심혈관질환 등을 앓으면 인터루킨-6(interleukin-6)가 간세포를 자극해 CRP 생성을 촉진, 혈중 CRP 농도가 올라간다”고 설명했다.
CRP는 백혈구보다 민감도(Sensitivity)가 높고 급성 염증에 특이적으로 반응해 수치 상승이 곧 염증의 존재와 직결된다. 따라서 염증 여부를 초기에 판단하는데 유리하고, 이미 진단된 환자의 치료 모니터링과 예후 판단 지표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인체에 감염물질이 유입될 경우 혈중 CRP 수치는 6~10시간 이내에 증가하고, 36~50시간에 최고치를 찍으며, 병변이 회복되면 24~48시간 이내 감소한다.
CRP의 정상 수치는 통일되지 않았지만 일반적으로 0.5~1.0㎎/㎗(5~10㎎/ℓ)로 본다. 수치가 10㎎/ℓ 이상으로 급증하면 급성염증, 1~10㎎/ℓ 상태가 유지되면 만성염증을 의심해볼 수 있다. 40세 이상이면서 고지혈증·동맥경화증·고혈압·당뇨병·심근경색·뇌졸중 같은 만성질환이 있다면 1~2년에 한 번씩 염증수치를 검사해보는 게 바람직하다.
CRP는 혈액검사 지표 중 적혈구침강속도(ESR)와 자주 비교된다. ESR은 혈액에서 적혈구가 얼마만큼 밑으로 가라앉는지 나타내는 수치로 다양한 질환의 유무를 판단하는 데 유용하다. 응고방지제를 섞은 혈액을 눈금이 있는 시험관에 넣어 수직으로 세워두면 적혈구가 밑으로 가라앉으면서 침전물을 형성한다. 약 1시간 후 밑에 가라앉은 적혈구를 제외한 혈장의 높이를 측정하는데 남성은 적혈구 침전물을 제외한 혈장의 높이가 0~9㎜, 여성은 0~20㎜일 때 정상으로 본다.
ESR은 검사 비용이 저렴하고 간편하며 종양, 자가면역질환, 급만성 염증질환의 진단에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임신, 빈혈, 결핵 등의 인자에 의해 결과가 다를 수 있고 CRP에 비해 반응이 덜 신속하게 나타난다. 예컨대 CRP는 염증반응으로 인한 수치가 36~50시간이면 최고치에 달해 진단이 용이한 반면 ESR은 최대 1주일까지 소요된다. 이로 인해 급성염증질환 진단시에는 ESR보다 CRP가 선호된다.
CRP 수치가 높은 상태를 유지하는 만성염증은 가장 먼저 혈관 건강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친다. 혈관이 위축되고 혈관벽 기능이 떨어져 동맥경화나 고혈압 등의 발병 위험이 높아지고 중증 심장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만성염증 상태에선 관상동맥질환, 허혈성심장질환, 뇌혈관질환 위험도가 각각 45%, 60%, 30%가량 증가하고 당뇨병 위험이 최대 16배 이상 증가한다는 해외 연구결과도 보고됐다.
만성염증은 암 발생과 연관된다. 임수 교수는 “염증이 생성되면 외부 침입자와 싸우기 위해 화학물질 사이토카인이 다량 분비되고 이 과정에서 정상세포의 DNA가 손상돼 암세포 생성 위험이 높아진다”며 “췌장암, 대장암, 유방암 환자는 CRP 수치가 낮을수록 생존율이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체내 염증은 우울증도 유발한다. 염증수치가 올라가면 염증물질인 ‘인터루킨-1 알파’ 효소 등이 활발해져 활발해져 우울증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
만성염증을 억제하려면 영양소를 균형잡히게 섭취하고 기름지거나 자극적인 음식, 인스턴트식품은 피해야 한다. 30~40분간 등에 땀이 살짝 날 정도의 유산소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면 염증반응이 눈에 띄게 줄어든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샌디에이고캠퍼스 의대 연구팀이 남성 26명과 여성 21명 등 47명을 대상으로 러닝머신에서 보통 속도로 20분 동안 걷게 한 뒤 혈액샘플을 채취해 분석한 결과 염증을 유발하는 면역세포인 단핵구(monocyte) 수가 운동 전보다 5%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적정 체중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체내에 지방이 많으면 염증이 잘 생기고, 신진대사가 활발하지 못해 지방이 다시 많아진다. 적절한 체지방량은 남성이 체중의 10~20%, 여성이 18~28%다. 정상보다 체지방량이 많다면 체중관리가 필요하다.
햇빛을 쬘 때 합성되는 비타민D는 염증을 줄여준다. 비타민D가 충분하면 몸속 염증 억제 체계가 강화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일주일에 세 번, 햇빛이 강해 비타민D가 합성이 잘 되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 사이에 30분 정도 산책하면 좋다.
두부처럼 콩으로 만든 식품에는 염증 수치를 낮춰주는 이소플라본과 오메가-3 지방산이 풍부하다. 등푸른생선이나 연어류는 강력한 오메가-3 지방산인 EPA와 DHA가 풍부해 염증을 억제하고, 암·심장질환·천식·자가면역질환 위험을 낮춘다.
마늘은 항염증효과가 매우 높고, 토마토는 염증을 억제하는 항산화성분인 라이코펜이 다량 함유돼 있다. 두가지 음식 모두 열을 가하면 항염증효과가 배가될 수 있다.
베리류는 대표적 항산화 및 항염증 역할을 하는 폴리페놀이 풍부하게 들어 있다. 녹색 채소인 케일은 항염증효과가 큰 비타민K가 풍부하고, 붉은 뿌리 채소인 비트는 베타인이라는 아미노산이 함유돼 염증을 억제하고 활력을 높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