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의사들의 수장을 뽑는 제40대 대한의사협회 회장 선거의 본격적인 막이 올랐다. 이미 지난 5일 전체 유권자의 약 10%가 참여하는 우편투표가 시작됐으며 21~23일엔 나머지 약 90%를 대상으로 전자투표가 실시된다. 전자투표(온라인투표) 전격 도입, 유권자 수 증가 등 변수로 선거 판도를 쉽사리 가늠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각 후보 캠프는 ‘문재인케어 저지’를 위한 투쟁성 강화를 일제히 주요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선거 출마자는 기호 1번 추무진 현 대한의사협회 회장, 기호 2번 기동훈 전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 기호 3번 최대집 전국의사총연합 상임대표, 기호 4번 임수흠 의협 대의원회 의장, 기호 5번 김숙희 서울시의사회장, 기호 6번 이용민 의협 의료정책연구소장 등이다.
현직 프리미엄에 힘입어 상대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한 추무진 현 의협 회장을 나머지 다섯 명의 후보가 집중적으로 견제하며 차별화를 꾀하는 모양새다.
3연임을 노리는 추무진 의협 회장(이비인후과 전문의)은 서울대 의대 출신으로 순천향대 의대 부교수, 용인시의사회장, 의협 정책이사 등을 역임했다. 2014년 노환규 전 회장이 탄핵된 후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회장으로 당선됐다. 2015년 재선에 성공해 회장직을 수행하다 지난해 탄핵 위기에 몰렸으나 임시총회 정족수 미달로 회장직을 유지하게 됐다.
추 후보는 회무 연속성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집행부가 바뀔 때마다 협회 노하우가 사라지는 문제를 개선하고 지난 임기간 쌓은 경험과 네트워크로 협회 운영에 안정감을 주겠다는 주장이다.
주요 공약으로 진찰료 30%·종별가산 15% 인상, 회원총회·회원투표제 도입, 전공의 폭행 가중처벌 전임의 지위 보장법 제정, 회관신축 마무리 및 오송 교육·연구센터 건립 추진 등을 제시했다.
기동훈 전 대전협 회장은 1984년생으로 역대 최연소 후보로 중앙대 의대를 졸업하고 올해 응급의학과 전문의 자격을 땄다.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장, 대전협 회장 등을 거쳐 현재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대한전공의협의회를 중심으로 젊은 의사들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선거캠프도 기존에 알려진 인사가 아닌 새로운 인물들을 중심으로 꾸몄다. 최근 보도자료를 통해 이길연 경희대병원 외과 교수, 이국종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이 지지 의사를 보냈다고 밝히기도 했다.
주요 공약은 전공의 군복무 단축, 인턴·레지던트의 병원 지원 폭을 넓혀주는 한국형 매칭시스템(Matching system) 도입, 병원 의사 근무환경 개선 등이다.
최대집 전의총 상임대표는 후보 중 가장 강경파로 꼽힌다. 서울대 의대 출신으로 의협 비대위 투쟁분과위원장, 의료혁신투쟁위원회 공동대표 등으로 활동했다. 최근 노환규 전 의협 회장을 중앙선거대책위원장으로 영입하는 등 선명성 강화에 나서고 있다.
주요 지지층은 전국의사총연합이다. 전의총은 의협 회장 선거때마다 당락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의료계 최대 단체 중 하나다.
공약으로 진료거부권 도입, 의약분업 재평가 및 조제권 환수, 선택분업 쟁취, 리베이트 쌍벌제 폐지, 당연지정제 폐지 및 단체계약제 도입, 정책가산 폐지 등을 내걸었다.
임수흠 의장은 서울대 의대 출신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로 서울의사회장, 의협 상근부회장, 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 등을 지냈다. 지난 회장 선거에서 현 추무진 의협 회장에게 66표차로 석패했다. 의사단체 주요 보직에서 장기간 활동해 경험이 풍부하다는 평가다. 상대적으로 보수·온건파로 분류됐지만 이번 선거에선 대정부 투쟁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원표 전 대한개원내과의사회장, 임현경 인하대 의대 마취통증의학과 교수, 정승진 전 대전협 회장 등이 캠프에 합류했다.
공약으로 KMA POLICY 활성화, 문케어 강력 저지, 한의대 폐지를 통한 의료일원화 등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KMA POLICY 는 미국의사회의 AMA POLICY를 차용한 의협판 정책·전략시스템으로, 각종 보건의료정책에 대한 공식입장 등을 내부 의사결정을 통해 결정·공표함으로써 공신력과 대응력을 높이기 위한 기구다.
유일한 여성 후보인 김숙희 서울시의사회장은 고려대 의대 출신 산부인과 전문의로 2015년 사상 첫 여성 서울시의사회장으로 당선됐다. 전국시도의사회장단협의회장, 의협 부회장을 역임했으며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로 20대 국회의원 선거에 도전했다. 의료계 내외부에서 ‘부드러운 리더십’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주요 공약으로 대정부 투쟁 상설기구 설치, 상근 정책자문단 조직, 의료분쟁조정법 개정 및 의료사고특례법 제정 등을 내걸었다.
문영목 전 서울시의사회장과 전병률 차의과학대 보건산업대학원장(전 질병관리본부장) 등이 선거캠프에 참여했으며 나춘균 고려대 의대 교우회 회장, 김재정 전 의협 회장, 김윤수 전 대한병원협회장 등이 힘을 보태고 있다.
김 후보는 “시민단체가 건강보험 보장성을 OECD 국가 평균으로 높일 것을 주장하는 만큼 건강보험요율과 저수가를 정상궤도로 올려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후보는 특히 “도수치료처럼 필수의료와 비급여의 중간에 존재하는 영역, 즉 회색지대에 대해서는 비급여로 존치시켜 국민에게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39대 선거에 이어 40대 의협 회장 선거에 도전한 이용민 의료정책연구소장은 경희대 의대 출신으로 대한의원협회 고문, 의협 정책이사 등을 역임했다. 2000년 의약분업 사태 당시 의권쟁취투쟁위원, 문재인케어 비상대책위원 등으로 활동하며 쌓은 투쟁 경험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일부 전의총 인사와 대한의원협회가 주요 지지 기반으로 주수호 전 의협 회장이 선거캠프에 참여했다.
주요 공약으로 의료 원가 보전, 진찰료 30% 우선 인상 및 처방료 부활, 각종 시술 및 처치 수가 현실화 및 관치의료 철폐, 의료의 자율성과 독립성 확보, 근거없는 한방의료 국민건강보험 퇴출, 선택분업 실시 등을 내세웠다.
후보자들의 출신 학교간 자존심 대결도 눈여겨볼만 하다. 중앙대 의대는 기동훈 후보, 고려대 의대는 김숙희 후보, 경희대 의대는 이용민 후보를 각각 지지하고 있다. 서울대 의대는 추무진·최대집·임수흠 등 세 명의 후보가 나와 중립을 유지하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투표권을 가진 회원은 5만2515명으로 지난 39대 선거 당시 4만4414명보다 8101명 늘었다. 의협에 신고한 의사 면허자 12만1880명 중 43%에 해당한다.
기존과 달리 우편투표가 아닌 전자투표를 중심으로 선거가 진행되는 것도 특징이다. 전체 유권자 중 1291명만 우편투표를 선택했고 나머지는 전자투표 선거권자다. 지난 39대 선거에선 7849명이 우편투표에 참여했다.
우편투표는 지난 5일 시작됐으며 의협 선관위에 23일 오후 6시까지 도착하는 투표용지에 한해 유효표로 인정된다. 전자투표는 21일 오전 8시부터 23일 오후 6시까지 진행되며, 결과는 당일 오후 7시 이후에 공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