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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의 재탄생’ … 기회 포착 잘하면 새로운 질환 치료제로 대박
  • 김선영 기자
  • 등록 2018-02-13 19:21:57
  • 수정 2018-02-19 19: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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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기부전치료제 ‘비아그라’ … 고혈압치료제 개발 중 부작용 → 적응증 역발상
B형간염치료제 ‘비리어드’ … 에이즈 복합제 ‘트루바다’ TDF 성분으로 먼저 개발돼 
다발성골수종치료제 ‘레블리미드’ … 기형아유발 입덧치료제 ‘탈리도마이드’ 유사체

신약개발은 여느 일처럼 처음 의도한 대로 척척 진행되기 어렵다.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만나도 발상을 전환하면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다. 화이자의 ‘비아그라’(성분명 실데나필, sildenafil), 길리어드사이언스의 B형간염(HBV) 치료제 ‘비리어드’(테노포비르 디소프록실 푸마르산염, tenofovir disproxil fumarate, TDF), 세엘진의 다발성골수종(MM) 치료제 ‘레블리미드’(레날리도마이드, lenalidomide) 등 3가지 약은 제약사가 숨겨진 가능성을 잘 포착해 대박을 낸 사례로 꼽힌다. 

비아그라는 본래 화이자가 고혈압과 협심증 치료제로 개발하려고 했던 약이다. 포스포디에스터라제-5(PDE-5)를 억제해 혈관을 확장한다. 1상 임상연구를 하던 중에 남성 환자들에서 발기되는 부작용이 확인되면서 최초의 경구용 발기부전치료제로 재탄생했다.

비아그라는 1998년 3월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아 2008년엔 전세계에서 19억3400만달러(약 2조1000억원)어치가 팔려 연매출 정점을 찍었다. 당시 ‘파란 다이아몬드’·‘비타민V’ 등이라 불리며 발기부전치료제 시장에서 약 50%를 점유했다. ‘조그만 파란 알약’하면 비아그라를 떠올릴 정도로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다. 2012년 5월 세계적으로 물질특허가 만료되면서 절반 가격의 제네릭 시장이 성장했다. 실데나필 성분은 비아그라가 출시된 1998년 3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전세계 6000만명에게 처방됐다. 

길리어드는 B형간염치료제 비리어드의 성분인 테노포비르 디소프록실 푸마르산염(TDF)을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치료제로 개발하던 중 우연히 시험관실험(in vitro)을 통해 만성 B형간염에서도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 회사는 TDF를 기반으로 다양한 B형간염·HIV 치료제를 출시했다. TDF 성분 하나로 바이오벤처에서 세계 정상급 제약사로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리어드는 지난해 전세계 3분기 누적매출이 8억3400만달러(약 9030억원, 전년 동기 대비 3.2% 감소)에 달해 연매출 1조원을 가뿐히 넘길 전망이다.

TDF는 전구약물(prodrug)로 체내에서 약효를 나타내는 테노포비르로 활성화된다. FDA로부터 2001년 HIV치료제, 2008년 B형간염치료제 성분으로 각각 허가받았다. 테노포비르는 안토닌 홀리(Antonin Holy) 체코국립과학연구소(Academy of Sciences of the Czech Republic) 유기화학·생화학연구소 연구원이 1984년에 처음 합성했다. 이후 길리어드가 경구 복용할 수 있는 전구물질 TDF를 합성했다.

길리어드는 TDF를 2001년 HIV 치료 성분으로 FDA 시판승인을 받아 2004년에 이 성분을 함유한 첫 HIV 복합제로 ‘트루바다’(TDF·엠트리시타빈, TDF·emtricitabine)를 출시했다. 이어 2008년엔 비리어드가 FDA 시판허가를 받았다. 비리어드는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의 B형간염치료제 ‘제픽스’(라미부딘, lamivudine)에 내성을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야생형 만성 B형간염 환자를 대상으로 2002년에 진행한 임상연구에서 효과와 안전성이 입증됐다. 

이 회사의 테노포비르 기반 B형간염 및 HIV 치료제는 지난해 3분기 누적매출이 36억달러(약 3조9000억원)로 전년 동기(35억달러, 3조7900억원)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이는 지난해 말(11~12월) 국내·유럽 등에서 TDF의 물질특허가 만료되면서 테노포비르 알라페나미드 푸마르산염(TAF, tenofovir alafenamide fumarate)이라는 새 테노포비르 전구물질로 성분을 교체한 신제품 매출을 더한 수치다. TAF는 TDF보다 신장·골 안전성이 개선됐다. TAF 함유 B형간염치료제로 ‘베믈리디’(TAF), HIV치료제로 ‘젠보야’(TAF·엘비테그라비르·코비시스타트·엠트리시타빈, TAF·elvitegravir·cobicistat·emtricitabine) 등이 있다.

레블리미드는 1957~1961년에 유럽을 중심으로 전세계 50개국에서 임신부 입덧치료제로 사용되다 기형아 유발 부작용으로 시장에서 퇴출된 탈리도마이드(thalidomide)와 구조가 비슷하다. 세엘진은 탈리도마이드의 면역조절 효과를 확인한 소규모 연구에 주목했다. 탈리도마이드보다 종양억제 효과가 강력하고 안전성을 개선한 탈리도마이드 유사체(analogue) 합성에 성공했다.

레블리미드는 경구용 면역조절제제(immunomodulatory drugs, IMiDs)로 종양세포 생성에 관여하는 사이토카인(cytokine)을 차단해 암세포 증식을 억제한다. 2005년 FDA 허가를 받았다. 재발성·불응성 다발성골수종 환자 700여명이 참여한 3상 임상 ‘MM-009’ 및 ‘0MM-010’에서 질병진행 지연·치료반응률 향상 등 효과가 입증됐다. 지난해 전세계 매출이 81억8700만달러(약 8조8700억원, 전년 대비 17% 증가)에 달하는 대형 품목이다. 레블리미드는 동물실험에서 태아독성이 확인돼 임신부는 복용할 수 없다.

국내에선 부광약품이 미국 멜리어파마슈티컬즈와 공동 개발 중인 당뇨병치료제 ‘MLR-1023’가 신약 재창출(drug repositioning)에 성공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MLR-1023은 인슐린 세포신호전달에 관여하는 인산화효소인 린키나제(lyn kinase)를 선택적·직접적으로 활성화한다. 1980년대에 화이자가 위궤양치료제로 개발하려다 3상 진입을 압두고 포기한 약물로 이후 멜리어의 눈에 띄어 당뇨병신약으로 재탄생했다.

이밖에 얀센의 뇌전증치료제 ‘토파맥스’(토피라메이트, topiramate)는 2012년 미국 FDA로부터 식욕억제제 펜터민(phentermine) 성분과 병용하는 체중조절제로도 허가받아 비만치료제로 변신했다. 2009년 2월 세계 물질특허 만료 후 매출 감소분을 상쇄하기 위해 처방 영역을 넓힌 것이다.

토파맥스는 1996년 FDA로부터 뇌전증치료제로 승인받아 출시됐으며, 2004년엔 편두통 예방을 추가 적응증으로 획득했다. 2000년대 중후반 세계 뇌전증치료제 시장에서 매출 1위를 지켰으나 이후엔 동일 성분의 제네릭 공세로 고전했다. 2008년 전세계에서 27억달러(약 2조9300억원) 어치가 팔려 매출 정점을 찍었다. 해외 정신과 의료진 중 이 약 성분인 토피라메이트를 조울증·알코올중독 등 환자에 오프라벨 처방(허가 외 적응증에 재량껏 처방)해 긍정적인 결과를 얻었다는 연구 보고가 있다. 조울증·알코올중독에 대한 효과와 안전성을 충분히 입증하려면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는 평가다. 국내에선 아직 뇌전증과 편두통 치료제로만 처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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