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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보다 건기식 신뢰하는 암환자 ‘병 키울라’
  • 박정환 기자
  • 등록 2018-02-01 09:52:40
  • 수정 2020-09-13 15:3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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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흡연자 비타민A 복용시 폐암 … 홍삼·버섯 원형 그대로 섭취가 나아, 즙·환·가루 몸에 부담
항암치료 중인 암환자가 비타민C를 다량 복용하면 항암제의 암세포 미토콘드리아 파괴 기전을 방해해 치료 효과가  30~70% 떨어진다는 해외연구 결과가 보고된 바 있다.

한국인의 건강보조식품(건강기능식품 포함) 사랑은 유별나다. 언론매체 등을 통해 자주 홍보되고 주변에 건강기능식품을 먹는 사람이 워낙 많으니 안 먹으면 뭔가 손해 보는 느낌이 든다. 꼭 노년·중년층이 아니더라도 젊은층, 성장기 어린이 등 연령대를 가리지 않고 건강식품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만성질환 환자도 주요 고객이다. 특히 암 환자는 치료 과정이 워낙 힘들기 때문에 완치를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건강기능식품을 찾는다. 건강기능식품협회 조사결과 국내 암 환자의 50~60%가 보완·대체요법으로 건강보조식품이나 건강기능식품을 섭취하고, 이를 위해 한 달에 50만원가량을 지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암을 치료하는 특별한 식품이나 영양소는 없다는 게 의학계의 중론이다. 건강보조제는 함유된 성분에 따라 다양한 건강증진 효과를 낼 수 있지만 암 환자가 무분별하게 섭취할 경우 역효과를 볼 수 있다. 식약처가 인정한 건강기능식품의 24개 효능 중에도 암 예방 및 치료는 포함돼 있지 않다.

유영진 인제대 상계백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상당수 암 환자가 의사에게 여러 보조제를 먹어도 되는지 묻는데 의사도 정확히 알 수가 없다”며 “보완대체요법에 사용되는 건강보조제 종류가 다양하고 효과와 부작용도 달라 일률적으로 평가하기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섭취 용량, 대상, 기간 등에 대한 의학적 가이드라인이 없어 암 예방 및 치료 용도로 부적합하다”고 강조했다.

2012년에 발표된 미국암협회 지침에 따르면 암 환자는 건강보조제 복용보다는 음식물을 통한 영양소 섭취가 권장된다. 비타민 결핍에 따른 임상 증상이 외부로 나타나고, 영양소 섭취량이 하루 권장량의 3분의 2 미만인 경우에 한해 전문지식을 가진 의사 및 영양사와 상의 후 복용해야 한다.

건강보조제를 맹신하다간 암 예방하기는커녕 오히려 병을 키울 수 있다. 비타민은 암을 억제하는 데 도움되지만 반대로 암 위험을 높이는 ‘양날의 검’이다.

비타민A는 항산화 효과를 나타내지만 흡연력이 길거나 현재 흡연 중인 사람은 섭취를 삼가야 한다. 비타민A 전구체인 베타카로틴은 니코틴 등 흡연물질과 만나면 혈중에서 산화돼 세포를 공격, 암과 심장병 등을 유발할 수 있다. 미국에서 실시된 해외 연구에선 베타카로틴이 포함된 비타민A 영양제를 복용한 사람은 폐암 발병률이 28%, 사망률이 17%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밖에 비타민B 과다복용은 폐암, 비타민E는 전립선암 발생과 연관된다는 해외 연구결과도 보고됐다.

비타민C도 항산화 효과로 암 예방에 도움된다고 알려져 있지만 주류 의학계는 임상근거 부족을 이유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2009년 저명 국제학술지 ‘미국의사협회지(JAMA)’에 게재된 연구결과에 따르면 비타민C를 8년간 매일 500㎎씩 복용한 군과 위약군간 암 발생률은 유의미한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 9.6년간 비타민C를 500㎎씩 복용한 여성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비타민C가 항암치료 효과를 떨어뜨린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미국 메모리얼슬로언케터링암센터(MSKCC, Memorial Sloan-Kettering Cancer Center) 연구에 따르면 항암제 투여 전 비타민C를 주입한 쥐는 항암효과가 30~70% 감소하고 오히려 암세포가 더 빨리 성장했다. 비타민C가 항암제의 암세포 미토콘드리아 파괴 기전을 방해해 약효를 떨어뜨리는 것으로 추정된다.
반대로 비타민C가 암세포 DNA를 손상시켜 항암치료 효과를 높인다는 연구결과도 보고돼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합성비타민의 경우 주원료인 GMO 옥수수가 암 발생 위험을 높일 가능성도 있다.

칼슘제는 대장암 예방에 일정 부분 효과를 나타낸다. 칼슘은 대장 상피세포에서 암이 발생 및 증식하는 것을 억제한다. 하지만 칼슘은 편식하지 않고 하루 세 끼만 제대로 챙겨 먹어도 하루 권장량인 650~750㎎을 충족할 수 있어 굳이 영양제를 복용할 필요는 없다.

철분제 섭취도 주의해야 한다. 철분은 암세포의 성장과 증식을 촉진하므로 위암이나 대장암 환자가 잘못 복용하면 병을 키울 수 있다.

고등어 등 등푸른생선과 호두·아몬드 등 견과류에 다량 함유된 오메가3지방산은 유방암이나 소화기질환에 일정 부분 효과를 볼 수 있다. 이 영양소가 다량 함유된 어유(fish oil)나 영양보조제가 유방암, 대장암, 위암 예방에 도움된다는 연구결과가 꾸준히 발표되고 있지만 표본 환자가 아직 적은 편이고 명확한 기전이 밝혀지지 않아 무분별한 섭취는 권장하지 않는다. 또 오메가3지방산을 과다 섭취하면 출혈 또는 면역반응 억제 등을 초래,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일반인의 하루 섭취 권장량은 3000㎎(3g) 이하다.

버섯, 나뭇잎, 식물뿌리 같은 자연식품은 더 위험하다. 건강기능·보조식품처럼 특정 영양소가 선택적으로 함유된 게 아니라 여러 영양소가 혼재해 있으므로 예기치 못한 부작용을 겪을 수 있다.
홍삼은 암 관련 임상연구가 많이 이뤄진 건강식품으로 사포닌, 폴리아세틸렌, 산성다당체 성분 등이 포함돼 암세포 증식을 억제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하지만 홍삼 관련 연구는 대부분 동물실험이나 소규모 임상시험인 탓에 임상 근거가 충분하다고 볼 수 없으므로 항암치료 후 체력 회복 및 피로 개선을 위한 보조요법의 하나로만 여겨야 한다는 게 의학계의 중론이다.

건강식품을 굳이 먹는다면 원재료 그대로 조리하는 게 좋다. 같은 음식과 성분이더라도 즙, 가루, 환 등 형태로 만들면 농축된 영양소가 한꺼번에 몸에 들어와 장기에 무리를 줄 수 있다.

건강기능식품이 2004년 법적 개념으로 인정되기 전에는 건강보조식품으로 불렸다. 그러다 건강기능식품공전에 정제어유·로열젤리·효모·화분·스쿠알렌(심해상어 간 기름)·효소·유산균·조류(藻類, 클로렐라)·감마리놀렌산·배아·레시틴·옥타코사놀·알콕시글리세롤·포도씨유·식물추출물·뮤코다당단백·엽록소·버섯·알로에·매실추출물·자라·베타카로텐·키토산·프로폴리스추출물 등 과거 건강보조식품으로 분류된 원료들이 등재됐다. 현재 공전에 고시된 원료만 83종, 개별인정을 받은 원료는 약 175종을 넘는다. 

건강기능식품은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면역력 증강, 노화 방지, 항산화 등 효능을 인정받은 것으로 ‘건강기능식품 인증마크’를 제품에 표시할 수 있다. 인증마크 없이 ‘건강식품’, ‘천연식품’ 등으로 표시된 것은 건강기능식품이 아니다. 건강보조식품보다 공신력이 높다고 볼 수 있지만 모든 사람에서 긍정적인 효과만 내는 것은 아니다.

유영진 교수는 “일부 비양심적인 업자들이 암 환자의 절박한 상황을 악용해 의학적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건강보조제 구입을 유도한다”며 “굳이 건강보조제를 섭취하거나, 보완대체요법을 받고 싶다면 먼저 병원에서 실시한 표준치료를 모두 받고 전문의와 상의한 뒤 실행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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