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사회로 접어들면서 65세 이상 운전자의 교통사고 및 사망건수가 급속도로 늘고 있다. 경찰청의 ‘연령대별 교통사고 통계자료’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운전자가 전체 사고 중 차지하는 비중은 2014년 9.07%에서 2016년 11.06%로 증가했다. 고령운전자가 일으킨 교통사고는 2014년 2만275건에서 2016년 2만4429건으로 늘어나 별다른 변화가 없거나 수치가 감소한 다른 연령대와 대비됐다.
같은 기간 고령운전자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763명에서 2016년 759명으로 근소하게 줄었지만 부상자는 2만9420명에서 3만5687명으로 급증했다. 전체 교통사고 부상자가 같은 기간 33만7497명에서 33만1720명으로 5777명으로 줄어든 것과 확연히 다른 양상이다.
상대편과의 충돌없이 운전자의 부주의로 인한 사고는 65세 미만 운전자(1.8%)보다 75세 이상(5.1%)에서 3배 가까이 높았다. 또 75세 이상 고령 운전자는 65세 미만보다 입원율이 4배 이상 높고 입원기간도 약 50% 길다.
이런 현실을 의식한 듯 스스로 운전대를 놓는 고령운전자도 적잖다. 소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1∼2015년 운전면허증을 자진 반납한 5801명 중 65세 이상이 3789명으로 전체의 65.3%를 차지했다. 면허를 자진 반납한 고령운전자의 수는 2011년 525명에서 2015년 1400명으로, 4년 새 2.6배가량 급증했다.
고령운전자의 사고 원인으로는 노화에 따른 시력저하, 인지지각기능 및 운동능력 감소 등이 꼽힌다. 김광일 분당서울대병원 노인병내과 교수는 “운전은 시각·청각 등 여러 감각 자극을 뇌에서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과정인데 노인은 노화 탓에 순간대응 능력이 떨어져 자칫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건강이나 정신력 등 신체조건은 개인적 편차가 있지만 60대에 접어들면 시·청각 기능이 저하돼 사고 위험이 2배가량 높아질 수 있다. 사고 위험을 가장 높이는 원인은 시력 저하다. 한국교통연구원 연구결과 60세 이상부터 동체시력이 30대의 80% 수준으로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체시력은 움직이는 물체를 정확하고 빠르게 인지하는 시각적 능력을 의미한다. 운전 시 동체시력은 자동차의 이동속도가 빠를수록 저하되는 경향을 보인다. 정지시력이 1.2인 사람이 50㎞/h 속도로 운전하면 동체시력은 0.5 이하로 떨어진다. 노화로 동체시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자동차의 속도감이 더해지면 도로표지를 읽는 게 힘들고, 속도감이 떨어져 과속하게 되며, 다른 차나 보행자의 움직임을 제대로 구별하기 어려워 교통사고 위험이 높아지게 된다. 보통 60세 이상의 40%가량이 시력 문제로 야간운전 능력이 저하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 고령운전자는 시야각이 60도로 젊은층(120도)의 절반으로 줄어 갑자기 끼어드는 차량을 못볼 확률도 높다. 주행 차선을 바꾸기 전 사이드미러를 확인할 때 또는 먼 곳을 보다가 가까이 있는 내비게이션을 볼 때 순간적으로 어지럼증이 느껴지면 잠시 운전을 멈추고 눈을 쉬게 해줘야 한다.
인지 및 반응속도 감소도 고령운전자의 사고 위험을 높이는 요인이다. 보건복지부 국립재활원 재활연구소에 따르면 고령운전자는 젊은 운전자보다 반응 시간 및 속도 예측이 느렸고 핸들조작 및 동시조작 능력도 저하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 인해 가상현실을 이용한 운전 시뮬레이터 도로주행 검사에서 합격한 비율은 노인 운전자가 61.8%로 젊은층(91.7%)보다 낮았다.
이원영 도로교통공단 수석연구위원은 “도심에서 돌발상황이 일어나는 상황을 가정해 측정한 결과 비고령 운전자의 반응 시간은 0.7초인데 비해 고령은 1.4초가 넘었다”며 “고령 운전자는 고속도로 내 돌발상황에 대한 반응과 출발반응 시간도 일반 운전자보다 17% 이상 오래 걸렸다”고 설명했다.
사고 위험을 막으려면 고령 운전자는 좌석을 높게 조정해 시야를 최대한 넓게 확보해야 한다. 라디오나 음악의 볼륨을 낮추고, 에어컨이나 히터를 약하게 가동하는 게 좋다. 나이가 들수록 청각이 떨어져 다른 차의 경적소리나 내비게이션 알림을 잘 듣지 못해 순간대처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복용 중인 약이 감각을 저하시켜 영향을 안전운전을 방해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65세 이상 고령층의 절반가량이 질환 치료나 자양강장을 이유로 약을 복용하는데 신경안정제와 우울증약은 신체반응 속도를 저하시켜 사고위험을 높일 수 있다. 진통제·두통약·간질약·혈압약·멀미약·감기약도 감각에 영향을 미치는 약제다. 장거리 운전을 앞두고 있다면 의사와 현재 복용 중인 약이 운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상담해보는 게 좋다. 또 미리 운전 경로를 파악해두고 새로운 길보다는 평소 자주 다녀 익숙한 도로를 주행하는 게 바람직하다.
이원영 연구위원은 “고령자 운전자의 상당수가 생업과 직결돼 있어 무조건 나이로 운전을 제한하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크다”며 “고령운전자의 교통사고를 예방하려면 선진국65세 이상 운전자의 적성검사 기간을 5년으로 단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현재 국내 교통법규는 1종 면허는 10년 또는 7년, 2종 면허는 10년 또는 9년이다. 면허 종류에 상관없이 운전면허 시험이 쉬워진 2011년 12월 9일 이후에 면허를 취득한 65세 이상은 갱신주기가 5년으로 줄었다.
일본은 70세 이상 운전자를 대상으로 3년마다 면허를 갱신하고 치매검사를 의무화하고 있다. 호주에선 80세 이상 운전자는 갱신 시 의료증명서를 제출하고 85세 이상은 실제 주행시험을 거쳐야 한다. 영국에선 고령자를 대상으로 통합운전평가를 실시해 인지기능, 반응속도, 신체적 능력, 시력, 도로주행 가능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체크한다.
이에 경찰청과 도로교통공단은 75세 이상 고령운전자의 운전면허 적성검사 주기를 현행 5년에서 3년으로 단축하고 인지기능검사가 포함된 무료 교통안전교육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나이먹음에 따른 신체적·인지적 기능변화를 체크하는 적성검사를 제도적으로 보완 강화할 방침이다.
이 연구위원은 “버스나 택시처럼 다중을 수송하는 직군의 고령운전자는 운전능력을 더 까다롭게 관리해야 한다”며 “일본처럼 면허를 반납하면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고령운전자 사고를 막기 위해 교통표지판 글자 크기를 확대하거나, 야간사고 다발지점에 가로등을 설치하는 방식으로 교통인프라를 개선 및 확충해야 한다는 견해도 나온다. 김광일 교수는 “미국이나 유럽처럼 운전관리 당국과 의사단체가 운전적합성 가이드라인을 정하고, 개인 병력 공유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