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7명 중 1명은 알코올·도박·게임·마약 등 4대 중독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 세부적으로 알코올중독자가 225만명, 인터넷(게임) 268만명, 도박 206만명, 마약중독자 12만명 등 700만명에 달한다. 최근엔 스마트폰중독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며 5대 중독에 포함되기도 한다.
중독질환은 정신건강을 피폐하게 만들 뿐 아니라 서로 상호작용을 일으켜 또다른 중독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 만약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자연스럽게 담배를 입에 물거나, 컴퓨터로 인터넷서핑이나 영화를 보며 ‘혼술(혼자 마시는 술)’하는 습관은 중독 연쇄반응이 시작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다.
중독은 알코올·약물에 의존하는 물질중독(material addiction)과 도박·스마트폰·인터넷·게임·성(性) 등에 빠지는 행위중독(behavioral addiction)으로 구분된다. 과거엔 물질중독만 질병으로 인식됐고 행위중독은 개인의 의지 문제로 치부됐다. 최근에서야 현대인의 정신건강과 행위중독간 인과관계를 입증하려는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물질·행위중독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된다. 특히 알코올과 니코틴은 도박·인터넷·스마트폰 중독과 연관성이 깊다. 선행 연구에 따르면 알코올·니코틴중독 환자는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에 중독될 위험이 2~3배 높다. 결국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기존에 있던 물질중독에 인터넷·스마트폰중독 같은 행위중독이 더해져 치료가 어려운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이처럼 하나의 중독이 또다른 중독을 낳는 현상을 의학적으로 ‘중독공존’이라고 한다.
이상규 한림대 춘천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등을 통해 게임·도박·음란물이 ‘합종연횡’하는 환경이 조성되고 더 강한 자극을 추구하는 욕구와 행동이 더해지면 심각한 중독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며 “중독공존은 여성보다 남성, 특히 20대에서 발생위험이 높은 경향을 나타낸다”고 설명했다.
중독공존이 발생하는 이유는 행위중독이든 물질중독이든 매개체만 다를 뿐 발생기전은 같기 때문이다. 모든 중독 증상은 원인과 관계없이 뇌의 ‘쾌락중추’가 과도하게 자극받아 발생한다. 이 때 뇌에서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오피오이드라는 물질의 분비를 촉진해 쾌감과 행복감을 느끼게 한다. 즉 담배를 피우며 쾌락을 느낄 때 관찰되는 뇌 전두엽의 변화가 도박을 하거나 스마트폰을 만질 때와 다르지 않다. 만약 특정 행위나 물질에 중독돼 도파민이 과잉분비되면 의사결정에 관여하는 전두엽 기능이 손상돼 충동조절능력이 떨어진다.
현대인이 하루종일 손에 놓지 않는 스마트폰은 중독공존의 시발점이 되기 쉽다. 평소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은 더 취약하다. 민경복 서울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스트레스 등 정신심리적 증상은 대뇌 보상회로에 관여하는 신경전달물질 분비에 영향을 미쳐 충동조절 능력을 떨어뜨리고 스마트폰 과다사용을 유발할 수 있다”며 “스마트폰중독은 물질중독과 같은 기전으로 발생하고 위험성도 비슷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의 사회동향’에 따르면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 비율은 2011년 8.4%에서 2015년 16.2%로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특히 저소득 가구 성인·청소년, 고소득 가구 유아·아동의 비율이 높아지는 추세다.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에 중독되면 사고와 이해력에 관여하는 배외측전전두엽·전대상피질, 기억력을 담당하는 해마의 부피가 줄어 전반적인 뇌기능이 떨어질 수 있다. 성장기 소아·청소년이 게임이나 ‘야동’에 빠지면 뇌의 특정 부위에만 과부하가 걸려 뇌가 균형 있게 성장하지 못한다.
중독질환은 항우울제 등으로 우울증·주의력결핍 같은 2차적인 문제를 완화한 뒤 전문의와의 상담으로 잘못된 인식과 행동을 수정하는 인지행동치료와 상담치료로 개선할 수 있다. 가족과 주변 지인의 도움을 받아 중독의 원인이 되는 물질이나 행위 자체를 차단하는 것도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