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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케어’ 의사들 분노 이유 … “적정수가 보전? 정부 못믿어”
  • 박정환 기자
  • 등록 2017-12-14 10:03:29
  • 수정 2021-07-06 03: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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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보 지원예산 삭감돼 불신 가중 … 국민여론은 싸늘, 집단행동 일관시 역효과만
대한의사협회 산하 국민건강수호비상대책위원회 소속 의사들이 지난 10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문재인케어 전면 철폐를 외치며 총궐기대회를 갖고 있다.

지난 10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은 의사들의 ‘문재인케어 반대’를 외치는 구호 소리로 들끓었다. 대한의사협회 산하 국민건강수호비상대책위원회 소속 의사 3만명(경찰 추산 7000여명)은 서울시청 인근에서 전국의사 총궐기대회를 갖고, 오후 5시부터 대한문과 광화문을 거쳐 청와대 100m 앞인 효자치안센터까지 행진했다.

의사들의 대규모 집회는 2013년 12월 원격의료 확대 및 의료영리화에 반대해 ‘의료제도 바로 세우기 전국의사궐기대회’를 가진 이후 4년만이다. 이번 집회엔 현직 의사들뿐만 아니라 수련과정을 거치고 있는 전공의, 의대생, 의학전문대학원생들도 참여했다. 


이날 의사들은 △비급여의 급여화 정책 전면재검토 △수가 정상화를 위한 구체적 로드맵 설정 △공정한 수가협상 구조 마련 및 협상 결렬 시 합리적 인상 기전 마련 △일차의료를 살리기 위한 요양기관 종별 가산료 재조정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불가 등을 주장했다.

이 중 핵심은 문재인케어의 전면 철회다. 문재인케어는 미용·성형을 제외한 초음파·자기공명영상촬영(MRI) 등 검사, 수술, 치과재료 등 현재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3800여 비급여 항목을 모두 급여화해 현재 63.2%인 건강보험 보장률을 70%까지 끌어올리는 것을 골자로 한다. 정부는 문재인케어에 필요한 예산을 약 30조6000억원 규모로 예측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2022년까지 신규예산 6조5600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문재인케어 왜 필요한가, 한국인 의료비 부담 OECD 2위

한국은 세계에서 환자의 의료비 부담이 가장 많은 국가 중 하나다. 한국인의 의료비 본인부담률은 36.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멕시코(40.8%)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OECD 평균(19.6%)과는 두 배 가까이 차이난다. 반면 건강보험 보장률은 63.2%로 OECD 평균인 80%에 크게 못 미친다. 


개인의 의료비 부담이 큰 것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가 주요인으로 분석된다. 2015년 기준 총 의료비 69조4000억원 중 비급여 의료비는 13조5000억원으로 19.5%를 차지한다. 이로 인해 가족 중 하나가 중증질환에 걸리면 집안 전체가 풍비박산나는 일이 허다하다.

의료계 “비급여, 건보 진료 손실분 보전하는 최소 안전장치”

이런 상황에서 문제의 근원인 비급여를 단계적으로 줄여나가고 건강보험 보장률을 높이는 것은 시대적 과제처럼 여겨지지만 이에 반대하는 의사들에게도 사정이 있다. 


의료는 일반 공산품과 달리 공공재 성격이 짙어 서비스 제공자(의료기관)가 아닌 정부가 가격, 즉 수가를 책정한다. 환자 부담을 경감하기 위해 수가를 원가보다 낮게 책정하는 게 관례다. 의료계는 현재 건강보험 진료 수가가 원가의 70~80% 수준인 것으로 보고 있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치료를 해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수가를 삭감해버리면 병원이 차액을 떠안아야 한다. 의료계에선 이를 ‘진료수가 후려기치’라고 표현한다. 이날 집회에 참석한 대다수 의사들은 “의학적 비급여를 급여화하기 전에 심평원의 일방적인 진료수가 후려치기부터 손보는 게 우선”이라고 입을 모았다.

결국 건보 진료 수입만으로는 병원이 적자를 면하기 어려운데 이런 손실분을 보전해주는 장치가 비급여다. 비급여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환자가 비용을 100% 부담하는 것으로 의료기관이 임의로 가격을 정할 수 있다. 즉 비급여는 환자 입장에선 진료비 상승을 부추기는 ‘악의 축’처럼 비쳐지지만 병원과 의사 입장에선 필수불가결한 존재다.

중소병원 도산 막으려면 적정수가 보전, 수가 후려치기 개선이 먼저

의사단체들은 건강보험 보장 범위가 확대되고 비급여가 줄면 병원 경영이 어려워질 게 뻔하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려면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보다 적정수가 보전이 먼저라는 게 의사들의 주장이다. 의협 관계자는 “비급여 항목을 급여항목으로 전환하면 건강보험 재정이 부실해져 국민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며 “생존을 위해 비급여 진료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진료비 현실화가 이뤄지지 않은 채 비급여가 단기간 내 모두 급여화되면 수가가 원가에 밑돌 것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1차의원과 중소병원이 도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비급여 철폐 및 건강보험료 인상 등을 통해 적정수가를 보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즉 의사들이 비급여 없이 건강보험 진료만으로 병원을 운영할 수 있도록 현실성 있는 수가를 책정하겠다는 의미다. 하지만 정부의 말을 신뢰하는 의사는 많지 않다.

내년 건강보험 국고지원 예산 삭감, 의사들 정부 불신 심화  

내년도 건강보험 국고지원 예산이 삭감된 것도 문재인케어에 대한 의사들의 불신을 가중시켰다. 보건복지부는 내년 건강보험 국고지원 예산으로 법정기준인 7조5000억원(보험료 예상 수입액의 14%)보다 2조1000억원 모자라는 5조4000억(10.1%)을 편성했다. 


국회는 한술 더떠 가뜩이나 부족하게 편성된 건강보험 국고지원 예산안에서 2200억원을 삭감한 5조2000억원(9.8%)을 의결했다. 건강보험, 복지, 고용 등 민생과 직결된 분야에서 삭감된 예산은 여야 실세 의원들의 지역구 예산으로 고스란히 넘어갔다. 개원의협의회 관계자는 “정치권과 정부가 법으로 지정된 건강보험 지원예산마저 고수할 의지가 없어 깎아버리는 상황에서 어느 의사가 적정수가를 보전해주겠다는 위정자들의 말을 믿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여론은 싸늘, “의사들 벌이 좋으면서 밥그릇 싸움만 몰두”

하지만 의사들의 이런 주장에 대해 여론은 아직 싸늘하다. 무엇보다 의사들의 생존권 투쟁을 단순한 밥그릇 싸움으로만 보는 시각이 여전히 적잖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대다수 국민들의 눈에는 의사가 다른 직종에 비해 ‘벌이’가 좋은 것으로 인식되는 게 사실”이라며 “대국민적 설득과 이해 당사자간 대화의 절차 없이 무조건 집단행동으로 일관할 경우 의사 직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만 깊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의사궐기대회 선봉에 섰던 최대집 비상대책위원회 투쟁위원장의 극우단체 활동이력도 논란이 됐다. 그는 자유개척청년단이라는 극우보수 단체를 운영하며 태극기집회에 참석해 강도높은 발언을 쏟아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많은 의사들은 최 위원장의 이같은 행보로 인해 자신들의 생존권 투쟁이 정치적 논쟁으로 변질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현재 건보수가 원가 70~80% 수준, 객관성 결여 지적도

현재 수가가 낮다는 의료계의 주장은 객관성이 떨어진다는 주장도 나온다. 권순만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의료계는 원가 보전을 요구하지만 수가의 원가산출방식에 대해 사회적으로 합의된 기준이 없다”며 “즉 비급여를 급여화한다고 해서 무조건 병원들이 손해본다는 논리는 근거가 희박하다”고 말했다. 이어 “의료행위의 원가는 의료기관 종류별로 달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운 만큼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적정수가 수준에 대해 국민적인 합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성상철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도 지난 10월 국감에서 현행 의료수가가 의료계의 주장대로 저수가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개인적 의견을 밝힌 바 있다. 

현재 한 의료행위의 적정수가가 얼마인지 따져볼 수 있는 정부 차원의 통계는 전무한 실정이다. 원가를 책정하려면 의료기관 종별로 임대료, 인건비, 장비 구입비용 등 수많은 항목을 일일이 따져본 뒤 표본을 만들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인건비 같은 경우 의료기관들이 민감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라 정부 조사에 제대로 협조해줄 지도 미지수다.

집단행동보다 대화 … 정부는 의사 전문성·자율성 인정해야

환자·의사·정부 등 세 이해당사자의 의견을 모두 만족시키려면 각계 전문가가 마주앉아 의료비의 적정부담·적정수가를 합의하고 이견을 좁혀나가는 방법밖엔 없다. 권 교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 정부기관의 입김이 센 수가 책정 과정에서 의사의 전문성과 자율성을 현재보다 더 보장해주는 것도 필요하다”며 “의사단체도 일방적인 집단행동보다는 대화의 자세로 나가야 등돌린 국민여론을 되돌릴 수 있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이번 의사 총궐기대회에 대해 이례적으로 “의료계와 조속히 만나 진지한 자세로 대화 및 협의할 것”이라는 공식입장을 내놨다. 의협 비대위는 14일 권덕철 복지부 차관 등 주요 실무자들과 비급여 급여화 등에 대한 면담을 가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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