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귀순하다 총상을 입은 북한 병사의 몸에서 기생충 수십 마리가 발견된 사실이 알려진 이후 ‘구충제 열풍’이 불고 있다. 일부 약국에선 구충제 매출이 2배 가까이 늘었다. 위생환경이 좋아진 요즘에도 구충제를 복용해야 하는지 묻는 이들도 많다.
국내 장내기생충 감염률이 현저히 낮아져 국민 모두 구충제를 정기적으로 먹을 필요는 없다는 게 의약 전문가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정원 약사(전 울산대 서울아산병원 약제팀)는 “장내기생충 감염위험이 높은 영유아 및 그 가족,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 생선회나 덜 익힌 음식을 자주 먹는 사람 등은 1년에 봄·가을 두 번 구충제를 복용하는 게 좋다”며 “구충제가 장내 모든 기생충을 죽이는 것은 아니므로 기생충 감염이 의심되고 복통이 지속되면 진료를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일반약으로 판매되는 구충제 성분은 플루벤다졸(flubendazole, 종근당의 ‘젤콤정’ 및 ‘젤콤현탁액’ 등), 알벤다졸(albendazole, 대표약 보령제약의 ‘보령알벤다졸정’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성분은 공통적으로 회충·편충·요충·십이지장충(구충) 등을 적응증으로 갖고 있다. 1일 1정 식사와 관계 없이 복용한다. 풀루벤다졸은 생후 12개월 이상, 알벤다졸은 생후 24개월 이상에게 투여 가능하다. 다만 임산부에선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아 임산부는 복용할 수 없다.
양인규 약사(충남 천안시 불당동 펜타포트약국)는 “알벤다졸과 플루벤다졸은 기생충 세포의 미세소관 생성을 억제해 에너지원인 포도당 흡수를 저해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미세소관은 세포 골격을 구성하고 세포분열·세포내 물질이동에 관여하는 세포 내 기관”이라며 “미세소관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으면 세포 구조가 틀어져 관련 대사들이 모두 영향을 받게 된다”고 덧붙였다.
양 약사는 “민물고기에 많은 간흡충(간디스토마)은 일반약 성분으로는 치료하기 어려우므로 민물고기를 날 것으로 자주 먹는 사람은 병원에서 정기적으로 기생충 감염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간흡충 감염은 전문약 성분인 프라지콴텔(praziquantel, 신풍제약의 ‘디스토시드’)을 처방받아 1일 3회 복용하면 대개 완치된다. 프라지콴텔은 간흡충은 물론 폐흡충(폐디스토마) 박멸에도 효과적이다. 임신부에서 안전성이 입증됐지만 임신 3개월까지는 복용을 삼가하는 게 좋다. 일부 의·약사는 장내기생충 퇴치의 걸림돌 중 하나인 민물생선회 섭취를 막을 수 없으므로 디스토시드를 일반약으로 전환해 복용 접근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장내기생충 감염, 1971년 84.3%서 2012년 2.6%로 급감 … 민물생선회 내 간흡충, 담도암 유발
질병관리본부의 ‘전국 장내기생충 감염실태조사’에 따르면 1차 조사 시기였던 1971년에는 감염자 비율이 84.3%에 달했으나, 8차인 2012년에는 2.6%(130만명)로 대폭 감소했다. 2012년에 가장 많이 발견된 기생충은 간흡층(1.86%)으로 편충(0.41%), 장흡충(0.26%), 유구조충·무구조충(0.4%, 옛 촌충), 회충(0.03%) 등이 뒤따랐다. 1971년에는 편충(65.4%)과 회충(54.9)%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국민 한 사람당 평균 1.5가지의 기생충에 감염돼 있었다.
질병관리본부의 8차 조사에서 민물고기·바다회·소고기·돼지고기 등 4가지 중 각 음식을 날 것으로 먹어본 적이 있는 사람의 장내기생충 감염률은 4.6%, 3.8%, 3.6%, 3%로 이를 날 것으로 먹어본 적이 없는 사람(2.2%)보다 높았다.
장내기생충 중 회충·십이지장충·편충 등 토양매개성 감염은 줄고, 간흡충·장흡충(요쿄가와흡충) 등 식품매개성 감염이 상대적으로 늘고 있다. 생선회·생고기 외에 유기농 채소·과일, 중국산 김치 섭취를 비롯해 해외여행 증가 등이 한몫했다.
장내기생충의 감염원은 크게 채소, 어패류, 육류로 나뉜다. 채소를 통해 감염되는 기생충은 회충, 편충, 요충, 십이지장충 등이 대표적이다. 어패류로 전달되는 기생충은 간흡충, 폐흡충, 장흡충 등이 있다. 육류를 통해 감염되는 기생충은 유구·무구조층, 톡소플라스마 등이 있다.
회충은 인분을 비료로 사용한 채소를 통해 경구 감염되며, 소장 내에서 기생하는 게 특징이다. 피로감·두통·발열·구토·실신 등이 나타날 수 있다. 편충은 맹장과 대장 상부에 기생한다. 자각증세가 거의 없지만 심하면 복통·구토·변비·미열 등을 동반한다. 요충은 항문 주위에서 산란해 항문소양증을 유발한다. 긁은 손을 통해 가족 간 감염되기 쉽다. 농촌보다는 도시에, 성인보다는 소아에서 흔히 발생한다. 십이지장충은 소장 상부에서 기생해 피부염·홍반·빈혈·소화장애 등을 일으킨다. 주로 여름에 상추쌈이나 김치 등 채소류를 먹고 발병한다. 드물게 피부를 통해 옮을 수 있다.
간흡충은 담수어에서 많이 발견되며, 간담관에 기생한다. 심하면 간비대·복수·황달·야맹증·혈변·장출혈 등을 유발한다. 1급 발암물질로 담도암 발생위험을 높인다. 폐흡충은 민물게를 통해 많이 감염되며, 폐에 기생해 기침·객담·객혈 등을 일으킨다. 장흡충은 중간숙주인 담수어·다슬기 등에 옮아와 공장 상부에 기생한다. 보통은 증상이 없지만 심하면 복통·설사·두통·신경증 등을 유발한다.
유구조충은 주로 덜 익은 돼지고기로부터 감염된다. 유구조충 알은 이를 섭취한 돼지의 근육·간·장막에서 낭충으로 자란다. 낭충이 신체 각 부위에 기생해 인체유구낭미충증을 일으킨다. 심할 경우 반신불수·경련·실명·간질 등이 나타나고 생명을 잃기도 한다.
무구조충은 덜 익은 소고기를 통해 전파된다. 무구조충 알은 이를 먹은 소의 장내에서 유충으로 자란 뒤 근육 안으로 들어가 낭총이 된다. 충체가 커서 소화기 막힘(장폐쇄)을 일으키거나 구토·설사·복통·체중감소·충수돌기염 등을 유발할 수 있다.
톡소플라스마는 고양이가 중간숙주로 고양이 분변에 오염된 음식물로부터 전파된다. 발열·헛소리·경련 등 증상을 보이며, 태반을 통해 태아도 감염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