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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서 미안해’, 치료효과 떨어뜨리는 만성질환 동반 우울증
  • 박정환 기자
  • 등록 2017-11-30 07:24:18
  • 수정 2020-09-13 15:4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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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담감·미안함·고립감, 환자 정신건강 해쳐 … 심장질환·관절염 환자 고위험군
미국당뇨병학회에 따르면 우울증이 동반된 당뇨병 환자는 우울증이 없는 환자보다 외래방문 횟수가 1.7배, 총 의료비 지출이 4.5배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완치가 어렵고 평생 꾸준한 관리가 필요한 만성질환은 환자와 보호자에게 심한 스트레스를 줘 정신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대다수 만성질환 환자가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같은 증상을 어쩔 수 없이 겪는 것이라며 방치한다. 하지만 정서적인 문제는 환자의 의지와 치료 순응도를 낮춰 질환의 예후를 악화시키고, 이로 인해 더 심한 우울증을 겪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영국 보건부가 암환자 2만여명을 대상으로 정신건강과 만성질환간 연관성을 분석한 결과 우울증은 환자의 피로와 고통을 증가시키고 환자의 회복 의지를 떨어뜨려 치료를 중단하게 만들었다. 남은 생에 대해 비관적으로 생각하고 자살 충동을 경험하는 환자도 많았다. 반면 암과 동반된 우울 증상을 치료하면 생존 기간이 향상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미국당뇨병학회는 우울증이 동반된 당뇨병 환자는 우울증이 없는 환자보다 외래방문 횟수가 1.7배, 총 의료비 지출이 4.5배 많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만성질환 환자의 우울증 문제는 심각하다. 2015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공개한 ‘한국복지패널자료로 살펴본 우울과 만성질환의 동반 양상과 의료서비스 이용실태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19세 이상 성인 1만3573명 중 11.8%가 우울증과 만성질환을 모두 앓는 것으로 조사됐다. 만성질환과 우울증이 동반되는 비율은 고령일수록, 사별·이혼·별거 상태이거나, 교육 및 소득 수준이 낮을수록 높게 나타났다.

만성질환 환자는 가족과 동료에게 짐을 지우는 것 같다는 부담감과 미안함, 완치가 불가능할 수 있다는 걱정, 친밀한 타인들로부터 소외된 것 같다는 불안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정신 건강을 해칠 수 있다. 
가장 고통을 받는 부분은 질환 자체에서 오는 심리적 충격과 신체기능 및 외형 변화에 따른 자존감 저하다. 질병이 호전과 악화를 반복하며 장기화되면 극심한 심리적 변화를 겪게 되고, 결국 치료에 대한 무기력증으로 이어진다. 고립감도 만성질환자의 정신건강을 해치는 요인이다. 입원치료로 가족과 분리되거나 직장을 그만두면 자신감이 떨어지고 더이상 사회의 일원이 아니라는 좌절감과 수치심을 느끼게 된다. 

만성질환 환자에서 가장 흔한 정신질환은 우울장애다. 국내 성인의 평생 유병률은 3.3~5.5%로 집계되지만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편견, 이해 부족으로 상당수 환자가 병원을 찾지 않아 실제 환자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단순히 우울한 기분과 우울증은 다르다. 정상적 우울감은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에 나타났다 사라지고 학업·직장·가정생활에 큰 지장을 주지 않는다. 반면 병적 우울증은 일정 기간 지속되는 우울감 이외에 불면증이 특징적으로 발생하고 식욕부진, 무가치감, 자살시도 등이 동반된다. 

자신이 우울증을 직접 자각하는 비율은 30% 이하에 그친다. 대부분 신체증상으로 내원해 여러 과를 전전하다가 정신건강의학과를 내원해 우울증으로 진단받는다. 만성질환 외에도 예민하거나 완벽주의적 성격, 일·가족·대인관계·금전 문제로 인한 스트레스가 주요인이다. 낮잠을 오래 자거나 침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부적응적인 수면습관이나, 지나친 건강염려증 등도 우울증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다.

만성질환 환자가 두번째로 많이 호소하는 정신질환은 불안장애다. 교감신경이 과도하게 흥분돼 두통, 심장박동 증가, 호흡수 증가, 위장관계 이상 등이 동반되고 일상생활이 어려워진다.  
하태현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정신질환은 신체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 더 흔하게 나타난다”며 “특히 파킨슨병, 류마티스관절염, 허혈성 심장질환, 만성폐질환 등을 앓는 환자가 우울증, 불안장애, 공황장애 등의 발생 위험이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만성질환 환자의 정신질환 치료는 크게 급성기 치료와 유지 치료로 구분된다. 급성기 치료는 질환을 인지한 초기에 증상을 즉시 완화하기 위해 입원치료, 약물치료, 전기경련치료 등 적극적인 처치를 시행한다. 이후에는 호전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기본적인 약물치료와 질병교육, 인지치료 등을 병행한다. 상태가 호전됐다고 해서 치료를 소홀하면 언제든 재발할 수 있어 꾸준히 치료받는 게 중요하다.

열린 마음을 갖고 주변에 도움을 청하고, 가족과 함께 적절한 휴식과 마음의 안정을 취하며, 질환에 대해 긍정적이면서도 일관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태현 교수는 “병을 앓고 있으니 당연히 기분이 좋지 않겠냐며 정신건강에 소홀한 만성질환 환자가 꽤 많다”며 “환자 스스로 정신질환을 자각해 내원하기는 쉽지 않으므로 가족이나 보호자들의 적극적인 권유와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종하 고려대 구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약으로는 마음을 고칠 수 없다는 자포자기한 심정, 반대로 약물치료 후 증상이 나아졌다는 안도감 탓에 환자 임의로 약물치료를 중단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며 “정서적인 문제는 만성질환의 예후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만큼 장기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어 “가족력, 증상 정도, 재발 빈도 등을 면밀히 살펴 치료하면 재발 위험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국내에는 우울증 등 정신질환과 만성질환이 동반된 환자를 위한 정책이 전혀 없고, 추진 중이거나 계획된 사안도 전무한 실정이다. 영국의 경우 최근 만성질환자의 우울 관리를 위해 2020년까지 심리치료 전문가 3000명을 양성하겠다는 정책을 수립했다. 이 교수는 “기존에 이뤄지고 있는 보건소 단위 만성질환 관리사업에 더해 지역내 정신건강증진센터나 병원과 연계해 동반질환 환자들이 의료 및 상담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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