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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술 마시면 3일 쉬어야, 필름 끊기면 뇌세포 ‘와장창’
  • 박정환 기자
  • 등록 2017-11-30 06:51:59
  • 수정 2021-07-06 02:3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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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뇌속 해마 마비돼 저장기억 상실, 혈중알코올농도 0.15~0.25% 위험 … 전두엽 손상돼 폭력성도

블랙아웃으로 뇌 자체가 쪼그라들어 뇌의 텅 빈 공간인 ‘뇌실’이 늘어나는 상태가 반복되면 알코올성 치매로 이어지기 쉽다.

과음 후 일정시간 동안 기억이 나지 않는 증상을 ‘필름이 끊겼다’고 표현한다. 다음날 술에서 깬 뒤 상대에게 말실수를 한 것은 아닌지, 추태를 부린 것은 아닌지 기억을 되짚어봐도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취기에 옛 연인 등에게 전화를 걸거나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낸 것을 확인한 경우엔 민망함을 넘어 극심한 자괴감이 몰려온다.

과음 탓에 기억을 잃는 것을 의학적으로 ‘알코올성 블랙아웃(alcoholic blackout)’이라고 정의한다. 필름이 처음 끊기면 당장은 ‘다시는 과음하지 말아야지’하고 다짐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똑같은 증상을 겪는다. 결국 ‘또 필름 끊겼네’라며 마치 일상처럼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기지만 이런 증상이 장기간 반복될 경우 젊은 나이에 ‘알코올성 치매’를 경험할 수 있다.

손애리 삼육대 보건관리학과 교수팀의 연구결과 50대 이하 성인 중 20대가 술을 가장 많이 마시고 블랙아웃 현상도 가장 많이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20대의 한 달 평균 음주량은 소주 5.8잔, 맥주 4잔, 소맥(소주와 맥주를 혼합한 술) 4.2잔, 와인 1.7잔 등 총 15.7잔으로 가장 많았다. 블랙아웃 경험 비율도 44%로 가장 높았고 50대(33.8%), 30대(33.1%), 40대(29.6%) 등이 뒤를 이었다.

블랙아웃은 술에 들어있는 알코올의 독소가 뇌의 기억 입력과정 활동을 차단해 발생한다. 기억은 최근의 정보를 입력하는 단기기억과 이를 통합해 오래 저장하는 장기기억으로 나뉜다. 단기기억이 신경전달물질과 함께 장기기억을 저장하는 관자엽(측두엽)으로 넘어가려면 해마를 거쳐야 된다. 해마는 뇌 안쪽에 있는 저장장치로 길이 약 5㎝의 곤봉 형태를 띠고 있다.

체내에 흡수된 알코올을 분해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아세트알데히드는 덜 분해된 알코올과 함께 혈관을 타고 온몸에 퍼진다. 특히 혈액 공급량이 많은 뇌에 집중적으로 침투해 기억을 저장하는 해마를 손상시키고, 신경세포간 신호전달 매커니즘을 교란시킨다. 이럴 경우 뇌에 기억이 들어와도 해마에 저장되지 않아 술이 깬 뒤에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말을 주고받았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블랙아웃의 가장 큰 원인은 급격한 혈중알코올농도 상승이다. 술을 단시간에 급하게 많이 마셨을 때 주로 발생한다는 의미다. 컴퓨터 작업 후 실수로 저장하지 않고 급하게 전원을 꺼버린 것과 유사하다.


김대진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혈중 알코올 농도가 0.05% 이상이 되면 사고와 판단이 느슨해져 속칭 ‘알딸딸’한 상태가 된다”며 “기분이 적당히 좋아지면 음주 속도가 빨라지고, 개인차는 있지만 혈중알코올농도 0.15~0.25% 사이에서 기억을 잃게 된다”고 설명했다.


혈중 알코올 농도는 혈액 100㎖당 알코올의 비중으로 0.15%는 혈액 100㎖당 0.15g의 알코올이 포함됐다는 의미이다. 체중이 65kg 정도인 남성이 소주를 두 잔 마시면 혈중 알코올 농도 0.02~0.04%, 3~5잔 마시면 0.05~0.10%, 6~7잔은 0.11~0.15% 정도 나온다.

초기에는 뇌 기능에만 문제가 생겼다가 바로 복구되지만 블랙아웃이 반복되면 뇌 자체가 쪼그라들어 뇌의 텅 빈 공간인 ‘뇌실’이 늘어난다. 이런 상태가 장기간 반복되면 알코올성 치매로 이어지기 쉽다. 알코올성 치매는 전체 치매 환자의 약 10%를 차지한다. 


미국 웨슬리대 연구결과 하루 소주 3잔에 해당하는 알코올을 30년 이상 마시면 뇌세포 파괴 속도가 빨라져 뇌의 용량이 평균 1.3% 줄고, 하루 1잔씩만 마셔도 0.5% 줄어드는 것으로 조사됐다. 뇌기능이 떨어지면 음주조절 능력이 낮아져 더 많은 양의 술을 마시고, 뇌기능 감소 속도가 빨라지는 악순환을 낳는다.

또 알코올로 인한 뇌 위축은 기억력을 떨어뜨리는 동시에 사람의 성격, 감정, 행동을 조절하는 전두엽과 대뇌피질까지 손상시켜 성격을 폭력적으로 변화시킨다. 이로 인해 일반적인 노인성 치매 환자는 기억력장애와 언어장애만 나타나는 데 반해 알코올성 치매 환자는 감정 및 충동 조절 능력이 저하된다. 김 교수는 “술에 취하면 평소와 달리 난폭해져 화를 잘 내고 폭력적인 성향이 드러난다”며 “변화된 성격이 굳어지면 술을 마시지 않은 상태에서도 공격적이고 신경질적인 사람이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2011년 경찰청이 발표한 강력범죄 통계에 따르면 음주 상태에서 발생한 범죄는 약 30%에 달했다. 범죄 유형별로는 살인 40%, 성폭행 34%, 강도 14%, 절도 6.6% 순이었다. 이들 범죄자 중 상당수는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블랙아웃 증상을 호소했다. 

알코올로 파괴된 뇌세포는 재생되지 않으므로 6개월에 2회 이상 블랙아웃을 경험하고 빈도가 잦아진다면 병원에 상담을 받아보는 게 좋다. 알코올성 치매를 예방하려면 올바른 음주습관을 가져야 한다. 조금만 여유를 줘도 음주량이 금방 회복되므로 과음 습관은 단숨에 끊어야 한다. 

보통 체중 70㎏인 사람이 소주 1병(360㎖)을 마시면 알코올이 모두 분해되기까지 4시간 이상이 소요되므로 술을 천천히 마셔야 한다. 또 알코올로 손상된 간은 72시간이 지나야 원상태로 회복되기 때문에 한번 술을 마시면 다음 술자리까지 3~4일의 간격을 두는 게 좋다. 

술을 마실 때 채소, 과일, 단백질 함량이 많은 안주를 곁들이는 것도 좋다. 버섯은 알코올 분해 대사를 돕는 비타민B1이 풍부하고 손상된 뇌세포에 영양을 공급하는 데 도움된다. 고등어, 꽁치, 삼치 등 등푸른 생선은 기억력과 판단력을 향상하는 DHA(docosa hexaenoic acid)가 풍부해 곁들여 먹으면 좋다. 빈속에 음주하면 건강을 망치고 술 마시는 속도를 빨라지게 할 수 있어 밥을 충분히 먹어 식욕을 가라앉힌 뒤 술을 마시는 게 좋다. 갈증이 날 땐 먼저 물을 마시고 술잔을 들어야 한다.

술을 가득 따르지 말고 절반만 따르는 술 문화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받은 술잔은 바로 들지 말고 일단 탁자에 내려놓았다가 시간을 갖고 마시는 게 좋다. 술잔을 한 번에 비우지 말고 여러 번 나눠 마시고, 한 가지 종류만 마시는 것도 한 방법이다. 술자리에서 주변 사람과 이야기를 많이 하고, 심리적으로 남을 욕하기보다 칭찬을 많이 하면 술을 적게 마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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