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태어난 사람은 비교적 건강하고, 겨울이 생일이면 질병에 취약하다는 말을 종종 들을 수 있다.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는 말 같지만 태어난 시기는 건강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옛날부터 동양 사주명리학에선 나무(봄)·불(여름)·흙(간절기)·쇠(가을)·물(겨울) 등 ‘오행’을 바탕으로, 서양 점성술은 1년을 황도 12궁으로 구분한 ‘별자리’로 건강운을 점쳤다. 의학적으로도 출생 시기와 질병과의 연관성을 입증하려는 연구가 이뤄지고 있지만 아직 임상 근거가 부족하고, 연구마다 결과가 상이해 참고만 하는 게 좋다.
2015년 미국 컬럼비아대 연구팀이 국제학술지 ‘의료정보학회(American Medical Informatics Association)’에 발표한 연구와 다른 선행 연구들을 종합해보면 추운 시기에 태어날수록 질병 발생률이 높다. 특히 북반구를 기준으로 한겨울인 1월부터 4월 사이에 태어난 사람은 심장질환에 취약한 반면 호흡기질환과 신경계질환 발생률은 낮다. 세부적으로 1~2월생은 고혈압, 3~4월생은 부정맥·심부전·협심증·급성심근경색 등 중증 심장질환에 걸릴 확률이 높다.
3~4월생이 심장질환에 약한 것은 일조량 감소에 따른 비타민D 결핍과 연관되는 것으로 추측된다. 비타민D가 부족하면 태아의 성장·발육과 면역체계 형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3~4월에 태어난 아이는 일조량이 적어 비타민D가 결핍되기 쉬운 한겨울에 임신 중·후반기(6~8개월차)를 맞는다. 이 시기엔 태아의 심장을 비롯한 장기가 집중적으로 발달하므로 비타민D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으면 성장 후 심혈관질환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
또 초봄에 태어난 사람은 우울증이나 조울증(양극성장애) 같은 정서적인 문제를 겪을 확률이 5~8% 높다. 여기엔 한겨울철에 임신 중·후반기를 거치면서 인플루엔자바이러스가 뇌 발달에 악영향을 준다는 가설과, 겨울에 태어난 사람의 심장질환 위험이 높은 것처럼 비타민D 부족이 뇌 발달을 저해한다는 가설이 맞서고 있다.
가을부터 초겨울까지인 9~12월생은 중증 심장질환 위험은 낮은 대신 자잘한 질병에 취약하다. 9월생은 천식, 10월생은 감기·급성 인두염·소화장애·월경통, 11월생은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설사 환자가 많은 편인데 명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추울 때 태어난 사람은 폐를 비롯한 호흡기가 약한 편이다. 노르웨이 베르겐대의 연구결과 11~2월생은 따뜻한 시기에 태어난 사람보다 호흡기에 문제가 생길 확률이 높았다. 김태범 가천대 길병원 비뇨기과 교수는 “호흡기질환 여부와 상관없이 비뇨기수술을 위해 폐기능 검사를 실시한 결과 겨울에 태어난 남성은 강제폐활량(FVC)이나 1초간 강제호기량(FEV1) 등 폐기능수치가 다른 계절에 태어난 남성보다 낮았다”며 “단 여성에선 이런 결과가 나타나지 않아 계절적 요인, 자궁내 환경, 성호르몬 등이 폐기능에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추측된다”고 설명했다.
겨울에 태어나면 폐기능이 약한 이유로는 바이러스 감염이 꼽힌다. 인플루엔자바이러스는 날씨가 추워지는 11월부터 유행하기 때문에 11~2월에 태어난 아이는 임신 후기 또는 출산 직전 엄마의 자궁에 있을 때 바이러스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5~8월에 태어난 사람은 비교적 건강한 편이다. 이 시기엔 태어난 아이는 일조량이 많은 3~6월에 성장·발육에 중요한 임신 중·후반기를 거치면서 건강상 이익을 보는 것으로 추측되지만 가설일 뿐이다. 한반도에서 일조량은 3월부터 증가해 6월 중순경에 정점을 찍고 점차 줄어든다. 한여름인 7~8월의 경우 장마 등으로 봄보다 평균 일조량이 적은 편이다. 한여름에 태어난 사람은 소화장애나 결막염 위험이 높다는 연구결과도 보고됐다.
하지만 계절적 요인이 질병 발생에 영향을 끼치는 정도는 식습관, 운동 여부, 스트레스 등 다른 환경적 요인보다 훨씬 미미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자기가 태어난 달에 특정 질환의 발생률이 높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으며, 건강관리 플랜을 짤 때 참고용 정도로 활용하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