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적 전통이 잔존하는 한국사회에서 자주 웃거나 별일 아닌데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진중하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기 쉽다. 대인관계에나 사회생활에서 어느 정도 포커페이스는 필요하지만 지나치게 감정표현에 인색하면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우울증이나 화병에 노출될 수 있다.
해외 연구에 따르면 감정이 풍부하고 자신의 감정이나 느낌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사람일수록 정신건강이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질병으로 병원에 방문하거나 약물을 복용하는 비율도 낮았다.
인간의 감정표현 방식이 건강과 직접적으로 연관된다는 것을 입증할 만한 과학적 근거는 부족하다. 하지만 웃음이나 눈물을 통해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면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입장이다.
영국의 철학자인 버드란트 러셀은 ‘웃음은 만병통치약’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 (William James)는 ‘행복하기 때문에 웃는 게 아니라 웃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라며 웃음의 정신적 작용을 강조했다.
웃음은 뇌 속 전두엽과 변연계내 시상하부 일부가 자극받아 발생하는 것으로 650개 근육 중 15개 안면근육을 포함, 총 203개 근육을 움직이는 최고의 뇌 운동이다.
13세기 이후 일부 외과의사들은 수술로 인한 고통을 줄이는 데 웃음을 이용했다. 현대 웃음치료 개념은 미국의 주간지 새터데이 리뷰(Saturday Review) 편집장이었던 노만 커즌스(Normal Carsons)가 정립했다. 그는 뼈와 근육이 굳어가는 강직성척추염으로 고생하던 중 코미디 프로그램을 본 뒤 통증이 줄어드는 것을 느꼈다. 이후 미국 캘리포니아대 부속병원에서 웃음의 의학적인 효과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웃음은 면역력 향상에 도움된다. 김정현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웃으면 면역체계를 이루는 인터페론 감마(interferon-δ), 백혈구, 항체가 많아지고 반대로 면역을 억제하는 코르티솔(cortisol)과 에피네프린이 줄어든다”며 “암세포를 죽이는 NK세포가 웃음에 의해 활성화된다는 연구결과도 보고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통증을 줄이는 신경전달물질인 엔도르핀(endorphin)이나 엔케팔린(enkephalin) 분비가 증가해 스트레스와 통증을 개선하는 효과도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혈관을 이완시켜 혈압을 떨어뜨리고, 알레르기성 비염이나 당뇨병을 개선하며, 운동효과를 높이는 데에도 일정 부분 관여한다.
반대로 슬픔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건강에 도움된다. 부정적인 감정을 잘 표출하지 않는 사람은 화병이나 우울증 등 정신적인 문제는 물론 두통, 근육통, 소화불량, 변비 등 신체 증상에 쉽게 노출된다. 지나치게 내성적인 사람은 ‘상대가 상처받지 않을까’, ‘한마디했다가 싸움으로 번지면 어쩌나’하는 걱정 탓에 감정문제를 밖으로 표출하지 않고 안으로 억누르다 울화병이 도지기 쉽다.
슬픔은 뇌 변연계·앞이마엽·띠이랑·관자엽·시상하부·다리뇌·중뇌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나타난다. 대부분 즐겁지 않은 사건과 엮여 불쾌하고 부정적인 감정으로 간주되지만 항상 부정적인 영향만 끼치는 것은 아니다.
감동적이고 슬픈 영화를 보거나 서러운 감정이 복받쳐 흘리는 눈물은 일종의 해독 작용을 한다. 눈물을 흘리면 교감신경의 일종인 카테콜아민이 함께 밖으로 배출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카테콜아민이 그대로 체내에 축적돼 심장을 압박, 고혈압이나 심장질환 위험을 높일 수 있다.
슬픔과 눈물은 신체를 안정시키는 효과도 나타낸다. 아리타 히데오 일본 토호대 교수는 “목 놓아 우는 것은 뇌를 ‘리셋(reset)’하는 효과를 갖는다”고 주장했다. 최근엔 눈물치료를 웃음치료와 병행해 고혈압·당뇨병·화병 등 만성질환을 개선하려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김정현 교수는 “인간은 슬픔을 통해 현재 닥친 상황을 반성하고 정리할 수 있는 여유를 얻는다”며 “슬픔으로 인한 사회적 위축은 자신이 실패한 이유를 분석하고 재도약하는 발판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단 슬픔의 강도가 심하거나 장기간 지속될 경우 우울장애로 악화될 수 있어 슬픔이 장기간 지속되거나 피로감, 수면변화, 집중력저하 등이 동반되면 되도록 빨리 진단을 받아보는 게 좋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