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이 몸에 해로운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평생 피워 온 담배를 손에서 놓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임신 중엔 당연히 담배를 끊어야 하지만 ‘하루 한두 개비는 괜찮겠지’라며 스스로 합리화하거나, 임신 후 뒤늦게 금연을 시도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건강한 아이를 출산하려면 최소 임신 12주 전엔 담배를 끊어야 한다. 임신 직전이나 임신 중에 금연하는 것은 실패한 임신을 방기하는 것과 다름 없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준비에 실패하는 자는, 실패를 준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 국가금연지원센터가 발표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국내 여성의 흡연율은 2008년 이후 10년 가까이 6%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우려스러운 것은 20대 가임기 여성의 흡연율이 전체 연령대 중 가장 높다는 사실이다. 20대 여성 흡연율은 2008년 12.7%까지 올라간 뒤 2010년 7.4%, 2012년 10.4%, 2014년 8.9%로 10%대를 오르내리고 있다.
또 2010년 서울대 의대의 연구결과 국내 산모의 3%가 흡연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7년 전 연구 결과지만 최근 몇 년간 여성흡연율이 비슷한 수준을 유지한 것을 고려하면 산모 흡연율도 과거와 큰 차이가 없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외 연구결과들을 종합하면 흡연은 태아의 중이염 위험을 38%, 폐렴과 기관지염 발병위험을 57%, 저체중아 출산 위험을 20~50%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연유산, 사산, 자궁외 임신 등의 발생도 2배가량 높아진다.
담배 속 일산화탄소와 니코틴은 혈관을 수축시켜 폐포의 산소 운반을 방해하고 체내 산소결핍을 유발한다. 전승주 가천대 길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산모의 체내 산소가 부족하면 탯줄을 통해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받는 태아도 산소결핍에 시달리게 된다”며 “이럴 경우 태아의 심장박동이 정상보다 빨라져 과도하게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고 성장 발육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흡연 중이거나 담배를 끊은 지 얼마되지 않는 산모에서 태어난 아이는 일반 아이보다 체중이 200~400g가량 덜 나갈 확률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흡연 기간이 길고 흡연량이 많을수록 태아의 체중은 더욱 감소한다. 체중뿐만 아니라 체내 여러 장기의 크기가 작아지고 폐기능이 떨어져 출생 후 병치레가 잦고 천식·중이염·기관지염에도 쉽게 노출된다.
또 담배의 니코틴과 독성물질이 태반을 통해 고스란히 태아에게 전달돼 발육지연·조산·뇌성마비·정신박약·학습장애·사망 위험을 높인다.
여성이 흡연하면 여성호르몬이 비정상적으로 분비되고 난자가 손상돼 수정능력이 30%가량 감소한다는 연구결과도 보고됐다. 또 자궁내 나팔관의 연동운동도 저하돼 배아의 착상능력이 감소하는 등 전반적인 임신환경이 열악해진다. 이럴 경우 자궁 속 태반이 정상보다 일찍 원래 위치에서 떨어지는 태반 조기박리, 태반의 전부 또는 일부가 자궁입구를 막아 태아가 나오지 못하는 전치태반, 양막 조기파열, 조산 등의 위험이 높아진다.
흡연에 의해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은 영아돌연사증후군(영아급사증후군, sudden infant death syndrome, SIDS)이다. 이 질환은 12개월 이하 영아가 잠든 이후 특별한 이유 없이 사망하는 것을 의미한다.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흡연이 발생 위험을 3~5배 높이는 것으로 추정된다.
담배를 피우는 가임기 여성은 자신과 태아를 위해 당장 금연하는 게 좋지만 사정상 여의치 않다면 적어도 임신 시도 3개월 전에는 담배를 끊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신 또는 수유 중이라면 니코틴패치 같은 금연보조제 사용을 삼가야 한다.
전 교수는 “임신부나 수유부가 니코틴패치를 사용하면 니코틴이 태반을 통과하거나 모유로 분비돼 아기에게 약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며 “니코틴은 태반혈관을 수축시키므로 태아에게 산소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발육에 문제가 생기거나 태아가 니코틴에 중독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금연은 여성만의 책임이 아니다. 남성도 자녀계획을 세웠다면 담배를 끊는 게 바람직하다. 담배를 피면 정자세포의 유전자가 손상되고 돌연변이나 염색체 이상을 일으킬 수 있다. 정자의 노화속도도 훨씬 더 빨라진다. 또 흡연하는 남성이 임신한 아내와 성관계를 가지면 자궁으로 유입된 정액을 통해 태아에게 유해물질이 전달될 수 있다.
남성은 생식세포가 정자로 분화되는 데까지 60일가량 걸리므로 임신 시도 2개월 전부터 금연해야 정자가 정상으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