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영국의 한 20대 여성이 태아의 맥박 확인을 위해 쓰는 가정용 초음파기기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해 출산 직전 아이를 잃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임신 10개월 차였던 그녀는 출산 예정일이 1주일이 지나도 아이의 움직이 없자 무슨 문제가 생겼음을 직감하고 초음파기기의 일종인 도플러기기로 태아의 심장박동을 확인했다. 검사 결과 태아의 심장박동은 매우 안정적이었고 안심한 그녀는 다시 잠을 청했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태아의 움직임이 없다는 사실을 느낀 그녀는 곧장 병원에 갔고 의료진으로부터 태아가 이미 사망했다는 진단을 받았다. 의료진은 그녀가 자신의 심장박동을 태아의 것으로 착각해 병원에 바로 오지 않은 게 화근이었다고 판단했다.
바쁜 현대인을 주고객으로 한 홈케어 시장의 성장, 인구고령화, 병원 신뢰 하락 등 요인이 겹치면서 가정용 의료기기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가정용 의료기기는 의료기관용 기기와 달리 대부분 사용법이 간편하고 덜 위험하지만 잘못된 방법으로 사용하면 질병을 제때 진단하지 못해 치료시기를 놓치는 등 크고 작은 부작용에 노출될 수 있다.
가정에서 자주 쓰이는 휴대용 혈당측정기는 혈액을 채혈침으로 짜내 검사지(스트립)에 묻힌 뒤 측정기계에 넣는 방식으로 사용한다. 채혈 과정에서 세균에 감염될 수 있어 소독에 신경 쓰고 채혈침을 재사용하거나 다른 사람과 함께 쓰는 것을 피해야 한다.
손에 물기나 땀이 남아 있으면 혈액 농도가 묽어져 낮은 수치가 나오므로 채혈 전 비누로 손을 씻고 충분히 말린다. 손을 30초 정도 아래로 향하게 한 뒤 채혈하고, 보통 손가락 끝 부위를 찌르는데 피를 억지로 짜내면 세포조직이 혈액에 섞여 혈당수치가 낮게 나올 수 있다. 검사지는 40도 이상 고온, 습기, 직사광선에 노출되면 변성 가능성이 있어 서늘한 곳에 보관하는 게 좋다.
림프부종 등으로 부은 다리를 가라앉히기 위해 애용하는 공기압마사지(공기압박펌프 치료기)를 잘못된 강도로 사용하면 증상이 악화될 수 있다. 직업상 오래 서있는 사람은 퇴근 후 공기압마사지를 사용해주면 부종이나 하지정맥류 위험을 줄이고 증상을 억제하는 데 도움된다. 하지만 심부전으로 인해 발생한 심장성부종이거나, 피부염을 앓고 있거나, 공기압마사지 사용 압력·시간이 적정 수준을 넘어서면 부종이 심해진다.
저주파자극기(TENS)는 피부 속에 있는 감각신경 가닥을 전기로 자극, 뇌로 가는 통증 신호를 줄여준다. 관절염, 외상 후 통증, 허리통증, 대상포진 통증, 만성근육통 완화 목적으로 사용한다.
하지만 평소 피부 알레르기가 자주 일어나는 사람은 사용을 삼가는 게 좋다. 당뇨병성 말초신경장애 등 감각이 떨어진 사람을 자극 강도를 높이다가 화상을 입을 수 있다. 특히 가슴 안에 심장박동기가 있으면 저주파자극이 박동기 오작동을 일으킬 수 있어 사용을 삼가야 한다. 인지기능이 떨어진 치매 환자나 임신부도 사용을 권장하지 않는다.
약에 내성이 생기듯 저주파자극기를 자주 사용하면 진통효과가 떨어지기도 한다. 하루 한두 번씩, 한 번에 10~15분 이내로만 사용하는 게 좋다.
유·소아를 대상으로 자주 사용하는 콧물흡입기는 출혈, 부어오름, 교차오염 등을 유발할 수 있다. 아이의 콧속은 성인에 비해 매우 얇고 연약해 과도한 흡인 시 비강 손상과 출혈 위험이 높다. 흡입기를 너무 자주 사용하면 코 안 점막이 부어오르기도 한다. 교차오염은 두 명 이상이 의료기기를 번갈아 사용할 때 발생하기 쉽다.
콧물흡입기 사용 후에는 흡입기를 분리한 뒤 내부 이물질을 완벽하게 씻어내야 한다. 세척이 끝나면 건조시켜 수분을 모두 제거한 다음 조립한다.
효과를 높이려면 목욕 후 사용하는 게 좋다. 콧속으로 따뜻한 습기가 들어가 콧물을 묽게 만들어 흡입력이 높아진다. 콧물이 말라 제거하기 쉽지 않다면 식염수를 2~3방울 코 안에 떨어뜨리고 1~2분뒤 흡입기를 사용하면 된다. 아이를 눕히지 않는 게 안전하다.
레이저 제모기기로 눈썹 주변을 정리하다 화상을 입는 사고도 종종 일어난다. 눈썹은 다른 부위의 피부보다 유독 예민하고 얇은 부위여서 기기를 적정 강도로 사용하지 않으면 피부가 손상되기 쉽다. 피부톤이 어두운 갈색을 보이는 사람은 멜라닌 색소가 보통 사람에 비해 많아 레이저에 의한 화상이나 변색이 나타날 위험이 높다.
‘안마의자’로 불리는 의료용 진동기는 과도한 압력에 따른 근육 및 힘줄 파열, 신경·척추 손상, 피부질환, 화상, 타박상, 찰과상 등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진동기를 사용할 땐 살이 닿지 않도록 얇은 옷을 입고, 감전사고 및 찰과상 예방을 위해 몸의 물기를 제거해야 한다. 처음에는 약한 자극으로 시작해 점차 강도를 높여나가면 근육통 위험을 낮출 수 있다. 백남종 분당서울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는 “색전증·중증 정맥류·급성정맥류를 앓고 있거나, 급성 경추염좌이거나, 염좌 또는 근육이 갑자기 수축해 끊어졌던 증상이 있거나, 임신 초기 또는 출산 직후이거나, 중증 골다공증을 앓고 있거나, 이식형심장박동기 등 인체이식형 전자의료기기를 사용하고 있는 환자라면 진동기 사용 전 전문의와 상담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의료기기는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따라 1~4등급으로 나뉘며 등급이 높아질수록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1등급은 인체에 직접 접촉되지 않거나 접촉되더라도 잠재적 위험성이 거의 없고, 고장이나 이상으로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경미한 의료기기다. 2등급은 사용 중 고장이나 이상으로 인한 인체에 대한 위험성은 있으나 생명의 위협 또는 중대한 기능 장애에 직면할 가능성이 적어 잠재적 위험성이 낮다. 혈압계·체온계·혈당측정기 등 가정용 의료기기 대부분이 1~2등급에 속한다.
3등급은 인체 내에 일정기간 삽입해 사용하고, 4등급은 인체 내에 영구적으로 이식해 심장·중추신경계·중앙혈관계 등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의료기기를 의미한다.